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184
185화 용언의 약속
두들겨 맞은 뒤 작은 고추의 매콤함을 맛보게 된 영향이라고 할까?
아직도 찢어 발겨진 하늘에서 머리만 대롱대롱 삐져나온 채 혀를 빼물고 있는 니드호그.
허나 놈은 죽은 것이 아니다.
평범한 생명체가 아닌 초월자에 속하는 드래곤.
진우도 드래곤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알고 있다.
“일단 해츨링은 아니라는 거지.”
머리 크기만 봐도 몸통의 크기를 대략 유추할 수 있다 했던가?
새끼 드래곤이라고는 볼 수 없는 몸뚱아리.
어찌 되었든 하나 확실한 것은 드래곤의 생명력은 상당히 질기다는 것과 더불어 회복력도 발군이라는 거다.
– 크흐으으으…….
“뭐야, 벌써 일어났네?”
한 입도 아니고 포대 단위의 고추를 쏟아부었다.
제아무리 맵부심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족히 며칠은 앓아누울 정도의 양.
뭐, 인간과 드래곤의 장 크기와 소화 능력도 감안해야 될 테지만 진우가 생각하기에도 좀 과하게 사용했는데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 정신을 차린다.
– 같잖은 미물들 따위가 감히! 이 몸에게 이런 치욕을 주다니!
“그런 미물한테 패배해 놓고 말은 잘한다?”
– 비열한 공격을 한 네놈이 할 말인가!?
“정정당당을 부르짖기 전에 네 몸뚱아리부터 생각하고 말해.”
정의로운 승부?
안타깝지만 이 세상에 그런 건 없다.
애초에 당장 지구만 하더라도 역사에 ‘정의’로서 새겨진 것의 십중팔구는 승자의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꼬우면 이기면 그만이라는 거다.
“좋아. 우선 네가 알고 있는 것부터 다 말해봐.”
– 흐흐, 내가 왜 알려 줘야 하지? 차라리 죽여라.
“애초에 쉽게 알려 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 그래도 고통받고 말하는 것보다는 편하게 말하는 게 좋잖아?”
– 크하하하하하-!!!
대놓고 고문하겠다는 말에 니드호그의 머리가 호탕하게 웃어 보인다.
– 크르르르, 이 몸이 고통에 몸부림칠 거라고 생각하나? 나스트론드. 너 같은 미물들의 피부 따위는 단숨에 녹여 버리는 독의 늪지대에서 살아가던 것이 바로 나다. 내가 고통이요, 고통이 나인데 같잖은 미물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짖고 있구나!
“흐음, 그래?”
– 크하하하하! 그렇다! 할 수 있다면 해 봐라.
애시당초 쉽게 풀릴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는 니드호그.
드루이드 선배님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진우는 놈을 제압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터.
허나,
누가 그랬던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그런 자신감? 오히려 좋아.”
– ……응?
자고로 바로 배신을 때리는 녀석보다는 반항심이 있는 쪽이 좋기 마련인 법.
그리고 진우는 놈에게 색다른 고통을 선사해 줄 예정이었으니,
“눈 크게 떠야지?”
– 뭐?
치이익-!
– 끄아아아악!
눈으로 침투하는 억 단위의 스코빌 지수를 자랑하는 고추 농축액 스프레이.
순수한 자연의 독극물의 힘.
“이제 시작이야. 입 벌려, 유기농으로 수확한 작물 들어간다.”
– 그, 그만! 제발! 으아아아악!
본디 고문이라고 해서 그저 육체를 때리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농부인 진우다.
세상에 어찌 그런 야만적인 짓을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니드호그는 이미 제 입으로 말했다.
육체의 고통 따위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다면 해답은 하나뿐이지 않겠나?
육체가 아닌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식고문.
‘괴식고문이 최고지.’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괴식의 영역.
일전의 고추는 시작에 불과할 뿐.
진우가 준비해 온 작물에는 생강과 피망, 양파 등.
톡 쏘는 매운맛을 극도로 증폭시킨 호불호 강한 작물들이 한가득이다.
한마디로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 봤어’ 그 자체!
그것으로 끝이겠는가?
“민트 초코 츄라이, 츄라이~”
한국의 정이 담긴 민트 초코맛 음식까지 가차 없이 들이붓는다.
– 시, 싫어! 나갈 거야! 나갈 거라고!
극한의 괴식 테러에 입이 청결(?)해진 니드호그가 고통에 울부짖었지만 그런다고 멈출 진우가 아니었으니.
