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그 별호를 어떻게……!”
사념이 놀라며 말하자.
‘비마가 맞네.’
천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비마가 아니었다면 이 말에 반응할 리가 없었을 테니.
“오랜만이네.”
천휘가 반가움에 미소를 지었다.
천마윤회로를 펼치면서까지 사념을 남긴 자의 정체는 과거, 심복이었던 비마였다.
“이렇게 볼 줄은 몰랐는걸.”
“나를 아는 건가?”
“뭐야? 아직도 모르겠어?”
천휘의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이 풍겨 나왔다.
“이, 이건!”
비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강렬한 존재감.
그리고 저 당연하게 내려다보는 오만한 웃음과 태도는 그가 생전에 자주 봐 왔던 인물의 것이었다.
“서, 설마!”
화들짝 놀란 비마가 지체 없이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아아. 지존이시여!”
“오랜만이야.”
“죄, 죄송합니다. 제 눈이 옹이구멍이라 지존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바다와도 같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비마를 보니 마치 전생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런데 많이 늙었는걸.”
천휘는 고개를 드는 비마와 시선을 맞췄다.
한때 그는 많은 여인들의 방심을 흔들던 미중년이었는데…….
지금 모습은 예전과 전혀 달랐다.
풍성했던 머리는 대부분 벗겨져 있었고,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처음 봤을 때는 비마라는 것을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으니.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더군요.”
그가 주름진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지존께서는 그 세월을 극복하신 것 같습니다만……. 혹 전설 속의 반로환동을 이루신 겁니까?”
“그건 아닌데.”
“그럼 그 모습은…….”
“영생불멸군림대법 알아?”
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생불멸군림대법이라면 천휘가 한창 입에 달고 살던 대법의 이름이었다.
그뿐이랴.
과거 자신에게 신교 몰래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던가.
“예전에 지존께서 그 대법을 펼치기 위해서 만년빙정을 가져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 그랬었지.”
천휘는 잠시 잊었던 일을 떠올렸다가, 아까 하지 못한 말을 뱉었다.
“어쨌든 그거 펼쳤더니 이 몸이더라고.”
“네……?”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한 것 같은 비마를 본 천휘가 어깨를 으쓱였다.
“혼을 옮겨서, 다른 몸으로 간 것인데…….”
천휘는 중간에 말을 멈췄다.
막상 말로 설명하려니 복잡했다.
‘그리고 귀찮아.’
결국 천휘는 설명을 하려던 것을 관두고 간단하게 말했다.
“그냥 환생이랑 비슷하다 생각해.”
“화, 환생 말입니까?”
비마는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환생이라 하면, 기억을 잃고 태어나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예전 모습 그대로라니.
하지만 곧 그는 납득했다.
그가 누구인가.
세상에 불가능할 것이 없는 고금제일마이자, 고금제일인 절대천마였다.
“지존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신 일이겠지요.”
그러다 눈을 크게 떴다.
“그런데 영생불멸군림대법을 펼치고 나서 그리됐다는 것은 설마 지존께서 신교를 떠나신 이유가…….”
“네가 생각하는 게 맞아.”
비마는 할 말을 잃었다.
지존이 훌쩍 떠난 이유로 신교 내부에서 각축이 일어날 정도였는데.
겨우 대법을 실행하기 위해서라니.
“그, 그러면 지존께서는 그동안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나? 천산산맥에 있었지.”
비마가 당혹감을 터트렸다.
“하지만 모조리 뒤져 봤는데도 천산산맥엔 없었…….”
“내가 마음먹고 숨었는데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비마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 말대로 천휘가 마음먹으면 세상의 어느 누가 찾을 수 있겠는가.
천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보다 무영신투가 비마지?”
비마가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천휘가 턱을 매만졌다.
무영신투가 구파일방과 황실의 물건을 훔쳤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
비마의 경공이면 그들을 마음껏 농락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조금 뜻밖인 것은.
“용케 비마라는 걸 안 들켰네.”
비마는 예전 중원을 쑥대밭으로 만든 전적이 있는 대마두였다.
그런데 비마가 오랫동안 중원에서 활동했음에도,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신기할 노릇이었다.
“되도록 중원에 알려진 무공을 대신해 경공술 위주로 펼쳤습니다.”
“무슨 임무였기에 그래?”
“임무가 아닙니다.”
“그럼 왜 중원에 왔어?”
“지존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천휘가 살짝 당황했다.
“나?”
“천산과 새외에서 찾지 못해 혹 중원에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랬습니다만…….”
비마가 말을 삼키며 쓰게 웃었다.
그토록 찾았던 지존은 바로 천산에 있었으니 괜한 헛수고였다.
