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31
#230화
천년고도(千年古都) 낙양(洛陽).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이 유서 깊은 도읍지는 천하에서도 손꼽히는 경제와 문학, 예술의 중심지였다.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하남성에서도 그 규모가 으뜸이다 보니, 낙양의 어디를 가나 늘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것은 낙양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객잔도 마찬가지였다.
“회면(烩面) 두 그릇 주시오!”
“예, 예! 지금 갑니다!”
“여기 백주 세 병 더!”
“예이!”
긴 상행을 끝마치고 대낮부터 술잔을 부딪치는 상인들, 열띤 토론을 벌이는 한 무리의 유생들. 형편이 영 좋지 않아 보이는 꾀죄죄한 몰골의 가인(歌人)들까지.
거기에 더해, 어디를 가도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무림인이었다.
쾅!
객잔의 문이 산산조각 남과 동시에, 대여섯 명의 칼잡이들이 쏟아졌다.
그들 중 선두에 선 애꾸눈의 사내가 망설임 없이 외쳤다.
“쳐!”
그의 외침이 향한 곳은 객잔의 구석진 자리였다.
독한 화주를 동이째 가져다 두고 퍼마시고 있던 험상궂은 사내들이 탁자를 엎으며 일어났다.
“젠장, 동천파?”
“죽여!”
차창! 카카캉!
요란한 소리와 함께 병장기를 빼 든 십여 명의 무림인이 맞붙었다.
날붙이가 얽히고 떨어지며 불똥이 튀어 오른다. 탁자가 갈라지고 식탁 위의 잡기가 사방으로 날았다.
“피, 피해라!”
“동천파(東天派)다! 흑도들끼리 싸우고 있다!”
무림은 공명정대한 협객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정파와 사파, 흑도가 공존하고 수천 리 밖에는 흉신악살들이 가득하다는 마교가 있다.
그중 동천파는 낙양의 밤을 주름잡는 흑도 문파였다.
“……망했다!”
신나게 주문을 받던 객잔 주인은 털썩 주저앉았다.
동천파는 널리고 널린 무뢰배 집단이 아니다. 흑도 문파 주제에 오십여 년의 뿌리 깊은 역사를 지녔고 관부에 끈끈한 연줄이 있다.
이번 일로 괜히 고발이라도 넣었다가는 죽사발이 난다.
‘사람만 죽지 마라. 제발.’
객잔 주인의 간절한 바람은 다음 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서걱!
“크르륵.”
섬뜩한 소리와 함께 사내 하나가 목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그는 최근 동천파와 사소한 시비가 붙은 흑도 칼잡이 중 한 사람이었다.
“궁소!”
“이 개 후레자식들아!”
동료의 죽음에 눈이 뒤집힌 칼잡이들이 병장기를 휘두르며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고만고만한 흑도 칼잡이의 싸움에서 머릿수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한 놈 쓰러졌다!”
“나머지도 싹 다 조져!”
동천파의 칼잡이들은 노련하고 잔혹했다. 빈틈을 파고들며 사정없이 찌르고 베었다. 날붙이가 번쩍일 때마다 피가 튀었다.
쉬쉬쉬쉭! 퍼퍽!
“끄아아악!”
“커헉!”
“제, 제발 살려 주시오!”
마지막 생존자의 애걸에 애꾸눈이 껄껄 웃었다. 그는 동천파의 하급 간부였다.
“뭐? 살려 줘?”
“제발 하, 한 번만 봐주시면 다시는…….”
“그러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었어야지.”
푸푹!
소매에서 튀어나온 단검이 마지막 남은 칼잡이의 이마에 꽂혔다.
“꺼으윽.”
쿵!
기괴한 신음과 함께 숨이 끊긴 시신이 썩은 고목처럼 뒤로 넘어갔다.
“자존심도 없나. 흑도라는 새끼가.”
이마에 박힌 비수를 회수한 애꾸눈이 수하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정리해.”
“옛!”
힘찬 대답과 함께 칼잡이들이 시신을 한데 모아 쌓았다. 평화롭던 객잔은 이미 피바다가 된 지 오래였다.
저벅, 저벅. 탁.
박살 난 객잔 입구를 막아선 애꾸눈은 잔뜩 겁에 질린 객잔 주인과 손님들을 쓸어 보았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해서 수고를 무릅쓰고 다시 한번 말해 주지.”
