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14
14화 K식 지름길
화아악-
도전의 승낙과 함께 가장 먼저 진우를 반기는 것은 약한 빛무리를 뽐내는 오른손이다.
‘뭐야 이건 또?’
대체 언제 새겨진 것인지 알 수 없는 둥그런 알 모양의 문신.
선입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딱히 문신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던 진우로서는 자신의 의지 없이 남몰래 새겨진 문신에 기분이 나빴지만 현재 중요한 것은 문신이 아니었다.
[도전 승낙에 따른 숨겨진 보상이 해금됩니다.] [대지의 기억이 깃든 파편(측정 불가)을 획득합니다.]도전을 승낙하는 것만으로도 달성된 보상.
이 퀘스트에서 숨겨진 것이라고하면 딱 하나 뿐이다.
※ 특이 사항 : 대지모신께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숨겨진 조건이 존재합니다.)
특이 사항으로 포함되어 있던 대지모신이 지켜보고 있다는 내용.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진우는 그다지 신을 믿는 편이 아니다.
불교도, 기독교도, 천주교도, 말 같지도 않은 사이비 종교 등도.
어느 하나 믿지 않는 무교.
그래도 대지모‘신’.
신실하게 믿지는 않겠지만, 일단 신은 신이니 보상으로 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
그것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긴 했다.
[대지의 기억이 깃든 파편(측정 불가)]* 분류 : 소모품
* 사용 조건 : 대지모신이 허락한 자
* 효과 : 대지에 깃든 시간을 조절합니다.
– 대지모신의 육체 티끌이 파편화되어 형성된 아이템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대지의 기억과 시간을 품고 있습니다.
※ 주의! 파편에 깃든 힘에 비해 당신이 지닌 그릇이 너무나도 초라합니다. 최대 5시간이 한계입니다.
※ 해당 지역을 벗어날 경우 소멸합니다.
‘시간을 조절한다고?’
측정 불가 등급답다고 해야 할까?
타임 머신? 타임 리프?
어찌 되었든 간에 시간을 다스리게 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아이템.
바깥으로 가져가면 로또 당첨각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 해당 지역을 벗어날 경우 소멸합니다.
‘인생이 그렇게 쉬울 턱이 없지.’
지역 한정적으로 사용 가능한 아이템.
그러나 이것만 있다면 진우에게 주어진 시간은 32시간으로 끝이 난 게 아니다.
여기에 +5시간을 더한 37시간.
다만 그렇다고 해서 난이도가 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친우들과 방해물을 딛고 꼭대기까지 올라와 보도록.]라고 말했던 비로스의 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우득- 우드득-
도전의 승낙과 함께 이어지는 숲의 변화.
뿌리들이 얽히고설키며 진우가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게끔 벽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마치 자아를 가지고 막는 듯한 나무의 모습.
“…….”
인내의 숲.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딘다는 인내忍耐의 뜻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하거니와 이 숲 전체가 적이라는 소리였을 줄이야?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래도 이미 도전을 외친 이상 물릴 수는 없다.
‘목표물은 저 꼭대기에 있다는 소리겠지.’
위로 시선을 향하면 꼭대기에 위치한 반짝거리는 핑크빛의 식물.
그래도 1단계라고.
거리상으로 보면 그렇게까지 먼 거리도 아니다.
‘까짓거. 돌파해 주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대지모신의 아이템까지 더했을 때로 따지면 무려 37시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는 생각에 진우는 발을 박차며 크게 점프했다.
노력하는 자의 허수아비를 15일 동안 때리면서 쌓은 능력치, 그리고 팜오리로부터 덤으로 얻은 +2의 민첩을 통해 3레벨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날렵한 움직임.
‘뭐야 이거. 생각보다 쉽잖아?’
마치 발판처럼 얽혀 있는 나무뿌리들을 딛고 빠르게 나아가자 어느덧 30분 정도의 시간 만에 중간 지점까지 올라왔다.
32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것치고는 너무나도 쉬운 난이도.
물론 그럼에도 방심은 금물이라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온몸의 신경을 집중하며 점프를 하던 찰나였다.
휘리리릭-! 타학!
“……!”
아니나 다를까?
점프와 동시에 진우를 향해 사납게 날아드는 덩굴식물.
제대로 방향을 틀기 힘든 공중에서 채찍을 후려 맞는다면 가속도까지 더해져서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노릇.
그래도 미리 예상은 해 두었기에 진우는 곧장 손을 치켜들었다.
허나,
후웅- 후웅- 휘리리리릭-!