“그냥 신교에나 있지.”
“비룡문(飛龍門)의 문주였던 제가 문파를 버리면서까지 신교에 투신한 것은 오롯이 지존을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비마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지존께서 안 계시는 신교에 제가 머물 이유가 있겠습니까.”
“마뇌가 가만히 안 있었을 텐데.”
“…….”
비마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것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몰래 도망쳤네.’
천휘는 그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천마윤회로는 왜 펼쳤어?”
“죽음을 목전에 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펼쳤다고?”
천휘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돌았어? 내가 하지 말랬잖아.”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천마윤회로를 발동하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니까 죽기 직전이라도 절대 펼치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었는데, 뭔 짓거리야.”
“죄송합니다.”
비마가 오체투지하며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지존을 다시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내가 안 왔으면 어쩌려고?”
“하나 이렇게 오시지 않았습니까.”
“우연이야.”
“과거 지존께서는 우연은 운명과 다름없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네.”
“언제?”
“처음 지존과 만났을 때입니다.”
“그랬었나.”
“그랬었습니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비마의 반박에 천휘는 입맛을 다셨다.
“예전에는 말 한마디도 못 하더니, 달라졌다?”
“송구스럽습니다.”
“낯짝도 두꺼워졌는걸.”
예전과 조금 다른 비마의 태도와 어투에 천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 됐어. 이미 이렇게 거창하게 저질러 버린 것을 무를 수도 없고.”
천휘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고개나 들어 봐.”
비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서로 눈을 맞추길 잠시.
“괜찮겠어?”
천휘가 나지막이 물었다.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이제 넌 소멸해. 두렵지 않아?”
“괜찮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쁩니다. 제 혼을 바친 대가로 이렇게 다시 지존과 재회하지 않았습니까?”
비마가 미소를 머금었다.
그것은 전생에서도 보지 못했던 밝은 미소였다.
“거기다가 지존께 드리려고 모아 둔 물건까지 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런 경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천휘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여전히 머리가 맛이 갔구나.”
비난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비마는 기분 좋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람이 어찌 쉽게 변하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나도 몸이 바뀌었는데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니.”
천휘가 피식 웃었다.
그러다 아까 전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것보다 무슨 물건을 모았어?”
“무공비급 몇 권과 제가 새외에서 어렵사리 구한 검입니다. 특히나 비급은 지존의 마음에 드실 겁니다.”
천휘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괜히 자신의 수족이 아니었었는지 원하는 것을 딱 알고 있었다.
“역시 비마야. 날 잘 아는걸.”
“지존을 모신 세월이 어디 가겠습니까?”
보통 세월이 아니긴 했다.
햇수로만 해도 이십 년을 훌쩍 넘겨 그의 수발을 들었으니.
“그럼 밖의 비동에 있던 건?”
“미끼입니다.”
비마의 눈이 반개했다.
“아무래도 명성이 지나치게 커지다 보니, 저를 노리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속이려고 따로 물건들을 준비해 뒀습니다.”
“마뇌가 자주 써먹던 방식이네.”
천휘가 씩 웃었다.
“장보도도 일부러 밀어로 적었지?”
“밀어로 적어 두면 혹 지존께서 발견하실 때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비마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만약 장보도가 다른 사람들 손에 들어간다고 해도 신교의 중추가 아닌 이상은 제대로 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을 겁니다.”
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영신투에 관심을 보였던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밀어였으니.
“나름 머리 좀 썼는걸.”
“감사합니다.”
“그럼 장보도를 여러 개 준비했겠네.”
“총 다섯 개를 준비했습니다.”
“다섯 개라…….”
이제야 비동이 털린 것이 이해됐다.
‘그렇다면 먼저 이 비동을 다녀간 이는 천마신교도일 가능성이 높겠는걸.’
그때 비마가 순간 얼굴을 일그러트리더니 천천히 일어났다.
“지존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세상이 저를 가만두지 않는군요.”
천휘는 자신과 눈높이를 맞춘 비마를 지그시 응시했다.
사념은 영원할 수 없었다.
그것이 섭리고 법칙이었으니.
“이렇게라도 지존을 다시 뵙게 되어…….”
그 순간 비마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더니 빛으로 변하며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화아악!
주변에 색채가 입혀졌다.
붉은색, 푸른색, 황색.
마치 그림에 칠을 하듯, 색채가 조금씩 물들어 가길 잠시.
이윽고 하나의 방이 나타났다.
“…….”
비마는 차마 말을 끝을 맺지 못한 채 사라졌지만, 그가 남기고 간 여운은 천휘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비마는 많이 변해 있었다.