“어허,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
“크흠, 고통받는 모습이 달콤해 보이긴 한데 마음 한 켠으로는 참으로 두렵군. 세상에 저런 고문이 있을 줄이야.”
“저 녀석이 적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군.”
“동감일세.”
눈앞에서 괴식고문을 직관한 드루이드 선배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얼굴이 창백해졌고, 진우가 아군이었다는 것에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 * *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존재하듯.
세상 어디에나 말에는 힘이 깃들기 마련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태생부터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절대적인 생명체인 드래곤에게는 그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용언이라는 게 존재한다.
마법을 사용할 때 캐스팅을 할 시간을 현저하게 줄여 주는 것은 물론이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마나를 불어넣을 수 있는 드래곤이라는 종족이 지닌 고유의 힘.
그렇기에 드래곤이 용언을 담아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어기는 순간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진우가 어떻게 알고 있냐고? 그야…….
[대지모신이 음흉한 미소를 짓습니다.]말해 뭐 할까.
주신격 초월자인 대지모신 님.
물론 알려주는 것에는 선이 그어진 것처럼 한계가 있긴 했지만 애초에 먼저 그 선을 넘은 것은 눈앞의 니드호그다.
불쌍해 보이냐고?
“불쌍하기는 개뿔.”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멋대로 지구로 넘어오라고 했나?
그룩 토르산을 비롯한 수많은 드워프를 납치했던 것도 그렇고.
결국 따지고 보면 녀석. 니드호그는 갱생이 불가능한 도마뱀이라는 것이 진우의 결론이었다.
니드호그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최후의 백기를 들어 올렸다.
– 이, 이제 그만. 알겠다. 약속하지.
“그래. 용언으로 약속해 줄 거라고 믿고 있어.”
– 그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다 방법이 있지. 미물이라고 무시하면 곤란해?”
까득-
“어? 지금 설마 이 갈아붙인 거야?”
– 그, 그럴 리가 있겠나! 그저 너무 기뻐서 그런 거다.
“그러게 처음부터 협조적으로 나왔으면 얼마나 좋아?”
– ……독한 놈.
그래도 너무 억울해할 건 없다.
원래 몸에 좋은 것의 대부분이 입에 쓰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리고 실제로 녀석의 눈에 뿌렸던 스프레이를 제외하고 입으로 먹여준 작물들은 대체적으로 몸에 좋은 편이다.
뭐, 맛은 보장할 수 없고 진우도 자신에게 이것들을 권하면 법규와 함께 거절할 테지만 말이다.
“저거 구라 치는 거 아니고 확실하게 용언으로 한 약속 맞죠?”
[대지모신이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크르르, 드래곤의 용언에 거짓은 없다.
“그럼. 믿어야지, 암.”
어쨌든 계획대로 니드호그의 용언으로 약속은 확실히 받아 두었다.
니드호그보다 상위격에 속하는 대지모신의 눈을 속일 수는 없을 터.
– 그럼 이제 부탁인데 넘어가도 되겠지? 이렇게 된 이상 나도 헬헤임으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헬라가 이 사실을 알면 날 죽일 테니 말이야.
“좋을 대로.”
용언의 약속이 대지모신의 눈을 속일 수 없는 것처럼 헬라에게도 들킬 수밖에 없는 일.
또한 애초에 니드호그를 이대로 놓아줄 진우도 아니다.
쿠우웅-!!!
– 후우, 드디어 살 것 같군.
“미친. 진짜 더럽게 크긴 크네.”
그저 땅에 내려앉았을 뿐인데 인근에 위치해 있는 건물들이 모조리 붕괴된다.
거대한 몸집 자체만으로도 흉기이자 재앙이라 할 수 있을 니드호그의 거체.
그나마 여기가 중국이라서 다행이지.
한국이었으면 재산 피해가 어마무시했을 거다.
“그나저나 이 상태로 돌아다니게 할 수도 없고. 어쩐다?”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재앙인 니드호그다.
심지어 눈에 너무나도 띄기까지.
최악의 환경 요소는 다 갖춘 녀석이었지만 해결 방안은 생각 외로 간단했다.
“어이, 도마뱀. 둔갑할 줄 아는 거 다 알고 있다. 좋게 말할 때 인간으로 변해라.”
잔나비 대전사 시드.
진우 이전에 니드호그와 투닥거린 전적이 있던 그답게 기술들을 알고 있는 모양.
