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263
264화 이래도 미물이야?
‘아무리 이득이 좋다고는 해도 내가 약탈자는 아니니까.’
애당초에 농부라는 직업 자체가 남에게 있던 것을 강탈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키워서 먹는 자급자족에 가깝지 않던가?
뭐, 이제는 거느리고 있는 땅부터 팜오리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자급자족을 넘어서 엄청난 이득을 보는 지경에 이르른 지 오래다.
굳이 남의 떡을 넘보지 않더라도 될 정도.
물론 그렇다고 해도 거인왕의 경우처럼 선을 넘는 침략을 하는 등의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면야 가만히 놔두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미르도 어느 정도 잘못이 있기는 하다.
침략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무슨 잘못이냐고? 어떻게 보면 그게 잘못이다.
거인왕이 침략을 하고, 흐룽그니르와 수퉁이 서로 왕이 되겠다고 난리 치는 와중에도 가만히 있었던 것.
솔직히 미미르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다.
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는 것.
그건 더 이상 수호하는 것도, 모든 일에 있어서도 중립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니다.
사실상 방관에 가까운 무능.
그 결과 본래 거인들의 땅이던 요툰헤임이 떡하니 인간에 불과했을 진우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던가?
그리고 요툰헤임의 모든 땅의 주인이 된 진우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초월 등급의 영약이 흘러내리는 연못이 집 앞마당에 있다는데 그걸 보고도 그냥 봐주고 넘어가면 그건 착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다.
약탈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
“저는 미미르 님에게서 이 샘을 빼앗으려는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것들이 그렇게 지껄이다가 헬라를 보러 갔었지.”
“아뇨, 그런 의미가…….”
“시끄럽다. 우습기 그지없구나. 인간이여, 나는 지혜에 있어서 통달한 지 오래인 몸. 그러한 내가 그따위 세 치 혀에 놀아날 것 같으냐?”
뭐, 이러한 진우의 주장에 미미르가 ‘아, 그렇습니까?’하고 웃으면서 넘어갈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름 지혜의 거인답게 수퉁이나 흐룽그니르처럼 말로는 쉽게 쉽게 당하지 않는 현명함.
그러나 때때로 오래 묵은 현명함만큼 빈틈이 많은 것도 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쯧. 대지모신. 그녀가 선택한 인간이라고 해서 무언가 다를 거라고 생각했거늘. 역시 인간도 믿을 만한 족속이 아니야.”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지독하게도 쌓이게 된 선입견.
특히나 이렇게 지켜야 될 것이 있을 때는 더더욱 쌓일 수밖에 없을뿐더러, 혼자서 살아왔을 때는 더욱 시너지를 일으킬 수밖에 없을 터.
찾아온 모든 손님이 침략자요, 약탈자였으니 오죽하겠는가?
다른 이를 믿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의 최악의 환경.
허나 그러한 점이 문제라면 진우로서는 이 부분을 이용하면 그만일 뿐이다.
“제가 약탈을 하러 온 것이든 아니든 간에 하다못해 말은 끝까지 들어 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하! 좋다. 마음껏 말해 봐라. 네가 아무리 떠들어 봤자겠지만 말이지.”
“네. 그러시다면야. 흠흠, 제가 어디까지나 제안드리고 싶었던 건 미미르의 샘 주변의 환경을 좀 더 개선하는 게 어떻냐는 겁니다.”
“허어?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냐. 샘은 샘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것이다.”
지금까지 부정적으로만 반응하던 미미르가 유일하게 색다른 반응을 보인다.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어이없어하는 것이 명백한 반응.
여기에 진우는 멈추지 않고 화룡점정을 찍어 준다.
“아니, 그렇잖습니까. 명색이 수호자라면서요. 그러면 지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적의 환경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설마 수호자라고 해서 지키기만 한 건 아니죠?”
“…….”
“에이 설마 그러기야 하진 않겠죠. 그건 수호자가 아니라 방관자 아니겠습니까? 그럴 거면 그냥 골렘 세워 놓는 게 더 효율적이겠죠.”
“……뭐, 뭐야? 지금 그게 무슨!”
허를 찌르는 코리안식 팩트폭행에 얼얼할 정도로 타격을 받기라도 한 듯.
발작하며 몽둥이를 치켜든다.
