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Kim did such a good job?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Chapter 98 – 동창회에서도 빛나는 김 대리! (1)
“아이, 뭐 이런 걸 다 가져왔어?”
어머니는 말과 달리 정훈이 내민 봉투를 꼭 받아 들었다.
“하하하핫. 많이는 못 넣었어요. 그냥 좋은 옷 같은 거 사 입으세요.”
“아이고, 여기 브랜드 붙은 옷까지 떡하니 사 왔는데 무슨 옷이야.”
정훈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저 이제 나가 볼게요.”
“저녁 먹고 가지 그러니?”
“아, 친구들이랑 먹기로 했어요. 두 분이서 맛있게 드세요.”
“그래. 그래도 내일 오전에 차례 지내러 할아버지 댁 가야 되니까 너무 늦게 오지는 마라.”
“예, 엄마.”
그는 집에 와서 두어 시간 정도 부모님과 담소를 나누다가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나갔다.
예전에는 명절 내내 집에 있어서 연휴에 언제 만나든 상관이 없었지만, 이제 나이가 차다 보니 하나둘씩 결혼을 하는 바람에 차례를 지내면 처갓집으로 가야 하는 친구들이 생겨서, 이렇게 설 전날에 만나고 있었다.
그 탓에 정훈은 집에 오자마자 서둘러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이자카야식 술집으로 향했다. 가족과 보낼 시간은 내일 이후로도 충분히 많으니까.
정훈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정식적인 동창회는 아니고, 고등학교 때 친한 동창들 중 고향에 내려온 친구들은 거의 다 이곳에 모여 있었다.
그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친구들이 그를 반갑게 반겼다.
“와, 김정훈!”
“안 오길래 죽은 줄 알았다.”
“잘 지냈냐?”
“오랜만이다!”
“왜 이렇게 늦었어?”
그를 향한 수많은 인사에 정훈은 자리에 앉으며 씨익 미소를 띠고 답했다.
“원래 주인공은 제일 늦게 등장하는 법이야, 인마.”
“아예 오지 말지 그랬냐?”
“하하하하하. 저 새끼 늦어 놓고 입은 살았어.”
정훈의 베스트 프렌드 중 1명인 김다원도 미리 이곳에 와 있었다. 백승주와 정영훈은 다른 지방에 있는 큰집에 가야 해서 이곳에 모이지 못했다.
“이모, 여기 잔이랑 젓가락 하나 더 주세요!”
늦게 온 정훈을 위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보미가 종업원에게 이야기했다.
“오, 센스.”
“당연하지.”
이곳에 모여 있는 남자는 정훈을 포함해 일곱, 여자는 다섯. 성비는 안 맞았지만, 그래도 문과에서 제일 친했던 녀석들이라 남녀 구분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정훈은 자신의 잔이 오기 전에 비어 있는 보미의 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근데 임보미, 넌 진짜 오랜만이다?”
“에이, 뭐 3년밖에 안 됐어.”
“3년이면 길지. 어떻게 명절에 집에 한 번을 안 내려오냐?”
“야. 정훈이 네가 동창회에 안 나오니까 못 보는 거잖아. 웬만하면 큰집에 모여서 여긴 잘 안 온다고. 동창회 열면 오기나 해.”
“하하하하하. 동창회는 안 친했던 애들이 너무 많아서 불편해.”
“친한 애들 만나러 가는 거지, 불편한 애들 보러 가는 거냐?”
종업원이 잔을 가져다주자마자, 임보미도 정훈의 잔을 채워 주었다.
“그나저나 아직도 서울에 있냐?”
“그렇지. 아마 나 정년퇴직할 때까지는 서울에 있을걸.”
“이야, 정년퇴직까지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부럽다, 야. 우리 회사는 내 나이 정도면 이제 슬슬슬 나갈 준비 해야 되거든. 게다가 여자는 결혼하면 거의 아웃이고.”
“네 능력 정도면 충분히 좋은 회사 갈 수 있지 않아? 아니, 그것보다 지금 회사도 대기업이잖아. 너 금별 다니는 거 아니었냐?”
“대기업일수록 더해. 젊은 애들이 얼마나 치고 올라오는데. 너야 남자니까 덜하겠지만, 우리 부서 보면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가 딱 1명밖에 없어.”
“아, 그 정도야?”
“응. 장난 아니라니까. 내 참 서러워서 빨리 시집을 가든가 해야지, 원.”
보미가 싫증이 난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정훈도 잔을 들어 짠을 하려는데, 그때 갑자기 다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자자, 본인이 주인공이라고 외치는 김정훈 씨가 잔을 들었는데, 우리 건배 한번 해야지?”