– 이 육신은 태어날 때부터 나에게 주어진 것. 같잖은 미물 따위의 말에 응할 이유는…….
물론 늦깎이 사춘기의 반항이 찾아온 니드호그가 쉽게 거기에 호응해 줄 턱이 없겠으나 진우가 누구던가?
쓰윽-
– 끄응, 응하도록 하겠다.
진우가 스프레이를 꼬나 쥐자 얌전 모드로 전환되는 녀석.
드래곤도 자기 몸은 끔찍이도 아끼는 법.
그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한 니드호그는 꽤나 미남인 편에 속하는 남자가 되었다.
흑발 흑안을 지닌 큰 키의 외국인이라는 다소 이국적인 모습.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현 세상에서는 성공하기 딱 좋은 외모다.
‘그래 봤자 빛 좋은 개살구지.’
뭐, 그렇다고 해서 관심은 없다.
일단 남자이기도 하고 그 본모습이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진우다.
겉으로는 호감형 외모라 해도 내면이 중요한 법 아니겠나?
“좋아. 그럼 일단 하늘에 뚫은 통로부터 닫아. 보기 흉하니까.”
“……인간 따위의 말을 따를 마음은 없지만 용언의 이름으로 약속을 했으니 어쩔 수 없지.”
어차피 해야 될 일이면 좋게 좋게 하면 참 좋을 텐데, 쯧.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괴식을 통해 이 도마뱀의 인성 교육을 한 차례 더 진행하기로 마음속 깊이 생각하는 진우였다.
* * *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표현.
그것은 확실히 맞는 말이다.
“삐약 소협이다!”
“우린 살았어!”
“오오, 오리느님이시여!”
처음에는 게이트의 폭주와 함께 쏟아져 나온 오리들이 주를 이룬 가축 웨이브에 당황하기 바쁜 사람들이었지만 인터넷과 뉴스, 그 밖의 소문 등으로 널리 알려진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들은 팜오리 군단이 등장할 때마다 환호성을 내지르기 바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래 봤자 한낱 짐승에 불과한 오리야! A등급 헌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으아아! 오리고기로 만들어 주마!”
헬라의 명령에 의해 실력 있는 헌터들의 사냥에 나섰던 이들.
하지만 그들은 얼마 되지 않아서 팜오리들의 날개 뺨싸다구와 닭발당수를 얻어맞으며 꼼짝도 못한 채 제압당하기 바쁘다.
“씨바아알! 무슨 오리가 이렇게 강한 건데?”
“으읍! 으으으읍!”
그 상대가 A등급이든, 설령 S등급이라고 하든 간에 물량 앞에 장사 없다고.
순식간에 제압해 내는 팜오리 군단의 업적.
물론 팜오리들이 전설 등급의 가축이라고 해서 무적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주제도 모르는 조류들 따위가!”
유럽의 강대국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프랑스.
그곳에서도 SS등급의 헌터는 존재한다.
쿠구구구구-!!!
기세를 방출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압을 떨쳐 보이는 백색의 기사, 데이브.
지금에 와서는 헬라의 힘을 부여받고 강해진 데다가 헌터들을 죽이는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이제는 ‘타락한 백색의 기사’로 불리고 있지만 그런 것에 연연할 그가 아니다.
“모조리 죽여 주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팜오리를 도륙하기 위한 발도.
허나,
깡-!
강력한 위세를 떨치며 쏘아진 데이브의 검기는 애석하게도 오리들에게 닿기도 전에 소멸되었다.
크기를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지닌 지렁이.
대체 언제부터 숨어있던 것인지 거리의 단단한 도로를 가볍게 뚫어 버린 지렁이의 피부는 무슨 강철로 이루어져 있는지 데이브의 연속적인 공격에 흠집도 나지 않았다.
“무, 무슨 이런 괴물이…….”
어처구니가 없는 것을 넘어서 서서히 몰려오는 공포.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고 했던가?
– 아프다. 흙을 짓밟고 오리를 해치려고 했다. 너, 나쁜 인간이다. 그렇지?
“어? 자, 잠깐만! 우리 대화로 하자고!”
– 지룡은 그런 거 몰라. 나쁜 인간. 흙의 양분으로 파묻는다!
“아, 안 돼!”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지능을 갖추고 있는 지룡.
그 깔끔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프랑스의 타락한 백색의 기사, 데이브는 그대로 흙에 파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