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5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48)
그리핀 떼는 목책 위, 나무 위에 내려앉다가 날아올랐다가 하면서 마을 안팎을 위아래로 들락거리고 있었다. 전혀 거리낌 없이, 거기가 자기네 둥지라도 된 것처럼 멋대로!
저런 그리핀 떼의 움직임이 의미하는 바는…….
“가자. 일단…… 생존자 확인까지는 해야지.”
어두운 낯빛으로 베즐이 소리쳤다.
활카엘이 바로 이에 대꾸를 한다.
“아직 싸우는 모양이야! 나름대로 뭉쳐서 저항하는 것 같다고!”
베즐이 바로 내달리며 외친다.
“서둘러! 칼 휘두를 힘은 남겨두고, 최대한 빨리 간다! 달리는 데 힘을 다 쓸 거면 천천히 오든가, 여기서 기다려!”
베즐 팀은 전부 내달리고 있었다.
베즐처럼 빠르게…….
투란은 라펜과 마켈이 투덜대는 소리를 바로 들을 수 있었다.
“잘나셨네, 진짜!”
“잘난 소리할 만하지.”
뭔가 잔뜩 비뚤어진 기분이 역력한 말이었다.
하지만 라펜과 마켈은 입으로 내뱉은 불만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베즐 팀을 따라가는 슬리피의 뒤를 밟듯이 내달리고 있었다. 투란이 따라붙든 말든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돌아보지도 않고!
왠지 무관심한 일행의 뒷모습을 향해 조금 입술을 삐죽이면서 투란도 그 뒤를 쫓았다.
어쨌든 어리광부리거나 호기심을 불태울 때는 아니었다.
퍼억, 터텅.
목책을 빛의 칼날이 그었고, 그다음에 이어진 발길질에 구멍이 났다.
구멍을 채우기 위해 썰어놓은 듯한 나무토막 몇 개가 저편으로 나뒹굴었다.
베즐은 구멍을 바로 뛰어넘었고 일행은 그 뒤를 따랐다.
투란이 마지막 순서로 기대하고 구멍 앞에 붙는데 마켈이 방패를 팔뚝에 채우고 턱짓하며 말한다.
“투란, 들어가.”
마켈은 위를 올려다보는 중인데, 그 눈길 닿는 곳에 마을의 침입자를 내려다보는 듯한 그리핀 한 마리가 빙빙 맴돌고 있었다.
투란은 얼른 구멍을 넘었고 마켈이 방패로 그리핀을 겨냥하는 듯한 자세로 뒷걸음쳐서 구멍을 넘는 것을 도왔다.
이렇게…… 마을을 향해 똑바로 달려와서, 마을의 문을 찾아 헤매는 대신에 바로 진입구를 뚫고 들어온 일행의 앞에는 멀리서 보며 상상한 것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쓰러진 사람이 보이기는 했다.
옷이 찢어지고 살이 뜯겨져 뼈가 드러나거나, 뱃가죽이 뒤집어져 내장이 흩어진 몰골로…… 조금 전까지 그리핀 몇 마리가 달라붙어 있었던 듯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 모두가 즐비하게 시체 된 채로 뜯어먹히는 광경이 아니었다.
어쩌다가 외떨어지게 된 사람만이 그리핀에게 죽은 것처럼 보였다.
집과 집 사이의 길목에 드문드문 보이는 시체…… 그 몇 구가 마을 사람 모두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피해가…… 좀 적지 않아?”
조심스럽게 라펜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미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슬리피가 습관이 된 듯한 졸린 목소리로, 하지만 또렷하게 보태 말한다.
“저기…… 홀, 타운 홀 쪽이야. 그리핀 떼를 보고 굉장히 빨리 모였거나…… 원래 모여서 뭘 하고 있었든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슬리피의 모습은 언젠가 이 마을에 들러본 적이 있는 듯했다.
베즐이 바로 그쪽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베즐 팀 멤버들이 각자의 위치를 정한 듯이 나란히 움직였다.
