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211
212화 헬헤임의 거인들
죽은 자들의 세계인 헬헤임.
보통의 경우라면 말 그대로 죽은 자들만이 머무르는 차원이었지만, 예외가 없던 것은 아니다.
바로 그룩 토르산과 같이 강제로 납치당해서 잡혀 온 드워프들.
함께하는 동안 이미지가 좀 좋아지긴 했어도 니드호그와 일곱 마리의 뱀들이 한 짓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점은 변함없다.
그리고 도둑이 제 발을 저리는 법이라고.
니드호그와 뱀들도 제 잘못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때의 일이라면 이미 몇 번이고 사과했지만,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사과하겠다. 용서해다오.”
“용서는 무슨. 그런 것보다 드워프들은 다들 멀쩡하게 살아 있는 거 맞지?”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가 여기 있으니 감시로부터 벗어난 지 오래일 거다.”
“허, 뚫린 입이라고 말은 참…….”
재차 사과를 해도 뻔뻔하기 그지없는 태도.
동시에 진우는 니드호그의 눈동자가 뒤로 스리슬쩍 돌아가는 걸 확인했다.
비록 어떻게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알게된 놈의 버릇적인 행동.
저것은 무언가 숨기는 게 있을 때의 표정이다.
“드워프들을 납치한 거. 그거 네가 스스로 생각해서 한 거 아니지?”
“어, 어떻게 그걸……!”
“니드호그 님!”
“아앗, 무슨 헛소리냐. 내가 고인과 모인을 시켜서 데려왔었던 것을 기억하거늘.”
“어차피 잘못한 건 똑같은데. 그냥 털어놔봐. 누구야? 헬라가 시킨거야?”
“그, 그건 아냐. 헬라는 드워프에는 관심도 없었어.”
“헬라가 아니라는 건 확실히 다른 녀석이 있다 이거잖아? 응?”
“……끄응, 인간. 생각하는 바가 맞긴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건 지금으로선 말할 수 없다.”
민초나 그 밖의 요리들을 먹을 때와는 전혀 다른 진지한 모습.
아마도 최소 주신격 초월자가 지시한 내용인 모양이다.
같은 초월자라고 해도 급이 다른 이들.
수명이 무한할 뿐이지 죽음까지는 피할 수 없는 것은 초월자들도 필멸자와 마찬가지다.
‘대지모신 님은 아는 바가 없으신가요?’
[나도 다른 주신격 초월자들이 벌이는 일의 범위까지는 알 수 없다, 선지자여.]웬만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대지모신도 모르는 경우의 수.
하긴, 이해가 되는 것이 대지모신이 전부 다 안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다른 주신격 초월자들도 모두 다 알 수 있다는 뜻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진우가 지금까지 성장하기도 전에 초창기 시절 헬라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 일.
순간 진우는 근본의 고추 고문으로 입을 열게 만들까? 하는 고민이 잠깐 고개를 들었지만 이내 금세 진정시켰다.
‘니드호그랑 그라바크, 오프니르까지. 아직 이용할 가치는 있으니까.’
진우도 인간인 이상 호기심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저들을 잃어도 될 정도는 결코 아니다.
적일 때에는 거슬렸지만 아군이 되었을 때의 이점은 이미 수없이 겪어 본 바.
“좋아.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누구에게나 사정이라는 건 있는 법이니.”
“이해해줘서 고맙다. 역시 인간은 배려를 아는 생명체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냥 모른 척 넘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리고 애초에 니드호그가 사과해야 될 대상은 진우가 아니라 따로 있지 않은가?
“자, 그러면 같이 가자.”
“응? 어디를 말인가?”
“어디기는. 너희 집으로 가서 드워프들한테 사과해야지. 누가 시켰다고는 해도 납치가 합법인 건 아니거든?”
“…….”
모름지기 첫인상이 중요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터.
니드호그의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나스트론드에 있을 드워프들에게 얼굴도장을 제대로 찍을 준비를 한 진우였다.
* * *
독으로 이루어진 늪지대로 인해 짙은 독무가 늘 끼어있는 나스트론드.
이곳에는 철저하게 구역이 나뉘어져 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죽은 자와 산 자.
늪지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언데드들과 달리 그 위에서는 납치되어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드워프들이 줄을 이루고 니드호그의 용아병들이 간수로서 그들을 감시한다.
아주 약간의 자유만이 허락된 드워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작업에 열중하고 있어야 되는 것이 정상일 터였다.