‘지혜’의 거인과는 아득히도 거리가 멀어 보이는.
3대 1만은 치고도 남을 법한 꽉 찬 힘줄.
굳이 맞아 보지 않아도 아픈 것을 넘어서 죽음이 확정될 것만 같은 주먹.
그러나 아직 일말의 지혜는 남아 있던 것인지 몽둥이를 휘두르지는 않고 지켜보았으니, 미세하게 열린 그 틈을 놓칠 리가 없는 진우다.
“그래도 미미르 님은 골렘 같은 게 아닌 초월자 아니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크흠, 그렇지!”
전형적인 병 주고 약 주기.
인간 사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무력으로만 출중한 거인들의 사회에서는 처음이나 마찬가지.
당연히 내성도 없기에 직빵으로 먹혀든다.
“좋아. 그렇다면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봐라. 대지모신의 선택을 받은 인간이여.”
“감사합니다!”
무조건적인 거부에서 약간이나마 떨어진 승낙.
하지만 여기에서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은 고스란히 적용되었으니,
“단, 샘에 해로운 짓을 하거나 몰래 떠 가는 날에는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 좋을 거다.”
[지혜의 거인 미미르가 당신의 활동을 허락합니다.] [해당 퀘스트는 초월자의 힘에 의해 강제로 부여되며, 취소가 불가능합니다.]* 농부이자 대지모신에게 선택받은 당신의 개선 활동을 허락하기는 했으나 미미르는 오랜 세월 동안 누구도 믿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만을 믿으며 샘을 지켜 왔습니다. 혹여라도 샘에 안 좋은 영향이 조금이라도 발생할 경우 미미르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 해당 퀘스트는 실패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성공 시 : 1,000 신용도 획득, 미미르와의 우호 관계 및 축복
※ 미미르의 샘에 대한 약탈 및 안 좋은 결과 발생 시 : 미미르와의 적대 관계 및 강력한 저주를 받습니다. 이 저주는 죽음 이후에도 계속 적용됩니다.
※ 특이사항 : 대지모신이 당신을 굽어살펴 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강제로 부여된 통 큰 보상이 보장되어 있는 퀘스트.
그러나 ‘강제’라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
이 퀘스트가 진우에게 있어서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앞으로의 행동으로 결정될 일이었다.
* * *
미미르의 샘.
거의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끊임없이 초월 등급의 영약을 생산해 내는 알짜배기 생산처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는 볼 수가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 누가 만든 건지는 몰라도 정말이지 이것만큼 잘 맞는 게 없다니까.”
지혜를 품고 있는 현자의 우물로도 불리는 미미르의 샘.
허나 작물도 씨앗을 심고 거름을 주고 꾸준히 관리를 해 줘야 싹을 틔워 내듯.
미미르의 샘에서 흘러내리는 이 초월 등급의 영약들도 제대로 된 관리 없이는 속 빈 강정에 불과할 뿐이다.
아니, 애초에 먹지도 않고 이대로 썩히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문제다.
예로부터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인 법이라고 했던가?
제아무리 초월 등급이라고 해도 조금의 순환도 없으면 그 자리에 고일 뿐이요, 쓰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관상용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작물도 결국 섭취했을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되는 법.
물론 대놓고 미미르의 샘을 퍼 올렸다가는 그날로 미미르와는 적대 관계가 되고 ‘지혜’와는 어울리지 않는 저 헬창 주먹에 곤죽이 될 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니다.
“괜히 ‘아’ 다르고 ‘어’ 다르겠어?”
진우가 ‘직접’ 미미르의 샘에 손을 대는 것은 부정행위일 테지만 그 반대라면 얘기가 다르다.
즉, 미미르의 샘에 고여 있는 물이 진우 쪽으로 스스로 흐르게끔 조정하면 된다는 뜻.
그리고 이러한 일에 있어서 진우에게는 전문가가 무려 하나도 아니고 다섯 명이나 존재했으니,
– 어이 물씨. 준비됐어?
– 물론이지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고.
“역시 정령왕이야. 성능 확실하다니까.”
촤하아아악-!!!
어찌 되었든 연못 안에 위치해 있는 미미르의 샘물도 어쨌든 ‘물’은 물.
물의 정령왕 엘라인의 힘에 의해 진우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미미르의 샘 되시겠다.