분위기를 이끄는 그의 말에 다들 앞에 있던 잔을 들어 올렸다. 다원은 장난스럽게 정훈을 쳐다보며 말했다.
“건배사나 해라.”
“에이씨, 귀찮게.”
불평을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챙겨 주는 다원과 친구들이 고마웠다.
“어, 우리 또 한 살 먹어서 서른한 살인데, 30대니까 급하다고 결혼 일찍 하지 말고, 제발 늦게 가라. 요즘 날아드는 청첩장 때문에 축의금 낼 돈이 없어서 밥도 굶어야겠다, 야.”
“으하하하하핫!”
“그래, 맞아. 결혼 좀 하지 마라!”
“어쨌든 우리의 미혼을 위하여!”
“위하여!”
장난스러운 건배사를 외치며 정훈은 잔에 담겨 있던 소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다시 자리에 앉아 정훈은 안주로 나온 차돌박이 숙주 볶음에서 차돌박이만 쏙 골라 집어 먹으며 보미에게 물었다.
“근데 시집가면 아예 일 못 하는 거 아니냐?”
“아니지. 시집가서 육아휴직도 내고 버티다가 끝나면 권고사직 받는데, 거기서 퇴직금 좀 많이 받고 다른 회사 가야지. 요즘 세상에 맞벌이 아니면 힘들잖아.”
“그건 그렇지. 솔직히 나 혼자 벌어서 애들까지 키우려면 대출을 산더미처럼 받아야 될 것 같거든. 당장 집 구할 돈도 없는데, 뭐.”
“에잇, 더러운 세상!”
그때, 임보미의 옆에 있던 장난기 많은 친구 박재원이 그의 팔을 툭 치며 물었다.
“야, 그나저나 예전에 네가 정훈이 좋아하지 않았냐?”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정훈은 깜짝 놀라며 보미를 쳐다봤다.
“진짜야?”
임보미는 질색을 하며 옆에 있던 박재원을 때리려고 주먹을 드는 시늉을 하며 협박했다.
“언제 적 이야기를 하고 있어!”
“좋아하긴 했잖아!”
“헐. 임보미, 나한테 그런 엉큼한 흑심을 품고 있었어?”
정훈이 장난스럽게 도발하자, 보미는 테이블 앞에 있던 젓가락을 들어 올리며 위협했다.
“죽는다. 야, 지금 나도 남자 친구 있거든?”
“오, 잘생겼냐?”
“당연하지! 그리고 엄청 착해. 말하는 건 거의 다 들어줘.”
“너한테 얼마나 맞았으면 무서워서 다 들어주겠냐?”
결국 옆에서 깐족대던 박재원은 임보미에게 주먹으로 팔뚝을 세게 한 대 맞고 말았다. 정훈은 웃으며 지켜보다가 보미에게 넌지시 말했다.
“사진 봐 봐.”
“아, 뭔 사진이야?”
“봐 봐. 남자는 남자가 봐야 알아. 우리가 딱 눈빛만 보면 바로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알 수 있어.”
“스읍! 너는 남의 남자 친구한테 놈이 뭐냐, 놈이?”
재원은 또다시 한 소리를 들으며 한 대 더 맞을까 봐 몸을 움츠렸다.
임보미는 뒤로 빼면서도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그녀와 함께 남산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옆에 있던 친구들은 전부 그 사진을 보려고 몸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리고 사진을 본 정훈은 피식 웃으며 손을 휙 올리며 다시 의자에 기대었다.
“에이, 내가 솔직히 조금 더 잘생겼다.”
“아니, 누가 외모 평가하랬냐?”
“근데 눈빛이 착해 보이네. 좋은 사람 같아.”
“그래. 결혼해라.”
“아니지, 인마. 얘 결혼하면 또 축의금 나간다.”
“아, 그러네. 보미야, 결혼은 나중에 해라.”
“내일 당장 하련다. 너희 둘이 돈 모아서 내 혼수나 해 줘라.”
“하하하하하하. 내일 당장 하면 내가 TV 사 준다!”
“진짜 한다!”
“해라! 어차피 설날엔 동사무소도 문 안 열지롱. 크하핫.”
“아, 김정훈 열라 얄미워.”
동창회에 오면 고등학생 때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옆에 있는 친구들도 모두.
다들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주름도 생기고, 가정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친구들도 늘었지만, 철없이 장난기 가득한 학생 시절의 그때 그 모습은 여전했다.
