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13
13화 어서 와요 인내의 숲
삐삐삐삒!
삐이이읶!
한창 벌레를 잡아먹던 것을 멈춘 채 돌아간 새끼 팜오리들의 고개.
팜오리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진우 또한 알고 있었다.
“헤헤, 안녕 얘들아? 그새 엄청 컸네?”
삐이이익!(물! 무우우울!)
삐삐삐삒!(물이 왔어요!)
팜오리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는 물의 정령사 정수아.
아이와 놀아 주듯이 물방울을 소환하여 싱긋 웃어 보인 그녀는 다가온 진우에게 시선을 맞춘다.
“혹시 지금 찾아와서 실례인 건 아니겠죠?”
“네. 괜찮긴 합니다만. 혹시 덕춘 아저씨는 안 오신 건가요?”
“하하. 네. 오늘은 저 혼자 찾아온 거예요.”
비즈니스 관계라곤 해도 젊은 여성의 방문.
평상시의 진우였더라면 꽤나 당황했을 테지만, 근래 들어서는 나름의 이유로 항마력이 생긴 지 오래다.
그도 그럴 것이,
“어? 그런데 이분은 누구시죠? 저번에는 못 뵈었던 분이신데…….”
“아, 사정이 있어서 잠시 함께 농사일을 하게 된 친구입니다.”
“……그런가요?”
입을 꾹 다문 채 정수아를 가만히 주시하고 있는 허수진.
석우한테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해명하다 보니 에고 아이템이라는 부분을 사실 그대로 말했었지만, 그 밖의 다른 인물들에게까지 일일이 그 정체를 다 말해 줄 생각은 없다.
실제로 석우에게도 그 이후에 허수진에 대한 점은 비밀로 해 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행이라면 입이 가벼운 이장님과는 달리 석우의 경우 여사님을 닮아서 그런지 입은 상당히 무거운 편.
의리도 꽤나 있는 편인지라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말하지 않을 거다.
‘에고 아이템을 떠벌리고 다녀 봤자 좋을 일은 없지. 그것도 전설 등급을.’
일단은 긍정적인 사이라고는 해도 계약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관계다.
근데 기분 탓인가?
어쩐지 정수아의 표정이 은근히 뾰로통해진 것 같은데.
“크흠. 여기 이거 받아 두세요. 사실 오늘은 이걸 드리려고 찾아온 거예요.”
“제 계좌로 보내주셔도 되었을 텐데.”
“아이템화된 농작물은 지금 사회에서 꽤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상태여서요. 최대한 조심해서 나쁠 것 없죠.”
뾰로통한 표정을 풀지 않고 그대로 유지한 채 정수아가 건네준 것은 전성이 새겨진 블랙 카드와 최신형 스마트폰이다.
“앞으로 거래를 통해 입금되는 돈은 다 이쪽 카드로 들어갈 거에요. 스마트폰에 깔린 앱으로 확인도 가능하고 말이죠.”
“……이거, 탈세라던가 그런 건 아니죠?”
“그런 부분은 철저하게 지키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회장님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불법은 딱 질색하시거든요. 물론 보호를 위한 선에서는 어쩔 수 없어 하시지만요.”
“……그렇군요.”
짐꾼 생활을 해 오면서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숱하게 목격해 온 진우다.
돈 버는 것은 좋아할지언정 적어도 저들과는 똑같이 되지는 말자는 생각.
다행히 그저 신분만을 철저히 숨겨 주는 쪽으로 쓰인다면 진우로서도 굳이 이런 호의를 거절할 이유는 없다.
“그럼 이제 제가 볼일은 끝났으니 이만 가 보도록 할게요.”
“네? 벌써 가시려고요?”
“아무래도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중이신데 제가 더 있어 봤자 방해만 될 것 같아서요.”
라는 말과 함께 힐끗 묵묵히 농사일에 전념하고 있는 허수진과 진우를 번갈아 보는 정수아의 눈빛.
영문을 모르겠지만 받은 것이 이렇게 많은데다가 시골까지 먼 길을 찾아서 내려온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어차피 더 일할 것도 없는데 들어오시죠.”
“아무리 그래도…….”
“감자 많이 쪄 뒀는데 안 싸 가셔도 괜찮으시겠어요?”
“네? 가, 감자요?”
순간 뾰로통한 표정에서 망설이는 듯 눈동자를 굴리는 정수아.