‘미친!’
‘내가 언제 하나라고 했어?’라고 말하는 듯.
사방에서 뻗어서 진우를 때리려는 채찍들.
죽기 직전,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는 심정이 이러할까? 싶은 것도 잠시.
“……?”
터업-
자신을 사납게 후려치는 채찍이 아닌.
마치 거열형에 처하는 죄수처럼 사지를 꽁꽁 묶은 덩굴식물들.
그대로 잡아당긴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식물들은 진우를 죽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후우우우웅-! 철푸덕-
“…….”
그저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칠 뿐.
심지어 언제 생겨난 건지 친절하게도 다치지 않도록 떨어지는 곳에는 쿠션 역할을 해 주는 목화솜들이 급속 성장한 채로 진우를 포근하게 받아 준다.
‘하, 하하. 이런 식이라 이거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태초 마을.
장차 32시간 동안 치러진 인내의 시험은 그야말로 시작 지점의 셀 수 없는 반복이었다.
* * *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응해야 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습해야 한다.
기본 교육을 받아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그러나 자연이란 적응하고 학습하기에는 너무나도 생각해야 할 것이 많았다.
휘리리리릭-!
후웅-! 후우웅-!
철퍼덕- 철퍽- 철푸덕-!
‘억!’
‘어억!’
‘우어억!’
예상하고, 또 예상하고, 또 또 예상하고 적응했다 한들 그것들은 전부 소용이 없다.
애초에 사람과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식물의 생각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벌써 수십 번의 시도.
그나마 다행이라면 점차 진우 또한 익숙해지면서 30분 정도 걸렸던 중간 지점을 이제는 20분 정도면 충분히 도달 가능하다는 정도?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을 터.
뭐, 그렇다 한들…….
(남은 시간 38분)
문제라 하면 그 과정에서 소모된 시간이 적지 않다는 거다.
‘후, 엿 같네.’
과연 인내의 숲이라는 이름값을 한다는 걸까?
지금까지 몇 번 동안 ‘태초 마을이야!’를 당한 건지 원.
말을 못 하는 탓에 시원하게 욕을 못 하니 더 짜증이 치솟는다.
‘그래도 수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야.’
31시간.
주구장창 떨어지면서 진우도 아무런 소득 없이 달려든 것은 아니다.
덩굴식물의 패턴 분석.
물론 사람을 기준으로 한 분석은 아니다.
‘때로는 이성을 놓는 것도 방법이라는 거지.’
한 마리의 짐승처럼.
본능적인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예 생각을 포기하고 달려들었던 마지막 직전의 시도.
그때 진우는 분명히 느꼈다.
덩굴식물이 움직이는 방향.
아니, 정확히 말해서 덩굴은 페이크다.
진짜는 그 덩굴을 움직이는 본체라 할 수 있는 숲 그 자체.
그것을 꿰뚫어 보았던 순간 확실히 진우에게도 떠오르지 않았던가?
[드루이드의 특성, ‘야생을 받아들여라’가 활성화됩니다.]진우가 보유한 특성, ‘야생을 받아들여라’.
그것은 순전히 동물에게만 적용되는 힘이 아니다.
야생이란 자연.
즉, 식물도 당연히 포함된다.
물론 팜오리처럼 친화력을 통해 활성화된 관계는 아니다.
3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좋든 싫든 간에 살을 맞대며 태초 마을로 날려 버리던 사이.
[폴튼 트렌트와의 잦은 접촉을 통해 힘 일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야생을 받아들여라’에 폴튼 트렌트의 덩굴이 추가됩니다.]* 야생을 받아들여라
└ 폴튼 트렌트의 덩굴 : 몸, 혹은 원하는 곳에서 덩굴 뿌리를 생성합니다. 단, 덩굴의 내구성은 몸이나 땅에 연결되어 있을수록 더욱 질기고 견고합니다. / 마력+2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덩굴에는 덩굴이라고 했던가?
덩굴에 이리저리 패대기쳐지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된 놈의 덩굴 능력.
덕분에 귀중한 마법 계열의 스킬도 손에 넣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대로 실패하더라도 진우에게는 패널티를 감수해도 이득인 입장.
허나,
‘하나만 가질 수는 없지.’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가지고 싶고, 둘을 가지면 셋을 가지고 싶은 것이 사람인 법.
그리고 수십 번 내동댕이쳐졌는데 그냥 물러서기도 아쉽지 않겠는가?
(남은 시간 37분 41초)
우선은 돌파하는 방법은 알았으니 남은 것은 뚫는 것뿐.
