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2
2화 적셔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시끌벅적한 도시와는 다른.
구수한 똥 내음이 반겨 주는 시골 분위기.
“여긴 변함없이 그대로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과는 달리 오랜만에 찾은 고향은 변함이 없다.
어린 시절 그대로를 빼다 박은 듯한 풍경.
예전에는 그것이 진저리 나도록 싫었지만, 사회를 겪어 보니 오히려 이런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결국 돌아왔네…….”
허나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라고 했다.
나는 다를 거라면서 도시로 뛰쳐나갔었으나 막상 돌아온 결과는 3년 동안의 짐꾼 생활.
물론 그 결과 각성을 하긴 했다지만 그 직업은 다른 무엇도 아닌 드루이드.
심지어 전투직과는 거리가 먼 농부 그 자체.
사회에서 도망치듯 내려온 듯한 기분으로 차에서 내리니 밭을 갈고 있던 이장님이 놀란 눈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너 진우 아니냐?”
“앗. 안녕하세요, 이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나야 뭐 늘 그렇지. 평생 다시 못 볼 줄 알았다. 그나저나 다시 시작하려고?”
“예. 일단은 차근차근히 시작해 봐야죠.”
“흠, 그래. 잘 생각했다. 진우 너라면 믿을 만하지. 네 아버지 땅이라면 내가 맡아 두고 있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써도 된다.”
“감사합니다.”
코흘리개 때부터 아버지의 불알친구나 다름없으셨던 이장님.
농사를 지을 때마다 서로 품앗이도 하고 새참도 나눠 먹는 등.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도 이래저래 많은 것을 챙겨 주신 분.
다만 넓은 땅을 맡아 주셨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잠시.
“……진짜 넓긴 넓네.”
최소한의 관리만 된 듯.
무성하게 자라나 있는 잡초의 향연.
“그럼 고생해라.”
“…….”
우선은 제초부터 하는 게 급선무였다.
* * *
농사일에 있어서 잡초란 떼려야 뗄 수 없는 악연이다.
작물의 영양분을 빨아먹는 것은 물론이요,
작물의 광합성을 방해하기까지 하는 존재.
그러면서 어찌나 억센지 뿌리째로 제거하는 것도 무척이나 고된 일일 터.
“이걸 어느 세월에 다 정리한다냐.”
땅이 넓다는 것은 반대로 말해서 관리하는 것에도 그만큼의 피로가 따라온다는 것을 뜻한다.
그 노동의 강도를 알기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공포.
오랜만의 제초가 잘 될지 의문이었으나 머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몸은 기억한다고 했던가?
오랫동안 몸에 붙었던 요령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양.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척척 제거되는 잡초들.
“제초가 이렇게 쉬웠었나?”
물론 그렇다 해도 이런 고된 노동을 반복하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지만 진우는 숨이 차기는커녕 땀방울도 흐르지 않고 멀쩡한 상황.
당연한 말이지만 거기에는 다 각성한 특성의 힘이다.
[드루이드의 특성, 굳건한 체력이 활성화됩니다.]“이거 대박인데?”
그저 ‘지치지 않습니다’라고 적혀 있기에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그저 그런 특성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놓고 보니 은근 가성비로는 이만한 게 또 없다.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 지치지 않는다니.
이 얼마나 좋은 장점이란 말인가?
거기에다가 일단은 체력 능력치 15의 각성자인 몸.
일반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체 능력을 토대로 진우는 작업을 계속하여 속행했다.
평상시였더라면 결코 불가능한 작업량과 시간의 활용.
그 결과물은 상상 이상이었으니,
“이게 벌써 끝이라고?”
오늘 내로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의 전멸.
자신이 하고도 믿기지 않은 작업 현장의 결과물에 너털웃음을 흘리는 것도 잠시.
이제 중요한 것은 이다음부터라고 할 수 있다.
“땅을 만들었으면 씨앗을 심어 줘야겠지.”
방해물이었던 잡초가 제거되었으니 그다음은 씨앗을 심는 일뿐.
100개밖에 되지 않는 씨앗이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진우는 정성을 다해서 하나하나 성장하기 좋게끔 거리를 띄워서 켈틱 볍씨를 땅에 심었다.
그렇게 모든 작업이 다 끝나가려던 찰나.
진우는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여어, 진우야. 아버지께는 얘기 다 듣고 왔다! 너는 여기 왔으면 나부터 봐야지. 일부터 시작하고 있냐?”