하긴, 찐 감자를 어떻게 지나치겠는가?
거기에 덧붙여서,
삐이이이읶!
삐삐삐!
“…….”
헤실헤실 풀어지는 표정.
응애 오리들의 애교는 더 못 참고 말이지, 암.
* * *
농부나 직장인 등.
포브스 선정 사람들 대부분이 가장 기뻐하는 순간이 언제일까?
“크후후훗.”
단언컨대 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 그것은 바로 수입이 발생했을 때다.
직장인이나 알바생에게는 일당과 월급이 들어왔을 때요, 농부에게는 작물을 팔고 돈이 입금되었을 때라고 할 수 있을 터.
“크큭, 크크크큭!”
– 인간 왜 저러냐?
– 원래 인간은 가끔씩 저렇게 미치기도 한다.
– ……바위라서 다행이다.
노움들의 시선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우는 그 어떠한 때보다도 기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입금액 138,550,000원 / 전성 물산]아니,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0이 대체 몇 개나 되는지 처음 확인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져보는 1억을 가뿐하게 넘긴 금액.
이것이 고작 820개의 유기농 한무 감자를 팔고 벌어들인 돈이다.
제아무리 아이템화가 된 작물,
희귀 등급의 작물을 팔았다고는 해도 이 정도로 벌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니, 어쩌면 조금은 했을지도 모른다.
“앞선 켈틱 쌀이랑 튼실한 왕감자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려나?”
첫 번째로 납품했었던 건에서는 180개 정도를 팔아서 천만 원가량의 돈을 손에 쥐었었다.
반면에 이번에 두 번째 납품에서는 820개.
족히 4.5배에 달하는 물량이다.
심지어 노말 때보다 한 단계 높은 희귀 등급.
거기에다가 정수아도 말하지 않았던가?
입소문이라는 것이 무섭다고.
첫 판매 이후 전성 그룹으로 접근해 온 요리사나 연금술사 관련 직종의 각성자들 숫자가 상당하다고.
[유기농 한무 감자(희귀)]* 분류 : 소모품, 재료
어찌 되었든 간에 유기농 한무 감자도 그렇고, 켈틱 쌀 등도 그렇고.
아이템화된 순간부터 정해진 양을 그저 먹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받을 수 있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추가적인 가공도 가능한 ‘재료’가 되기도 한다.
요리사에게는 요리로, 연금술사를 통해서는 포션이나 영약으로 재탄생이 가능하다는 뜻.
그렇다 보니 이래저래 나에 대해서 관심이 꽤나 많이 생기는 모양이다.
“유명해지는 게 꼭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니까.”
유명세에는 장점도 있지만 그에 만만치 않게 단점도 존재한다.
제아무리 법이 존재한다고 해도 법보다는 주먹이 더 가깝다는 걸 짐꾼 생활로 충분히 겪어 왔다.
게이트 내에서 몬스터에 의해 죽는 사람도 있지만, 이득을 위해서는 같은 인간의 등에 칼을 꽂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힘없는 유명세는 장점은커녕 오히려 독이 될 터.
뭐, 전성그룹의 그늘 아래에 있는 상태에서는 웬만큼 간 큰 이들이 아닌 한 쉽게 건드리지 못할 테지만 계약은 결코 무한한 것이 아니다.
전속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꼴 밖에 안된다.
“더 강해져야 돼.”
제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끌려다니는 것은 짐꾼 생활 때의 경험만으로 충분히 족하다.
진우에게는 드루이드라는 직업이 있고, 신묘한 상점들이 있으니 을이 되어서 끌려다니는 것이 아닌.
자신의 입장을 공고히 다져야 할 터.
“내일은 더…….”
강해지고 싶다.
진우는 그 말을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며 눈꺼풀을 닫자마자 곧바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덜그럭- 덜그럭-
집의 한쪽 구석에서 홀로 데구루루 구르기 시작한 태초의 알.
허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다른 지역으로 벗어나는 일 없이 주변만을 빙글빙글 돌던 알은 이내 뚝- 하고 멈춰 섰고,
[태초의 알이 각인된 존재의 욕구에 반응합니다.]치이이이익-
이내 알과 더불어 일전에 태초의 알을 만졌던 진우의 오른손이 붉은빛을 뿜어내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 * *
어쩐지 익숙한 몽롱한 느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 때문인 걸까?
