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41
#740화
운기조식(運氣調息)의 묘리는 공력 증진뿐만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신체 내부에 쌓이는 노폐물을 제거하고, 마음을 평온하게 가다듬는 것 역시 운기조식으로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효능 중 하나였다.
물론, 최고의 집중 상태인 만큼 오감(五感)이 극대화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건…….’
저벅저벅.
누군가의 발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앞을 서성이는 불청객의 정체를 깨달은 나는 공력을 갈무리했다.
띠링.
운기조식의 종료를 알리는 시스템 알림이 울려 퍼지기 무섭게 등 뒤에서 문고리가 움직였다.
달칵.
조심스럽게 열린 문 틈새로 풍겨 오는 진한 냄새.
긴 숨을 내뱉는 것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한 내가 입을 열었다.
“알아서 나올 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몬스터라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거냐. 아니면 아예 알아들을 생각이 없는 거냐?”
잠시 머뭇거리던 불청객, 스켈레톤 킹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크흠. 이 몸인 줄 어떻게 알았지?”
“기척.”
“기척?”
“어. 이미 죽은 놈이라 그런지 숨을 안 쉬더라고.”
“……묘하게 납득이 가면서도 기분이 나쁜데.”
“굳이 널 기쁘게 해 줄 필요는 없지.”
근처에 대충 벗어 놓았던 추리닝을 걸치고 돌아섰다. 번쩍거리는 은쟁반을 든 스켈레톤 킹이 집사처럼 서 있었다.
“그래서, 뭐 때문에 왔어?”
평소였다면 이미 단단히 삐쳐서 주둥이가 한 댓 발은 나왔을 거다.
그러나 오늘의 스켈레톤 킹은 달랐다. 녀석은 내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면서 은쟁반을 바닥에 내려놨다.
“식사해라. 네놈을 위해 이 몸이 친히 가져왔으니.”
“이런 거 가져오지 말라니까.”
“하지만 벌써 사흘 넘게 굶지 않았나.”
사흘 넘게?
뜻밖의 말을 들은 나는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문 하나 없이 사방이 가로막힌 방. 스마트폰도 없이 들어와서인지, 아니면 그럴 만한 정신도 남아 있지 않아서였는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벌써 그렇게 됐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 묘하다. 앞서 흘려보낸 날짜를 깨닫자마자 뒤늦은 허기가 찾아온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내가 허기를 느낄 자격이나 있는 놈일까.
수천이 죽고 수만이 다쳤다. 그들 개개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런 죄도 없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바로 그런 이들이 내가 벌인 일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었다. 죽고, 다치고, 소중한 가족과 친구를 잃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돌아섰고, 비난의 화살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단지 나와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혼자 방에 틀어박혔다.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운기조식과 상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답을 찾았다.
모든 것을 속 시원히 해결해 줄 답이 아니더라도, 잠시 잊을 수 있을 정도의 깨달음을.
“냄새 좋네.”
“어?”
“너 말고. 음식.”
순간 불쑥 꺼낸 말에 버퍼링이 걸린 스켈레톤 킹이 대답했다.
“어어. 된장찌개랑 갈비찜이다.”
냄새만 맡아도 누구 솜씨인지 알 만하다.
며칠 전부터 노심초사하며 식사를 차렸을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은쟁반 위에 덮여 있던 뚜껑을 열었다.
달칵.
뜨거운 김이 솟아오르는 음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오랜만에 보는 된장찌개를 한술 떴다.
그리고 입안에 넣기가 무섭게 도로 뱉었다.
퉤.
“어? 왜, 왜?”
뭐지, 이거.
당황하는 스켈레톤 킹과 된장찌개를 번갈아 보던 나는,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이거 누가 만들었냐?”
“네 동생.”
“……아.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문제라. 있지. 그것도 심각하게.
하지만 대답 대신 나도 모르게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
“먹고 갈게.”
“뭐?”
“이것만 먹고 간다고. 아, 샤워도 좀 하고.”
순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한동안 눈만 깜빡거리던 스켈레톤 킹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어, 알았다. 그럼 이 몸은…….”
“그래. 이따 보자.”
도둑처럼 슬금슬금 문을 닫고 사라지는 녀석의 모습에, 다시 한번 이유 모를 실소가 터진다.
수저를 내려놓은 나는 갈비찜을 집고 크게 베어 물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갈비찜은 어머니의 솜씨였다.
* * *
“사람들을 물어뜯고 다니는 사나운 개들이 있어서 쥐어팼는데, 이번에는 웬 미친개 두 마리가 나타났네요.”
며칠 만에 마주한 내 첫마디에, 뭐라 말할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던 최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미친개 두 마리가 더욱 많은 사람들을 물었고요.”
“최 팀장님도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세요?”
“미친개는 말 그대로 미친개에 불과합니다. 결국 시기와 명분의 차이일 뿐, 반드시 사람들에게 이빨을 드러냈겠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럴 계기를 준 사람은 저고요.”
“정 자책하고 싶으시다면 우리라고 합시다. 진태경 씨 홀로 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맞다. 이 몸도 사막에서 아주 큰 공을 세웠지.”
불쑥 끼어든 스켈레톤 킹의 말에, 최 팀장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다는군요.”
“자책이 아닙니다. 그냥, 그것만큼은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모든 사건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죽고 다친 이상, 그 원인에서 나 역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럴 생각도 없고.
“저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이해합니다. 응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감사하고요.”
“그게 끝입니까?”
“아뇨. 아직 가장 중요한 게 남았어요.”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세상이 뭐라 하든, 저 미친개들을 잡을 겁니다.”