슬리피는 어느새 그 틈속에 끼어 있었고, 라펜과 마켈은 주변을 경계하는 자세로 투란을 자신들 사이에 두고 베즐 팀의 뒤를 밟아갔다.
파다닥! 푸드득!
날갯짓 소리가 지붕 위에서 울렸고, 머리 위를 스쳐가는 듯했다.
투란은 문득 이 마을이 숲을 이용해서 목책을 세운 것처럼 산기슭의 한 귀퉁이를 아주 잘 활용해서 집을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숲과 언덕, 산기슭의 지형을 이용한 것이 아주 능숙해서 집의 형태나 모양은 알드바인의 허름한 곳과 비슷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 덕분에 집의 기둥삼아 솟은 나무 위로 그리핀이 오락가락하는 것이 저절로 은폐가 되는 점도 있기는 했지만, 집과 집 사이의 틈새로 넓게 펼쳐진 길 위로는 하늘이 제대로 보이고 있기도 했다. 그 하늘을 배경으로 날갯짓하며 지붕에서 지붕으로 뛰거나, 보다 더 높은 곳에서 맴도는 그리핀의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눈에 뜨이기도 했다.
물론 집 안에서, 집 벽을 따라 숨어 있다가 튀어나오는 그리핀의 모습은 더 또렷하게 보였다!
보자마자 투란은 일단 두 손으로 허벅지에 꽂힌 단도를 한 자루씩 잡았다. 양옆으로 라펜과 마켈이 나름대로 ‘애송이’를 배려해서 자리 잡고 있으니 장검을 꺼내 휘두르기에는 조금 애매했으므로!
하지만 앞에서 튀어나와 일행을 놀래며 발톱을 세워 보이던 그리핀은 일행 가까이 오지 않았다. 베즐이 그리핀을 보자마자 냅다 뛰어서 빛의 칼날을 휘둘렀고, 그리핀은 습격하러 나왔다가 습격받은 꼴이 되어 튀어 올랐던 것이다.
시잉!
시원한 소리와 함께 그리핀이 파닥거리며 날아오르는 광경을 보다가 투란은 퍼뜩 알아차렸다.
‘저거, 피했어?’
베즐이 랩티드를 잡았을 때처럼 빠르게 움직였는데 그리핀은 그 속도를 보고 맞추듯이 뒤로 물러서서 날아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몸에 슬링샷이 꽂혔다.
뻑!
가죽 속으로 돌이 파고드는 음향이었고, 곧이어 그리핀의 가슴팍에서 피와 살이 갈리듯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리핀의 날갯짓은 더 거세졌고, 피를 쏟아내면서도 더 높이 날아올랐다.
슬리피가 졸음 속에서 짜증 내는 소리를 냈다.
“상급 비슷하게 취급받는 몬스터라더니…… 진짜 빠른데…….”
이는 투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리핀은 분명히 중급 지정이 된 몬스터일 텐데?
“상급? 그리핀이요?”
낮게 나온 투란의 물음에 가까이 있던 라펜이 빠르게 대답한다.
“저 종류만. 조심해, 저놈 부리에 독 있다.”
주의하라고 알려준 것이겠지만, 마치 독 때문에 상급 사냥감으로 지정되었다는 듯한 말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투란은 그게 아니란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라펜은 그저 독부리에 잘못 스쳐 다칠까 걱정해서 말해준 것이고, 저 독부리 그리핀이란 품종이 상급 지정된 까닭은…….
“젠장, 소문만큼 빠르구만.”
베즐이 뒤로 물러서면서 하는 말대로였다.
하지만 이런 그리핀의 특성은 투란을 조금 더 아리송하게 했다.
‘랩티드보다 빠른가? 비슷해 보였는데?’
베즐의 돌격이 통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리핀은 피했다.
베즐이 한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않고 연이어 두어 번 더 달라붙으려 했지만 그리핀은 그걸 피해 날아올랐고…… 슬리피의 슬링샷에 맞았다. 한데 슬링스톤이 몸에 제대로 박히질 않았다. 그것까지 날갯짓을 통해 물러서면서 약화시킨 것이다. 덕분에 몸통 안에 깊이 꽂혀 내장을 찢었어야 할 슬링스톤이 겉가죽과 살을 파헤치는 정도의 피해만 입혔고, 그리핀은 그 정도 상처는 무시하고 날 수 있는 몬스터였다.
