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5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47)
“기억이 없으려나?”
살짝 팔을 흔들면서, 킨사티어의 팔을 형성시키면서 투란은 다시 한번 악마의 유골 속에 담긴 기록에 정신을 집중해봤다. 그리고 잠시 후…… 별로 중요하지 않아 한편으로 흘러버린 듯한 기록, 기억이 조금 늦게 투란의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아하, 그렇게 된 거였구나!”
투란의 감탄에 드라고니아가 바로 묻는다.
―뭐가 그렇게 된 거냐?
‘어? 아…… 이 검. 계승각인이란 것이 칼자루에 그대로 박혀 있는 채이고, 그게 킨사티어의 피를 확인해서 바로 효과를 발휘한다네. 따로 몸에 계승 각인을 새기지 않고 말이야. 애초에 공방의 생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검을…… 인간을 이용해서 만든 거라는데? 흐흠…….’
―그 이야기는 왕가에서, 궁정에서 검을 제작하는 과정에 악마종이 끼어들 수 있었다는 말이잖아?
‘그렇겠지? 뭐, 그런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지금 와서 자세히 알 수도 없잖아? 그 자작 가문이 원래 악마종이 의태해서 세운 건지, 아니면 그 가문의 사람 몸을 빼앗아 스며든 건지…… 그런 얘기는 남겨져 있지 않아. 이 검에 대해서도 그리 자세히 기억은 못 할 정도니까.’
소리 없이 입술을 삐죽이면서 투란은 검에 대한 기록, 기억이 너무 적다는 것을 불만스러워했다.
―그래서, 어떤 얘기가 남아 있는데?
‘음, 이 칼날이 안개를 머금으면 강철도 바로 부식(腐蝕)시켜서 절단한다는 정도? 칼날은 상하지 않고 말이야. 몬스터라든가 바위도 제대로 찍어 자를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운 칼날이면서도 그런 부식기능도 있다네. 아, 그리고 칼날이 손상되더라도 금을 먹고 언제라도 복원된다는데?’
―어디서 듣던 마검 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군.
드라고니아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대꾸했다.
투란도 어깨를 으쓱하며 소리 없이 말한다.
‘금 먹는 검이라니, 칼날 되살린다고 해도 너무하잖아. 바보짓 한다고 소문나지 않게 조심했을 수도 있지.’
―그 검을 휘두르는 악마종이 남긴 항아리를 고려하면,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을 것 같다만?
‘어? 어…… 어라?’
데몬스 러그, 걸레로 보이는 헝겊 안에 금을 낳는 항아리가 있었다.
그 항아리가 낳는, 생김새가 어디로 봐도 세모꼴인 금덩이 하나를 황금칼날에 대고 문지르면 칼날은 숫돌에 갈리는 것처럼 금방 날카로워질 터였다. 오랜 세월 동안 여전히 인힐트의 마법이 유지되고 있었으니, 날을 세우고 가는 마법 또한 효과를 발휘할 테니까.
―여기 형제 악마종의 진짜 유산은 육체공방과 그 제어능력, 유골 속에 담긴 기억이겠지. 하지만 이 세상에 다양한 모습으로 의태해서 적응해 가려 한다면, 이 방 안에 남겨진 도구가 필요한 거야. 세상과 싸우기 위해서겠지만……. 그런 면에서 생각하자면, 좀 더 잘 찾아보면 홀시딘이 말한 자작 가문의 유물이나 표식도 어딘가 남아 있을 듯싶군.
드라고니아가 침착하게 정리하듯이 하는 말은 투란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칼라고드라니샥 형제들…… 생체공방, 황금 칼자루는 마법의 검, 화이트 미스트…… 보석 항아리, 금 항아리…… 아다만티어랑 퀸스 젤리…… 데몬스 러그!’
