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강경파 원로 키안 자이스
“이게 대체…….”
전성의 회장 정국진은 자신의 앞에 날아온 서신을 보고는 믿기지 않는지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러시아에서 전성을 향한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겠다는 내용.
넓은 영토를 자랑하는 만큼 석유나 가스와 같은 천연자원이 넘쳐나는 유럽의 강대국, 러시아.
엄연히 수출 강국 중 하나인 대한민국의 대기업이 그러한 러시아와 거래를 트게 된다는 것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 아니겠는가?
허나 다짜고짜 이렇게 좋은 조건으로 제안을 해 오면 아무리 상대가 국가라고 해도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그도 그럴 것이,
“블라트 나자르프. 대체 무슨 꿍꿍이지?”
러시아는 겉으로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깊숙이 파고들면 아직 소련의 잔재가 남아 있는.
중국과 북한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산주의 국가다.
물론 국민 대부분은 자유로운 민주주의를 선호하겠으나 독재자인 블라트 나자르프가 정권을 꽉 쥐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기 마련.
그렇기에 러시아에 진출한 대기업들도 대부분은 블라트에게 수많은 뇌물을 건네주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쉽게 진입하는 것이 힘든 편에 속한다.
그런데 조건이면 조건, 대우면 대우.
하나같이 거를 타선이 없는 최고의 대접이라니.
그렇게 수많은 의심도 잠시.
그에 대한 원인을 찾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진우 군이 러시아 원정을 다녀왔었지? 아마?”
러시아가 이렇게 갑자기 태도의 변화를 보인 것은 다 진우가 러시아에 다녀온 직후 벌어진 일.
그럼 뻔한 것 아니겠는가?
“회장님! 곧 회의 시간입니다만 어디 가시는 겁니까?”
“아, 임 비서. 미안하지만 회의는 다음으로 미뤄 주게나.”
“그렇지만 자이스 가문이…….”
“더 중요한 일이 생겨서 말일세. 아, 수아와 자이스 가문도 함께 불러 주겠나? 그리하면 회의를 미루는 것도 이해해 줄 걸세.”
“알겠습니다.”
지금의 전성을 일으킨 회장 정국진.
늘 성공을 위한 선택만을 해 온 그가 자이스 가문과 관련된 회의도 마다하고 향하는 곳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진우가 있는 농장이었다.
* * *
준비된 회의를 깨고 갑작스러운 동행의 요청.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례한 일이기도 하다.
자이스 가문은 미국의 헌터 업계에서도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 집단이다.
자녀 하나하나가 정령사의 자질을 갖춘.
엘프의 자식들이라는 별명까지 지닌 이들.
실제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들 동안에다가 아름답고 잘생긴 외모까지 타고났으니 어찌 보면 별명이 지극히 어울릴 터.
허나 세상 어디에나 집단을 이루면 그에 따라서 파가 나뉘듯.
자이스 가문에도 2개의 파가 존재한다.
공격적으로 미국의 게이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미국의 헌터 협회와 마찰을 일으키는 강경파와 최대한 평화롭게 해결하면서 지금처럼만 유지하자는 온건파.
그 밖에도 해외 곳곳에서의 활동에서조차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두 세력은 이번 전성의 회의에서도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갑자기 제대로 된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회의를 취소하다니. 이건 엄연히 자이스 가문을 무시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말이다. 안 그래도 최근 한국은 너무 건방져.”
회의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정국진 회장의 회의 취소.
아니, 정확히는 자리의 이동.
당연히 그에 대한 강경파와 온건파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빅터. 아버지도 가만히 있으신데 왜 네가 난리야?”
“솔직히 말해서 미국에서 직접 먼 길을 왔는데 또 오라 가라 하니까 당연히 화가 안 나겠어? 직접 찾아와도 부족한 판국에 말이야.”
“그래. 유리야. 빅터가 화나는 것도 당연한 거다.”
“할아버지. 지금 저희가 전성과 계약으로 얻을 수 있는 걸 생각하시고 제발 화를 좀 가라앉히세요.”
“쓰읍! 우리 자이스 가문은 언제나 갑의 입장이야!”
가장 공격적인 속성의 영향일까?
대체적으로 불의 정령과 계약을 한 이들은 자이스 가문의 강경파에 속했으며, 치유와 수비적인 속성인 땅과 물의 정령들과 계약한 이들은 온건파 쪽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같은 피를 나눈 친가족이라고 해도 파가 다른 경우도 자이스 가문에는 심심치 않게 발생했고, 그 예 중 하나가 유리 자이스의 가족이다.