내 대답을 들은 스켈레톤 킹이 눈을 빛냈고, 최 팀장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나름대로의 답을 찾으셨군요.”
“완전한 답은 아니겠지만, 계속 나아갈 이유 정도는 되지 않겠어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럼 저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몇 가지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겠군요.”
“몇 가지 소식이라면…….”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미카엘 실베르트와 오딘 길드 등에 관련된 정보를 취합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얼마 전 나왔고요.”
마나 연공법의 공개 이전부터 다른 거대 길드의 동태를 주시하던 최 팀장이다. 빈틈없는 그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뭡니까? 가급적 좋은 소식이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지만 나쁜 소식도 있는데, 어떤 것부터 들으시겠습니까?”
“지금보다 더 안 좋을 수도 없겠죠. 나쁜 소식부터 말씀해 주세요.”
피식 웃은 최 팀장이 서랍에서 두꺼운 서류 뭉치를 꺼냈다.
“나름대로 정리했는데, 그럼에도 분량이 워낙 방대하더군요.”
“이건?”
“오딘 길드가 보유한 자산 및 사업체에 관련된 정보입니다. 물론 그중 상당수가 드러나지 않았지만요.”
“차명이라는 겁니까?”
“예. 법적으로는 관련이 없지만 사실상 오딘 길드의 자회사나 다름없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다른 거대 길드나 기업도 흔히 이용하는 방식이지만…… 규모 자체가 차원이 다르죠.”
이쪽으로는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나지만, 쌓여 있는 서류 두께만 봐도 충분히 감이 왔다.
무슨 소린지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와 문장이 가득한 서류를 훑어보던 나는 가장 가까운 비교군을 찾았다.
“아레스 길드보다?”
“아레스와 평화 길드를 하나로 합치고, 거기에 거대 길드 서너 개는 합쳐야 할 겁니다.”
“미친.”
“이런 식으로 오딘 길드가 맡은 게이트의 숫자만 따져도 전 세계를 통틀어 이백 개가 넘습니다. 영구 임대인 만큼 사실상 소유나 다름없고, 이를 통해 막대한 양의 마정석이 쏟아져 나오죠.”
비록 이중 상당수가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했다 하더라도, 이백여 개의 게이트를 보유했다면 어지간한 소국(小國)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니, 소속된 헌터들의 전력을 따지자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
‘……차라리 그냥 미친개였다면 좋았을 텐데.’
냉정하게 말해서 미카엘 실베르트는 단순히 미친개가 아니다.
투견 중에서도 도사견이고, 심지어 영리하기까지 한 놈이었다.
‘하지만 반드시 때려죽여야 하는 놈이기도 하지.’
내심 중얼거린 나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럼 혹시 그 게이트에서 나온 마정석들이, 정제되지 않은 채로 이번 테러에 이용됐을 가능성은요?”
“없습니다.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서류상으로는?”
“진태경 씨도 아시겠지만, 미카엘 실베르트라는 인물은 철두철미한 사람입니다. 마정석 밀반입이라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없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빈틈을 남겨 두지 않았겠죠. 테러에 이용된 마정석은 중동이나 아프리카 쪽에서 흘러나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중동과 아프리카는 대격변 이전부터 테러와 내전의 본고장이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피 튀기는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을 놈들이니까.
테러리스트와 반군이 점령한 게이트에서 몇 개의 마정석이 나오는지, 그중 정제되지 않은 마정석이 얼마나 있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미카엘 실베르트는 혼자가 아니었다.
놈에게는 자신과 같은 미친개이자,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선지자.”
내가 불쑥 내뱉은 세 글자에, 최 팀장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에 관한 정보 역시 샅샅이 찾았습니다.”
“어떤 놈입니까?”
진심으로 궁금했다.
두 거대 테러 집단의 우두머리를 참수하고, 사분오열된 테러리스트들을 규합하여 전 세계를 뒤흔든 그 미친놈의 정체가.
그러나 다음 순간 들려온 최 팀장의 목소리는, 내 기대를 한참이나 벗어났다.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예.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선지자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무합니다. 심지어는 그날의 선언 이후 완전히 자취를 감췄고요.”
“아니 잠깐. 미국도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나선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생각했다.
이게 말이 되나?
스스로를 선지자라 칭한 그 미친놈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들쑤셔 놨다. 그런데 모두의 눈을 피해 자취를 감추다니.
“알면서도 기밀 유지를 위해 숨기는 건 아니고요?”
“얼마 전 척 헤이글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신께 맹세코, 선지자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더군요.”
사막에서도 함께했던 척 헤이글은 S급 헌터이기 이전에 미국의 국방장관.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이상, 국방장관인 그가 모른다면 그건 정말 선지자가 하늘로 솟았다는 뜻이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이지?’
내가 눈살을 찌푸린 그때, 최 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미스터 존슨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와 같은 대마도사들 중 미카엘 실베르트와 접촉한 것이 유력한 인물을 찾았다더군요. 아마 그를 통해 더 핵심적인 정보를 알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좋은 소식이다.
아직 누구인지 이름은 듣지 못했지만, 그 대마도사는 미카엘 실베르트의 실체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까.
그는 직접 아레스 길드의 A구역을 만들고, 거기에 더해 천태민의 상태를 알고 있던 주요 인물.
전 세계에 단 셋뿐인 대마도사인 그가 새로운 실마리가 될 것이다.
아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 팀장에게 걸려온 전화에서 매직 존슨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 빌어먹을. 그가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