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2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23)
우득, 우드득.
“누구냐, 너!”
“브, 블랙…….”
우득!
“그건 이름이 아니잖아!”
“브, 블……!”
퍽!
“이름 말야, 이름!”
“브으……!”
투란이 엎어놓고 팔을 꺾어 부러뜨리면서, 그다음에 손가락을 꺾을 위협과 함께 등짝을 치면서 보챘지만 끈질기게 나오는 말은 ‘블랙 펜서’라고 주장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보던 이자닌이 갸웃하다가 투란을 말린 것은 그러고 나서 서너 번의 재촉과 ‘브, 브’ 하는 말이 더 나온 다음이었다.
“투란, 그 녀석 이름이 블랙이든가 블랙 어쩌구일 수도 있잖아? 말하게 냅둬 봐.”
“음? 그러냐?”
멈칫하면서 투란이 엎어놓은 상대의 머리통을 잡아 올리며 물었다.
징징거리는 말과 함께 대답이 나오는데…….
“블랙 타크라고! 내 이름은 블랙 타크! 블랙 펜서인 블랙 타크란 말이야!”
듣자마자 투란이 냉정하게 그 머리통을 바닥에 한 번 격돌시킨 다음에 묻는다.
“너, 블랙 펜서가 뭔지는 알아?”
코피를 주르륵 흘리는 채로 대답이 나온다.
“오러…… 사인이잖아. 도적 길드에서 발굴한 유물 속에서 나온 거!”
“유물?”
투란이 갸웃하며 이자닌을 바라봤다.
이자닌은 골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문지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블랙 펜서, 스노우 라이온까지 어떤 유물에서 찾아낸 오러 사인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넌 왜 이리 약해?”
투란은 다시 머리통을 잡아당기면서, 허리도 반쯤 거꾸로 휘어 올라오게 하면서 물었다. 이 거친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발끈해서 나오고 있었다.
“야, 약하다니! 블랙 펜서는 오러 사인이야! 금전 다섯 닢이나 하는 오러 사인이라고! 그걸 새긴 나는 오러 윌더야! 약할 리가 없잖아! 너란 새끼가 터무니없이 강한 것뿐이라고!”
“어, 내가 좀 세긴 하다만.”
넘치는 자신감을 웅얼거리면서 투란이 다시 이자닌을 바라봤다.
이자닌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기는 하는데, 뭐라 말해주지는 않았다.
대신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소리 없이 은밀하고 빠르게 말한다.
―투란, 링크를 걸지 않아서 그래. 그 남작이란 작자는 현란한 차림새로 떠들다가 한순간에 블랙 펜서와 스노우 라이온의 링크를 완성시켰다. 그다음에 오러의 파동으로 힘을 과시한 거야. 이 녀석은…… 그냥 반 토막 이하인 블랙 펜서의 불완전한 힘으로 벽만 무너뜨리고 쳐들어왔을 뿐이다.
‘그 링크란 거, 저절로 되는 거 아니었어?’
―글쎄, 지금 상태로 봐서는 가까이 있다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만.
빠르게 대화를 잇다가 투란은 이자닌에게 묻는다.
“이 아저씨, 블랙 펜서 맞아?”
대답보다 먼저 이자닌은 어디서 꺼냈나 모를 길쭉하고 탱탱한 가죽 주머니를 꺼내더니 냅다 휘둘러서 투란이 당기고 있는 머리통의 볼을 후려갈겼다.
빠악!
힘찬 소리와 함께 투란은 손에서 저항감이 휙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완전히 의식이 날아가서 허둥지둥 버티던 힘이 쑥 빠진 블랙 펜서의 블랙 타크를 슬쩍 내려놓고 살그머니 일어서며 투란은 이자닌을 바라봤다.
험악한 표정으로 가죽 주머니를 감추더니 이자닌이 뒤늦게 투란의 물음에 답하는데…….
“맞아, 이 답 없는 또라이 꼴통도 블랙 펜서를 새기는 했어! 살다 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꼴을 볼 줄은 상상도 못 했네! 블랙 펜서를 금전 다섯 닢에 팔아? 나까지 덤으로 얹어서? 그래서 이런 꼴통, 저런 변태 다 나를 노리고 온다 이거지? 이젠 못 참아! 안 참아! 적당히 상황 보는 거 관둔다!”
점차 과격한 말로 변질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투란은 문득 자신이 ‘금전 다섯 닢’이란 말을 흘려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러 사인인 블랙 펜서가 금전 다섯 닢에 새길 수 있다는 이야기!
‘우어? 반값! 아니, 그 이하였나? 아, 원래 반 토막…… 아니, 이자닌만 있으면 몇 배나 세지잖아? 그거 구해서 장사하면…….’
―투란, 정신줄 놓지 마!
‘어? 아…….’
드라고니아의 경고에 투란은 퍼뜩 이자닌이 곁에서 활활 타오른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몰골을 보고, 방금 아까 들은 말을 되새기니 묻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자닌, 어쩌려고?”
번뜩, 묻자마자 이자닌의 눈이 빛났다!
