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282
283화 어머니 숲의 이사
언제 봐도 신비롭기 그지없는 자연의 위대함.
특히나 세계수는 그중 단연 으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각의 차원마다 가장 질기고도 영험한 기운이 집중된 곳.
흔히 식물에게도 생명이 있다고들 비유적으로 표현하지만 진우는 알고 있다.
세계수는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에고가 깨어 있는 생명체 그 자체라는 것을.
무엇보다 어머니의 숲에 있는 세계수.
지금까지 여러 차원을 전전하면서 여러 세계수를 마주해 본 경험이 있는 진우로서도 힘의 크기는 감히 비교할 수가 없었다.
웅장한 자태.
굳이 비교 대상이 있다면 주신 격의 초월자와 일반 초월자 수준의 차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중요한 것은 이번에는 세계수가 직접 불러서 진우가 찾아왔다는 점.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스스스스-
세계수의 중심부.
세계수의 정수가 생성되는 그곳에서 서서히 빛무리가 맺히기 시작하더니 이내 진우의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그렇게 코 앞까지 다가온 그 순간, 진우의 앞으로 알림음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숲에 속한 세계수가 당신의 힘이 되고자 희망합니다. 그녀의 희망에 응하시겠습니까? YES / NO]다른 무엇도 아닌.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초월 등급 이상의 유물과 같은 힘을 지닌 세계수의 지원.
그러한 힘을 마다할 각성자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YES.”
당연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끄덕여지는 고개.
하지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했던가?
진우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뒤이어 벌어졌으니,
[세계수가 그대를 동반자로 인식합니다.] [어머니의 숲의 증표(초월)를 획득합니다.] [어머니의 숲의 증표(초월)]* 분류 : 유물
* 사용 조건 : 어머니의 숲의 주인 (조건 충족됨)
*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력이 150만큼 상승합니다.
※ 어머니의 숲의 지배자(패시브) : 어머니의 숲이 있는 차원에 머무를 경우 마력이 추가로 600만큼 더 증가합니다. (적용 중)
– 어머니의 숲의 탄생과 함께 오랜 역사를 함께한 증표입니다. 세계수의 인정을 받거나 강탈한 자만이 얻을 수 있으며, 오직 지배자로서 군림한 어머니의 숲의 주인만이 이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내용 자체는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알림음.
아니, 솔직한 말로 개이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세계수의 효과만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요툰헤임의 힘의 문양과 맞먹는 초월급 유물을 하나 더 얻은 셈이니 오죽하겠는가?
허나, 평화로운 알림음과는 달리 이루어진 변화는 과격하기 이를 데 없었으니,
쩌적- 쩌저적-
서서히 균열이 일기 시작하는 세계수의 모습.
“……어?”
뭔가 심각하게 일이 잘못된 것 같은 이 기분.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아…….”
그제야 떠오른 오래된 기억.
몸에 박혀 있던 어둠 파편이라는 가시를 빼 주었던 것만으로, 은혜 갚기를 명분으로 삼아 잔나비 일족의 터전을 폭삭 무너트릴 만큼 통이 큰 존재가 바로 이 세계수라는 것을.
사람들이 흔히들 착각하는 것이 자연과 환경 하면 가장 먼저 조화로움이라거나 평화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그 어느 곳보다도 철저한 약육강식을 추구하는 곳.
그 끝판왕 격이 바로 세계수다.
이 방대하고도 풍요로운 자연의 힘이 어머니의 숲 곳곳에 뿌리내리게 해 준 대가로서 자신의 뿌리를 갉아 먹는 니드호그라든가, 갖가지 적들의 공격을 막아 내 주는 드루이드들과의 공생 관계.
하지만 이제는 굳이 그런 공생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어째서냐고? 그야 어둠 파편도 더 이상 없을뿐더러, 니드호그도 이제는 귀찮게 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굳이 일방적으로 희생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아, 안 돼! 멈춰!”
