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2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17)
‘이쁘다?’
문득 투란은 자신인 느낀 바를 뭐라 말해야 하는가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겨우 떠오른 것은 예쁘다는 말이기는 한데, 그보다 더한 무엇인가가 사룡 더스크라이더의 날갯짓 속에 담겨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걸 대체 뭐라 말해야 하는가? 갑자기 생각이 막힌 듯이 떠오르지가 않는데…….
“우아(優雅)하군. 과연 용의 화신.”
투란과 달리 드라고니아가 아주 간단하게 말하고 있었다.
“어, 우아하네.”
그게 무슨 뜻인가 새삼 좀 애매한 기분이었지만 투란은 그 낱말에 만족하기로 했다. 우아하다, 아름답다…… 어쨌든 그 비슷한 말이면 될 듯했다.
그런 말에 어울리는 변화를 돌기둥의 깨진 부스러기 사이에서 생겨난 듯한 사룡이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새삼 어리둥절하고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아래로 향하며 날개를 펴고 하강하는 사룡의 형상은 투란이 거인의 형상을 빌어 두들겨 패고 썰고 찌르던 녀석이 대체 뭐였나 할 정도로 다른 모습이었다. 굳이 납득하고자 한다면 봉인의 석주 속에 갇힌 채로 제대로 된 형체를 드러내지 못한 사룡을 투란이 두들겨 패고 삼켰고, 막상 그 정수를 통해 보자니 완전한 용의 화신으로서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이렇게 억지로 납득하고 넘어가도 되려나?
투란이 갸웃하며 한번 더 의심하려 하니 드라고니아가 탄식을 섞어 말한다.
“화신이 화신을 만들었던가. 어쩐지 세상을 흔든다는 사룡의 힘이 너무 쉽게 막힌다 싶었다만…… 봉인 속에서 모아 온 마력으로 자신의 정수를 구현해 내는 비술까지 쓸 수 있는 줄은 몰랐어. 다른 용의 화신들도 저럴 수 있는 걸까?”
“그게 무슨……?”
멍하니 듣다가 투란이 되물으려 하니 드라고니아가 말을 대신해서 기묘한 심상을 마음으로 바로 전해 왔다.
조그마한 돌덩이, 그 돌덩이에서 물컹물컹 뿜어 나오는 마력, 그 마력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거대한 형상…… 더스크라이더의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돌덩이와 이어진 기묘한 선이 맥동하며 서로 호응하는 모양.
“아!”
멍하니 듣던 이야기와 그림으로 그리듯이 전해 받은 상황을 통해 투란도 깨달을 수 있었다.
오랜 봉인은 깨진 것이 아니라 틈새가 열린 상태였고 거기서부터 사룡이 모아 온 마력을 방출해서 자신의 정수를 기반으로 형상을 갖췄다. 몬스터 로드가 하는 짓과 많이 닮은…… 어찌 보면 거의 똑같다고 할 수도 있었다. 다만 그 중심에 봉인의 석주가 담기지 않은 채란 점이 독특하다면 독특한 점이었다. 몬스터 로드가 자신의 몸을 직접 변화시키고 변화의 중심에 언제나 몬스터 엠블럼이 있는 경우와 확실히 차이가 나는 점이기도 했다.
어쨌든 사룡은 그런 식으로 봉인의 틈새를 열고 형상을 갖춰 나온 것.
‘왜? 어떻게?’
덕분에 투란은 금방 새로운 의문 두 가지를 떠올렸다.
그 의문 한 가지는 바로 저 아래에서 우아하게 돌 조각을 주변에 휘감듯이 맴돌게 하며 계속 하강하는 사룡으로부터, 그 본능으로부터 바로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어째서 마력을 방출해서 형상을 갖췄는가에 대한 것인데, 배고프고 답답하고 감금당한 상황에 대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이었다.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일.
투란도 바로 공감할 수 있었다.
감옥이란 것이 괜히 징벌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잖은가.