투란이 움찔하며 가면 속에 가려진 얼굴을 더 깊이 파묻겠다는 듯이 목을 움츠릴 지경인데, 이자닌이 갑자기 눈가를 촉촉이 적시는 표정으로 녹색 눈동자를 들이대며 묻는다.
“투란, 날 지켜줄 거지?”
“에? 그러라고 고용했잖아?”
갑자기 고용할 때의 계약 내용을 들먹이는 까닭을 몰라 투란은 원칙대로 대꾸했다.
한데 이자닌이 조금 전의 활활 타오르던 격렬한 눈빛을 싹 지우면서 눈망울을 글썽거리듯이 눈알에 물기를 머금으며 다시 묻는다.
“내 목숨, 맡겨도 되지?”
“목숨? 그야…… 그니까, 이자닌 지키는 게 내가 지금 하는 일이잖아!”
대체 몇 번이나 계약 사항을 확인하려는가 어이없어하듯이 투란이 대답했다.
순간, 이자닌은 가면 구멍 속의 눈동자를 확인하려는 듯이 얼굴을 들이밀고 눈을 가까이하며 금발 머리카락으로 구멍을 후비듯이 파낼 듯한 모습으로 보다가 휙 뒤로 물러서면서…… 가면 위를 손마디로 툭툭 치며 유쾌하게 외친다.
“좋아! 맡기겠어! 착실한 투란에게 내 몸의 안전을 완전히 맡기고, 블랙 펜서의 변태 놈들을 잡으러 가자!”
“뭐?”
―뭐라는 거냐?
투란도, 드라고니아도 갑작스러운 이자닌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따라갈 수 없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자닌은 거침없이 손마디를 꺾고, 고개를 꺾는 시늉을 하며 짧게 나온 되묻는 소리에 금방 답한다.
“금전 다섯 닢, 오러 사인이란 말에 미친 놈이 얼마나 모여 있을지 모르잖아. 앉아서 쳐들어오는 변태, 미친놈들을 기다리면 질리고 지칠 뿐이야! 모여 있을 한 곳으로 쳐들어가서 한 번에 끝장을 내자고!”
“어디 있는지 아는 거야?”
잔뜩 의구심을 담아서 투란은 일단 물었다.
이자닌이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도적 길드에 있겠지!”
“뭐? 아, 그야 그렇겠지만…… 어, 이자닌?”
바로 앞장서는 이자닌이었기에 투란은 급히 불러야 했고, 머리를 쥐어짜 낸 말을 얼른 덧붙여야 했다.
“파쿠란! 파쿠란을 여기서 기다리기로 했잖아! 그냥 가면 어떻…….”
“기다리기는 하지만, 여기는 아냐. 나 있는 곳으로 오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나 있는 곳으로 찾아올 거야! 걱정하지 마! 어디 있나 알면 적당히 대비도 해서 올 테니까, 전혀 걱정할 것 없어! 세상에서 마법사 걱정만큼 쓸데없는 걱정이 없다는 말도 몰라? 가자, 투란!”
빠르게, 먹구름 사이를 흘러가는 번개처럼 떠들면서 이자닌은 냉큼 투란의 손까지 잡아당기면서 거리로 통하는 큰 문을 박차며 나서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제는 눈에 뵈는 것이 없다는 당당한 태도였고, 뒷일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무모함이 넘쳐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런 이자닌을 잡아 말리지 않고 질질 끌려갔다.
나직하게 ‘아, 이건 아니잖아.’라든가 ‘이거 곤란한 거 아냐.’라든가 하는 몇 마디를 뱉는 시늉은 했지만, 투란의 걸음은 이자닌이 당기는 대로 착착 내디뎌질 뿐이었다. 때문에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어하며 묻는다.
―야, 이대로 부추기고 갈 생각이냐? 도적 길드에?
‘부추긴 적 없거든? 난 지금 끌려간다고! 이건 순전히 의뢰인의 변덕으로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것뿐이라고!’
―네 마음속에 도적 길드에 대한 온갖 호기심이 지금 잔뜩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내가 모르겠냐? 가는 김에 도적 길드에 모아뒀을 보물이 있나 보고 싶다는 그 욕심 가득한 생각이 훤히 보이는데!
‘그건 어쩔 수 없이 가는 길이니까! 끌려가는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거잖아! 그럼, 긍정적으로 희망을 품는 거는 좋은 일이야!’
―야! 이 철딱서니 없이 미친!
드라고니아가 못 참겠다는 듯이 난리 가득한 욕을 했지만, 투란은 마음 한편으로 싹 다 밀어내버리고 이자닌과 함께 가는 거리의 풍경에 주목하고 집중했다.
점차 높아지는 건물, 점차 가까워지는 왕도의 중심…… 높은 첨탑과 성벽이 웅장한 왕성의 모습이 길고 높은 건물 너머로 선명해졌다.
