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의 정령왕
10조라는 금액.
확실히 개인은 물론이요,
대기업의 회장이라고 해도 선뜻 융통하기 쉬운 금액은 결코 아니다.
일단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는 턱도 없고 주식의 일부를 매각해야 가능할 정도.
다만 그렇게 되면 주주로서의 위치에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다.
“10조는 너무 과하려나요?”
“아니, 괜찮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다 방법이 있지. 대신에 하루 정도만 시간을 줄 수 있겠나?”
“하루면 충분하겠습니까? 일주일 정도까지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음! 아닐세. 전성의 자존심이 있지. 하루 안에 계좌로 보내 두겠네.”
“감사드립니다.”
허나 세상사 어디에나 방법이란 찾아보면 있기 마련인 법.
정국진이 보유한 것은 오로지 주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도 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아.’
그의 취미 생활 중 하나인 골동품 수집.
그중에는 실제 감정가로만 수백, 수 천억 단위를 오가는 예술품도 적지 않게 있다.
경매를 통해 비싸게 매입을 한 것치고 바로 판매를 하면 손해를 보긴 할 테지만, 한낱 장식품보다는 사람과의 신뢰가 우선이지 않겠나?
특히 그 대상이 눈앞의 진우라면 더욱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 당장은 러시아와의 무역 활로를 크게 뚫은 수준이나 나아가서는 여러 국가와의 관계를 돈독히 다질 수 있게 될 터.
실제로 미국의 실세라 할 수 있을 대통령인 테일 로렌트가 진우에게 보내고 있는 러브콜은 전성에게도 겸사겸사 같이 온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이거 정말로 파는 거 맞아? 나중에 후회하면서 다시 돌려 달라고 하는 거 아니지?”
“내가 돼 먹지 못한 놈도 아니고 설마 그러겠나?”
“저번에 팔아 달라고 사정을 해도 안 팔아 줬던 경험이 있으니 그렇지. 아무튼 고맙다. 덕분에 거실이 휘황찬란해지겠어.”
“그려. 분위기 하나는 끝내줄겨.”
그렇게 하나둘 팔려 나가기 시작하는 예술품들.
이미 이 바닥에서는 골동품 수집가로 정평이 나 있는 정국진답게 매물을 풀자 수집가들은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하나씩 팔려 나갈 때마다 금쪽이들이 잘려 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대국을 본다면.
단순히 장식만 해 놓을 수 있는 예술품보다는 전성의 직원들의 미래까지 생각하는 이 선택이 백번 옳을 터.
“후우…….”
허나 그렇다고 해도 마음 한 켠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나하나가 오직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진품들이니 오죽할까?
그래도 이미 결정은 내렸고, 덕분에 가지고 있던 현물들까지 합쳐서 7조라는 금액까지는 땡기는 것에 성공했다.
남은 3조 정도는 주식을 내놔도 50%의 마지노선은 충분히 지키고도 남을 일.
하지만 주식을 매각하기 전.
정국진은 임 비서의 노크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인가?”
“부회장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들여보내도 괜찮을까요?”
“수아 말인가? 음, 그렇게 해 주게나.”
안 그래도 자식 같은 예술품들이 팔려 나가는 상황이었는데 진짜 자식의 등장이라니.
이 만한 힐링이 또 어디 있을까?
자고로 한 기업을 이끄는 회장이라고 해도 결국은 아버지다.
예쁜 딸래미 앞에서는 누구든지 딸 바보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법.
“아버지. 자금 조달하는 부분은 저도 도와드릴게요.”
“됐다. 수아 너에게 요청할 정도로 이 애비가 부족한 몸은 아니다. 돈이 있으면 불릴 생각을 하거라.”
그렇기 때문일까?
딸이 도움을 준다는 소리에도 기쁘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아직 20대 초반의 젊고 젊은 나이.
그러면서 중급 정령과 계약을 한 인재이기도 한 수아는 훗날 전성을 이끌 회장이 될 몸이기도 했다.
결혼 자금도 그렇고 쌓아 둬야 할 돈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허나,
“그래서 도와드린다고요. 저도 진우 씨한테 침은 바르게 해 달라고요!”
“……어흠. 녀석. 숙녀가 되어서 침이 뭐냐, 침이.”