허나,
“……니드호그. 이거 설마 전부 다 너희들 짓이야?”
“그, 그럴 리가! 저기 부서진 내 용아병들을 보면 알지 않나. 이건 침입자가 있었던 거라고!”
진우의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처참하게 짓뭉개진 드워프들의 시체들이다.
헌터 생활을 하다 보면 늘상 보게 되는 것이 죽음이라지만 드워프는 그룩과 만트로 인해 이제 진우에게 있어서 몬스터나 타종족의 영역이 아닌 하나의 가족과 마찬가지다.
비록 그룩과 만트는 아니라지만 비슷하게 생긴 드워프들이 죽어 있는 광경은 썩 유쾌할 수가 없을 터.
당연하게도 그들 대부분이 천둥산의 일족.
즉, 그룩 토르산의 친족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 안 돼!”
그런 이들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 그룩의 기분을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룩의 절망 어린 비명에 진우는 분노가 들끓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일찍 찾아올 걸 후회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와 이 일의 원흉에 대한 분노였다.
[선지자여. 모든 생명을 구할 수는 없다.]그리고 마주하게 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다.
물론 대지모신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짓뭉개지고 갈갈이 찢겨 나간 드워프들의 시신 속의 혈액.
그것은 하나같이 죄다 응고된 상태였다.
한마디로 죽은 지 오래되었다는 뜻.
뭐, 종족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진우에게는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그룩이 있다. 단 어디까지나 시체의 사망 시기가 언제인지 정도를 유추하는 것뿐이겠지만 그게 어디인가?
다만 진우도 어느 정도 눈치는 있다.
울부짖고 있는 지금 그것을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진우가 그룩에게 시간을 주고 자신도 천둥산의 드워프들에게 묵념을 하던 찰나였다.
“잠깐. 그룩 님. 드워프분들이라면 이곳 헬헤임 어딘가에 계시지 않을까요?”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겠어. 지성도, 이성도 없는 언데드일 텐데.”
“제가 수확한 농작물들의 질이 어떤지는 잘 알고 계시죠?”
새삼스럽지만 이곳은 헬헤임이다.
죽은 자들의 세계인 만큼 드워프들이 죽었다면 언데드가 되어서 헬헤임의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확실히 그룩의 말대로 언데드가 되었을 테지만, 애시당초에 진우가 헬헤임을 찾아온 원인이 무엇이던가?
바로 소울 콜렉터.
죽은 자를 살려내는 약초의 씨앗을 얻고 재배하는 것이 목표 아니었던가?
물론 고작 짧은 시간을 살려 내는 것이지만 진우는 자신의 농부로서의 잠재력을 믿고 있다.
핑크 인시리움과 같이 앞선 수많은 사례처럼 소울 콜렉터도 한층 더 강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예컨대, 기간을 크게 늘리거나 영구적인 부활도 꾀할 수 있을 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단은 드워프분들을 이렇게 만든 놈들을 가만히 둘 수는 없지 않겠어요?”
“…….”
설령 영구적인 부활이 불가능하다 해도 일단 살리는 것만으로 범인을 알아낼 수 있으니 밑져야 본전 이상이란 말씀!
복수.
그 두 글자에 절망과 울적함으로 가득하던 그룩의 표정에 활기가 돌아온다.
누군가는 복수가 아무런 득도 없는 비효율적인 일이라고도 하지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내가 못난 모습을 보였군. 지금 바로 준비하지.”
“예.”
당장에 힘을 불어넣는 원동력.
연료가 되어 주는 것만으로도 복수는 충분히 그 가치를 톡톡히 해냈다.
* * *
분노의 힘.
그것이 그룩을 자극해 낸 덕분이랄까?
“저쪽으로 쭉 달리게.”
수백 년도 더 된 기억 속에서도 그룩은 거침없이 앞으로 질주했다.
물론 스스로의 발이 아닌 니드호그에 탑승한 상태다.
평소라면 인간이나 드워프를 태우고 움직이는 것에 몸서리를 치며 난리블루스를 치고도 남았을 일.
허나 앞선 광경을 목격한 덕분인지 니드호그는 군말 없이 움직인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중간중간 알아서 니드호그를 피해 가던 언데드들의 숫자가 줄어들더니 이내 게이트에 들어가기라도 한 것마냥 주변의 환경이 순식간에 변화된다.
헬헤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녹음으로 우거진 공간.
– 이제 어디로 가면 되나, 천둥족의 드워프.