씩씩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시원한 스타일의 스포츠머리로 밀어 버린 시골 청년의 모습.
이장님의 아들로 진우가 어렸을 때는 같은 고민거리로 동병상련의 고통을 받았지만, 사회로 나갔던 자신과는 달리 이장님을 따라서 농사일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정석우다.
3년이란 시간의 공백이 있기에 서로 어색할 법도 하건만 유독 붙임성 좋은 성격으로 두루두루 잘 어울리던 녀석.
“내가 또 잡초킬러 아니냐? 도와줄게, 친구야.”
“응? 아냐. 고맙지만 마음만 받을게.”
“야. 너 땅 크기가 얼마나 큰데. 이거 혼자서 다 제초 하려고 하면 병나. 친구 좋은 게 뭐냐?”
그런 녀석답게 자신을 찾아온 것도 제초를 도와주려는 것임을 알았으나,
“아니, 진짜 도와줄 필요 없는 게 이미 다 끝나서 그래.”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앞서 언급했듯.
이미 무성하게 펼쳐졌었던 잡초들은 전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린 지 오래.
“허어? 진짜네?”
“그럼 진짜지. 거짓말이겠냐.”
어디 그뿐만이겠는가?
이미 씨앗까지 전부 다 심어 둔 상태다.
뭐, 넓은 땅 크기에 비하면 100개의 씨앗은 택도 없이 부족하게 느껴질 지경인 것은 아쉽지만 그것은 차차 개선해 나가면 될 일.
모든 일이라는 게 무릇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허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이 정도면 너 농사에 대한 재능이 나보다 더 있는 거 같은데?”
“재능은 무슨.”
정확히는 각성자로서의 특성의 힘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준비는 다 끝났으니 이제 남은 것은 기본적인 관리 외에는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뿐.
여기에서 남들은 그저 풍작을 기원해야겠으나 진우만은 다른 것이 있었으니,
[드루이드의 특성, ‘자연이 그대를 돌보리라’가 활성화됩니다.]* 자연이 그대를 돌보리라 : 자연과 관련된 것이 더 건강하게, 더 빠르게 자랍니다. 한 번 적용된 이후 거리 유무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적용됩니다.
굳건한 체력에 이은 드루이드의 또 다른 특성.
그것은 천천히 자라는 농작물처럼 아주 천천히, 그러나 큰 결과물로서 화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농작물에 적용되었다.
아침 밤낮 할 것 없이 온종일 말이다.
* * *
“역시 천생 농부야.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어디 안 간다니까?”
“……그거 칭찬 맞지?”
“야야. 당연하지! 나도 농부야 자식아. 우리 진우 고생도 했겠다. 에잇 큰맘 먹었다. 오랜만에 삼겹살에 막걸리나 먹자고. 내가 쏜다.”
“미리 말하지만 나 많이 먹을 거다?”
“마음대로 해. 친구로서 환영식으로 그 정도도 못 해 줄까.”
고된 농사일 이후에 먹는 새참만큼 끝내주는 것이 또 있을까?
물론 특성과 유독 높은 체력 능력치 덕분에 전혀 힘들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공짜는 못 참지.’
공짜 고기, 공짜 술.
이걸 마다할 사람이 세상 어디 있을까?
또한 어색한 사이에서 다시 친밀해지는 것에 있어서 술만큼 좋은 게 또 없다.
“이모. 여기 삼겹살 3인분에 막걸리 2병이요!”
“어서 오렴, 석우야. 응? 어머머! 너 진우구나! 이장님께 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참 곱게도 컸다 얘!”
“아하하. 감사합니다. 이모님은 더 젊어지신 것 같으세요.”
“어머! 그래 보이니? 음료수……아니, 성인 장정 둘이니까 소주 2병은 서비스로 줄게~”
“어, 이모 저 왔을 때는 서비스 없으셨잖아요?”
“석우, 너랑 진우가 같니?”
“에엑, 너무하셔…….”
이장님의 입이 가볍다는 것은 알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래편 식당에까지 알려질 줄이야.
뭐, 그건 그거고 일단은 눈앞에 차려진 막걸리랑 소주부터 까는 게 고기로서 희생한 돼지에 대한 예의다.
“그래서. 이제 완전히 농부로 복귀할 생각인 거야?”
“일단은 그래야지.”
“그래. 잘 생각했어. 아무리 직접 사냥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짐꾼 일하다가 죽는 사람 많다며. 나도 말은 안 했지만, 아버지 못지않게 걱정했었다.”