아니면 각성자가 되면서 추가된 능력치 덕분인 걸까?
뭐,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직 당신에게는 말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당신에게는 움직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또냐. 이 개 같은!’
또다시 자신을 내리누르는 압박감.
이전에는 브락시온의 도움이 있기 전까지 중지를 펴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김진우]* 레벨 : 3
* 능력치 포인트 : 10
* 힘 : 17 민첩 : 13 체력 : 22 마력 : 0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받았던 10의 능력치 포인트.
어디에다 사용할지 고민 중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진우는 결정을 내렸다.
…….
체력 올인.
좀 더 질긴 고기 방패가 되어 가는 기분이지만.
아니, 사실이지만 뭐 어떠한가?
농부된 입장에서 체력이 높다고 해서 나쁠 것은 그리 없을 터.
뿌드득-
[당신에게 움직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32의 체력.
그제야 짓누르던 중력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졌다.
다만…….
[아직 당신에게는 말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그렇다곤 해도 여전히 제한되는 것은 많았지만.
뭐, 스스로 움직이게 된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 하나?
‘그때 그곳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에 위치해 있든 간에 보일 것 같았던 거대한 세계수.
그러나 세계수는 보이지 않고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이리저리 뿌리들이 얽혀 있다.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장소.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는 곧이어 알게 되었다.
[인내의 숲의 수호자가 첫발을 뗀 드루이드에게 인내의 시험을 내립니다.]* 제한 시간 내에 인내의 숲 1단계를 통과하여 신성한 영물, 백 년 묵은 핑크 인시리움을 수확하세요. 단, 해당 시험은 강제가 아닙니다. 원하지 않을 경우 지금 즉시 나갈 수 있습니다.
※ 성공 시 : 3신용도 획득, 백 년 묵은 핑크 인시리움(유니크), 인내의 숲 2단계 도전 권한
※ 실패 시 : 3신용도 하락, 인내의 숲 도전 기간 6개월 유예(남은 시간 32시간 13분)
※ 포기 시 : 인내의 숲 도전 기간 3개월 유예(5분 후 선택 불가)
※ 특이 사항 : 대지모신께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숨겨진 조건이 존재합니다.)
눈앞에 홀로그램으로 표시된 내용의 퀘스트.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제는 아니란 점이다.
[……어째서 벌써부터 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지모신께서 눈여겨보고 있는 드루이드여. 나는 이 인내의 숲을 수호하는 자 비로스라고 한다. 아직은 그대에게 때가 아니니 거절한다 해도 부끄러운 일이 결코 아닌 일. 다만 어찌 되었든 주어진 기회. 시험에 응하겠는가? 아니면 돌아가겠는가? 도전하고자 한다면 고개를 끄덕이면 된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으나 신중히 선택하도록.]어디서 들려오는 건지는 몰라도 청명하게 들리는 목소리.
도전해서 성공하면 유니크 등급에 달하는 아이템에다가 3신용도까지 획득할 수 있다.
거기에 덧붙여서 2단계라는 연계 퀘스트를 얻을 수 있는 권한까지.
허나 실패하면 반대로 신용도가 하락하고 6개월 동안 도전할 수 있는 권한을 박탈당한다.
그런 반면 포기할 경우에는 그저 3개월의 도전 유예만이 있을 뿐.
“…….”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패널티가 있는 만큼 보상도 확실했기에 고민이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그러나 결정을 내리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남은 시간 32시간 12분)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비로스의 말처럼 고민하는 와중에도 줄어드는 시간.
눈을 감은 채 숨을 몰아쉰 진우는 생각을 간단히 정리했다.
‘강해지고 싶다.’
이곳에 오기 전에 몇 번이고 되뇌었던 단어.
지금 그 지름길이.
낙하산으로는 최고의 인맥인 대지모신을 통해서 생기지 않았던가?
뭐, 농사는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진우는 농부이기 이전에 강해지고자 하는 욕구가 더욱 강했다.
끄덕.
[……후우,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이 될 것이야. 정말로 시험에 응할 텐가?]이미 내려진 결정.
설득을 한들 무슨 소용일까?
소방차는 빨간불에도 멈추지 않는 법.
끄덕-
[훗. 좋아. 제법 패기는 마음에 드는군. 그럼 내 친우들과 방해물을 딛고 꼭대기까지 올라와 보도록.]못 먹어도 고! 원래 인생은 도전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