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1
1화 귀농
어린 시절 나는 농사가 싫었다.
친구들과 놀 시간을 빼앗는 것은 물론이요,
아무리 씻어도 쉽게 빠지지 않는 특유의 똥 비린내까지.
어린 기억의 농사란 이미지는 나에게는 최악일 수밖에 없는 일.
그런 삶을 살았던 덕분일까?
나는 한 자리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닌 모험을 원했다.
반년을 꼬박 농사해야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는 농부 따위가 벌어들일 돈을 사냥 1번으로 벌어들일 정도의 헌터들.
검과 활, 마법 등으로 인간의 수 배에 달하는 크기를 지닌 몬스터를 사냥하고 돈을 벌어들이는 각성자들이야말로 아이돌과 뉴튜버를 제치고 모든 아이의 장래 희망 1위에 등극하기에는 충분히 차고 넘칠 터.
다만,
“어이 김 씨! 일 처리 이따위로 하고 밥이 입으로 넘어가? 얼른 와서 마저 담으라고!”
그것도 다 옛말이다.
모험을 쫓는 것도 어디까지나 사춘기 시절의 치기 어린 마음에 불과할 뿐.
힘과 빽없이 나이만 먹고 사회에 던져진 현실은 냉혹하기 그지없다.
“앗, 죄송합니다.”
“하여튼 간에 요즘 것들은 빠져 가지고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발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이 말이야!”
“에이, 정 반장님. 그건 너무 오바다.”
“아하핫, 제가 소싯적에 그랬다는 거 아닙니까?”
누구나 꿈꾸는 것은 저 위에 군림하고 있는 강력한 헌터……겠지만 앞서 말했듯 ‘힘과 빽’.
각성조차 하지 못한 이들 앞에 가장 먼저 마주한 벽은 자신과 같은 짐꾼이다.
헌터들이 사냥한 몬스터들의 시체나 마정석과 같은 부산물을 등에 짊어지는 역할.
차마 뚫고 나아가고 싶어도 일단 각성이라는 첫 단추부터 꿰어야 한다는 끝을 알 수 없는 조건.
뭐, 어쨌거나 그렇게 하루 종일 고생하고 받은 돈은 고작해야 15만 원.
어떻게 보면 제법 괜찮은 금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몬스터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목숨값은 물론이요,
“아, 그리고 이건 소개비로 떼간다. 불만 없지?”
“에이, 이건 기본적인 비즈니스인데 불만이 있으면 이 일 못 하죠.”
“하긴, 사냥도 우리가 해, 몬스터 손질도 기술자님들이 하셔. 캬, 저게 바로 인생 날먹이지.”
“크큭. 그럼 너도 짐꾼하던가.”
“머리에 화염구 맞았냐? 저걸 하게?”
아직 치러야 할 잔금도 남아있다.
사회에 으레 존재하는 부조리.
짐꾼 소개비로 떼 가는 금액만 무려 7만원이다.
“……씨발.”
하루 일당 토탈 8만원.
그래도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억울한 건 억울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은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어 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부조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허나 억울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 가, 각성했다! 씨발! 드디어 이 X 같은 짐꾼 생활도 끝이라고!
– 와, 축하해요, 이랑이랑 님. 혹시 실례지만 능력치가……?
– 그냥 전사이고 힘도 10 정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 와아. 진짜 부럽습니다.
게이트 안쪽에서 오랫동안 노출될수록 각성될 확률이 높다는 정부의 발표.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사실이 맞긴 하다.
짐꾼이기만 하면 이용 가능한 커뮤니티만 하더라도 하루에 적지 않은 숫자가 각성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까.
이러한 환경 탓에 짐꾼을 지원하는 이들은 늘 차고 넘친다.
제아무리 최하위인 F등급 헌터라고 해도 웬만한 대기업 직장 연봉만큼 벌 수 있으니 말이다.
“……후, 나 대체 뭐하고 살고 있냐.”
짐꾼으로 생활한 지 어느덧 3년.
비슷한 시기에 짐꾼이 되었던 이들 중 대부분은 이미 짐꾼 일을 청산한 지 오래다.
아, 물론 좋은 의미만을 뜻하는 청산은 아니다.
게이트의 내부에서는 사실상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공간.
운 좋은 경우에는 각성해서 헌터가 되기도 했지만, 재수 없으면 짐꾼 일을 하던 도중에도 몬스터에게 죽거나 사람들끼리의 마찰, 최악의 경우에는 장기 밀매를 목적으로 하는 이들에게 객사를 당하는 경우도 왕왕 있는 것이 짐꾼이었으니까.