금발을 휘날리며, 처음 보는 이들에게는 살짝 가녀린 느낌마저 주는 이자닌이 거리를 성큼성큼 내딛는 걸음걸이가 주변의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가면 쓴 채로 이리저리 둘러보며 나름 분위기 잡는 투란의 모습에 이자닌을 보던 이들 중에 담이 약한 몇몇은 슬쩍 눈을 깔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담이 커서 계속 이자닌을 보는 이들이라도 다가와 뭐라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투란과 이자닌은 왕성의 성벽이 가로막는 것 없이 훤히 보이는 거리까지 왔고, 그 성벽을 따라 놓인 길을 빙 돌며 움직였다. 그러다 이자닌이 잠시 멈춰 서며 투란의 손을 놓은 곳은 성벽에 기댄 듯한 형상으로 우뚝 세워진 커다란 건물이 보이는 자리였다.
얼핏 봐도 대강 십여 층은 될 듯한 건물이 크고 넓게 성벽 앞을 가로막듯이 세워져 있는데 밖에서 봐서는 안이 몇 층인가 세기 힘들게 하려는 것처럼 창문이 뒤죽박죽으로 건물 벽에 장식처럼 박혀 있었다. 다른 거리에서 보는 층마다 박힌 창문이랑 너무 다른 셈이었다.
그 건물을 보는 이자닌 곁으로 서면서 투란이 그 표정을 보니, 어딘가 화난 와중에도 아쉬워하는 묘한 모습이었다. 마치 이대로 가면 저 건물이 그냥 부서져 내릴 것이라서 굉장히 서운하다는 듯도 한 이상한 분위기도 이자닌에게서 맴돌았다.
그 애매하고 알 수 없는 분위기에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불쑥 묻고 말았다.
“그냥…… 돌아갈까?”
이자닌이 잠깐 멈칫하다가 투란을 바라봤다.
가면에 뚫린 구멍 너머로 투란과 눈동자를 마주치고는 이자닌이 빙긋 웃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어. 여기까지 왔잖아. 투란, 믿고 있어! 그럼 가자!”
믿는다는 부분부터 장난기가 가득한 말투였지만, 걸어나가는 이자닌은 더 이상 투란의 손을 잡아끌지 않으며 말 그대로 믿고 나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투란도 그냥 차분하게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다가가는 와중에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말한다.
―저건 퍼브인가 여관인가 알 수가 없군. 안이 꽤 넓고…… 묘한 구조인데?
‘밖에서 봐도 충분히 괴상해! 저 창문 대체 뭐냐고! 알드바인의 상아탑에도 저렇게 멋대로 창문을 뚫어놨는데, 이거 혹시 무슨 마법사들의 모인 곳 아냐?’
―마법사랑은 관계가 없을 거다. 경계 주문 따위는 일단 없으니까. 하지만 끈과 도르래, 대롱을 이용한 온갖 덫은 잔뜩 있군. 몬스터 상대로 쓸 일은 아예 없는 덫이다만…….
‘이런 도시 한복판에 뭔 몬스터 덫을 깔아!’
투란은 어이없어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보다 더 진지하게 말을 잇는다.
―오러 윌더가 벽 부수고 다니는 도시잖아. 몬스터와 오러 윌더, 보통 사람에게 휘둘러지는 폭력은 누구에게서 나오든 마찬가지야. 침입자를 대비한다면 이 경우에는 몬스터라도 잡아 묶을 덫이 있어야 정상 아닌가?
‘어라?’
갑자기 일리 있는 말에 투란이 당황스러움을 느낄 때, 이자닌은 건물 앞의 넓고 큰 정문을 걷어차고 있었다.
터엉!
구멍이 나지도, 문짝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저 크게 울리면서 활짝 열렸다.
그다음 이자닌이 문턱을 넘으면서 우렁차게 외친다.
“나 돌아왔다, 이 변태 꼴통 또라이들아! 다 나와봐!”
뒤따라 문턱을 넘으려던 투란은 발걸음을 주춤했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보인 몇 층이나 되는 풍경이 투란에게 꽤 낯설기도 했지만, 그 층마다 와글거리는 사람들이 더욱 놀라웠으니까!
‘이렇게 많았어?’
건물이 크니 좀 많겠거니 했고, 그 많다는 생각에 영합하듯 많은 인기척도 느끼기는 했다. 하지만 건물 안에 테라스가 보이는 몇 층의 구조가 갖춰져 있고, 층마다 검과 활, 창을 든 경비가 오락가락하며 식탁을 놓고 앉아 와글거리는 인간들이 가득한 경우는 투란이 전혀 상상해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저년 뭐야?”
“호오? 예쁘장한데?”
“하핫,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휘이! 야, 누구냐 저년?”
일단 노골적으로 반발하는 낌새가 가득한 험한 말들이었다.
하지만 그 반사적이던 반발의 말 사이로 다시 몇 마디가 끼어들었다.
“저거 설마……?”
“이자닌?”
“어? 이자닌!”
“신랑 패 죽였다는 미친년!”
경악하는 분위기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투란은 한숨과 함께 당당하게 서서 사방을 노려보듯 둘러보는 이자닌 앞을 막아서야 했다. 아무래도 이자닌은 대뜸 날아오는 화살을 쳐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니까!
탓, 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