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 Practice Disciple RAW novel - Chapter 5
5화 : [제2장] 음양색마 2
백리사초.
그는 자신의 가슴에 꽂힌 비수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극심한 통증도 통증이지만 무엇보다 비수를 가슴에 박은 사람이 악소소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을 음적으로 오해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머리가 헝클어져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있고 피가 많이 묻어 누군지 구별이 안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상의가 찢겨나가 너덜너덜해져 마치 음적이 옷을 벗고 그녀를 범하려 한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악소소는 자신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배신감은 아니었다.
다만 혼자서 고작 한번 본 것만으로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은 데 대한 결과가 이런 식으로 귀결되다니.
그것은 일종의 허탈감이었다.
비록 매화검보를 얻게 되고 절대 무공과 내공을 익히게 되었지만, 현실을 자각하는 계기가 된 것이기도 했다.
그의 현실은 만년 꼴찌 화산파 연습제자.
그래서일까.
악소소가 비수를 찌를 때 피할 생각도 못 했다.
아니 피하려고 해도 완전히 기진한 상태라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더 컸다.
결론적으로 백리사초는 악소소에 대한 원망은 전혀 없었다.
이대로 다시 죽는다고 해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었다.
어쨌든 그녀를 색마의 손에서 구해냈으니까.
하지만 그게 자신의 짧은 삶의 유일한 보람인 것이 못내 아쉬웠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가족들의 기대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 재산을 팔아서 명문정파인 화산파 연습제자로 넣어주신 부모님의 기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죄송해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졸리는 눈을 억지로 뜨며 백리사초가 부모님을 떠올렸다.
그리고 악소소와 같은 나이인 여동생도 떠올렸다.
삼 년 전 화산파 정식제자가 되면 꼭 집으로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그 아쉬움이 매우 컸다.
눈이 점점 감겼다.
아마도 이대로 잠이 들면 다시 뜨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옥패의 효능을 다시 바랄 수도 있겠으나, 백리사초는 직감적으로 그게 단 한 번의 기회를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옥패에 금이 갔고 더는 부활의 위력을 보이지는 못할 터였다.
백리사초의 눈에 흐릿하긴 하지만 어찌할 줄 모르는 악소소의 얼굴이 비쳤다.
그녀 또한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를 납치해간 사람은 바로 음산하게 생긴 노인, 바로 음양색마였다.
그녀는 혈도를 찍히기 전에 그의 얼굴을 잠시나마 봤기 때문에 몸집과 머리 색깔 등이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죽어가는 백리사초를 보며 악소소가 물었다.
“네놈이 나를 납치해 욕보이려 한 것이냐?”
열세 살 여자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당찬 말이었다.
하지만 화산파 장문인의 금지옥엽으로 미래에 강호여협이 될 그녀의 신분을 생각하면 납득이 될 수도 있었다.
겉으로는 일부러 냉랭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그녀 역시 초조했다.
‘제발 색마가 맞기를. 내가 엉뚱한 사람을 찌른 것이라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백리사초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아혈이 일부 풀린 상태지만 기식이 엄엄해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렇다고 말했을 것 같았다.
자신이 색마임을 인정해야 그녀의 마음이 편해질 수 있기에.
눈꺼풀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숨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분명 비수가 심장에 박힌 지 제법 된 것 같은데 이상한 일이었다.
백리사초는 그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바로 반지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촉감 때문이었다.
물론 절대 내공 덕분도 있겠지만 아직 반지에 남아 있는 서늘한 기운이 그의 회복을 돕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반지에서 금빛 기운이 조금씩 흘러나와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심장이라는 특수한 위치 때문에 회복 가능성은 희박했다.
“왜 말을 못 하느냐? 네놈이 나를 납치한 게 맞느냐?”
악소소가 언성을 높였다.
백리사초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순순히 색마를 자처할 생각이었던 그가 다시 생각을 바꾼 것이었다.
그것은 가능성은 적지만 회복의 조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 살아야 한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 천고의 기연을 만났으니 이 고비만 넘기면 그 기대를 충족시켜드릴 수 있을 것이다.’
백리사초가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다시 흘렀으나 정신은 더욱 맑아지는 것 같았다.
반지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의 가장 큰 효능이 다시 작동되는 것 같았다.
‘그래, 매화심공을 운공하자. 그러면 상처 치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백리사초가 천천히 매화심공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말도 할 수 없고 몸도 움직일 수 없었지만 운공이 가능했다.
문제는 악소소였다.
그녀가 한 번이라도 다시 공격을 가해온다면 그것으로 끝장이었다.
“정말 나를 납치해온 사람이 아니라는 건가요?”
