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15
15화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약초(였던 것)
‘크흐으으…….’
소리가 나오지 않기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
체력이 32로 높았기에 망정이지.
지금 살아 있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우둑- 우드득-
‘뒤지는 줄 알았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
부러진 뼈와 진탕된 내장들이 말하는 것이 제한된 진우를 대신하여 괴성을 내지르고 있는 상황.
‘……여기서 죽으면 진짜로 죽는 거겠지?’
새삼스럽지만 여기가 꿈이 아니라는 것쯤은 진즉에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브락시온을 만나고 그에게서 받았던 태초의 알도 고스란히 받아서 가져오지 않았던가?
지구가 아닌.
전혀 다른 공간.
이곳에서 받은 부상도 그대로 따라올 것이고, 죽는다면 진짜로 죽을 것이다.
무섭냐고 묻는다면야 당연히 무섭다.
진우 또한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한낱 인간에 불과할 뿐이니까.
그러나 이제 겨우 1단계다.
그것도 ‘인내’의 숲.
예컨대, 다른 숲이 더 있을지도 모르고, 단계가 더 있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벌써부터 벌벌 떨 수는 없는 노릇.
‘쓰으읍…… 하아.’
게다가 진우에게는 귀농하기 이전에 겪어 온 3년의 짐꾼 생활도 있다.
비록 하는 내내 욕이 나오는, 두 번 다시 하고 싶은 직업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일반인 신분으로 게이트에 들어가는 짐꾼은 상당한 고위험 직군으로 분류된다.
그곳에서 3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것.
원래 모든 일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고 버리는 것 없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은 아파할 때가 아니지.’
(남은 시간 15분 22초)
누누히 말하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 법.
지금 이 순간에도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기껏 몸까지 내던져서 목적지에 도달했는데 퀘스트에 실패하면 아까운 노릇 아니겠는가?
‘이게 핑크 인시리움?’
아래에서 보았을 때도 보였지만 유독 핑크핑크하게 빛을 뽐내고 있었던 식물.
하트 모양의 잎이 유독 도드라지는 모습도 그렇지만 진짜배기는 놈이 그냥 식물이 아닌 영험한 힘을 품고 있는 놈이라는 거다.
[백 년 묵은 핑크 인시리움(유니크)]* 분류 : 소모품, 재료
* 사용 조건 : 없음
* 효과 : 온전히 섭취할 시 랜덤한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2만큼 상승합니다. (1회 한정)
– 오로지 인내의 숲의 환경 속에서만 생장이 가능한 명물, 핑크 인시리움입니다. 백 년 동안 묵혀 온 결과 영험한 영물이 되어 섭취한 이에게 강력한 힘을 선사합니다.
유니크 등급의 영물답게 그냥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능력치를 일시적이 아닌.
영구적으로 2만큼 상승시켜 주는 사기적인 효과를 지닌 약초.
어디 그뿐만이겠는가?
32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개고생한 덕분에 획득한 것은 그저 약초 하나만이 아니었다.
※ 성공 시 : 3신용도 획득, 백 년 묵은 핑크 인시리움(유니크), 인내의 숲 2단계 도전 권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신용도를 자그마치 3이나 상승시켜 주는 것은 물론이요,
추후 2단계에 도전할 수 있는 권한까지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뭐, 1단계에서의 경험으로 생각건대 2단계는 얼마나 엿 같을지 상상만 해도 괴롭힌 하지만…….
어쨌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는 있을 터.
다만 진우는 핑크 인시리움을 그저 수확하는 것만으로 끝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스윽- 팟- 파파팟-
핑크 인시리움을 뽑는 것이 아닌 주변의 흙과 환경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한 진우.
그 모습에 뻥 뚫린 천장 구멍에 신음을 흘리던 비로스가 의아한 목소리를 낸다.
뭐하기는.
농부가 농사짓는 거 처음 보나?
하긴, 따로 농기구를 챙겨오지 못했기에 손으로 흙더미를 파내는 모습은 두더지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실성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으려나?