우르르르르-
진우가 다급하게 소리쳤으나 여신님 뺨치는 마이웨이의 세계수는 그딴 것 없이 균열과 함께 빠르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씹덕 여신, 대지모신에 의해 강제로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게 된 이는 사실 요르문간드가 최초가 아니다.
잔나비 일족의 두령인 시드.
니드호그와 한바탕 하기 위해 지구에 오게 되었던 당시 애니메이션은 물론.
지구의 각종 문화 문물 등을 섭렵하게 된 시드가 최근 푹 빠져서 즐겨보고 있는 것은 아동용 애니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짱쿠는 못말려’였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보는거에요?”
“하하하! 웃기지 않나. 저 꼬맹이 놈. 보통 녀석이 아니야. 잔재주만으로 자기 집을 무너트렸다니까?”
“으으, 예전에 집들 다 무너져 내렸을 때 재정비하던 거 생각하면 끔찍하네요.”
“뭐, 우리도 다 한 번씩 겪어 본 일이니까 이렇게 웃는 것 아니겠어?”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 해요. 그때 일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으니까.”
과거 진우에게 세계수가 은혜 갚기를 하던 당시 한 차례 박살이 났었던 잔나비 일족의 터전.
그때만 생각하면 몸을 떨어 보이는 잔나비 부인들이지만 시드는 호탕하게 웃을 뿐이었다.
“한 번 시련을 겪어 냈으니 그 다음에 똑같은 일이 일어나도 문제없이 쉽게 끝낼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아 쫌!”
“그만해요! 말이 씨가 된다고 하잖아요?”
“거 참. 우리 부인들은 뭐가 그렇게 불만이어서 바가지를 긁는 건지 원.”
투덜거리며 채널을 돌리는 것도 잠시.
평화로운 어머니의 숲에 이변이 일어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르르르릉-!!!
대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천둥 소리.
단언컨대 이곳에서 태어나 셀 수 없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정도로 커다란 우레 소리는 들어 본 역사가 없었다.
니드호그와 투닥거리던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터.
즉, 어머니의 숲에 상상 할 수 없는 타격이 가해진 영향이라는 뜻.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우득- 우드드득-!
우르르르르—
“두, 두령님!”
“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아무리 견고하고 튼튼하게 쌓아 올린 건물이라 해도 밑을 받쳐 주는 기둥 자체가 사라져 버리면 붕괴 할 수밖에 없는 법.
아니, 이건 단순히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미, 미친…… 이 빌어먹을 엘프 녀석들을 믿는 게 아니었다니까!”
어머니의 숲.
그 핵심이라 할 수 있을 세계수의 상실.
그것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차원의 붕괴.
이미 생명이 가득했던 어머니의 숲은 금세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장난으로 여길 수 없는 상황.
잔나비의 두령으로서 시드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태어난 고향과 함께 묻히거나, 아니면 어떻게든 일족을 하나라도 살리기 위해 노력하거나.
아마 명예를 더욱 중시하던 시절.
정확하게는 진우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전자를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시드도 많은 변화를 거치게 된 상태.
명예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부족원들을 살리는 게 우선 아니겠는가?
“어떻게든 활로를 찾을테니 뛰어라!”
매드 핀이든, 어느 차원이 되었든 간에 잔나비들을 살리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던 찰나였다.
“드디어 찾았네. 하여튼 이 원숭이 녀석. 환술 하나는 기가 막히다니까.”
“라타토스크?”
옆에서 들려온 익숙한 청설모의 목소리.
그에 시드의 표정에 희망이 깃든다.
녀석의 거대한 등이라면 잔나비의 일족 모두가 탑승하더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터.
하지만 고개를 돌려 확인한 시드는 이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숲의 대표적인 이동 수단이자 탈 것인 라타토스크.
원래대로라면 그 위에 다른 숲의 드루이드들이 탑승해 있어야 정상이었을 터.
하지만 그 위용이 무색하게끔 라타토스크는 탑승‘당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너, 너 그게 대체 뭐냐?”
“그게 다 사정이 있어서요. 일단 시드 님만 남았으니까 얼른 타세요.”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는 압도적인 크기의 배.