악소소의 거듭된 물음에 백리사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매화심공을 운공하자마자 안색이 조금 회복된 그를 보며 악소소 역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보면 안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아직 안심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무림인 중에는 역용술을 익힌 자들이 있고, 특히 색마의 경우 필수였다.
“날 납치한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은 누구지요? 지금 보니 어른은 아닌 것 같은데······.”
“연습제자.”
백리사초가 힘겹게 다시 말을 했다.
매화심공 덕분에 중대한 고비를 넘겼기에 가능했다.
“아! 본파의 연습제자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아가씨. 저는 화산파 연습제자 백리사초라고 합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백리사초?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혹시 연습제자 중 유명한 분인가요?”
“삼 년 연속 평가시험에서 꼴찌를 해서 나쁜 의미로 이름이 조금 알려졌지요.”
“아, 맞다! 본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들었어요. 한데 정말 괜찮아요? 가슴에 비수가 박혔는데······.”
“견딜 만합니다. 아무래도 급소를 조금 비켜서 찔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죄송해요. 저는 음적인 줄 알고 그만······.”
“괜찮습니다. 그리고 진짜 색마 놈은 이미 죽었습니다. 음양신공을 익힌 놈이라던데······.”
백리사초가 오른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피고름 같은 것이 고여 있었다.
무엇보다 음양색마의 애검인 음양검(陰陽劍)이 옆에 떨어져 있었다.
화골산에 육신이 녹아내렸지만, 음양검은 그 형태를 유지한 것 같았다.
“음양신공이라면 음양색마? 아, 그럼 저 피고름이 음양색마의 것이란 말인가요?”
“네. 화골산에 당해 저렇게 되었지요. 놈이 음양색마란 자였습니까?”
“네. 저의 기운이 특수해 어릴 때부터 유명한 색마들에 대한 주의를 늘 들어왔었지요.”
악소소가 뒤쪽으로 가서 음양검을 주워들고 살펴봤다.
“음양검이군요. 죽은 자가 음양색마가 확실한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습니다.”
백리사초가 미소를 지었다.
악소소가 이제야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자신은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 아닌가.
총명하다고 소문이 난 그녀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정말 괜찮으세요? 제게 금창약이 있는데 그거라도······.”
악소소가 백리사초의 가슴에 박힌 비수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백리사초의 안색이 회복되고 있지 않았다면 벌써 금창약을 바르든지 했을 터였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서는 비수를 뽑는 것이 필수였다.
“괜찮습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비수는 저절로 뽑힐 겁니다. 사실 지금도 조금씩 뽑히고 있지요.”
백리사초가 담담히 말했다.
매화심공을 일주천하는데 성공한 그는 이제 회복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다.
오히려 음양색마의 죽음에 대해 자신이 어떤 설명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악소소는 말괄량이라는 소문과 달리 매우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그 질문을 곧 하게 될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입고 있는 옷이 본파의 연습제자 복장이 맞는군요. 옷이 찢겨나간 것은 음양색마와 싸우다가 그렇게 된 것인가요?”
“싸움이라기보다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지요. 연습제자에 불과한 제가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저는 만년 꼴찌 연습제자인걸요.”
“그럼 누가 음양색마를?”
“놈은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음양신공을 대성하기 위해 무리한 준비를 하다가 주화입마된 것이지요.”
“아, 그런 일이. 그럼 화골산은?”
“놈이 저에게 화골산을 부으려고 뚜껑을 열고 있었는데, 마침 주화입마되어 쓰러지다가 자신의 눈에 화골산을 붓고 말았지요.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백리 공자께선 이곳에 계셨던 건가요?”
“네. 이곳은 제가 밤마다 수련하는 곳입니다. 한데 마침 놈이 아가씨를 자루에 담아서 들어오더군요. 이후 저는 공격을 당했고 그 와중에 놈이 주화입마된 것입니다. 제가 그나마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부족하나마 의술을 조금 알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뭐 그렇게 된 겁니다.”
백리사초가 말을 한 후 가슴에 박힌 비수를 뽑아냈다.
푸화확.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으나 백리사초는 담담했다.
“금창약 좀 주시겠습니까?”
“네. 여기 있어요.”
악소소가 금창약을 건네주자 백리사초가 상처 부위에 발랐다.
“괜찮으세요?”
“네.”
백리사초가 미소를 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몸은 급속도로 회복하고 있었다.
매화검보에는 의술도 수록되어 있었지만, 그에 앞서 매화심공 자체가 훌륭한 치료술이었다.
특히 칠성의 경지에 오른 이후에는 그 효과가 탁월했다.
그리고 백리사초의 말대로 비수가 급소를 조금 비켜 지나간 것도 맞는 말이었다.