물론 그런 것을 일일이 설명할 여유는 없다.
어차피 말도 제한되었기에 따로 답할 수도 없는 일.
그렇게 몇 번 반복하자 마침내 진우에게 기다리던 것이 떠오른다.
[드루이드의 특성, ‘자연이 그대를 돌보리라’가 활성화됩니다.]뭐가 되었든 ‘자연’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 건강하고, 더 빠르게 성장시키는 진우가 보유한 특성.
(남은 시간 2분 3초)
그렇다 한들 이제는 2분도 남지 않은 시간.
특성이 적용되어 봤자 얼마나 혜택을 볼 수 있을까 싶겠냐 만은 진우에게 남아 있는 수단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지의 기억이 깃든 파편(측정 불가)]* 효과 : 대지에 깃든 시간을 조절합니다.
※ 해당 지역을 벗어날 경우 소멸합니다.
인내의 숲의 도전과 함께 대지모신에게 받았던 파편.
본래대로였더라면 도전하는 시간을 뒤로 돌려서 늘리는 용도로 사용했을 터.
허나 진우의 직업은 드루이드이기 이전에 농부다.
같은 식칼이라도 요리사에게 쥐어지면 요리 도구가 되고, 조폭에게 쥐어지면 흉기가 되는 법이라고 했던가?
농부인 진우에게 있어 이 파편은 시간을 뒤로 돌리는 것이 아닌.
그 반대의 용도.
오히려 역으로 사용해서 시간을 앞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까.’
콰직! 파하핫!
진우의 특성.
‘자연이 그대를 돌보리라’가 적용된 상태의 핑크 인시리움에게 집중적으로 작용하여 일종의 촉매제.
특제 거름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 파편.
이번 도전이 끝나면 사라지는 일회성 아이템이었기에 진우에게 망설임 따위는 없었고,
(남은 시간 1분 15초)
(남은 시간 52초)
(남은 시간 15초)
…….
이곳에서 조금씩 흐르는 시간과는 달리 핑크 인시리움에게만 한정적으로 빠르게 흐르는 시간.
마치 작물의 성장 과정이 담긴 영상을 수천, 수만 배의 속도로 돌리면 이러한 느낌일까?
눈으로도 보일 정도로 급성장을 이루는 핑크 인시리움의 모습.
뭐, 그러거나 말거나 이대로 죽 쒀서 개 줄 수는 없는 노릇.
(남은 시간 1초)
1초가 남았다는 표시와 함께 진우는 벼락처럼 튀어 나가 손과 발을 동원하여 땅을 파헤치고 입으로 재빠르게 약초를 겟한다.
[클리어 보상으로 신용도가 3 상승합니다.] [본래 걸렸던 조건 이상으로 완벽하게 클리어했습니다. 추가 보상으로 신용도가 2만큼 추가 상승합니다.]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난 키워서 먹어’] [신용도가 2 상승합니다.] [인내의 숲 2단계의 도전 권한을 획득합니다. 비로스가 당신을 별종으로 생각합니다.]그리고 그와 함께 달성된 퀘스트 완료.
폭탄 받아라!
라는 느낌으로 쏟아지는 신용도 세례도 그렇지만 사실 진짜배기는 다른 무엇도 아닌 입에 물려 있는 것이었으니,
[천년 묵은 핑크 인시리움(전설)을 획득합니다.]백 년짜리에서 천년 짜리로.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의 도박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 * *
강남에 출현한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는 게이트.
그곳을 지키고자 파견된 정부 측의 헌터 협회와 돌아가면서 입장하고 있는 대형 길드들.
그나마 출현하는 대부분의 몬스터인 프로그맨은 그렇게까지 강한 편은 아니었기에 경상자는 있을지언정 중상을 입거나 사망자는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만족스럽다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다.
“푸하앗! 어우, 진짜. 한 번 들어갔다 오면 뒤질 것 같다니까.”
“장비 녹슨 것 봐. 짜증 나!”