샤오콴 마을에서도 말썽 피우면 나무 아래 파 놓은 구멍에 담가 놓고 뚜껑 덮어 가둬 버리는 징벌을 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감옥, 감금은 오래되고 전통적이며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사룡이라고 해도, 어쩌면 사룡이기에 더욱 그 감금에서 벗어나 그 막대한 힘을 휘두르고 싶었을 터.
이를 납득하자마자 투란은 하나 남은 의문에 집중했다.
대마도사 카엘의 봉인, 기억의 꿈에서 본 그 작은 남자가 진짜 카엘인가는 매우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어쨌든 봉인의 비술은 틈새가 생길 마법이 아니었다. 사룡이 비집어 낼 어떤 틈새라도, 불완전한 구조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벌써 수백 년 전에 저질렀을 탈출…… 비록 온전하지 못한 화신만 새어 나온 것이라 해도 그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가?
정말 키유나의 마력을 이용했던가?
가만히 투란이 마음으로 전한 물음에 거의 심연에 도달한 사룡의 형상이 바로 코웃음 치듯이 불길을 흘리는 반응을 보이며 대답해 온다.
말로 된 이야기라든가, 뭔가 꾸며 놓은 심상과는 전혀 다른 직관적인 방식으로 사룡은 투란에게 ‘아는 바’를 전해 왔다. 그 방법은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지만, 그 전해 온 바는 굉장히 명확하면서도 간단했다. 하지만.
‘아냐? 그럼 어떻…… 드래곤? 조건이라니? 그게 무슨…….’
투란은 또다시 당황스러웠다.
이런 분위기를 바로 알아차린 드라고니아가 얼른 묻는다.
“뭐냐? 무슨 일이야? 뭐가 잘못된 거야?”
“어, 아니 잘못된 게 아니라…… 세상이 어떤 조건을 갖추게 되면, 용의 화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세상에 그 힘을 드러낼 수 있다는데? 그림 투아란의 허락? 드래곤의 허락? 그런 것이 있다는데…… 뭔지 알겠어?”
맹하니 투란이 더듬거리면서 중얼거렸다.
거의 혼잣말처럼 나온 이야기였는데 드라고니아에게는 충분한 모양이었다.
“그런 거였나! 젠장, 그렇다면 카엘의 봉인이 아무리 엄청나도 뒤틀고 나올 틈새가 생길 수밖에 없지!”
“설명, 설명! 알기 쉽게!”
투란이 보챘다.
한숨과 함께 드라고니아가 바로 이야기한다.
“그나마 봉인의 석주 덕분에 저놈이 화신으로 약화된 형상을 갖췄다는 이야기야. 애초에 용의 이름을 허락한 자, 그림 투아란의 드래곤에게 봉인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 하지만 그림 투아란이 몰락하고 드래곤은 이 세상에 흥미를 잃었다고 했다. 망하든 흥하든, 심지어 이름을 허락한 용의 화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든 말든 말이야. 그랬기에 봉인이 가능하다고 카엘이 그랬어. 때문에 그 봉인은 근본적으로 한 가지 결함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기도 하다고 했지. 갑자기 드래곤이 자신이 이름을 허락한 녀석들에게 관심을 되찾는다면…… 봉인은 용의 화신을 약화는 해도 가둘 수는 없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카엘은 대단하군.”
“뭐? 야, 얘기하다 말고 갑자기 뭔…….”
“사룡이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이 갖춰졌나까지 알려 줬어?”
“응? 아니, 그런 건 모르고…… 저거 은근히 삐딱해서 제대로 된 얘기는 안 하든가 아예 할 줄 모르든가 하는 놈이라, 그냥 본능적으로 할 수 있다고 느끼자마자 바로 마력을 방출해서 모으기부터 했다는데?”
