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63
363화
“크으.”
술잔을 털어 낸 천휘는 곧바로 젓가락을 움직여서 오향장육을 집었다.
명쾌하고, 빠른 손놀림이었다.
작은 객잔에 들어온 천휘는 작금의 여정에 아주 만족스러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역시 이 맛이지.’
오향장육을 씹어 삼킨 천휘의 귀로 주변 이들의 떠들썩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드디어 전쟁이 끝났군.”
“이렇게 구주삼패세의 시대가 무너지나 했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연명하는군.”
“이제 장사 좀 편히 할 수 있겠구먼. 그간 장강을 지날 때마다 무인들이 너무 날 서 있어서, 건널 때마다 칼날 위를 걷는 것만 같았네.”
딱히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큰 목소리로 들려오는 대화는 결국 무림맹과 사흑련의 종전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강호가 일반 양민들과 동떨어진 세계라지만, 이번 전쟁은 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유독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강호에 매화신협의 위명이 쩌렁쩌렁하네! 지금 화산파에 방문하려는 이들이 앞다투어 줄을 설 정도라지 않나! 자네도 상인이라면 잘 알아 두게. 이제 곧 소림과 무당 옆에 화산이 위치할 걸세.”
“허어! 그 정도라는 말인가?”
“이제 이십 대 초반이라 들었는데, 벌써 기존 무림맹의 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은가. 내가 화산파 근처에 사는 무인이나 상인이었으면 발에 땀 나도록 달려갔을 걸세!”
대화를 듣던 천휘가 술을 들이켰다. 가는 곳곳마다 비슷한 내용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이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
‘이렇게 구석진 곳까지 알려질 정도면…… 참 좋아하겠네.’
천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장문인과 현려를 떠올렸다.
화산파에 방문하는 이들이 전과 같이 돌아온 것만으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던 둘이었다.
한데 이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손님들이 찾아올 터였으니, 감격하지 않을 리 없었다.
‘오열하려나? 아니, 일단 참겠지.’
애써 눈물을 삼킬 것만 같은 둘의 모습을 그려 보던 천휘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이런저런 감상을 떠올리던 천휘는 사람들이 떠나고 난 뒤에야, 느긋하게 식사를 마쳤다.
“조심히 가십시오!”
점소이의 우렁찬 인사를 뒤로하고, 천휘는 객잔 밖으로 나왔다.
중천에 뜬 햇볕이 자신을 반겼다.
살짝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완연했던 봄은 어느새 무르익어 천하가 점점 열기를 더해 가고 있었다.
말을 탄 채 느긋하게 온 탓일까.
무한을 떠나 이곳, 정양(正陽)까지 도착하는 데만 많은 날이 흐른 상태였다.
천휘는 죽립을 푹 눌러썼다.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생각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이전이었다면 말을 구매하고 다시 길을 떠났겠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거리로 움직였다.
거리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물건을 팔기 위해서 호객 행위를 펼치는 장사꾼부터 흥정을 하는 구매자, 그냥 구경하듯이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하나 천휘는 그런 주변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한 명의 사람을 눈에 담았다.
그가 찾던 자였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꾀죄죄한 몰골의 거지는 행인이 놓고 간 남은 음식에 환하게 웃었다.
직후 그는 차갑게 식은 음식을 집어,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식어서 구미가 당기지 않을 법도 했으나, 지금 그에겐 충분히 맛 좋은 음식이었다.
‘흐흐, 내 구걸도 많이 늘었어.’
거지, 개방의 방도인 소운개(小運丐)가 뿌듯함을 감추지 못할 때.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벌써 다음 손님인가?’
싱글벙글 웃은 소운개는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능숙하게 고개를 숙이며 한껏 불쌍하게 말했다.
“아이고, 아이고! 이 불쌍한 거지에게 한 푼만 베풀어 주십시오.”
통곡하듯이 그가 말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무언가 앞에 떨어지기를 기다렸으나, 돌아온 것은 물건이 아닌 목소리뿐이었다.
“개방의 분타는 어디죠?”
귀를 강타하는 나지막한 음성에 소운개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황색의 무복을 입은 육 척 장신의 청년이 중천의 해를 가리고 있었다.
두 자루의 칼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를 살피고 있는 그때,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보를 받으려고 왔는데.”
순간 소운개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조금 전까지 고개를 숙이고 굽실거리던 모습은 사라지고, 천천히 허리가 펴지며 두 눈에 총기가 어렸다.