생각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기다려 주지 않고 흐르고 있는 시간.
물론 보험은 있다.
[대지의 기억이 깃든 파편(측정 불가)]* 효과 : 대지에 깃든 시간을 조절합니다.
시간을 조절하는 힘을 가진 대지모신이 건네준 아이템.
이것만 있으면 진우에게 남은 시간은 38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서 순식간에 5시간이 더해진다.
이 정도면 능히 달성하고도 남을 터.
‘……잠깐만. ’
그러나 진우는 곧장 사용하지는 않았다.
오만이라고 해야 할까? 만용이라고 해야 할까?
한심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파편의 또 다른 사용 방법.
어쨌든 그것의 인지와 함께 진우는 발을 박찼다.
척- 처어억-
터헉-
이제는 31시간 동안 반복하면서 너무나도 익숙해진 길.
최단 루트로 점프와 몸을 내던지는 등.
(남은 시간 19분 26초)
각종 꼼수를 동반하며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켜 중간 지점까지 도달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놈의 공세가 시작된다.
휘리리리릭-!
후웅- 후우웅-!
경로를 예측하기 힘들게 이리저리 휘어지면서 달려드는 놈의 덩굴.
진우는 부족한 시간.
마지막 도전이라는 것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도 어이없게 붙잡혔다.
[……안타깝게 실패했지만 고생했구나, 드루이드여. 다음에 힘을 더 기르고 오도록. 그때 보도록 하지.]떨어질 모습에 지금까지 아무런 말 없이 방관만 하던 비로스가 읊은 체념 어린 말.
그런 반면 진우의 입가에 맺힌 것은 실망이 아닌 기쁨의 미소였다.
어째서냐고?
불과 아까 전까지만 해도 보기가 죽도록 싫었던 덩굴들.
그러나 지금의 진우에게 덩굴들은 오히려 환영이다.
그도 그럴 것이,
휘리리리리릭- 촤하아아악!
진우를 옭아맨 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려는 동작을 취하고 있는 덩굴.
하지만 이제는 진우에게도 덩굴이 존재한다.
‘나와라.’
꾸득- 꾸드득-
휘리리리릭-
[……!]……꾸드드득?
설마 진우가 덩굴을 사용할 줄은 몰랐던 것인지 놀라는 비로스와 본래 덩굴의 주인인 폴튼 트렌트.
놀라는 모습을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반격할 기회를 줄 생각은 없다.
‘버스 고맙다.’
꾸구구구국- 파아앗-!
비록 2밖에 되지 않는 마력에서 피어난 덩굴이라지만 방향을 트는 일 정도는 가능한 일.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던 것에서 위로.
버스 기사, 폴튼 트렌트가 친히 개척해 준 지름길을 진우는 아낌없이 활용하며 나아갔다.
휘릭- 휘리리리리릭-!!!
뒤늦게 덩굴이 쫒아 오는 것이 뒤에서 느껴졌지만 이미 덕분에 가속도가 붙은 몸.
하나의 포탄이 된 입장에서 잡힐 턱이 있겠는가?
이제 남은 문제라면…….
‘육체가 버텨 줘야겠지.’
지금까지 바닥에 내동댕이쳤을 때도 살아남았던 이유는 땅바닥에서 자란 목화솜들이 쿠션 역할을 해 준 덕분.
반면에 진우가 향하는 위쪽의 천장에는 목화의 ‘목’자도 없다.
한마디로 몸으로 부딪쳐야 한다는 소리.
자칫 잘못하면 피떡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진우에게도 방법은 있다.
치덕- 치덕-
진우의 몸을 감싸고 드는 팜오리의 기름 코팅.
이것이 조금이나마 진우에게 가해지는 충격을 약화시켜 줄 터.
설령 대부분을 막지 못한다 해도 상관은 없다.
[김진우]* 레벨 : 3
* 능력치 포인트 : 0
* 힘 : 17 민첩 : 13 체력 : 32 마력 : 2
진우가 보유한 능력치 중에서 가장 자신 있는 능력치라 할 수 있는 체력.
고기 방패가 괜히 고기 방패겠는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탱커인 법.
콰아아앙-!
[무, 무슨 이런…….]뻥 뚫린 천장.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 버리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개척 방식.
(남은 시간 16분 23초)
그러나 과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결과만 좋으면 되는 것 아니겠나?
뭐…….
집주인이라 할 수 있을 수호자.
비로스의 입장에서는 억장이 와르르 무너질 일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