* * *
진우가 정령왕들을 통해 고여 있던 미미르의 샘에 활기를 불어넣고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한편.
미미르는 초월자들의 네트워크로 발을 들였다.
미미르의 샘을 지키는 입장인 만큼 크게 벗어날 수 없기에 미미르로서는 유일한 삶의 낙이기도 한 공간.
물론 그 와중에도 감시의 눈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한다면 그날로 죽이면 그뿐이지.”
미미르의 샘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샘물의 양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언제나 경고성이 울려 퍼지게끔 설계된 미미르의 감시 체계.
이 정도로 독종이었으니 어지간한 초월자들도 귀한 것임을 알아도 감히 엄두를 못 내는 것이 바로 미미르의 샘물이다.
【대지모신 : 왔는가 미미르.】
“흥. 대지모신. 그대를 봐서 한 번만 기회를 줬을 뿐이니 너무 우쭐해하지 말도록 해라.”
【대지모신 : 하여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그 말하는 본새는 여전하구나.】
“내 나이가 몇 살인데. 꼰대질할 거면 저리 가. 어차피 그쪽 아니어도 대화 나눌 초월자들은 많거든?”
【대지모신 : 그래봤자 발두르 하나일 테면서 많기는 무슨.】
“끄응. 원래 친구란 양보다는 질이다. 마음 맞지 않는 친구를 사귈 바에야 맞는 친구를 사귀는 게 낫지.”
【대지모신 : 그 부분은 나도 동의한다.】
어째 필멸자와 초월자.
수명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비슷하면서도 다를 게 없는 이들의 대화.
물론 완전히 똑같다고 볼 수는 없다.
“그나저나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군. 대지모신. 이름 높은 필멸자들부터 어지간한 초월자들도 그대를 따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줄을 서고 있는 마당에 필멸자들 중에서도 하루살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니. 우습기도 하지.”
지혜의 거인 미미르.
대부분의 거인들과는 달리 어느 정도 지혜를 지니기는 했으나 그의 종족이 거인이라는 것은 변치 않는다.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는 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거인.
그러한 거인 종족에게는 엘프나 드워프의 수명도 적게 느껴질 터인데 인간이라면 어떠하겠는가?
100년의 세월도 하루살이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일.
허나,
【대지모신 : 거기까지. 선 넘지 마라. 뒤지는 수가 있단다 아가야.】
“…….”
헬창 미미르라고 해서 무서운 게 없다는 건 결코 아니다.
앞서 말하지 않았던가?
무한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는 수명을 지녔다 해도 ‘죽임’을 당하면 끝나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그런 의미에서 진심으로 공격해 오는 대지모신만큼 무서운 게 또 있을까?
“쯧. 대지모신. 아무리 그렇다 한들 나에게는 샘을 지키는 것이 숙명인 것은 변치 않아. 만약에라도 손해 되는 짓을 했다가는 내 목숨을 버리더라도 그대가 신뢰하는 인간을 죽이겠다.”
【대지모신 : 좋을 대로 해라.】
날 때부터 주어진 운명에 대해서는 대지모신도 나름 이해할 테니 내지른 말.
거기에 승낙의 뜻을 비쳤을 때 미미르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 말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지.”
그도 그럴 것이,
우웅- 우우우웅-!!!
미미르의 샘물의 양에 변화가 있음을 알리는 경고음.
결국 대지모신이 믿음을 준 인간이라고 해도 미물은 미물에 불과할 뿐.
이제 약속했던 대로 저주를 내리고 심판을 내리려던 찰나였다.
“……어?”
무언가 잘못 본 거인마냥 손으로 눈을 비비면서 몇 번이나 확인해 보는 미미르.
그러나 그가 보는 시선에 보이는 수치의 변화는 여전하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가 아닌 ‘+’로써 줄어든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늘어나고 있는 미미르의 샘물의 양.
무한히 샘물이 늘어나는 것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미미르가 놀라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다.
“수백만 년 동안 이러한 일이 없었거늘!”
8,150,022라는 결코 짧지 않은 삶을 살아온 미미르.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미미르의 샘에 존재하는 물의 양에 변화는 있을지언정 최대치는 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대지모신이 신뢰하는 인간이 맡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지모신 : 이래도 내 선지자가 미물이라고?】
“…….”
진우의 활약에 콧대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대지모신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