“자식. 말은 참.”
“큼큼. 여기서 내 또래 친구가 너 말고는 다 떠났으니 어쩌겠냐. 그나저나 쓸만한 종자는 있어? 판매처는 따로 알아봤고?”
“아니, 이제 시작인데. 그건 차차 알아봐야지.”
“흐음…….”
거기에다가 진우도 농사를 시작한다고 해서 그저 무지성으로 작물만 수확할 생각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농작물이란 것이 수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심느냐다.
재수가 없으면 밭을 작물째로 갈아엎는 경우가 되려 이득일 때도 있고, 뜻하지 않은 자연재해나 게이트 발생 등으로 그해 농사가 망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지금이야 게이트 발생 시 정부 측에서 먼저 관측하는 것이 가능해진 탓에 몬스터로 인한 피해는 극히 적어졌다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 않겠는가?
너무 회의적인 것도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기에 그런 부분은 어느 정도 주의만 한다 치고, 결국 최종적으로 중요한 쪽은 품종이 좋은 우량종자를 선별하는 것.
어디 그뿐만일까?
수확을 진행하다 보면 재고는 쌓이기 마련이고 이걸 처분하기 위해서는 유통 경로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직접 트럭을 몰고 파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농사짓는 시간을 배분해야 하니 좀 더 이득이 되는 쪽으로 행동해야만 농부로서도 수익 창출이란 것을 맛볼 수 있다.
‘농사도 쉽진 않구나.’
세상사 쉬운 일 없다고.
결국 농사도 어찌 보면 하나의 사회나 마찬가지다.
사람들끼리 얽히고 설킬 수밖에 없는 관계.
그래도 짐꾼 때와 비교하면 이쪽은 훨씬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 우리 통하지 않고 제대로 된 일거리 하나 물어올 수 있을 것 같아? 블랙리스트에 이름 올라서 여기 뜰 생각 아니면 알아서 처신 잘하라고.
– 이거 다 합법이야 합법. 정부가 인정한 사업이라고 새끼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노동부에 신고해봤자 너만 손해라고 김 씨.
– 이쪽 관련 일은 저희 담당이 아닙니다. 헌터 협회로 가서 항의해 주세요.
– 이쪽 관련 일은 저희 담당이 아닙니다. 노동부로 가 주시겠어요?
3년 동안 짐꾼 생활을 했음에도 소개비로 떼 가는 돈은 절반에 달한다.
이미 짐꾼 사회는 처음부터 틀을 잘못 맞춘 듯.
아니, 고의적으로 섞여서 형성된 카르텔로 인해 기형적인 구조가 이미 자리 잡은 지 오래.
썩어 버린 상황 속에서 정부라도 나서야겠지만 세금을 달달 하게 받는 덕분인지 여야 할 것 없이 정부의 인간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결국은 인맥이라 이거지.’
실력과 돈도 중요하지만 사람 간의 거래에서 가장 최우선 순위는 다름 아닌 인맥.
그리고 농사에서 이 부분은 진우에게도.
아니, 정확히는 눈앞의 석우에게 어느 정도는 존재한다.
“종자 부분은 우리 아버지께 말씀드려 보면 될 것 같다. 그래도 이쪽으로는 빠삭하잖냐? 네 일이면 거절하진 않으실 테고.”
한 마을의 이장으로서의 짬은 결코 적지 않다는 듯.
간단하게 해결된 종자의 수급.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너 혹시 덕춘이 아저씨는 기억하고 있어?”
“당연히 알고 있지. 우리 집 일도 몇 번 도와주셨었는데.”
“아무튼 그 아저씨가 우리 동네 물건 다 납품해 주고 계시잖아. 솔직히 다른 쪽 유통 업계랑 비교해 봐도 나쁘지 않은 가격으로 쳐주신다니까? 나랑 아버지도 적지 않은 물량으로 납품하고 있으니까 나중에 틈날 때 너에 대해서 슬쩍 말 좀 꺼내 볼게. 어쨌든 아저씨도 그렇고, 너도 우리 동네 사람이었으니까 덕춘 아저씨께서 거절하진 않으실걸?”
“……고맙다.”
“짜식. 고마운 줄 알면 나중에 너도 한턱 쏴라.”
“그래 알겠다.”
덕분에 골머리 앓을 필요 없이 손쉽게 구한 유통 경로.
문젯거리가 해결되었으니 이제 말해 뭐 할까?
“이모! 여기 막걸리 추가요!”
적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