70대의 나이에도 겉모습은 50대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키안 자이스는 유리의 할아버지이자 대표적인 강경파의 원로 중 하나다.
불의 상급 정령을 1개도 아닌 무려 2개체나 소환할 수 있는 미국의 SS등급의 헌터.
그런 그가 한국에 직접 발걸음을 한 것도 다 전성으로부터 납품받은 물품의 효능을 맛보게 된 영향이다.
다만, 문제라면…….
“전성은 어차피 기업이지 않나? 돈만 많이 쥐어 주면 그만일 뿐. 자이스 가문으로서는 최대한 많은 물자만 공급받는 확답을 받으러 왔을 뿐이다.”
“할아버지…….”
실로 강경파다운 밀어붙이기.
시원시원한 일 처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놓고 전성과 그 물품을 납품하는 진우를 무시하는 태도가 여실히 보인다.
어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 그는 미국에서도 상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몇 없는 SS등급의 헌터.
그러한 키안에게 20대 중반의 핏덩이를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그런 키안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빅터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자이스 가문은 이번의 전성의 태도를 잊지 않을 겁니다.”
“너 진짜!”
“나는 괜찮아 유리 언니. 회장님이 갑자기 일정을 바꾼 것도 잘못은 있으니까.”
“후우, 미안해 수아야.”
전성의 부회장인 수아가 옆에 있어도 대놓고 터트리는 불만.
아니, 사실상 고의로 그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의 거대 가문인 자이스가 한국의 전성과 손을 잡은 것은 어디까지나 동맹이 아닌 상하 관계라는 것을 알아 두라는 명백한 인식.
자본과 힘의 규모를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것.
훗날 전성의 회장이 될 수아였기에 이러한 일에 일일이 화를 낼 생각은 없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과 그 가족들의 직장들을 생각하면 자존심 따위야 언제든지 내던질 수 있는 것이 기업의 오너인 법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아도, 유리도 화를 참을 수 있는 것에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꾸왁, 꾸와아아악!
삐삐! 삐삐삐삐!
“헤헤.”
“으흠흠~”
실로 오래간만에 보는 팜오리들의 울음소리.
자신들의 방문을 눈치챈 듯.
뽀짝뽀짝한 걸음 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응애 오리를 보면 자존심이고 자시고 사회에 찌들었던 피곤함이 절로 힐링되는 기분이다.
허나,
“와, 토실토실한 게 맛있겠는데? 이거 한 마리 구워 먹어도 괜찮겠죠, 할아버지?”
“마음대로 하려무나. 우리 손주.”
“안돼!”
“미치셨어요, 할아버지?”
“뭐, 뭐야 왜 그래 겨우 오리 한 마리 가지고…….”
“이 귀여운 것들 죽이기만 해 봐요. 할아버지고 뭐고 없어!”
자존심은 희생해도 팜오리가 구워지는 꼴은 절대 못 보는 둘이다.
* * *
농장으로 찾아오는 시끌벅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긍정적인 팜오리들의 반응도 그렇고 미리 정국진 회장에게 방문 연락을 받았던 진우는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하던 작업을 마무리 짓고 발을 옮겼다.
헌데…….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꽤나 살벌한 분위기.
그 중심에는 정수아와 유리 자이스와 모르는 얼굴의 2명.
그리고 가운데에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중재하고 있는 피터 자이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싸움 구경만큼 재밌는 것이 또 없긴 하지만, 그곳이 자신의 농장이 되면 얘기가 달라지는 법.
진우는 일단 일의 해결에 앞서 모르는 2명이 누군지부터 알아보고자 했다.
“회장님? 저분들은 누구죠?”
“앗, 이거 미안하네. 자이스 가문의 키안과 빅터일세. 피터와 유리의 가족분들이긴 한데…….”
“가족끼리 마찰이 생겼다, 이거군요?”
“그렇지.”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다.
미국에도 몇 없는 SS등급의 헌터인 키안 자이스. 그리고 과거 유리와 수아의 대화에서 언급되었던 유리 자이스의 친동생인 빅터 자이스.
남매끼리 티격태격하는 것은 나라를 막론하고 발생하는 법.
그러나 그 둘이 헌터이고 중급에 달하는 정령을 다루는 정령사들이라면 평범한 싸움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터.
이곳 농장의 주인으로서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진우가 아니다.