“으으으, 찝찝해.”
초인이기에 일반인보다 더 혹독한 환경에서 버틸 수 있다는 것이지.
완전히 적응할 수 있다는 소리는 아니다.
숨을 참으면서 수압을 버티고.
또 그 과정에서 달려드는 몬스터까지 상대해야 한다.
당연히 장기전이 될수록 불리해질 수밖에 없는 일.
어디 그것뿐만일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수중 전투와 물속에 노출될 때마다 빠르게 손상되는 장비들.
그래도 어찌어찌 최악은 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 참. 전성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뇨, 국가가 위험하면 응당 도와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다른 기업들도 본받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허허허.”
전성그룹.
대한민국의 굴지에 속하는 대기업 중 하나인 전성에서는 실력 있는 대장장이 각성자들이 꽤나 존재한다.
그러한 이들이 직접 몬스터의 부산물로 제작해 준 산소통.
다만 그렇다곤 해도 게이트의 환경인 심해.
안쪽으로 접근할수록 상상 이상으로 강력해지는 압력은 전성의 기술이 응집된 산소통도 버티지 못했다.
즉, 핵이 위치한 곳까지는 산소통 없이 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핵을 지키고 있는 게이트의 보스도 산소 없이 사냥해야 한다는 뜻.
최소한의 대책만으로 상처만을 메울 뿐.
여전히 해결책 없이 시간이 흐를수록 손해만 발생하는 일이었으나 정국진.
대기업 전성그룹을 이끄는 오너인 그다.
물론 나고 자란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타의 몇몇 기업들과는 달리 탈세나 비리 같은 것 없이 세금도 제때제때 납부할 정도의 애국 기업.
그러나 나라를 아무리 위한다 해도 어찌 되었든 기업이고 딸려 있는 식구의 숫자가 적지 않은 만큼 순전히 손해만 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만약에 게이트 내부 환경이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수중이 아니게 된다면 보스를 처리할 수 있겠나요?”
“……그렇다면야 가능은 하겠지만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보통이라면 말이 안 되지요. 허나 정령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따님께서 물의 정령사였지요? 하지만 정령사가 아무리 희귀하다 해도 혼자서는…….”
“혼자가 아닙니다. 미국의 유리 자이스. 그녀가 협조해 준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죠.”
“허어, 미국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자국의 게이트에 타국이 끼어드는 것은 좀……아무래도 잡음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걸 막아 줄 것이 협회장님 아니겠습니까?”
“……공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것 참. 한 방 먹었군요. 휴, 그래서 언제까지 해결해 드리면 괜찮겠습니까?”
“최대한 빠르면 좋겠지만 보름 안에는 끝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보름이라. 애써 보도록 하죠.”
본디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
대형 길드들이 기피했던 게이트를 자신의 딸과 전성그룹이 혁혁한 공을 세워서 제거해 낸다면 이래저래 취할 수 있는 이득이 셀 수 없이 많다.
때로는 경제적인 이득보다도 이미지와 여론이 더욱 중요할 때가 있기 마련.
그 무대로서 이번의 강남 게이트는 전성그룹에게도 크나큰 기회였다.
* * *
“끄아아아악!”
마취가 끝난 직후의 기분이 이러할까?
물론 그전에도 아팠던 것은 매한가지지만 목소리가 나오자마자 진우가 한 것은 시원하게 비명을 내지르는 거다.
마음 같아서는 데굴데굴 구르고 싶기도 하지만 괜히 그랬다가 상처가 덧나면 자기만 손해니까 깡으로 참아 냈다.
“진우 님! 괜찮으신 겁니까!”
그렇게 비명을 내지르고 있자 진우는 뒤늦게 허수진이 흔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부디, 부디 저에게도 지금의 고통을!”
“……와아. 아프던 게 쏙 들어가네.”
치유 관련 스킬은커녕 M의 의지를 이은 녀석답게 현 상황에 도움이 되는 것 하나 없다.
“제발 이상한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줘. 아, 그리고 괜찮으면 물 한 잔만 부탁할게.”