“그런가…… 아무튼 그 조건이 뭐든 간에 간단히 말하면 드래곤의 관심이 어느 정도 다시 화신들에게 닿은 거야. 세상에서 눈 돌리고 외면하던 드래곤이 자신이 이름을 허락한 녀석들이 멀쩡한가 그냥 점검해 본 것일 수도 있지. 그게 사룡에게는…… 아, 어쩌면 수룡도 비슷할지 모르겠잖아!”
“봉인된 또 한 녀석?”
“그래! 크리스털가드! 그것도 어쩌면 봉인을 째고 화신을 만들었을 수도 있어! 망할, 세상이 어찌 되려는 거냐!”
“어디 있는데?”
“어? 음…….”
“모르는구나. 그럼 신경 쓰지 마. 무슨 일 생기면…… 상아탑이 알아차리겠지. 그 수룡도 이런 사막처럼 폐쇄된 어딘가에서 혼자 놀고 있을 수도 있잖아. 피해가 터지더라고 그 영역에만 번지는 거면…… 음, 이거 좋은 거냐 나쁜 거냐?”
“어딜 봐서 좋은 구석이 있다는 거냐!”
“끙…… 킁! 내가 뭘 어쩌겠어? 엮이지 않기나 바라야지.”
투란은 냉큼 한 걸음 물러서듯이 중얼거렸다.
드라고니아 역시 별빛 무리를 일렁이게는 했지만, 막상 수룡과 엮여야 한다는 말은 못 하는 듯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하다는 듯이 불쑥 묻는 말을 꺼내기는 했다.
“사룡도 이겼는데…… 싸우면 질 것 같냐?”
“멀쩡하지 못한 녀석이었잖아. 좀 멍청한 성격이기도 했고……. 수룡이 딱 사룡 같은 성격에 힘이 비슷하다 해도…… 어떤 성질인가, 어떤 능력을 쓰는가 모르면 전혀 알 수가 없지.”
몬스터 로드답게 냉정하게 대답하며 투란은 다시 사룡을 살펴봤다.
여전히 돌 조각을 주변에 띄운 채였지만, 사룡은 한참 아래에서…… 위보다 저 심연 쪽에 더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으며 한껏 날개를 편 모습으로 날고 있었다. 마치 오래만의 날갯짓을 즐기는 듯, 간간이 번개를 흘리고 불꽃을 날름거리는 채로.
‘천칭’의 기둥이 심연에 꽂혀 들어간 곳보다는 그래도 꽤 높은 자리였고 한눈팔든 말든 저 아래에서 혼자 잘 놀겠다는 듯한 의지가 느껴졌기에 투란은 그냥 두기로 마음먹었다.
이 풍경 어디에 있든, 투란에게는 별 상관없으니까.
생각을 조금 달리해 보면 사룡이 수수께끼를 좀 흘린 듯했지만 결국 지금 투란이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 * *
“투란?”
조심스러운 키유나의 목소리가 곁에서 울렸다.
“후우으…….”
숨을 몰아 내쉬면서 투란은 재빠르게 자신의 상태를 둘러봤다.
그럭저럭 몸 크기는 본래 사람의 수준으로 맞춰진 듯했지만 아직 머리 위로 길게 소용돌이치듯 이어진 검은 끈들은 수십 가닥이었다. 그 꼬인 끈의 소용돌이를 타고 아직 수십 미터의 크기로 남아 있는 거인의 잔재가 계속해서 회수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투란이 한 손으로 찍고 발 디딘 자리는 돌기둥이 사라지고 갑작스럽게 빈 틈새로 샘물이 모여들어 흘러드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돌기둥이 깊이 뚫린 구멍의 뚜껑 노릇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문장의 풍경 속에서 사룡의 형상을 살피고 드라고니아와 떠들고……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키유나가 다가오고 몬스터의 형상이 절반 이상 해체되기에는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좀 길었나?’
―좀 길었지. 아무튼 이 마녀의 착각은 풀어 줘야지.
‘응? 아…….’
드라고니아의 말에 잠깐 어리둥절하던 투란은 금방 깨달았다.