개방도로서 상대를 맞이한 것이다.
“본 방에 정보를 의뢰했습니까?”
“그렇죠.”
“무슨 정보입니까?”
“천마신교.”
천휘의 담담한 단답에 소운개가 두 눈을 부릅뜨며, 침을 꿀꺽 삼켰다.
며칠 전 분타주에게 하달받은 명령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만약 천마신교의 정보를 받으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아무런 말 말고 극진하게 분타로 모셔 와라!
무슨 말인가 했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던 명령의 실체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정신을 차린 소운개는 헐레벌떡 일어나며 포권을 취했다.
“소인은 개방의 소운개라 합니다.”
목소리가 한껏 깔렸다.
상대는 개방의 귀빈이었다.
최대한 정중하게 맞이해야만 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포권을 푼 소운개가 몸을 돌렸다.
‘잘 말해 놨나 보네.’
천휘는 서둘러서 움직이는 소운개를 보더니, 별다른 말 없이 그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편 생각보다 너무 어린 상대방에, 소운개는 흘낏 뒤를 바라봤다.
‘대체 누굴까? 분타주님께서 그렇게나 극진하게 데려오라고 할 정도면 보통의 무인이 아닐 텐데.’
상당한 미청년이었다.
깊게 눌러쓴 죽립 속 시퍼런 안광과 삐뚜름하게 올라간 입술이 날카로운 느낌을 주고 있었음에도, 딱 보면 감탄이 먼저 나올 정도였다.
‘반박귀진의 고수인가? 저렇게 두 자루의 검을 찬 고수라면 잘 알려진 자일 텐데…… 헙!’
순간 소운개가 숨을 들이켰다.
날카로운 인상의 미청년, 두 검.
이것은 현 강호에서 가장 큰 위명을 떨치는 자의 인상착의가 아닌가.
‘매…… 매화신협!’
이마에서 땀이 삐질 흘렀다.
청년이 다름 아닌 매화신협이라는 것을 알자, 긴장감이 차오른 것이다.
동시에 걸음이 딱딱해졌다.
‘이 멍청한 놈! 도복을 안 입었다지만, 개방도란 놈이 저러한 인상착의를 보고도 이제야 눈치채다니!’
소운개는 한껏 자책했다.
현재 매화신협은 강호는 물론이고, 천하마저 뒤흔드는 대협객이었다.
강호의 후기지수들은 물론이고 민간의 젊은 청년과 여인들마저 그를 동경의 대상으로 보며, 흠모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개방의 후기지수이자, 이결개인 소운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못 알아본 것이다.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매화신협을 눈앞에 두고도 모르다니! 이 머저리 같은 놈!’
계속 자책하며 울상을 짓던 소운개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시, 실수한 건 없겠지?’
무슨 잘못을 한 건 없나 생각하며, 걸어가던 소운개가 걸음을 멈췄다.
폐허나 다름없는 장원에 도착해서였다.
“크으, 이거지, 이거야!”
“쫄깃쫄깃하다니까!”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신이 난 듯한 목소리였다.
“드, 들어가겠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천휘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더듬거리던 소운개가 재빠르게 문을 열었다.
끼기긱―
낡은 문 특유의 소리가 울리자 안에서 들려오던 소란이 뚝 끊겼다.
풀이 여기저기 자라난 장원 마당에는 많은 거지가 바닥에 앉아 있었다. 한 손에는 고기를 든 채였다.
그들의 시선이 이내 소운개와 천휘에게 쏠리더니, 여기저기서 소리쳐 댔다.
“소운개!”
“응? 손님?”
소운개는 그들의 외침에 얼른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갖다 댔다.
조용하란 손짓이었다.
모두가 그 행동에 입을 다물자, 소운개가 헛기침을 뱉으며, 말했다.
“큼큼, 분타주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분타주님은 왜…….”
입 주변에 기름을 묻힌 채 고기를 뜯고 있던 개방도가 평소처럼 묻다가 순간적으로 얼굴을 굳혔다.
지금 상황에서 분타주를 부르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재빨리 한쪽을 가리켰다.
허름한 전각이 있는 쪽이었다.
“저 안에 계신다.”
“감사합니다.”
소운개는 고개를 숙인 뒤, 그대로 시선을 돌려 천휘를 보며 다시 안내를 이어 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그럴 필요 없다.”