숨 막히는 정적 속, 번뜩이는 살인자의 눈빛에 좌중이 얼어붙는다.
쇳가루를 삼킨 것처럼 거친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대 동천방의 고독한 맹수, 흑걸이라 한…….”
뻑! 콰과광!
갑자기 벌어진 일에 놀라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은 눈을 깜빡였다.
태산처럼 입구를 막아서고 있던 동천방의 고독한 맹수, 흑걸은 온데간데없고 웬 짤막한 노인 하나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썅노무새끼, 어디서 입구를 막고 서 있어?”
“……!”
보이지 않는 동요가 객잔 내부를 휩쓸었다.
이제야 한쪽 벽면을 뚫고 처박힌 흑걸을 발견한 손님들이 눈을 부릅떴다.
‘헉!’
‘무, 무림인!’
‘고수다. 그것도 엄청나게 강한!’
모두가 경악에 빠져 있던 그때, 노인의 뒤를 따라 들어온 청년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이렇게 팹니까? 그러다가 죽으면 어쩌시려고요?”
“흑도 개잡놈 따위, 죽건 말건 알 게 뭐냐.”
퉁명스럽게 대답한 노인이 피바다가 된 객잔을 턱짓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시체와 잘려 나간 사지를 주워 모으던 동천파의 칼잡이들이었다.
그들은 얼빠진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봐. 안 보여? 저런 놈들이다. 뇌에 든 게 없어서 서로 만나기만 하면 칼 휘두르기 바쁘지.”
“와, 죽어도 싸네요.”
“그렇지?”
“예. 그럼 이제 식사나 할까요?”
“술부터 시켜라, 하도 먼지를 마셨더니 목이 칼칼하다.”
“옙.”
명랑하게 대답한 청년이 후다닥 뛰어가 객잔 주인에게 물었다.
“방 있죠?”
“예, 예?”
반쯤 혼이 나가 있던 객잔 주인이 엉겁결에 대답했다.
“무, 물론입죠.”
“그럼 우선 제일 좋은 방으로 하나 주시고, 백주 세 병에 음식은…….”
어느새 탁자 하나를 차지한 노인이 청년의 등 뒤에서 외쳤다.
“바싹 익힌 오리고기랑 회면! 낙양에 왔으면 회면은 먹어 줘야지.”
“아저씨, 들으셨죠?”
“예, 옙.”
“다 해서 모두 얼마예요?”
이래서 습관이 무섭다.
본능적으로 모든 계산을 끝낸 객잔 주인이 막 가격을 말하려던 찰나였다.
“이런 미친 새끼가!”
“썅! 조져!”
그들이 괜히 흑도(黑道)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뒷골목에서 태어나 뒷골목에서 죽는 하루살이 인생들.
타고난 단순함과 흉포함으로 무장한 동천파의 말단 칼잡이들이 눈을 까뒤집고 청년에게로 달려들었다.
“죽엇!”
가장 먼저 달려든 민머리 사내가 벼락같은 고함과 함께 투박한 박도(朴刀)를 휘둘렀다.
벌겋게 녹이 슬어 있는 도신이 청년을 정수리를 쪼갰다.
아니, 쪼개려던 그 순간이었다.
쉭! 퍼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민머리의 신형이 허물어졌다. 턱이 으스러진 그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힘이 빠진 손아귀에서 칼자루가 미끄러졌다.
텅, 땡그랑.
“모발만 없는 줄 알았는데 실력도 없네.”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린 청년이 객잔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얼마라고요?”
“……!”
“……!”
이미 충분히 굳었던 객잔 내부의 공기가 더없이 꽝꽝 얼어붙었다.
수많은 이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청년은 값을 치르고 거스름돈까지 챙겼다.
노인이 앉은 탁자를 향하던 그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야.”
청년의 시선에 석상처럼 굳어 있던 동천파의 칼잡이들이 화들짝 놀랐다.
“예, 예?”
“저, 저희 말씀하신 겁니까?”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쩔 거야?”
“어, 어떤 것 말씀이신지.”
“손에 든 그거. 휘두를 생각이면 빨리 휘두르고, 아니면 집어넣자. 보기 흉하다.”
차차착!
칼잡이들이 번개 같은 속도로 병장기를 감췄다.