생각의 흐름에 따라 킨사티어의 팔에 들러붙은 악마의 유골 속에서 기억이 솟아올랐다. 너무나 오래된 일이라 악마의 유골 깊숙이 파묻혀 있던 기억, 별로 전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여기는 기록이었다. 악마가 유골을 남기며 강조하고 싶었던 것, 생체공방에 델아브나인폴트람의 동포를 맞이하며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가장 중요했고 잉칼의 일족조차 받아들여야 했던 그 상황에 대해 철저하게 알려두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에 파묻혔던 기억이었다.
인간의 도시에 스며들어 가고, 그들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더듬는 것보다 먼저 델아브나인폴트람의 문명과 기술을 이 세상에 존속시키려 한다는 절실한 결론…….
투란은 그런 유골의 기록 속에서 마검 화이트 미스트와 데몬스 러그에 얽힌 이야기, 깊이 파묻힌 기억을 되살려낸 것이다.
“응, 이거 이렇게 쓰는 거네.”
중얼거림과 함께 투란은 데몬스 러그를 반으로 접어 왼팔에 감았다.
―뭐? 무슨 말……?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한 사이, 투란은 데몬스 러그를 킨사티어의 손끝으로 누르고 두드리며 긁었다.
걸레 같던 헝겊, 데몬스 러그가 그 손짓에 반응해서 변했다.
얼룩이 뭉개지고 가죽이 솟구치며 투란의 팔죽지를 감았고, 털이 숭숭 돋아나다가 사라지며 사람의 살갗…… 투란의 살갗과 같은 색채와 질감을 드러냈다. 살짝 드러나는 접힌 틈새만 보이지 않는다면 얼핏 봐서는 그저 맨살을 드러낸 듯이 보일 정도였다.
투란은 칼날을 거둔 칼자루를 들어 데몬스 러그의 접힌 틈새로 밀어넣었다.
마치 맨살이 살짝 주름진 틈새로 칼날 없는 칼자루가 사라진 듯했다.
이런 상태를 파악한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린다.
―살가죽이 마법 주머니냐?
‘응, 원래 이렇게 쓰도록 만든 거야. 에네르기움, 에네저 하트의 기술을 마법과 연금술을 이용해서 구현하고 다양한 의태를 이용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쓸 수 있도록 말이지. 그러니까 완전히 생체에 융합장착 되는 거는 아니지만, 어쨌든 몸의 일부로 의태되는 마법 헝겊인 거야. 그냥 두면 제멋대로 때가 껴서 걸레 꼴이 되지만…….
대꾸하면서 투란은 손가락으로 틈새를 후비는 시늉을 했다.
곧 그 손가락에 걸린 금 한 조각, 녹색의 에메랄드 하나가 끌려 나왔다.
가만히 세모꼴의 금덩이와 보석 한 톨을 손바닥에 굴리면서 투란이 갑작스럽게 피식 웃었다.
―왜?
‘금광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잖아. 금이 어디 묻혔나 관심 갖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아, 그런데 마법으로는 이렇게 못 하나? 악마의 일족만 이렇게 보석이나 금을 만들 수 있는 거야?’
―할 수는 있지만, 마법사는 하지 않는다. 물질연성은 연금술사의 최종목표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할 수 있는데 안 한다고?’
―마법사는 금을 소모하지. 소모되는 금을 만들 마력이면 금을 소모하지 않고 마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이모저모로 타산(打算)이 맞지 않아. 뭐, 보석이나 금을 연성해내는 마법의 난이도가 꽤 높기도 하고…….
‘흐음…… 연금술사는 못 하는 거고?’
―연금술사 역시 충분한 기재와 시설을 갖춘다면 할 수는 있다만, 역시 타산이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게다가 연금술사의 목표는 원하는 물질을 언제든지 연성해낼 수 있는 신비를 손에 쥐는 거니까. 단순히 보석이나 금은 소모품으로 여기는 거야. 소모품을 만들어서 써봐야 타산과 효율이 심각한 문제가 있고…….