“언제부터 그런 거 따지셨다고. 제 이미지는 제가 알아서 챙기니까 걱정 마세요.”
“에휴. 그래. 얼마 정도 보탤 수 있겠느냐?”
예로부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고집 하나만큼은 자신을 쏙 빼닮았기에 물러서지 않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정국진은 끝내 백기를 들었고,
“3조 정도는 주식에 손대지 않고 문제없이 융통 가능해요!”
“……돈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코인이라도 한 게냐?”
“아뇨, 요즘 하고 있는 카페가 워낙 잘되고 있어서요. 재룟값에 비해 마진율이 장난 아니거든요. 얼마 전에 4호 점까지 서울 인근 게이트에 내기도 했고요.”
“…….”
알아서 척척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가는 경영력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 * *
미국으로 향하는 일등석 비행기 좌석.
그곳에 앉은 키안 자이스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핏덩이놈…….”
김진우.
놈에 대한 소식은 이미 많이 들어 본 키안이다.
미국의 또라이 테일 로렌트가 관심을 두고 있는 청년.
뭐, 확실히 농부로서 그가 수확해 내는 작물들의 질과 효과만 놓고 보면 자이스 가문으로서는 놓쳐서는 안 되는 인물이기는 했다.
인맥을 통해 들여온 작물과 약초는 정령의 기운을 한층 더 강화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공과 사는 명백히 구분해야 하는 법.
“대체 왜!”
키안은 아직도 자신이 그에게 패배한 이유를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도 몇 없는 SS등급의 헌터 자격증을 보유한 인물이 자신이지 않던가?
덧붙여 이프리트가 제대로 된 공격을 해서 막혔던 거라면 또 모를까.
놈은 아예 이프리트에게 공격조차 받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불의 거인인 이프리트를 겁먹게 만들게까지 하는 기행을 선보였다.
정신체이기에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정령이 겁을 먹는 일은 키안조차 평생 동안 보지 못했던 경험.
고작해 봐야 20대 중반.
자신의 손녀와 비슷한 나이의 청년이 어떻게 하면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불의 속성답게 금세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분노보다도 호기심이 드는 것이 정상이다.
어찌 되었든 정령사 또한 새로운 지식에 늘 목마른 직업 중의 하나.
그러나,
“어째서 공격하지 않은 거지?”
– 미안하다 계약자여. 그건 말할 수 없다.
“지금은 그놈도 없지 않느냐. 그냥 말해도 문제없잖아!”
– ……용서해라.
– 인간 세계에도 법이 있듯, 정령계에도 법이 있다는 것만 알아다오.
“허어…….”
자그마한 불씨 형태로 소환된 이프리트들은 하나같이 침묵으로만 일관할 뿐.
“어이구 속 터져!”
그러한 상황에 키안의 속은 터져 나갔고,
“아부지…… 누나, 살려 줘요!”
있을 때는 당연하게 여겼으나 없어지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안다고 했던가?
자이스 가문의 같은 강경파로서 홀로 할아버지를 따라나선 빅터 자이스.
그는 새삼 한국에 조금 더 남기로 한 누나와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낀 채 옆 좌석에서 샐러맨더와 함께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 * *
“크큭, 크크큭! 크흐흐흣!”
솔직히 말해서 10조라는 금액을 요구하기는 했다지만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진우다.
막말로 10조가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대기업도 뚝딱한다고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10조의 절반.
5조만 되더라도 만족스러운 선금이 되어 줄 터.
그런데 이게 웬걸?
[입금액 10,000,000,000,000원 / 전성 물산]역시 대기업 클래스는 어디 안 간다고.
성능이 확실하다 못해 끝내줄 지경이다.
약속한 대로 단 하루.
아니, 반나절의 시간 만에 10조라는 금액을 마련해서 계좌로 바로 쏴 줬다.
일개 개인으로 10조 원의 돈을 소유하게 될 줄이야.
이 정도면 한국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는 꼽히고, 세계적으로 봐도 결코 꿀리지 않을 부일 터.
– 그대여. 머리라도 다친 건가?
– 태초의 물이시여. 인간은 가끔씩 저렇게 미친 듯이 웃는답니다.
–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것이 뭐가 그리 좋은지 참.
– 대지모신의 사랑을 받는 인간이라고 해서 다를 것 없죠.
– ……바위는 두렵도다.