키유나는 사룡이 자신의 마력을 열쇠로 해방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룡은 키유나랑 아무 상관 없이 자신의 마력을 흘려 내 모았고, 그 과정에서 주변에 머금어진 마력을 닥치는 대로 끌어당기며 뒤틀기도 했다. 그 주변의 범위에 휩쓸린 대상이 사람이든 마수든, 심지어 몬스터라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당한 쪽에서는 자기 마력이 어딘가로 끌려가 이상한 일에 쓰였다고 여길 수 있기는 해도 실상은 그저 막대한 사룡의 마력에 휩쓸려서 흔들리고 뒤틀린 경험을 한 것뿐이었다.
키유나에게는 그저 납득할 수 없는 봉변이었을 뿐인데, 이를 자기 잘못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 아닌가.
드라고니아는 마녀의 그런 생각을 매우 건방지다고 여기고 불쾌하게 여기는 낌새를 노골적으로 뿜어내면서 그 착각을 바로잡아 주라 하는 것이기는 한데, 투란에게 키유나가 그런 기분 나쁜 죄책감을 지닌 채 내버려 둘 까닭도 딱히 없었다.
가만히 더듬어 보니 뭔가 상냥하고 좋은 의도는 없지만 어쨌든 투란은 키유나에게 제대로 말해 주기로 했다.
“키유나, 샌드드래곤은…….”
퍼억, 콰아아!
바닥이 푹 꺼지고 물기둥이 솟구치면서 투란을 덮쳤다.
덕분에 투란의 말은 잘렸고, 몸에서는 단숨에 김이 치익 하고 솟구치며 주변에 안개를 뿌리는 듯한 괴상한 몰골이 돼 버렸다.
곧이어 맹렬하게 사방으로 물줄기를 트겠다는 듯이 분산되는 물기둥에 휩쓸려서 앞으로 엎어질 뻔까지 한 투란!
‘이 썩을 것은 또 뭐야!’
입 앞을 가로막는 물덩이에 소리도 못 내고 투란이 으르렁거렸다.
드라고니아가 매우 떨떠름한 말투로 대꾸한다.
―여기 지하에 상당한 저수지가 있는데? 봉인의 석주가 그 마개 노릇을 하면서…… 마력으로 덮어 탐지를 막으며 감추기까지 했던 모양이다. 나도 이제 알았어.
‘뭘 이제 알아! 내가 입 열기 전에, 이 물벼락 맞기 전에 알았잖아!’
―그러니까 나도 터질 때 알았다고. 오는 길에 상황이 험악해서 프로브를 다 흘리고 왔잖아. 그래서 모두 해체해서 다시 만들려고 했는데…… 딱히 위험한 물도 아니구먼. 마녀는 한 방울도 안 젖고 있네.
울컥한 투란에게 드라고니아는 매우 심드렁한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말에 투란이 키유나를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몸을 감싸는 마력 방벽을 두르고 물의 압력에 맞서며 정말로 물 한 방울 몸에 닿지 않게 하는 모습! 게다가 투란을 향해 조금 걱정스러운 눈길까지 보내고 있잖은가.
그 와중에 무너지고 기울어진 땅에 투란도 키유나도 미끄러져 빠져들지 않고 버티는 묘기를 보이고는 있지만, 이래서는 제대로 이야기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무가 뿌리째 엎어지고, 땅이 뒤집히는 광경을 물이 덮어 가고 있었다.
푹 꺼진 녹원의 절반이 순식간에 연못으로 변화하는 광경이었다.
―물을 전부 증발시킬 거냐? 아니면 얼른 몬스터 형상을 거두든가 힘을 조절 좀 하라고. 마그마 로드나 몰튼노트나, 물이랑 별로 친하지 않잖아.
‘알아!’
으르렁거리면서 투란은 앞으로 걸어 나가며 키유나에게 손짓했다.
입도 벙긋거리면서 ‘저쪽으로’라고 말도 전하는 시늉까지 하는 투란에게 키유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찌 보면 물기둥이 터져 올라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침착한 태도로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