―보고 피했다. 랩티드는 앞뒤 재지 않고 아가리를 들이댔지. 저건 베즐의 움직임을 끝까지 보고 피했어. 순간적인 가속은 랩티드보다 조금 더 빠르고, 정확하게 봤으니 베즐의 칼질을 피해낸 거야.
‘아, 그런 거였어!’
끼이이!
그리핀 떼가 일행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면서 목청을 높였다.
저쪽에서 와글거리던 그리핀 떼의 일부가 이쪽으로 몰려와 무슨 일인가 내려다보는 듯했다.
투란은 흘깃 위를 보고 단도를 다시 허벅지 칼집 속에 꽂아넣으며 투덜대는 소리와 함께 등의 배낭을 당겨 열었다.
“에이…… 진짜로 그리폰은 이겨도 그리핀에게 지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잠깐 베즐 팀에서 움찔하며 흘깃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베즐도 들은 것처럼 귀를 쫑긋하더니 낯을 확 구긴 얼굴로 돌아보면서 투란에게 입술을 삐죽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저것들이 치사한 거야! 몬스터 주제에 왜 치고 빠지냐고! 미친것들이 미쳐 달려들면 좋잖아!”
“그런 걸 누가 좋아해요?”
투덜거리는 대꾸를 짧게 하면서 투란은 배낭 안에서 활을 꺼내 조립했다.
배낭 옆의 화살통 뚜껑도 열고, 배낭을 허리춤에 오게 조절해서 다시 두른 다음에 투란이 똑바로 섰다. 이런 투란을 보던 베즐 팀의 한 명이 팀 리더 베즐에게 중얼거림을 토해낸다.
“베즐, 슬링이라도 꺼내봐.”
“썩을!”
베즐은 엄청 못마땅하다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러나 베즐은 곧바로 빛의 칼날을 거두고, 칼자루를 챙겨 넣은 다음에 비슷하게 생긴 다른 손잡이가 꾸며진 막대를 꺼냈다. 막대 손잡이의 반대쪽이 바로 갈라졌고, 그 속에서 넓적한 천조각을 댄 끈이 풀려나왔다.
투란이 알드바인의 공방을 돌다가 본 사냥용 슬링이었다.
룬디아크 공방이랑은 거리가 아주 먼 도구라 할 수 있다!
칼잡이 카엘 역시 베즐과 비슷하게, 하지만 조금 더 제대로 된 것처럼 보이는 쇠뇌를 꺼내 펼치고 있었다. 한 손잡이 작은 쇠뇌라서 위력은 굉장히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베즐이 돌멩이 주워 쥐는 것과 다르게 제대로 볼트를 걸고 있었다. 물론 저 작은 쇠뇌도 알드바인 공방에서 볼 수 있는 것이고…….
일행이 이러는 사이, 그리핀 떼는 맴돌기만 할 뿐 달려들지 않았다.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투란은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되새겼다.
“그리폰(Griffon)은 포악한 맹수(猛獸), 그리핀(Griffin)은 길 잃은 들개! 쉽게 말하면 그런 거야. 체격? 그리폰은 소나 말의 머리통을 발톱으로 쥐어 뽀갤 정도로 크고 그리핀은 발톱으로 겨우 눈알을 후벼낼 정도로 작지. 그래, 가끔 그리핀 중에서도 늑대 정도로 큰 놈은 있어. 어쨌든! 그리폰은 사자 같다면, 그리핀은 그냥 머리 훌렁 까진 독소리가 네발 달린 경우 같다고 보면 돼! 아, 물론 어느 쪽이 더 위험하냐면 그리핀이지. 왜냐면, 그리핀은 절대로 혼자 안 다니거든. 떼로 몰려다녀. 치사하다고? 몬스터가 공평하게 규칙 따르는 거 봤냐? 잠깐, 애초에 독수리도 자주 떼로 몰려다니잖어! 뭔!”
