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73
73화 세계수의 정수
과한 음주는 독이지만 적정한 양은 약이라고 했던가?
예로부터 술자리만큼 친목을 도모하기 좋은 것이 없는 법.
뭐, 술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테지만 적어도 눈앞의 드워프.
그룩 토르산만큼은 그야말로 물 만난 오리를 넘어 술 만난 드워프다.
“껄껄껄! 자네 나이 정도면 아직 한참이지. 벌써부터 골골거리면 나한테 혼날 줄 알어!”
“그러는 그룩 영감은 몇 살이슈?”
“히끅, 나 말인가? 어, 어디 보자……. 올해로 928살이던가? 929살이던가? 몰라. 귀찮아서 900살 이후로는 안 센지 오래여.”
“워메, 오래도 살았네.”
“드워프니까 그럴 만도 하지.”
“드워프가 그렇게 손재주가 좋다던데. 우리 집 전구 좀 고쳐줄 수 있남?”
“……딸꾹, 진우의 지인이라면야 얼마든지 고쳐 주지. 아니, 아예 새롭게 개조도 시켜 주지.”
“어머머, 믿어 봐도 되는 거지?”
“푸하하핫! 내가 바로 그룩 토르산이라고! 처어언두웅 바위산의 명예를 걸고 최고의 걸작품이 될 거야!”
수염 위의 얼굴에 진한 홍조를 띠운 채 알딸딸하게 취해 있는 그룩.
이렇게 보니 드워프도 꽤나 귀여운 면모가 있다.
‘드워프는 엘프랑 쌍두마차 격으로 거만하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물론 그러한 말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그룩은 자신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호의적으로 다가왔으니까.
다른 인물에게는 어떻게 대했는지도 보지 못했을뿐더러 기껏 보는 경우라고 해 봤자 눈앞의 경우처럼 이장님이라던가 이전의 정수아라던가.
하나같이 진우과 관계가 있는 지인이었으니 함부로 대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을 터.
“기껏 준비해 놓고 거기서 뭐하고 있어? 주인공이 말이야. 빠지면 쓰냐?”
“어? 아니, 안 그래도 가려고 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어느덧 진우의 곁으로 다가온 석우.
시원하게 스포츠머리로 민 스타일이 유독 잘 어울리는 불알친구의 인도와 함께 진우도 술자리 축제에 자연스럽게 착석했다.
* * *
끼이, 끼이이이-
끼에에에에-
액체로 가득 찬 플라스크 속에서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만드라고라들.
하지만 그런 만드라고라들은 세상에 알려진 모습과는 조금 다른.
기괴한 형태를 한 상태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형태는 물론이요,
샴쌍둥이마냥 두 개의 몸이 이어 붙은 모습까지 하고 있는 만드라고라들.
허나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인 것은 따로 있었으니,
“주, 죽여 줘…….”
“끼이이, 고, 고통스러워!”
인간과 합성이 된 듯한 형태를 하고 있는 키메라.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은 전세계에서 불법으로 지정되어 있는 인체 실험에 의한 결과물이다.
“실험은 잘 돼 가는가?”
“오, 오셨습니까!”
“편하게 해, 편하게. 보고나 듣지.”
“52번은 어제부로 폐기되었고, 67번은 동화율이 제법 높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순조롭게 완성품이 나올 것 같습니다.”
“흐음, 아쉽게 되었군. 52번은 나름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죄, 죄송합니다!”
“괜찮아. 실패 속에서 성공이 있는 법이니. 다만, 너무 기대에 어긋나면 저 플라스크에 자네가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
“쿡쿡쿡,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떨지 말라고.”
기괴한 은색 가면으로 가려진 얼굴 밑으로 귀까지 찢어지는 미소를 짓고는 어깨를 툭툭 쳐 보이는 사내.
하지만 농담을 듣는 이는 저것이 단순히 농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연금 협회의 수장이자 ‘그분’으로 통하는 인물.
저 자 앞에서는 제아무리 능력 있는 각성자, 알케미스트라 해도 그저 쓸 만한 재료에 불과하다.
제 만족을 채우지 못했을 경우 가차 없이 실험 재료로 써 버리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던가?
꿀꺽.
포식자 앞에 놓인 피식자로서의 공포.