“진우 님의 뜻대로.”
하여튼 가만히만 있으면 인형처럼 이쁜 소녀인데 말이지.
어쨌든 덕분에 고통을 참을 수 있게 된 진우는 허수진이 가져온 물을 그대로 원샷했다.
속이 진탕된 탓인지 비릿한 피를 마시는 느낌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살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도 여전히 아픈 건 똑같긴 해도 진정된 마음.
생각할 여유가 생긴 진우는 일단 궁금했던 것부터 묻기로 했다.
“혹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있을까?”
“진우 님께서 취침하신 이후 7시간이 지난 상황입니다. 육체는 그대로 있으셨습니다. 갑자기 없던 부상이 생기셔서 깜짝 놀라긴 했지만요.”
“그렇구만. 고마워.”
“아뇨, 진우 님께 도움이 되어서 기쁩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허수진이지만 본래 허수아비였던 탓일까?
굳이 숙면을 취할 이유가 없는 허수진.
그렇기에 진우는 자신의 취침과 기상 시간.
그 밖에도 잠들었을 때 몸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체크를 부탁해 두었다.
이유? 뻔한 것 아니겠나.
방금 전 다녀 온 인내의 숲이라던가.
브락시온을 만났던 웅장한 세계수가 위치한 곳이라던가.
지구와는 전혀 다른 차원.
문송하게도 이과가 아닌지라 평행 우주? 차원?
그런 것까지는 몰라도 단순하게 이것 하나만큼은 알 것 같다.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건가.”
인내의 숲에서 개고생을 했던 32시간에 달하던 시간.
맹세하건대 그것은 결코 꿈이나 허상 같은 것이 아니다.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진탕되어 있는 지금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피부로 고스란히 느꼈던 현실의 시간들.
“잘만 활용하면 대박이긴 하겠네.”
드래X볼에 나오는 정신과 시간의 방처럼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남들의 배가 되는 시간을 써먹는 것이 가능해질 수도 있는 일.
심지어 육체는 이곳에 남아 있고 정신만 넘어가는 꼴이었으니 나름 머리를 굴려 보면 양쪽에서 이득을 볼 수도 있을 터.
뭐, 그렇다 해도 문제라면 그 차원으로의 넘어가는 게 내 의지로 마음껏 가능하지 않다는 거지만.
아니지. 적어도 1번은 내 마음대로 넘어갈 수 있기는 하다.
[신참. 사고 거하게 쳤다며?] [비로스가 이를 바득바득 갈아붙이던데?] [인내의 숲 2단계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언제든 내 이름을 말하면 된다.]“……사양하겠습니다.”
2단계에 해당하는 인내의 숲 도전.
당연하게도 그걸 지금 당장 실행할 생각은 전혀 없다.
1단계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누구 죽일 일 있나?
“쩝. 그래도 이게 어디야?”
아무런 정보가 없던 때에 비하면 감지덕지하는 수준.
또한 진우에게는 웃음꽃이 필 수밖에 없다.
주어진 퀘스트를 조건 이상으로 클리어함으로서 대량으로 획득한 신용도.
허나 이번의 진짜배기 주인공은 신용도가 아니다.
“후후후후.”
전설 등급의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천년 묵은 핑크 인시리움.
차로 우려먹을까?
아니, 자고로 그런 영물은 가공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먹는 것이 더욱 몸에 좋을 터.
행복한 고민과 함께 어떤 효과를 품고 있을지 확인해 보려던 찰나였다.
토도도도도돗-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니,
꺄아! 꺄아아!(엄마! 엄마아앙!!)
마치 만드라고라를 연상시키듯.
살아 움직이는 핑크 인시리움.
그것이 진우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서 얼굴(?)로 추측되는 부위로 비비적거리며 좋아라 한다.
“……어? 예에!?”
졸지에 응애 팜오리들에 이어 식물의 엄마가 되어 버린 진우다.
나이는 40배 정도 더 많이 먹었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