“내 인생 진짜 답 없다.”
부조리한 사회를 겪어 보니 알게 되었다.
심으면 심는 대로, 노력하면 노력한 대로 결과물을 싹 틔워 내는 농사야말로 어떻게 보면 가장 정당하다는 것을.
그까짓 똥 냄새? 사회의 부조리에 비하면 청량한 꽃내음이나 다름없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어렸을 때는 똥 냄새나고 그저 하기 싫고 쳐다보기도 싫었던 농사일.
새삼 농사에 대한 그리운 감정을 떠올렸을 때였다.
“……!”
3년이란 시간 만에 마침내 손에 넣은 각성.
그러나 각성하기 이전에 농사를 생각했던 탓일까?
[무한히 증식하는 한무 감자 씨앗 팝니다! 순수 마진율 100%랑께!] [하루에 1번 가챠를 돌릴 수 있는 보따오리 싸게 싸게 가져가라고~] [야, 꿀벌. 왜 울고 있는 거야? 여기 꽃이 있잖아! 꽃으로 엮어 낸 벌통과 토파즈 여왕 꿀벌 세트! 함께 입양해 가 보쇼!] [죽어도 죽어도 되살아나는 불사 병아리! 이건 더 이상 닭이 아닌 피닉스여!]“……?”
어째 각성한 힘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아니, 상당히 이미지가 달랐다.
* * *
“이게 대체 뭔…….”
김진우.
3년이란 세월 동안 짐꾼 생활을 하면서 그가 겪어 온 각성자.
‘헌터’라는 이미지의 대부분은 몬스터를 사냥하는 이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무기라 할 수 있을 검과 활, 마법을 활용하며 몬스터를 쓸어 담고 그 부산물로 돈을 벌어들이는 직업.
뭐, 그런 각성자들 중에서도 흔히 생활직으로 취급되는 이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대장장이나 요리사, 연금술사 등.
마정석 외에도 몬스터의 시체에서 획득 가능한 뼈나 고기, 혈액 등의 부산물을 가공하는 것도 결국 각성자의 역할이었으니까.
다만…….
[김진우]* 레벨 : 1
* 성별 : ♂
* 나이 : 26
* 직업 : 드루이드
* 능력치 포인트 : 0
* 힘 : 7 민첩 : 5 체력 : 15 마력 : 0
각성한 직업명이 드루이드라니?
심지어 능력치의 밸런스도 최악이다.
“마력이 0…….”
짐꾼 짬밥 3년이면 헌터 세계를 읽는다고 했다.
모든 각성자가 돈을 많이 번다지만, 그중에서도 돈을 갈퀴로 쓸어 담는 직종은 누가 뭐라 해도 마법사와 힐러다.
딜러계의 주축이자 생존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귀족 중의 귀족.
그들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마력이었는데 자신은 그 귀한 것이 0이다.
반면에 체력은 15.
전투에 나선다면 그야말로 고기 방패 확정일 터.
아니, 사실 고기 방패도 무리다.
[특성]* 굳건한 체력 : 활동 시 지치지 않습니다. 주변의 아군에게도 적용됩니다.
* 자연이 그대를 돌보리라 : 자연과 관련된 것이 더 건강하게, 더 빠르게 자랍니다. 한 번 적용된 이후 거리 유무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적용됩니다.
탱커 각성자의 기본 특성이라 할 수 있는 방어력 상승의 ‘질긴 피부’조차 존재하지 않는.
누가 보더라도 전투와는 아득히 거리가 멀어 보이는 특성.
하지만 그마저도 이후의 내용을 보면 욕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야생의 드루이드 상점이 해금되었습니다!] [당신의 현재 신용도는 0입니다. 순진한 뉴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신용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상품과 다양한 퀘스트를 맞이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정부나 암시장에서 운영되는 거래처가 아닌 직업 자체에 딸려 있는 상점이라니?
“허 참. 내가 꿈을 꾸는 건 아니겠지?”
슬쩍 짐꾼 커뮤니티 게시판을 검색해 보니 ‘상점’ 같은 것이 추가로 각성된 사례는 전무하다.
한마디로 자신이 최초라는 것.
뭔가 이상한 능력을 각성한 기분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법이라고.
진우는 고민 끝에 상태창 옆 켠에 반짝거리는 칸을 터치해 봤다.