이제는 빵이 아니라, 매점을 통째로 살 수 있는 재력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매점에서 먹는 빵 하나에 기뻐하고 슬퍼했던 그 감정은 여전했다.
“야, 근데 정훈이 너, 그때 밴드부도 하지 않았냐?”
“그럼! 내가 그때 우리 밴드부 기타 담당이었지!”
정훈은 허공에 손을 움직이며 에어 기타를 치는 시늉을 했다.
“캬, 그때 생각 난다. 학교 축제 할 때 너 기타 솔로에 다들 쓰러졌잖아. 하하하하. 그때 장난 아니었는데…. 요즘도 기타 치냐?”
“얼마 전에 쳤는데, 솜씨 안 죽었더라. 내가 기타만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보여 주겠는데… 아쉽게도 기타가 없네. 하하하!”
그때, 정훈은 갑자기 옆에서 자신의 이름이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몸을 옆으로 쭉 빼며 그들에게 물었다.
“야, 뭔데 내 이름이 나오냐?”
정훈의 물음에 웃고 있던 친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몰렸다가, 다시 크게 웃음이 터졌다.
“으하하하핫!”
“대박!”
“헤헤헤헷!”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에 정훈은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뭔데?”
“크크크크큭. 정훈아, 설화 온다는데?”
“설화가 왜!”
“왜긴, 우리 만나러 오는 거지. 아까 네가 하도 안 오길래 안 올 줄 알고 연락했었는데 지금 온다고 답장 왔네.”
“아, 미친놈아. 오지 말라고 해!”
“왜! 오랜만에 친구 얼굴 보는데 좋지!”
정훈이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자, 친구들은 오히려 더 좋아하며 그를 놀렸다.
“쟤 표정 봐!”
“발끈하지 마, 인마.”
“네가 애냐? 이미 10년도 더 지났는데 무슨 감정이…. 설마 너, 아직도 좋아하냐?”
최설화.
정훈이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만난 첫사랑이자, 오래도록 홀로 마음을 앓아 가며 좋아했던 여자다.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 때 만나서 1년 동안 사귀다가, 정훈이 재수를 하면서 헤어지게 되었던 비운의 사랑.
참 많이 좋아했고, 여자 때문에 처음으로 울어 보기도 했던 순수한 시절에 만난 여자다.
이미 그에게는 정사랑이라는 예쁘고 귀여운 여자 친구가 있어서 한눈을 팔 여유도,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남자에게 첫사랑이라는 의미는 남달랐다.
지금 그에게 몇 명의 전 여자 친구와 헤어진 지 10년도 더 된 최설화를 떠올리라고 하면, 가슴이 더 싱숭생숭해지는 건 설화 쪽이었다.
아직까지 정훈이 SNS를 하지 않는 것도, 그가 재수를 할 때 한 세대 지난 SNS인 싸이월드에서 우연히 설화가 대학교에서 행복하고 재미있게 지내는 모습을 보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그때는 그저 재수라는 이유 때문에 열등감에 휩싸였던 때였고, 지금은 극복했다.
서로 상처를 주고 헤어진 것도, 나쁘게 헤어진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달갑지는 않았다.
“야, 10년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났는데 내가 좋아하겠냐?”
“에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때, 다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정훈을 가리켰다.
“저 새끼 여자 친구 있어!”
“헐, 대박. 여자 친구 있는데 첫사랑에 설렌다고?”
“아니, 미친놈들아. 내가 좋아한다고는 단 한 마디도 안 했다. 이미 끝나고 지난 일인데 무슨 헛소리야.”
정훈이 고등학교 동창회에 가지 않는 것도 친구들에게는 다른 핑계를 대고 있지만, 사실은 혹시라도 그곳에 설화가 나타나서 마주치면 감정이 오묘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훈은 머리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난 가야겠다.”
“아, 왜!”
“헐. 지금 삐져서 가는 거냐?”
“삐지긴 뭘 삐져!”
여기서도 실제로 갈 생각은 한 절반 정도였다. 남아 있을 수는 있어도 친구들이 계속 설화 이야기를 할까 봐 그 이야기를 막으려고 쇼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행히 잘 먹혀들어 친구들이 그를 말리며 말했다.
“아, 새끼야. 알았어. 안 놀릴게. 가지 마.”
“설화 왔을 때 이상한 소리 하기만 해 봐.”
“둘이 사귄 거?”
“죽어, 진짜.”
옥신각신하며 친구들과 장난기 섞인 싸움을 하고 있을 때, 가게의 문이 열리며 고운 자태의 여성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