시원한 음성이 귀를 두드렸다.
이어서 옅은 바람이 불어온다 싶더니 곧 둘의 앞에 주름진 얼굴의 나이 든 거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잘 왔군. 계속 기다리고 있었네.”
“정보는 다 모았나 보네요?”
“당연한 걸 묻는군.”
단도직입적인 천휘의 물음에 노인이 껄껄 웃으며, 여기저기 빠져 있는 누런 이를 만면에 드러냈다.
직후 그가 몸을 돌리며 입을 달싹였다.
“날 따라오게.”
* * *
탁.
노인, 정양 분타의 분타주 반우공(班虞公)이 준비해 둔 책자를 탁자 위에 놓았다.
총 스무 권.
상당히 많은 수의 책자를 올린 반우공이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에 대한 모든 정보네.”
“의외로 적네요.”
천휘가 그 책자들을 보며, 말했다.
천마신교의 역사는 깊었으며, 그동안에 쌓은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겨우 스무 권으로는 당연히 부족했다.
“깔끔하게 정리해서 함축한 거네.”
“쩝, 그냥 다 줘도 상관없는데.”
천휘는 반우공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이며, 앞의 책자를 하나 집었다.
맨 위에 있는 것부터였다.
―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 세상의 섭리를 거스르는 무공을 익힌 불세출의 절세고수가 나타나 천하를 피로 물들였다.
천휘는 첫 구절을 읽고 흥미롭다는 눈빛을 띠었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천마신교의 역사가 적힌 책자였건만.
‘이게 정파에서 본 천마인가?’
그가 아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관점의 차이였다.
천마신교 내에서 초대 천마는 마도(魔道)라며 소림과 무당에게 핍박받던 무인들을 구제한 신이었다.
그렇기에 천마신교의 역사에서 그는 신성시되며 받들어지기 마땅한 신인(神人)이었다.
하지만 이 책자에서는 달랐다.
피에 미친 희대의 마두로 표현하며, 존재해선 안 되었을 자라고 적어 둔 것이다.
상당히 재미있는 정보이기는 했다.
자신이 알던 마교의 역사를 정파의 입장에서 해석했으니.
하지만.
‘흠, 그 정도인가?’
너무 과할 정도였다.
틈만 나면 천마신교를 악(惡)이라 칭하며 없어져야 할 존재라는 내용이 계속해 이어졌다.
마치 세뇌를 하는 것만 같았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네.’
천휘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런 글들을 계속해 읽어 넘겼다.
그렇게 얼마간 읽었을까.
― 새로운 천마가 마교에 나타났다.
― 절대천마 독고구연.
‘왔어.’
천휘의 눈이 찬란하게 빛났다.
드디어 기다리던 부분이 왔다.
― 홀로 천마신교를 굴복시킨 그의 등장에 중원은 벌벌 떨었고, 새외는 눈치를 봤다. 그리고 우려한 대로 십 년도 되지 않아 그는 구주팔황을 발아래에 두어 지배했다.
‘딱히 지배한 적은 없는데.’
천휘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과거 자신은 천하를 지배하거나 굴복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귀찮았기 때문이다.
‘난 됐고, 마뇌에 대한 건 없나?’
천휘가 빠르게 눈을 굴렸다.
빼곡하게 적힌 글귀를 전보다 좀 더 집중하여 읽어 내려가는 천휘의 표정이 갈수록 진지해졌다.
그러기를 잠시.
‘이게 끝?’
천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뇌에 대한 정보는 간결했다.
절대천마를 돕던 마교의 군사로, 명석한 두뇌와 처세술이 제갈세가의 기재들과 비견되는 천재라는 것.
그것도 아주 짧게만 언급되어 있었다.
‘다른 책자에 적어 놓은 건가?’
이 책자는 마교의 역사에 대한 것.
즉 천마와 역대 교주들에 대한 정보, 그리고 그들이 벌인 일이 대부분이었다.
‘보자. 어디 별다른 건 더 없는 것 같은…… 응?’
대충 흘기며 글을 읽던 중 한 문장에서 천휘의 손이 멈칫했다. 뒤이어서 천천히 문장을 읽어 가던 그의 눈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었다.
― 갑자기 마교가 천하에서 모습을 완전히 감췄다. 절대천마가 마교에서 모습을 안 보인 지, 딱 십오 년째가 되던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