“죄송하지만 싸울 거면 다른 곳에서 하시죠?”
“앗, 진우 씨. 죄송해요.”
“그럴 생각은 없었어요.”
일단 친분이 있더라도 결례를 범했으면 강압적으로 나서야 하는 법.
곧바로 사과하는 유리와 수아였으나 반대쪽.
자신들을 ‘갑’으로 생각하고 있는 강경파의 둘은 되려 진우의 압박에 불만을 표출했다.
“그쪽이 뭔데 상관이야?”
“나? 이 땅의 주인인데.”
“그럼 잘됐네. 여기 키우고 있는 이 가축 한 마리. 얼마야?”
“……팜오리는 파는 물건이 아니야.”
“그래? 쩝. 그거 아쉽군. 제법 맛있어 보였는데.”
대충 수아와 유리가 이성을 잃고 화를 냈던 이유를 알게 된 진우.
팜오리를 위해서 화를 내준 거라면 오히려 진우가 고마워 해야 할 입장이다.
뭐, 그건 그렇고.
“호오, 자네가 그 김진우로군? 마침 잘 되었어. 자네가 전성에 납품하고 있는 물건들 일부의 독점을 주장하고 싶네. 얼마면 되겠나?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말만 해 보게.”
“이보게, 키안! 그건 아니지 않나!”
“어허, 약속은 먼저 전성이 어기지 않았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사과는커녕 다짜고짜 진우의 농작물과 약초들을 독점적으로 구매하겠다는 의도.
확실히 과거 백지수표를 건네주었던 거대 가문답게 자금력은 든든하다 이건가?
그런데 말이지.
“저는 전성을 통하는 게 아니면 안 팔 건데요?”
“뭐, 뭣?”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상인은 신뢰와 신용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라고 체르 선배님께서 누누히 가르쳐 주셨다.
한 번 신뢰가 깨지면 그 이후부터는 나락의 연속만이 있을 뿐.
돈이 상인을 찾아오게 만들어야지, 상인이 돈에 눈이 멀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삐! 삐삐삐!
“그래, 괜찮아. 이리로 오렴 얘들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되는 데다가 농사에도 수많은 도움이 되는 이 팜오리들을 식용 가축으로 생각하다니?
뭐, 처음 진우도 농장으로 팜오리를 들일 때에는 가축으로 생각하긴 했어도 지금은 엄연히 가족이다.
지룡이도, 엔코도, 시오도, 보석 꿀벌과 누에도.
늘 암살을 시도하기는 해도 녹용을 제공해 주는 고마운 사슴인 뮤린까지.
모두 진우에게 있어서는 가축 그 이상의 가족이 된 지 오래다.
상인이 뭐든지 다 판다고는 하지만 가족은 팔지 않는 법.
“자네. 그 말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나? 감당할 수 없을 텐데?”
“키안 자이스라고 하셨던가요? 지금까지 저한테 그렇게 말하고 좋은 꼴 본 대상이 없습니다.”
새삼스럽지만 국가 단위의 러시아부터 초월자인 니드호그까지.
‘감당’이란 말을 꺼낸 이후로 좋은 꼴을 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끌끌, 재미있는 청년이로군. 내 나이 70을 먹는 동안 이런 대접을 받는 건 처음이야.”
“70세면 저한테는 그렇게 어르신도 아니거든요.”
“건방진…… 아무래도 네 위치부터 인식시켜 줘야겠구나.”
“아버지! 이건 선을 넘으신 겁니다!”
“넌 빠져라, 피터!”
“저는 괜찮습니다.”
자고로 뭐든지 상대적이라고 했던가?
이미 900살 넘게 먹은 드워프부터 세계수의 숲에 있는 브락시온과 티리에나, 체르 등의 선배님들.
그리고 몇 살인지도 모를 니드호그까지 생각하면 확실히 70대의 나이는 진우에게 그다지 높아 보이는 나이도 아니었을뿐더러,
“소환하신 상급 정령은 장식품인 건가요?”
“이 무슨…… 뭣들 하는 거냐, 이프리트!”
– 계, 계약자여. 우리는 저자를 공격할 수 없다.
– 부디 명령을 거두어다오.
2개체에 달하는 불의 상급 정령인 이프리트.
키안 자이스를 SS등급의 헌터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그 힘도 태초의 불.
불의 정령왕 샐리온과 계약을 한 진우의 앞에서는 따끈따끈한 거대 모닥불에 불과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