‘그래서 한 마리는 중급 몬스터, 거의 그 이하로 분류되지만 위험은 상급에 필적하는 것이 그리핀. 한데 이놈들은 한 마리마다 상급이라는 건가…… 아니면 이렇게 떼로 몰려 있어서 상급이라는 건가. 애매하네.’
느릿하게 화살을 시위에 걸면서, 당기지는 않으면서 투란은 상황을 조금 더 냉정하게 둘러보려 했다.
“야, 저쪽! 저것들, 이제 구경은 그만할 모양인데!”
마켈이 외쳤다.
마을의 중심처럼 보이는 곳, 그 위편에서 맴돌던 그리핀 떼가 점점 낮게 날고 있었다. 아래에 뭔가 그럴듯한 먹잇감이 보이기라도 한 것처럼.
베즐이 빠르게 말한다.
“활카! 몇 마리 쏴서 이리로 유인할 수 있겠어?”
“관심을 끄는 거는 슬링샷으로 충분할 거야. 하지만 먹잇감에 눈길 준 그리핀이라고, 몇 마리 맞힌다고 유인되지는 않을걸. 아까 이쪽으로 온 녀석들이 전부라고 봐야 해!”
활잡이 카엘이 재빨리 대답했다.
베즐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결정했다.
“우리가 간다! 노리고 달려드는 경우만 반격하고, 빨리 이 마을 생존자들이랑 합치자!”
곧 일행이 진형을 유지한 채로, 가능한 조심스럽게 가능한 빠르게 옮겨갔다.
그사이에 투란은 죽은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눈가에 담아보는데…….
―투란, 저 그리핀의 피! 독이다!
드라고니아가 조금 놀란 듯이 말하고 있었다.
‘응? 피?’
투란의 눈길이 빠르게 슬링샷에 맞고 뿌려진 그리핀의 혈흔(血痕)을 쫓았다.
방울방울 떨궈진 피는 찢긴 시신 위로, 잡초 위로 길게 이어지는 흔적을 남겼는데…… 시신 위에서는 남은 살점 위에 거품을 피워 올리면서 표백(漂白)하는 것처럼 보였고, 잡초는 누렇게 뜨면서 바로 시들고 있었다.
투란은 바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내서, 라펜과 마켈에게 확인해야 했다.
“저거, 왜 저러죠? 독은 부리에만 있는 거 아니었어요?”
라펜과 마켈이 투란이 고갯짓으로 가리키는 그리핀의 혈흔을 돌아봤고, 대답은 앞쪽에서 조금 처진 듯한 칼잡이 카엘이 했다.
“아, 그래. 독부리 그리핀은…… 오염(汚染)된 피를 지녔어. 주변에 그 오염을 퍼뜨리니까, 저게 피 뿌리고 죽은 자리에서는 거의 일 년가량 풀잎 하나 못 자라는 꼴이 되지. 그래서 저게 상급 지정 몬스터야. 죽이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그 오염을 처리하기가 곤란해서 말이야.”
“그럼, 이 마을은……?”
투란이 다시 확인하는 물음을 흘렸고, 이번에는 마켈이 방패를 들어 올리면서 무겁게 대답한다.
“습격받은 시점에서, 저걸 물리치든 말든 이미 여긴 사람 살 수 없는 곳이란 거지. 전멸하든가, 아니면 몇 마리 잡아 오염되든가 해서.”
확실한 말을 듣고 투란은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이 마을을 구해내려는 것이 아니라, 아직 살아 버티는 사람들을 돕겠다고 일행이 움직였다는 것.
‘으흠, 여기서 완전히 망가진 헌터는…… 기껏해야 슬리피 하나 정도려나?’
예전에 봤던 완전히 망가졌다는 헌터를 떠올리면서, 투란은 미묘한 웃음을 입꼬리에 희미하게 붙일 수 있었다. 그때 그 헌터를 떠올리는 것은 언제나 마음 한쪽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