미중년이 노인으로 변하기까지.
그 세월이 어디 짧은가.
아마 최소 수십 년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기나긴 인고의 세월 동안 자신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을 터.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그런데도 그는 천마윤회로까지 펼치면서 자신을 기다렸고 만났다.
결국 삼백 년이란 시간을 넘어서 재회를 하게 되었지만, 그는 사라졌다.
혼도, 사념도.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의 염원은 이루어졌으되, 이루지 못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비마는 만족해했으니 된 건가.’
천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나도 만나서 반가웠어.”
속삭이던 천휘는 감정을 추스르며 주변을 살폈다.
비동과는 전혀 다른 화려한 방 안은 오랜 세월 방치되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깔끔했다.
‘저건가?’
정면에 존재하는 여섯 개의 목갑.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목갑은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천휘는 그것들을 본체만체하곤 다른 곳으로 홱 시선을 돌렸다.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계속해서 익숙한 기운을 풍기는 게 있었다.
천휘는 방의 중심부로 걸어갔다.
탁자의 중앙에 꽂힌 하나의 검.
딱 봐도 평범한 검이 아니었다.
아무리 따져 봐도 최소 명검을 상회하는 것임이 분명한 것이, 검신에서 섬뜩한 마기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천휘는 손을 뻗어서 검을 쥐었다.
“마기를 품은 검은 귀한데.”
한참 검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우웅!
갑자기 검이 울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진득한 마기가 흘러나와서는 검파를 쥔 손을 감쌌다.
‘이놈이 미쳤나?’
천휘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마기는 몸을 감싸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천휘를 지배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검신을 보는 눈빛이 싸늘해졌다.
하극상도 이런 하극상이 없었다.
고작 마기를 품은 검 주제에 마도의 지존이었던 자신의 몸을 강탈하려고 하다니!
“감히 내게 덤벼?”
천휘의 안광이 번뜩였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강렬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그를 천마로 만들어 준 절세의 마공, 절대군림공이었다.
우우웅―
그러자 미친 듯이 마기를 발산하던 검이 지금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검신을 떨었다.
‘늦었어.’
하지만 천휘가 그보다 더 빨랐다.
절대군림공의 기운이 마기를 되돌려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제압하려 들자 검이 부르르 떨렸다.
―끼이이이익!
불쾌한 소음이 터졌다.
그것은 마치 비명과도 같은 처절한 울부짖음이었다.
절대군림공이 자아가 있는 검의 혼을 잠식하며 파괴하려고 하자.
뚝.
한참을 파르르 떨던 검은 마기를 삼키며 침묵했다.
결국 굴복한 것이었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천휘는 조용해진 마검을 흡족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눈앞까지 들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매끈한 검신.
그와 더불어 지독한 마기가 검신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공을 익힌 자라면 누구든지 탐낼 만한 가치가 신검(神劍)의 자태.
‘마음에 들기는 한데…….’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의 천휘가 갖고 다니기에는 부적절했다.
전생이었더라면 몰라도 지금 자신은 화산파의 도사이지 않은가.
“어쩔 수 없나. 버리고…….”
검을 놓으려던 찰나.
딸깍-
탁자가 열리더니 검집이 나타났다.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새까만 검집을 보며 천휘는 웃음을 흘렸다.
“여기다 넣으란 거지?”
천휘는 검을 검집에 넣었다.
그 순간 사방으로 계속 흘러나오던 마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시끄럽게 울리던 검의 울음소리마저 잠잠해졌다.
“역시 비마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사실 마기가 사라진 것은 비마가 노린 게 아니었을 터였다.
비마가 의도한 건 시끄러운 울림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마기까지 지워 버렸으니.
천휘가 마검을 옆구리에 찼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그제야 목갑들을 바라봤다.
뒤편의 목갑 다섯 개와 다르게 투박하게 생긴 목갑 하나가 가장 앞에 놓여 있었다.
“이걸 먼저 보라는 거겠지.”
가장 앞에 놓인 목갑에 다가갔다.
목갑 위 수북하게 쌓인 먼지를 보던 천휘는 목갑을 천천히 열었다.
이내 딸깍 소리와 함께 드러난 목갑 안을 본 순간, 눈이 가늘어졌다.
“응? 이게 다야?”
부풀었던 기대감이 팍 식었다.
목갑 안에는 겨우 한 권의 책만이 들어 있었다.
실망한 얼굴로 목갑 안을 보던 천휘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래도 비마인데. 이게 절세신공일 수도 있잖아.’
아직 조금 남아 있는 기대감을 품으며 서책의 제목을 천천히 읽었다.
“강호무공서열(江湖武功序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