촤르르르륵-
“이, 이건 또 뭔데?”
쉴 새없이 떠오르는 홀로그램 내역들.
그러나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나는 내용물들을 차근히 확인해 봤다.
[농사짓는 게 힘이 든다고? 이런 뉴비 드루이드 같으니라고. 가챠도 할 수 있고, 농사도 도와주는 보따오리 1마리 장만해 봐. 후회 안 한다니까?]※ 상품명 : 보따오리(희귀) – 구매 비용 2,500만 원
* 1일 1회 아이템이 담겨 있는 보따리를 열 수 있습니다.
* 이 오리는 암컷입니다. 오리알을 획득할 수 있으며, 농작물의 생육 상태를 강화합니다.
“미친. 무슨 오리한테 금테라도 둘렀나?”
세상에. 오리 1마리에 2,500만 원?
말 같지도 않은 가격이라며 혀를 차 보였지만 이후의 상품들을 보고 난 이후에는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 상품명 : 세계수 씨앗(측정 불가) – 구매 비용 1,000조 원
※ 상품명 : 자군야포(전설) – 구매 비용 1,414억 원
※ 상품명 : 정령의 가루(유니크) – 구매 비용 150억 원
…….
“다시 보니 선녀 같네.”
금테를 넘어서 오리하르콘이라도 두른 듯한 억과 조 단위의 가격.
허나 그렇다고 해도 2,500만 원이라는 금액은 지금의 진우에게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상점이 있으면 뭐 하냐. 써먹지를 못하는데…….”
새삼스럽지만 하루 일당 8만 원.
어디 그뿐만이겠는가?
자고로 돈이란 것은 벌기는 어려워도 나가는 것은 쉬운 법이라고.
식비부터 월세 비용 등.
3년의 세월 동안 나름 아끼고 아꼈다지만 보증금도 빼고 가지고 있는 것을 전부 다 영끌한다면 지금 당장 동원 가능한 자금은 3천만 원 정도.
마음만 먹는다면 보따오리 정도는 구매할 수 있겠지만 당장 전 재산의 대부분을 선뜻 지를 정도로 진우는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다.
“후우, 미치겠네.”
계속해서 이어지는 갈등.
그러한 고민 끝에 진우의 눈에 띈 것은 하나의 상품이다.
[어허, 신참 드루이드면 먼저 귀농 신고부터 해야지. 실력 좀 보게 씨앗 좀 나눠 줄테니까 수확해서 일부분 좀 가지고 와 봐.]※ 상품명 : 켈틱 볍씨(노말) 100개 – 구매 비용 100만 원
※ 중요! 조건부 한정 상품입니다! (켈틱 쌀 2kg을 15일 내로 납품해야 합니다.)
※ 성공 시 : 신용도가 상승, 구매 비용으로 소모한 100만 원을 돌려받습니다.
※ 실패 시 : 신용도가 하락합니다.
“이건?”
상점의 해금과 함께 표시되었던 ‘퀘스트’형식의 상품.
심지어 눈앞의 퀘스트는 성공만 하면 들였던 비용을 고스란히 회수하는 것은 물론이요,
신용도와 나머지 부산물까지 챙길 수 있는 속된 말로 혜자 조건이다.
기간 제한이 걸려 있는 것이 좀 걸리긴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받는 패널티는 ‘신용도’의 하락만 있을 뿐.
“흐음…….”
100만 원이라는 금액도 결코 적지 않았기에 잠시 동안 이어진 고민.
그러나 행동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 기왕 주어진 기회. 한 번 가 보자.”
평생을 짐꾼 생활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인 법.
비록 쓸 수 있는 자금줄은 적지만 주어진 것을 망설일 이유는 없다.
[야생의 드루이드 상점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100만 원이 출금되었습니다.] [첫 구매 특전이 적용됩니다! 신용도가 1 상승합니다.]결정과 함께 실행에 옮긴 결제.
실제로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간 것도 놀랍지만 그 뒤의 광경은 더욱 놀랍기 그지없었으니,
화아악- 투욱-
무슨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빛과 함께 진우의 손에 떨어진 자그마한 씨앗 주머니와 안에 담겨 있는 특이한 모양의 씨앗들.
준비물은 갖춰졌으니 이후에 해야 할 일은 말해 뭐 할까?
“이제 이 짓거리도 끝이다.”
그토록 바랬던 각성.
나는 그와 함께 귀농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