그러나 실로 다행스럽게도 포식자의 관심사는 금세 다른 곳으로 향했으니,
“……그토록 찾아다녔거늘. 스스로 나왔다 이건가? 재미있군, 아주 재미있어.”
아시아의 거대한 대륙.
중국에도 전해진 한국에 대한 소식.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이자 농부.
그리고…….
“기뻐하게. 동료들의 원수를 찾았으니 말이야.”
“예, 예. 그렇죠.”
미국에서 벌어졌던 씨앗 테러의 원흉을 찾아낸 소식에 연금 협회도 농부 쟁탈전에 참여하고자 눈을 희번덕였다.
* * *
찾아올 때마다 늘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는 세계수의 숲.
시골 공기도 나쁘진 않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고향 그 이상의 산뜻함을 준달까?
또한 세계수의 숲에는 꽤 반가운 얼굴도 몇몇 존재한다.
“여어, 신참.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참 많이도 성장했구나?”
“브락시온 님 덕분이죠, 뭘.”
그룩 못지않은 덥수룩한 수염을 자랑하는 인물.
허나 드워프와 다른 점이라면 키의 차이다.
난쟁이인 그룩과는 달리 거인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키를 자랑하는 브락시온.
덩치가 큰 탓일까?
아니면 몸을 드러내는 옷 스타일을 착용하고 있는 탓일까?
진우는 브락시온에게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저어, 그런데 등은 왜 그러신 거예요?”
“묻지 말거라, 신참. 알면 다친다.”
마치 맹수가 긁기라도 한 듯.
선혈이 낭자한 등 자국.
거인의 체구답게 진우를 뛰어넘는 체력을 지녔으리라 예상되는 브락시온. 그런 그에게 저 정도 되는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몬스터라면 대체 얼마나 강력한 개체일까? 싶은 고민을 하던 때였다.
“어머, 반가워요. 드디어 만나 뵙네요!”
“어엇? 네, 반갑습니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 브락시온의 어깨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어 보이는 엘프 여성.
세계수의 꼭대기에서도 그렇고.
진우가 엘프를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브락시온의 곁에 있는 엘프는 겉으로 느껴지는 힘.
이른바 ‘격’ 자체가 달랐다.
비단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곱게 흘러내리는 흑발의 긴 생머리와 범접 할 수 없는 분위기.
무엇보다도 어느 정도 성장을 했다고 생각했던 진우였으나 저 엘프 여성에 대한 기척은 조금도 알아채지 못했다.
엘프가 조금이라도 나쁜 마음을 먹었더라면 사실상 진우의 목숨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허나 다행스럽게도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크흠. 그렇게 불쑥 나타나면 신참이 놀란다고 말을 해도 참. 내 아내가 좀 장난기가 많아서 말일세. 티리에나라고 하이 엘…… 끄아악!”
“이이도 참. 저도 입이 있거든요? 소개는 제가 할 거예요.”
“마, 말로 하면 되지 왜 꼬집고 그러나?”
“자기는 손맛이 있어서 그렇죠.”
“……아퍼.”
“아프라고 꼬집는 건데요?”
“…….”
브락시온의 아내인데다가 브락시온이 알아서 샌드백이 되어 주었기에 진우까지 타겟이 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제 가죽 갑옷은 잘 착용하고 계시니 다행이네요.”
“예?”
“그거. 제가 만든 거거든요. 흑표범의 가죽 갑옷이요.”
“아아…….”
줄 알았는데 순간 느껴지는 섬뜩한 기분.
이, 이거 옷을 벗어 줘야 되려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래도 이미 판매한 이상 불만은 없어요. 터무니없이 싸게 드리긴 했지만, 부디 잘 사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하긴, 줬다 뺏는 것만큼 나쁜 게 세상에 또 있을까?
예상했던 가격보다 싸게 흥정해서 좋게 구매하긴 했지만, 어쨌든 판매자가 응했으니 사실상 거래에서는 딴소리 못 하겠지 암.
그렇다 해도 불만이 한껏 어린 듯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티리에나는 피식하더니 웃음을 터트린다.
“죄송해요. 반응이 귀여워서 장난 좀 쳤어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곳에는 죄다 늙은이들밖에 없어서…….”
“이곳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연장자인 티리에나가 할 소리는…… 끼아아악!”