“그, 그게…….”
– 왜 그러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
“내가 처음에 왔을 때는 이렇게까지 복잡하지 않았네.”
– 그 소리는 설마…….
“지형이 변형되었다는 것이지.”
마치 미로같이 덩굴과 식물 뿌리가 뒤엉킨 모습에 자신만만하던 그룩이 인상을 찌푸린다.
하기사 늘 황무지 같은 헬헤임과 달리 이렇게 식생들이 자라고 있을 정도라면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서로 얽히고 얽혀서 길이 생기게 되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미로 같은 곳에 아무 생각 없이 머리부터 들이미는 것은 가장 최악의 판단일 터.
그러나 진우에게는 길을 안내해 주는 길잡이가 그룩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싸아아아아—
이곳에 도착하는 것이 발동의 조건이었을까?
이제 자신의 차례라고 말하는 듯.
진우의 왼손에서 뻗어 나가는 녹음의 빛.
미로로 향하는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제는 척하면 척인 진우다.
“저기로 가면 돼.”
– 하아, 인간.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피곤해질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엔 파괴하는 수를 택하는 길밖에 없을 수도 있어.
꽤나 합리적인 말을 했으나,
“토달지 말고 좀 가.”
– ……정 그러면 네 발로 가면 될 거 아니냐.
“네가 더 빠르니까 그렇지. 들어가기만 할 거야? 나올 생각도 해야 할 거 아니야.”
– …….
지금 그딴 게 중요하겠냐.
녹음의 빛이 알려 주는대로 가서 손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무엇이 걱정일까.
빠른 탈 것(?)도 있겠다.
소울 콜렉터를 바로 써먹어야 할 이유도 있겠다.
이유 있는 독촉에 니드호그가 빠르게 달리는 것도 잠깐일 뿐이다.
어째서인지 왼손에서 흘러나오는 녹음의 빛이 붉은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처음 겪어 본 현상이지만 그냥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느낌.
“멈춰.”
– 크르르르, 가라고 했다가, 멈추라고 했다가. 내가 택시인 줄 알아?
“기척 최대한으로 감춰서 이동할 수 있어?”
– 가능이야 하지. 그런데 이곳에서까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이동속도도 엄청 느려질 뿐만 아니라 힘도 적지 않게 소모될 거다.
“느낌이 좋지 않아서 그래. 한 번만 좀 믿어 줘 봐.”
– ……알겠다 인간. 너니까 믿어보지.
자존심 빼면 시체인 드래곤이지만 그래도 어찌 되었든 한 번 승리를 점했던 진우의 설득인 탓일까?
덧붙여 대지모신은 물론이요,
헬라와 로키와 같이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격을 갖춘 초월자들에게도 믿음을 심어주었던 것이 바로 진우다.
그렇기에 초월자와 필멸자.
그저 미물로만 취급해왔던 인간에게 우호적으로 나가는 것 아니겠는가?
패널티 없이 제 힘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헬헤임에서조차도 말이다.
뭐, 펜리르에 대한 부분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도 포함하고.
그렇게 기척을 최대한 죽인 채 어느 정도 거리를 움직였을까?
니드호그는 서서히 시야에 들어온 이들의 모습에 눈을 부릅 치켜뜰 수밖에 없었으니,
– 저, 저놈들은! 거인? 어떻게 놈들이 이곳 헬헤임에 있을 수 있는 거지?
“왜? 거인이 있으면 이상한 거야?”
– 물론이다. 시체 골렘이라면 모를까. 살아 움직이는 거인. 그것도 저 정도로 기척이 없을 정도면 요툰들 중에서도 상당한 정예들이다. 필멸자와 초월자. 그 중간 끝자락에 걸친 상태지. 인간. 대체 그런 놈들이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감으로?”
– ……재수도 없군. 저것들이랑 관계되면 골치 아파진다. 이번에는 잠시 물러서는 걸 추천하지.
요툰헤임의 거인들.
특히 정예라면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
자존심 이전에 스트레스의 문제.
허나,
“근데 아무래도 깊게 관여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 그게 무슨? 내가 한 경고가 들리지도 않는 거냐?
“아니, 잘 들렸어. 하지만 쟤들을 어떻게 놔줘. 네 용아병들 부수고 드워프를 죽인 놈들. 바로 저 녀석들이거든.”
– 즉, 선빵은 저 녀석들이 먼저 쳤다?
“바로 그거지.”
정당방위가 성립되면 얘기는 달라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