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Kim did such a good job? RAW novel - Chapter 43
43화 Chapter 24 – 회사원 김 대리! (1)
-여보세요….
라혜 작가의 목소리는 완전히 기가 죽어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를 듣는 정훈마저 마음이 아플 정도였다.
“라혜 작가님, 괜찮으세요?”
-예, 뭐… 그냥 인터넷 안 들어가고 있습니다.
“잘하셨어요.”
-사건 보셨나 보네요.
“예. 대충은요. 너무 기죽으시면 안 돼요.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요. 배가 별로 안 고파서요.
“식사는 하고 쉬셔야죠. 저랑 같이 식사하시죠. 저녁 조금 일찍 먹어도 괜찮죠?”
-그렇긴 한데, 지금 제가 워낙 사고를 쳐 놔서 죄송스럽잖아요.
“아니에요. 제가 잠실로 갈게요. 한 30분 정도 걸리는데 나오실 수 있어요?”
-그럴게요.
라혜 작가는 여전히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훈은 곧바로 나갈 준비를 하고, 팀장에게 보고했다.
천천히 내용을 들은 조승훈 팀장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노이즈 마케팅을 한다고?”
“한번 이야기만 해 보려고 합니다.”
“까딱하면 작가의 그 나쁜 이미지가 출판사의 이미지로 연결될 수도 있어.”
“예, 알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더 나빠지기 전에 계약 해지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저희를 믿어 주고 계약한 작가잖습니까? 이번 일로 한 번에 내쫓아 버린다면 이미지가 안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작가를 데리고 있는 건, 폭탄을 안고 있는 거잖아. 차라리 내쫓는 걸로 욕만 조금 먹는 게 낫지, 폭탄이 터져 버리면 우리 다 죽는 거야.”
조 팀장이 이렇게까지 나오면 정훈도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일을 잘하고 유능하더라도 그는 부하 직원에 불과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부장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리고 바로 라혜 작가 만나러 가 보겠습니다.”
“그래. 고생해.”
정훈은 부장실로 향했다. 노크 소리에 네이버스 밴드를 보고 있던 장 부장은 휴대폰을 덮고 들어오라고 말했다.
“무슨 일이야?”
평소의 밝은 표정과 달리, 침울한 정훈의 표정을 보고 장 부장도 좋지 않은 건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훈은 본인의 생각은 아예 접어 두고, 조승훈 팀장의 이야기만을 건넸다. 장 부장도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계약 해지하는 게 낫겠네. 이번에 로맨스 쪽에 힘 좀 실어 보려고 여직원도 둘이나 뽑았는데, 그 작가가 여성을 성차별 했으면 우리 출판사의 로맨스 레이블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어.”
“예. 그러면 지금 바로 나가서 라혜 작가 만나고 천천히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맛있는 것 좀 사 주고 잘 타일러서 보내. 혹시나 우리한테 앙심 갖지 않도록. 김 대리, 잘할 수 있지?”
“걱정 마십시오. 가 보겠습니다.”
“수고해.”
정훈은 준비해 둔 서류와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사무실을 나서자, 혜리도 슬쩍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왔다.
“무슨 일 있어요?”
“라혜 작가 사건 터져서 일단 작가님 좀 뵙고 오려고.”
“아, 저도 봤어요. 그거 엄청 난리던데….”
“그래서 해지하려고. 어떻게 손 좀 써 보려고 했는데, 팀장님이랑 부장님이 털어 버리라고 하시네.”
혜리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왔다.
“어쩔 수 없죠.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위험부담이 큰 베팅은 피해야 되니까요.”
혜리는 정훈의 팔뚝을 잡고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더 가까워지자, 조금 전까지 굳어 있던 정훈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오늘 그러면 늦게 들어오나?”
“아마도. 일찍 들어가진 못할 것 같아.”
“끝나고 연락해요.”
“응.”
정훈의 대답에 혜리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그녀는 까치발을 들어 정훈의 볼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쪽.
은연히 피어나던 정훈의 미소는 함박웃음으로 바뀌었다. 혜리는 엄지손가락으로 볼을 슥슥 문질러 립스틱 자국을 지워 주었다.
“잘 갔다 와요.”
“응. 전화할게.”
“안녕.”
혜리는 손을 흔들며 정훈이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다시 사무실로 몸을 돌리는 순간.
“헉!”
한준호 대리와 눈이 마주쳤다.
“대, 대리님.”
한 대리는 피식 웃으며 손을 휘휘 저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못 본 척할 테니까 얼른 들어가.”
“네.”
부끄러움에 홍당무가 되어 버린 혜리는 후다닥 사무실로 들어갔다.
***
“아, 라혜 작가님. 여기입니다.”
정훈이 손을 들어 부르자 라혜 작가는 반갑게 다가왔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는지는 여쭤보지 않겠습니다.”
정훈의 뼈 있는 농담에 라혜 작가는 민망하게 웃으며 정훈의 맞은편에 앉았다.