진우의 마나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영향으로 최대 크기까지 몸집을 부풀린 스키드블라드니르의 모습이었다.
* * *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풍요롭고 에너지가 가득한 차원으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숲이다.
수많은 드루이드들의 고향이기도 한 곳.
허나 현재 그곳은 책임감 없는 세계수 덕분에 붕괴가 진행 중인 상태다.
그리고 차원의 최후를 맞이하고 있는 현재.
그 위에 둥둥 떠 있는 스키드블라드니르.
모든 드루이드들은 현재 진우의 구조를 받아 함선 위에 탑승 중이었으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분위기는 썩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이 엘프 놈들. 그렇게 자신 있게 어머니를 지킨다더니. 아주 잘하는 꼴이다. 잘하는 꼴이야. 응? 대체 어떻게 관리를 하면 이런 일이 터지는 건데?”
“우리도 모른다고! 침입자도 없었고!”
“그게 수호자를 자처하는 녀석들이 할 말이냐?”
드루이드 계의 엘리트라고 볼 수 있겠으나 워낙 꽉 막힌 성격의 엘프들이다.
당연히 다른 종족의 드루이드들과 관계가 좋을 턱이 있겠는가?
심지어 자신들의 고향에 뜻하지 않은 종말까지 찾아온 상황이었으니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입장.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진우가 나서야만 했다.
“다들 싸울 필요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은 다 제 탓이니까요.”
평화롭게 유지되던 어머니의 숲에 발생한 종말.
뭐, 무책임하게 차원의 생사를 포기해 버린 세계수의 잘못이 99%에 달하기는 하지만, 몰라서 선택했다곤 해도 결국 진우의 선택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물이다.
“그래! 이 모든 게 다 저 인간이 어머니한테 들어간 이후부터 일어난 일이라고!”
“별 같잖은 소리를 잘도 씨불이는군, 엘프 녀석들. 고작해야 성인식을 갓 치른 인간이 퍽이나 이런 일을 저지르겠어?”
“아니, 기다려 보게. 인간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지. 대지모신님의 총애를 받고 있는 아이라고. 게다가 이 아이의 신묘한 힘으로 소환해 낸 이 함선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다 죽었을걸?”
“신살자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지. 요툰헤임의 거인왕은 니드호그 같은 잡 초월자와는 비교도 안 되니까.”
“……그, 그건 그렇지.”
수천 년의 삶을 살아온 드루이드라고 해도 필멸자는 필멸자다.
허나 진우는 이미 초월자를 죽인 몸.
심지어 그냥 초월자도 아니고 대지모신과 맞먹는 주신 격의 초월자를 죽인 신살자이다.
이곳의 드루이드 중에서는 무력으로만 놓고 보면 단연코 으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렇게 인정을 받게 되니 이 일을 일으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으로 이어진 영향일까?
드루이드들의 표정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의아하다는 듯 보였다.
하긴, 진우도 어안이 벙벙할 지경인데 그들이라고 오죽할까.
그래도 오해는 풀고 가는 편이 좋았기에, 진우는 세계수의 내부에 들어선 이후의 일을 요약해서 설명했다.
“그렇게 된 일이었구만.”
“에휴. 하여튼 우리 어머니. 성격 별난 건 여전하시네.”
“사정은 알게 되었으니 걱정 마라. 네 탓은 아니니. 모두 다 어머니의 선택이었을 뿐일 테니까.”
어머니의 숲에서 살아온 세월이 적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인 만큼, 세계수의 어처구니없는 일에도 이해는 되는 모양이다.
허나 이해가 되었다해도 어머니의 숲을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는 일.
그렇지만 해결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사는 곳으로 오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집세는 당분간은 무료로 해 드릴 테니까요.”
세계수가 자신의 차원을 포기하고 진우의 힘이 되고자 한다면 간단한 일 아니겠나?
지구.
아니, 정확하게는 진우의 농장이 위치해 있는 대한민국이 제2의 어머니의 숲으로서 기능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해 주면 만사 오케이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