“어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걸까? 이이는? 요 입을 어떻게 막아 버려야 잘 막았다고 소문이 나려나?”
“…….”
음, 지켜보니 알 것 같다.
브락시온은 매를 버는 타입의 남편이라고.
아무튼 브락시온이 진우를 부른 이유.
아니, 정확히는 티리에나가 진우를 불러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거. 어머니께서 주시는 선물이니까 받아 가세요.”
“이게 뭐죠?”
“오랜 삶을 살지 못하는 인간에게는 무척 도움이 될 거랍니다. 어머니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또 브락시온도 그렇고. 그대가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아이템이죠.”
티리에나가 내민 녹음의 향을 풍기는, 구슬 모양의 내단.
그것은 진우도 예전에 한 번 어렴풋이 본 적이 있는 물건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수의 정수(신화)]* 분류 : 소모품
* 사용 조건 : 없음
* 온전히 섭취할 시 모든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5씩 상승합니다. (1회 한정)
* 온전히 섭취할 시 기존의 섭취량에 따라 피부 개선 및 수명이 최대 100~300년까지 상승합니다. (제한 없음 단, 섭취량이 많을수록 늘어나는 양이 줄어듭니다.)
– 세계수에서도 오랜 세월에 극히 소량만 얻을 수 있는 정수입니다.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힘과 함께 수명이 대폭 증가합니다.
세계수의 정수.
머나먼 옛날부터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꿔 왔던 불로불사의 꿈.
그것을 이루게 해 주는 세계수의 정수.
오로지 신용도로만 구할 수 있는.
돈 주고도 못 사는 귀하신 몸이 진우에게 공짜로 주어진 상황.
그제야 진우는 눈앞의 티리에나.
하이 엘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럼 저는 전달을 해 드렸으니 앞으로의 여정에 도움이 되기를 어머니와 함께 바라도록 할게요.”
귀하디 귀한 엘프중에서도 상위종인 그들의 또 다른 역할은 세계수, 어머니를 수호하는 역할이었다.
* * *
[이게 뭔 줄 알어? 세계수의 안쪽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수가 응축된 과실이라고! 고상한 엘프 녀석한테 겨우 받아 온 거야. 하여튼 어머니의 수호자라고 꺼드럭거리기는. 쯧! 한입 베어 무는 것만으로도 수명이 100년씩 늘어난다더군. 원래라면 내가 먹었겠지만, 신용이 급해서 처분하는 거야. 이건 기회라고 친구들!]※ 상품명 : 세계수의 정수(신화) – 구매 비용 50신용도
* 온전히 섭취할 시…….
과거 신용 상점에서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던 50신용도나 되던 세계수의 정수.
가히 ‘신화’ 등급에 걸맞은 효과.
메리트로 가득한 옵션들은 확실히 어디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능릭치면 능력치.
수명이면 수명.
거기에다가 피부 개선을 통한 노화 방지까지.
각성자와 인간이 원하는 모든 것을 바로 잡아 주는 옵션들.
뭐, 50에 달하는 신용도.
진우가 조금 무리를 해서 영혼까지 끌어모으고 업적도 좀 더 달성하면 충분히 구매 가능한 수치긴 하지만 아마 50신용도가 모인다 해도 진우는 정수를 구매하진 않았을 거다.
무구나 가축, 그 밖의 작물 등.
신용 상점에 널리고 널린 아이템들이 어디 좀 좋아야지 원?
다만,
“공짜라면 얘기가 다르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지만 그 대상이 ‘세계수’라면 얘기가 다르다.
조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대자연의 나무느님께서 주는 건데 후환을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꿍꿍이를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
“쩝. 아버지가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더라면 오래오래 사시라며 효과 같은 거 따지지 않고 양보해 드렸을 세계수의 정수.
하지만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고 했던가?
“불효자를 용서하지 마십쇼, 아버지.”
오랜 지병으로 인해 앓으시다가 떠나가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서 더욱 오래 산다는 것이 죄스럽기도 하지만, 또 그렇다고 괜히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천당이 되었든, 황천길이 되었든 간에 아버지 성격이시면 왜 이렇게 빨리 왔냐고 구박받을 테니 천년만년 오래 살다 가는 게 아마 정답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