이는 백리사초의 몸속에 있던 매화공력이 작용한 결과로 일종의 호신강기가 작동했다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원래는 비수 자체가 몸을 뚫지 못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비수의 예리함이 너무 강해 그 효과가 반감된 것이었다.
물론 회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반지에서 흘러나오는 서늘한 기운이었다.
그 서늘한 기운은 탁월한 치유력을 지니고 있었고, 짧은 시간 동안 백리사초의 생명을 여러 번 구한 셈이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악소소가 백리사초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소녀 악소소. 은공께 인사 올립니다. 비록 음양색마가 스스로 주화입마되었다고는 하나 은공 덕분에 살아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백리사초가 얼굴을 붉혔다.
그도 그럴 것이 연습제자 사이에서 악소소는 일국의 공주와도 같았다.
그런 그녀의 절을 받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니에요. 공자님께서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놈이 주화입마 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저도 꼼짝없이 당했을 거예요. 무엇보다 제가 오해를 해서 살수를 쓴 것을 용서해주세요.”
“아닙니다. 어서 고개를 드십시오.”
“네. 감사해요.”
악소소가 싱긋 웃었다.
백리사초의 가슴에 났던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어가자 비로소 웃음을 짓는 그녀였다.
“아직 연습제자이시니 제가 아버님께 말씀드려 이번에 정식제자로 올려드릴게요.”
“아닙니다. 정식제자는 제힘으로 이루고 싶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럼 원하시는 게 있으면 말씀해보세요. 그게 무엇이든 제가 아버님께 말씀드려 들어드릴게요. 보아하니 신비한 회복능력도 갖추고 계시니 분명 허락하실 거예요.”
“으음, 그러면 오늘 이곳에서 저를 만난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건 왜요? 어찌 되었든 음양색마가 죽었고 그 공을 인정받을 수 있을 텐데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괜히 이번 일에 휘말려 주목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무공을 연마해 제힘으로 정식제자가 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좋아요. 다만 이제부터 백리 오라버니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으음, 제가 두 살 더 많으니까 그래도 되지만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네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 부탁마저 들어주지 않으면 정말 서운할 것 같아요.”
“그렇게 할까?”
“네. 백리 오라버니.”
“소소.”
“호호.”
“하하하.”
소꿉장난 같은 호칭 정리가 끝나자, 분위기는 더욱 좋아졌다.
하지만 마냥 이곳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화산파 고수들이 이곳을 찾아낼 것이고, 그전에 나가는 것이 현명했다.
문제는 입구가 무너졌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백리사초의 안색이 굳어졌다.
“왜 그러세요? 상처가 다시 도졌나요?”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내상은 아직 회복이 안 되었지만. 그것보다 동굴 입구가 막혔다. 한번 보고 오겠느냐?”
“네. 오라버니.”
악소소가 일어나 동굴 입구 쪽으로 향했다.
백리사초는 다시 매화심공을 운공했다.
비수에 찔린 상처는 지금도 빠른 속도로 아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음양색마의 장풍과 발길질에 당한 내상은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최소한 한 달은 지나야 내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군. 그나저나 동굴 입구를 어떻게 다시 개방한다? 가만있자. 장보도에 비밀통로가 있었던 것 같은데······.’
백리사초가 장보도를 꺼내 다시 읽었다.
그러자 끝부분에 비밀통로 기관 작동 방법이 적혀 있었다.
문제는 그 작동을 밀실 안에서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최대한 매화검선과 매화검보에 대한 것을 숨기고 싶은 그로서는 아무리 악소소라고 해도 난감했다.
‘어쩔 수 없지. 우연히 이곳에서 기관을 작동하는 장보도를 발견했다고 하면 될 것이다. 그나저나 아가씨에게 오라버니 소리를 듣게 되다니. 친분을 맺어 앞으로 내가 화산파에서 출세하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고맙구나. 비록 무림맹주 자제와 정혼을 맺어 나와 맺어질 가능성은 없지만······.’
백리사초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악소소와 무림맹주 자제가 부모끼리 정혼을 맺은 것은 무림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일이었다.
백리사초의 경우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전혀 아쉬움이 없었다.
어차피 오르지 못할 나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마음이 조금 달랐다.
다만 아직 나이가 어려서인지 깊은 좌절이나 실망은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동굴 입구에서 폭발 소리가 크게 났다.
콰콰쾅.
백리사초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내상이 회복되지 않아 몸이 무거웠으나 악소소의 안전이 걱정되어서였다.
하지만 다음에 들려오는 소리에 그의 안색이 굳어졌다.
“대사형!”
악소소의 목소리였다.
‘대사형이라면 우천위 그자가 온 것인가? 하필이면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