“자, 이제 시체와 친구들을 챙긴다. 실시.”
“시, 실시!”
“하는 김에 어지른 것도 좀 치우고.”
살기 위한 복명복창과 함께 칼잡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시체들과 민머리, 마지막으로 벽면에 처박힌 애꾸눈까지 빼낸 그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뭘 멀뚱멀뚱하게 서 있냐. 썩 꺼져.”
“가, 감사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간절히 바라던 한마디다.
혹여 붙잡힐세라 서둘러 객잔을 빠져나가는 그들의 등 뒤로 화살 같은 말이 따라붙었다.
“한 번만 더 눈에 띄면 죽는다. 명심해.”
“옛!”
“어, 잘 가고.”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는 객잔.
경악에 찬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노인이 기다리는 탁자로 걸어가던 청년이 돌연 헛숨을 들이켰다.
“헉!”
설마 동천파가 또 쳐들어왔나?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느라 덩달아 깜짝 놀란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청년의 시선은 오직 한 곳, 어느새 탁자 위에 올라온 오리구이를 향하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부릅뜬 눈.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리는 동공.
짧은 침묵 끝에 청년이 버럭 외쳤다.
“다리를 혼자 다 드시면 어떡합니까!”
“……!”
* * *
칠 주야.
태원에서 낙양까지 걸린 시간이다.
전속력으로 말을 몰아도 열흘은 걸리는 거리를 고작 칠 주야 만에 주파했으니 그 과정이 어땠는지는 말해 봤자 입 아픈 수준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거다.
하지만…….
“이건 아니죠!”
나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다리를 두 개나 먹다니! 그것도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게 됐는데!
심지어는 날개도 한쪽밖에 안 남았다.
“흑도 애들도 이런 짓은 안 해요!”
울분을 토해 내면서도 손에 잡히는 음식을 꾸역꾸역 쑤셔 넣는 내 모습에 적천강이 기가 찬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봤나. 고작 그딴 이유로 노부에게 소리를 쳐? 뭐라? 흑도?”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마교 교주도 오리 다리는 하나밖에 안 먹을 겁니다.”
“이 자식을 확 그냥…….”
화르륵.
적천강의 손바닥에서 은은한 열기가 피어오른 그때. 걸걸한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거, 말 좀 묻지.”
쿵쿵거리는 걸음으로 객잔에 들어온 거한의 얼굴은 온통 흉터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뒤를 이어, 역시 험악한 인상의 흑도 칼잡이 수십 명이 줄지어 들어왔다.
‘얼굴부터 18금이네.’
아까 적천강이 처리했던 애꾸눈도 나름 흉악하다고 할 만한 외모였는데, 거한에 비하면 모범수 수준이다.
‘이 동네는 얼굴로 먹고 들어가는 건가.’
뭐, 한눈에 알 수 있으니 간편하긴 하다.
신경도 쓰지 않는 적천강을 대신해 내가 입을 열었다.
“응, 맞아. 그거 우리야.”
“내가 아주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는데…… 뭐?”
거한의 얼굴에 당황이 스쳤다.
“아직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뻔하지 뭐. 네가 들은 흥미로운 소식이라고 해 봐야, 웬 늙은이와 새파란 놈 하나가 나타나서 쫄따구들을 반병신 만들어 놨다. 뭐 그런 거잖아. 맞지?”
“…….”
“어, 알았으니까 들어와. 혹시 몰라서 데려온 친구들도 다 같이 덤벼.”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다.
내가 놓아준 놈들이 불러왔든, 구경꾼 사이에 있던 누군가가 놈들의 패거리에게 알려 줬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는 족족 두들겨 패면 그만이지, 뭐.’
압도적인 힘의 차이.
이런 수준의 놈들이라면 열 명, 백 명이 몰려와도 결과는 똑같다. 죽일 필요도 없이 파리를 쫓아내듯 털어 내면 그만이다.
“안 와? 그럼 내가 간다?”
“이, 이 새끼가!”
그래도 이번에 온 녀석은 어느 정도 감이 있는 놈이다.
뭔가 불길함을 느꼈는지, 거한은 슬쩍 뒷걸음질 치며 손을 휘저었다.
“쳐라!”
스르릉.
수십 개의 병장기가 반쯤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아미타불, 자, 잠시 지나가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