물론 경제 관념과는 거리가 먼 정령들과 인간이 서로 이해하게 될 날은 없겠지만 뭐, 그다지 상관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특성 영단-정령화 (측정 불가)를 늦지 않게 구매해 줘서 정말로 고맙다 인간! 덕분에 살았어!] [11조 원이 출금되었습니다.]전성으로부터 앞으로의 계약 납품의 선금으로 미리 땡겨 받은 10조와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1조까지 합쳐 총 11조 원을 투자했다.
그 덕분에 잠깐이나마 일확천금의 부자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건만, 한순간에 돈이 ‘퍼가요’ 당해 버렸다.
아주 잠깐의 아쉬움.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아주 잠깐일 뿐이다.
[큰 손 구매 특전이 적용됩니다! 신용도가 5 상승합니다.]일단 거금을 사용한 만큼 달성되는 업적.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5의 신용도라고 해서 얕볼 수는 없지 암.
“돈이야 어차피 다시 벌면 되니까.”
꾸왁! 꾸와아아악!
삐삐! 삐삐삐!
지금도 열심히 농사를 거들어 주는 팜오리 군단이 든든하게 버텨 주고 있는데 뭐가 문제겠는가?
농부면 농부답게 농작물을 수확해서 또 다시 벌어들이면 그만일 뿐.
무엇보다도 11조라는 금액을 투자한 만큼 얻은 아이템도 결코 가볍지가 않다.
[선지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나.]“저야 늘 감사할 뿐입니다. 여신님.”
지금의 진우를 존재하게 해준 영혼의 파트너, 대지모신.
흥정의 여신님께서 준비해 준 정령화의 특성 영단.
총 다섯 속성의 정령왕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진우를 위한 특성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그것을 진우는 망설임 없이 삼켰고,
[선지자여, 너를 믿는 나를 믿도록. 결코 너 자신을 잃지 말아라.]여신님의 마지막 조언을 자장가 삼곤,
[새로운 특성, ‘정령화’를 획득합니다.]눈앞의 알림음과 함께 진우는 익숙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금 몰려오는 졸음을 받아들였다.
* * *
특성 영단의 섭취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초창기 ‘야생을 받아들여라’ 영단을 먹었을 때도 찾아온 수마의 파도가 있었다.
물론 그때와 비교하면 진우도 레벨이나 능력치 적인 부분으로 많은 성장을 이루어 냈으나 이번의 특성 영단은 전설 등급이었던 ‘야생을 받아들여라’보다 몇 등급은 위에 있을지 모르는 ‘측정 불가’의 격을 자랑한다.
거기에 덧붙여 앞서 언급했듯.
진우는 무려 4대 속성의 정령왕과 계약하고, 어둠 속성의 정령왕인 탈레이만도 계약은 아니더라도 힘을 빌릴 수 있는 상태.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에 따른 반작용이 큰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법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현재 진우가 있는 공간.
우주처럼 텅텅 빈 안에서 홀로 존재하고 있는 진우는 익히 알고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비추어지지 않는다.
– ……이게 나라고?
보통의 인간처럼 입이 아닌.
마치 정령처럼 사념을 통해 대화를 하는 진우의 목소리.
그리고 단순히 사념만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의 정령왕]노이즈가 낀.
알 수 없는 속성의 ‘정령왕’이 되어 있는 진우의 현재 모습.
거대하면서도 초월적인 힘을 지닌 이 상태는 진우도 본 적이 있다.
정령계에서 마주했었던 4대 속성의 정령왕.
진우가 발휘하는 마력의 힘이 아닌.
그들이 본신의 힘을 전부 다 발휘했을 때의 모습.
이것은 정령화 영단의 효과로 인한 것일까?
아니면 미래의 결과인 걸까?
머리가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서 ‘인간’이었던 시절의 김진우에 대한 기억이 점차 물을 섞은 듯이 희석되기 시작한다.
– 내 이름이 뭐였지?
찰나의 시간.
아니, 억겁의 시간이 흐른 것인지 모르겠으나 서서히 잊혀져 가는 기억.
[당신은 ■■■의 정령왕입니다.] [해당 속성의 정령왕으로서 의무를 지키기 위해 하위 정령들을 탄생시키세요.]그러한 자신에게 알 수 없는.
그러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중압감이 더해진 의무가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