‘그러니까 땅에서 캐는 게 더 쉽고 좋다? 아하, 그래서 너네가 그렇게 금은보석에 무관심하다는 거였구나! 없으면 만들면 되고, 필요하면 있는 거 캐면 되고!’
―만드는 게 너무 까다롭기 때문이다만, 애초에 어디 있는가 아는 것을 캐서 쓰면 되는 거란 점이 큰 탓도 있기는 하군. 그보다, 데몬스 러그를 그런 형태로 사용하면 넣고 뺄 물건의 크기에 제약이 생기는 것 아니냐? 그 상태라면 퀸스 젤리나 아다만티어는 쉽게 빼낼 수 없어 보이는데? 뭘 집어넣기도 그렇잖아?
‘응? 아, 그야 안전한 곳에서 이걸 다시 떼어 펼치는 걸로…… 앗, 그렇구나!’
자연스럽게 유골의 기억으로 대답하다가 투란은 퍼뜩 주변을 둘러봤다.
드리고니아가 바로 투란의 눈길을 따라 프로브의 감각을 펼치면서 묻는다.
―뭐가 그래?
“안전한 곳, 데몬스 그라토. 악마의 작은 정원…… 절벽의 동굴! 여기는 원래 여기 있는 것이 아니었어. 알드바인에 이렇게 가까이 있던 게 아니야.”
감탄한 투란의 생각은 소리가 되어 흘렀다.
―여기 있지 않았다고? 무슨 말이냐? 이 동굴이 움직이기라도 했다는 거야?
“움직여, 원래 그렇게 만들어. 에너지 하트의 기술, 이 거주구역 전체를 암반 내부에서 움직일 수가 있으니까. 아하핫, 그래서 알드바인의 상아탑에서 몰랐었네! 이게 이 근처로 온 거, 몇 년 되지 않았어. 산돌프는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가까이 온 다음에 발견했던 걸까? 아하핫.”
탁탁, 탁자를 치며 투란이 웃었다.
악마의 유골, 그 안에 담긴 기억을 더듬어 파내면 파낼수록 투란은 새로운 것을 알아내고 있었다. 뭔가 까면 깔수록 새로우면서 특이한 그 지식이 투란에게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다.
―무빙 캐슬이었던 거로군! 이 악마 녀석들, 그것까지 흉내 냈나!
드라고니아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화난 외침을 터뜨렸다.
‘응? 무빙…… 뭐야, 그게?’
히힛거리는 표정 속에서도 갸웃하면서 투란이 물었다.
―고대의 전쟁요새 중에서 장소를 옮길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무빙 캐슬이라고, 그 모습 그대로 이름 붙여버렸지. 주변 환경과 동화되면서 멈추면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그 성이 원래 세워진 것처럼 보이는 대마법, 그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런 특성 때문에 악마종은 무빙 캐슬을 굉장히 꺼리고 싫어했어. 요새가 자리 잡은 곳의 자연적인 특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들이 망가뜨린 곳이 다시 세상의 일부로 복구되는 효과가 있었으니까.
‘흠……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악마종이 자신들의 생태환경을 꾸민 곳으로 요새가 밀고 들어가서 다시 이 세상의 이치에 맞는, 이 세상의 환경을 만든다고!
‘그래? 그런 얘기구나.’
제대로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이야기에 자극받아 악마의 유골 속에서 흘러나온 새로운 기억을 통해 대강 느낄 수가 있었다. 이 동굴, 데몬스 그라토가 이동하면서 주변 환경과 동화를 이루고 그 흔적을 감추는 것이 칼라고드라니샥 형제들에게는 굉장히 새로운 도전이었던 까닭…… 인간의 전쟁요새가 가진 특성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는 것에서 짙은 패배감, 그러면서도 어느새 이 세상에 적응한 자신들의 기량에 감탄해서 느꼈던 쾌감이 엇갈린 기억이었다. 어딘가 앞뒤 어긋난 기묘한 악마종의 감정…… 투란에게는 이상야릇하면서도 언뜻 이해가 가는 기묘한 느낌이었다.