“좀 안정되셨어요?”
“네. 오기 전에 정리해서 사과문이라도 올리고 왔는데, 어떻게 반응할지 겁나서 못 보겠습니다. 하핫.”
라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라혜 작가와 만나면 늘 육회를 먹었기에 오늘도 미리 육회를 시켜 두었다. 라혜 작가가 오자마자 육회와 소주가 나왔다.
“한 잔 할까요?”
오늘은 라혜 작가가 먼저 술을 권했다. 그만큼 마음고생을 했다는 뜻이다.
“예.”
둘은 바로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안주로 육회를 집어 먹었다. 라혜 작가가 먼저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그런 사태가 벌어지게 해서.”
“아니에요. 보니까 그 글 올린 사람이 일부러 엿 먹으라고 왜곡한 거던데요.”
라혜 작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일단 제가 한 말이 있으니까 그게 다 팩트처럼 보이더라고요.”
정훈은 언제 말을 꺼내야 할지 타이밍을 잡을 수 없었다. 만난 지 5분도 되지 않아서 다짜고짜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하자니 시간이 지나면 타이밍을 잡기가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그때, 라혜 작가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사실, 오늘 군대 신청하려고 했어요.”
“군대요?”
이제 스물한 살인 라혜 작가는 군대를 갈 나이가 맞다. 대학교는 다니다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퇴했고, 군대에 가려다가 글에서 가능성을 보고 입대를 취소했던 역사도 있다.
그런 그가 다시 입대를 고민할 정도면 매우 심란하다는 뜻이었다.
“네. 물론 군대도 힘든 건 알지만, 도망치고 싶더라고요.”
정훈은 뭐라고 말해 줄 수가 없어 조용히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근데 어떡하겠어요? 막상 신청하려니까 그것도 겁나서 못 하겠더라고요. 일단 벌여 놓은 일은 마무리해야겠고, 고민하다 보니까 대리님한테 연락이 오더라고요.”
라혜 작가는 무언가 생각난 듯 “아!”라고 외치며 정훈을 쳐다봤다.
“계약 해지하러 오신 거죠?”
정훈은 헉 소리가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확실히 작가들 커뮤니티에 있었던 만큼, 이런 사건이 터질 때 일반적인 출판사의 대응법도 알고 있는 라혜 작가였다.
‘그냥 솔직히 말하자.’
어떻게 잘 포장해서 말할까 고민했던 정훈은, 우선 사과부터 했다.
“죄송해요.”
“아니에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그게 당연한 거죠.”
정훈은 한숨을 깊게 내뱉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변명으로 들리실 수도 있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원래 다른 방법을 생각해서 도와 드리려는 마음으로 만나자고 전화드렸던 거예요. 그런데 윗선에서는 위험부담을 안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이해합니다.”
“힘 좀 써 보려고 해도, 아시다시피 저도 일개 회사원으로 월급쟁이인 처지라, 위에서 내린 결정에 대해 반대할 수가 없더라고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죄송하실 필요 없어요. 다 제 잘못이죠.”
라혜 작가는 애써 웃으며 자신의 주머니에서 펜을 들었다.
“취하기 전에 얼른 계약 해지 서류 써 버리죠.”
“네.”
정훈은 계약 해지서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작품 계약서와 달리, 해지 계약서는 실로 간단했다.
“됐나요?”
“예. 끝났습니다.”
“하아. 씁쓸하네요. 이제 김 대리님이랑도 끝이라니.”
“끝이라니요. 이런 걸로 저희가 끝나면 되겠습니까?”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정훈은 계약서를 가방에 넣고 다시 몸을 라혜 작가 쪽으로 기울였다.
“작가님. 아니, 수범 씨.”
“예?”
정훈은 작가님이 아니라, 라혜 작가의 본명을 부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제 출판사의 편집자가 아니라, 지인 김정훈으로서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요.”
“무슨 뜻이에요?”
“계약은 끝났지만, 그래도 저를 믿고 계약해 주셨는데 이대로 끝내고 싶지는 않아서요.”
“아니에요. 굳이 안 그러셔도 돼요.”
수범은 손을 저으며 거절했다. 그러나 정훈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듣고 참고만 하세요. 마음에 들면 사용하시고, 아니면 듣고 흘려버리셔도 되고요.”
정훈의 완고한 태도에 수범도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저한테 왜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거예요?”
“말 그대로 제 작가님이시잖아요. 제 힘이 닿는 한까지는 최대한 도와 드려야죠.”
“알겠어요. 말씀해 보세요.”
“이미 외면한 독자들, 즉 한번 떠난 독자들은 사과문을 쓰건, 대국민 사과를 하든, 어차피 돌아오지 않아요. 이렇게 될 바엔 아예 거친 독자들을 잡자는 뜻이죠. 저 만나러 나오기 직전에 사과문 올리셨다고 했죠?”
“네.”
“지금 한번 확인해 보세요.”
수범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고 댓글을 보다가 결국 끝까지 보지 못하고 화면을 꺼 버렸다.
“효과 없죠?”
“욕밖에 없어요.”
수범은 씁쓸하게 웃었다. 정훈은 그럴 줄 알았다며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지금 방법은 딱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지금 글을 중단하시고 새로운 필명으로 새로운 글을 연재하시는 거예요.”
“새로요?”
“네. 웹소설의 특성상 연재 중단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간에 필명을 바꾸면 본인이 말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라요. 독자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거든요.”
“아, 들어는 봤어요. 연재 중단하고 새로운 필명으로 글 연재하시는 분이 있다고요.”
“맞아요. 필력만 받쳐 주면 새로 글을 쓰더라도 무조건 뜰 수 있는데, 라혜 작가님은 그 필력을 가지고 계시죠.”
“아이고, 감사합니다.”
정훈은 손가락 2개를 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입니다.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거죠.”
“노이즈 마케팅요?”
처음 정훈이 생각한 해결책 중 하나였다.
“이건 도박 수예요. 2년 전에 풍월객 작가 사건 아시죠?”
“아, 대충은 들어서 아는데 정확한 건 잘….”
“풍월객이라는 작가가 라혜 작가님처럼 인성으로 논란이 되었어요. 한 커뮤니티에서 신인 작가들을 무시하고, 갑질을 한 거죠. 그런데 그게 논란이 되었는데, 풍월객 작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하게 갑질을 했고, 독자들은 대체 어떤 글을 쓰는 자식이길래 저러는 건가라는 궁금함에 하나둘씩 유입되기 시작한 거죠.”
“아.”
“떠날 독자는 떠나지만, 오히려 이런 파격적인 걸 원하는 독자들은 찾아왔고, 사건으로 인해 이름도 더 알려지니 모르는 독자들도 호기심에 한번쯤은 눈여겨보게 되며 아예 대박을 내 버렸죠.”
정훈은 스윽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쓰는 글도 더욱더 파격적으로 나가는 겁니다. 한마디로 마니아층을 만들자는 거죠.”
“괜찮은 것 같아요.”
수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훈은 한 가지를 덧붙였다.
“아, 무조건 이 두 방법 중 하나를 하라고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이런 방법이 있다는 걸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풍월객 작가는 조지아라 정액권 결제라서 편당 결제인 문스토피아와 다른 점이 있다는 것도 알고요.”
정훈은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정액권으로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는 조지아라와 무조건 편당 결제인 문스토피아는 시스템에서 차이가 심하다. 게다가 주요 독자층도 다르니, 먹힐지 안 먹힐지는 전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라혜 작가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번 작품은 정말 연재 중단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애정이 정말 많이 가는 작품이라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정훈은 아직 스물한 살밖에 되지 않은 젊은 청년에게 너무 큰 짐을 짊어지게 한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굳은 의지와 결단력이 느껴졌다.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근데 괜찮겠어요? 인성 논란이 일면 원하지 않더라도 현실이 끌려오거나, 넷상에서 있었던 일이 현실로 끌려갈 수도 있어요.”
“괜찮습니다. 컨셉이라고 하면 돼요. 정말 친한 친구들은 몇 없지만, 제가 이런저런 커뮤니티 하는 건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알고 있고요.”
“그런가요? 그러면 다행이지만….”
“혹시 제가 어려서 걱정하시는 건가요?”
라혜 작가는 싱긋 웃으며 물었다. 정훈은 고민하던 걸 그대로 들켜 민망하게 웃었다. 라혜 작가는 그런 정훈을 위로했다.
“괜찮아요. 저, 부모님 떠나보내고 할아버지, 할머니랑 살면서 빚쟁이들 찾아와서 깽판 치는 건 예사였고, 그보다 더 험한 꼴도 많이 봤어요. 덕분에 철도 많이 들었고요. 제가 판단한 일이니 책임질 수 있습니다.”
“음… 그러면 나쁜 인성 연기도 잘할 수 있어요? 진짜 이건 그 표절 작가 『견우와 직녀』의 스뱀 작가처럼 정말 인성 쓰레기가 되어야 효과가 더 커져요.”
“걱정 마세요. 현실에서 연기하라고 해도 잘할 수 있어요.”
든든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라혜 작가도 긴장이 풀리고 걱정이 줄어든 모양이다. 그제야 정훈은 안도하며 한 가지 주의 사항을 덧붙였다.
“하하하하. 그렇군요. 그래도 수위 조절은 잘해 주셔야 합니다. 인성 작가의 길은 마치 줄 타는 광대와 같아서 까딱하면 골로 갈 수 있어요.”
“네. 당연하죠. 저 예전에 욕설로 한번 고소당한 적이 있어서 법에 안 걸릴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하는 건 전문입니다.”
“…대단하셨군요.”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혜 작가는 이미 굳게 마음먹었고, 남은 건 지켜보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