더불어 투란은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이거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뭘 만들어?
‘이 동굴 말이야.’
―뭐? 이 데몬스 그라토를, 만들 수 있다고?
‘응, 생각해봐. 생체공방, 육체를 만들어내는 이 공방의 기술을 전부 뼈다귀 속에 담아놨다고. 킨사티어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이런 절벽 속에 어떻게 안전한 은신처를 꾸미는가 하는 것까지 몽땅 말이야. 그러니까 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내가 알게 된 거고…….’
―그런 이야기인가. 분명히 그렇기는 하군. 그래, 너라는 몬스터 로드가 녀석들의 몸뚱어리뿐 아니라 밑천까지 몽땅 긁어 삼켰다는 이야기가 되는군! 그래서, 어쩌려고? 알드바인 땅 밑에다가 이런 구멍 하나 뚫으려고?
서서히 납득하는 중얼거림을 흘리다가 드라고니아가 불쑥 물었다.
투란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다시 침대와 탁자, 벽감을 둘러봤다.
악마의 생체공방에서 만들어진 몸과는 규격이 많이 다른 방이었다.
악마가 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인간으로 의태했을 때의 모습으로 머물기에 딱 좋은 내실(內室)인 셈이었다.
칼라고드라니샥 형제들 입장에서는 조금 귀찮고, 있어도 없는 척하거나 뭐가 있는지 따위는 아예 기억의 한편 깊은 곳에 희미하게 파묻어 놓을 정도인 방…….
“굳이 알드바인에 새로 구멍 팔 필요는 없지. 여기서 멀지도 않은데 말이야.”
미소와 함께 투란이 중얼거렸다.
드라고니아가 조금 불편한 기척과 함께 말한다.
―새로 파지 않는다고? 그럼…… 너, 설마 이걸 알드바인으로 옮기겠다고?
‘응? 옮기다니? 안 옮겨! 알드바인으로 옮길 리가 있냐!’
―어쩌려고?
드라고니아의 의심 가득한 물음이 다시 투란의 뇌리를 울렸다.
분명히 투란의 마음 한편에서 이 동굴, 데몬스 그라토를 알드바인 쪽으로 그려 넣는 것을 느낀 탓이었다. 투란 또한 그런 드라고니아의 기분을 알아차렸다는 듯, 한숨과 함께 소리 내서 말한다.
“은신처는 거점과 가까워야 하지만 거점이랑 같은 곳이면 안 된다고 했잖아, 키린 왕자님이 말이야.”
―그래서?
한층 더 불편해진 낌새와 함께 드라고니아가 설명을 재촉했다.
투란은 침대 쪽으로 옮겨 앉으면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듯 말한다.
“여기 그냥 두면 산돌프가 다시 기웃거릴 수 있으니까, 그건 안 돼. 남쪽 성벽에서 나온 다음에 한나절을 움직이고 절벽을 내려와야 한다는 거는 급할 때 몸을 숨기기에 적당하지 않아. 그러니까 남쪽 성벽에서 바로 걸어올 수 있는 곳,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지 않아도 되는 곳, 하지만 쉽게 알아챌 수 없는 곳으로…… 성벽 밖의 숲 한구석에다가 뚜껑 덮인 문을 달고 있는 굴을 이어놓으면 되겠네.”
어느새 투란의 마음에 그려진 은신처, 절벽 저 너머의 한 곳에 숨겨진 동굴의 모양을 드라고니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 형태라면, 마법을 더해서 좀 더 안전하고 은밀하게 꾸밀 수 있겠군. 악마의 재간만 쓰려 하지 말고, 세란드가 남긴 여러 가지 마법을 더하는 게 좋아. 괜히 악마의 기술이 들통나서 좋을 것 없으니까 말이지.
‘음? 아, 그런가. 그렇다면…….’
투란은 드라고니아와 함께 의논하며 상상했다.
키린이 말한 조건을 갖춘 은신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