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8
8화 물 만난 응애 오리들
허 씨를 신들리게 6시간 동안 때리고 농작물도 가꾸고 오리들과 놀면서 먹이도 챙겨 주다 보니 쏜살같이 흘러간 시간.
차 소리와 함께 느껴진 인기척에 진우는 밖으로 나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특유의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장덕춘이다.
석우나 이장님과는 다른 의미로 큰 도움이 되어 준 가장 중요한 돈줄.
“엇. 덕춘 아저씨? 어쩐 일이세요?”
“아아, 앞으로 천년만년 이어 갈 비즈니스 관계가 될 입장인데 인사차 들렸지. 그나저나 진우야. 이게 대체 다 어떻게 된 거냐? 며,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건물이…….”
“하하하, 다 도움받을 곳이 있었죠, 뭐. 그런데 옆에 분은?”
하지만 중요한 돈줄, 장덕춘은 혼자 찾아오지 않았다.
‘외국인은 아닌 것 같은데 염색하신 건가?’
푸른빛이 감도는 묶음 머리에 푸른 눈빛을 가진 여성.
농사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흰 피부.
여성은 내 물음에 곧장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요. 저는 정수아라고 해요. 우선 저희 전성그룹과 계약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아뇨. 저야말로 물건을 팔아 주셔서 고맙죠.”
목욕물로 씻었다고는 해도 하루 종일 허수아비를 때리고 농사일로 부르튼 손인지라 조금 민망했지만 그러한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 어이, 인간. 신참 들어왔어!
– 누가 신참이야! 이 난쟁이들이!
– 가장 늦게 찾아온 하급 정령이면 신참이지, 뭘.
– 너희도 같은 하급이거든?
찾아온 것은 장덕춘과 정수아.
두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닌.
노움과 비슷하면서도 꽤나 푸르딩딩한 모습의 소형 체구의 물의 하급 정령인 운디네.
땅과의 친화력만 있는 진우에게 물의 정령이 찾아올 이유는 없을 테니 원인은 뻔할 뻔자다.
‘물의 정령사.’
통일된 색깔의 머리카락과 안광.
대부분이 정령과 관계되었을 때 일어나는 반응이다.
짐꾼 생활로 익혀 왔다곤 해도 헌터 업계에 극소수만 존재하는 정령사다.
실제로 정령사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뒤늦게 알아차린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녀가 단순히 정령사라는 희귀한 직업을 가졌다는 게 아니다.
– 흐음, 정령사의 소질을 품고 있는 농부라. 어쨌든 노움들을 통해서 뜨게 된 ‘눈’으로 내가 보이는 모양인가 봐?
물의 하급 정령도 일단은 정령.
인사하다 공짜로 먹는 1의 신용도는 실로 달콤했다.
* * *
“우선 바깥에만 있는 것도 그러니까 안으로 들어오시죠.”
“그럼, 실례할게요.”
“전보다 아늑하니 좋아진 것 같구나?”
“하하, 다 실력 있는 건축가들 덕분이죠, 뭐.”
– 엣헴. 이 몸들을 땅의 조각가라고 불러다오.
– 우욱. 흙더미가 조각가래.
– 싸우자는 거냐? 숫자 보고 덤벼라. 물딩딩이.
– 흙더미들이 뭉쳐 봤자 고기 방패거든?
옆에서 정령들끼리 투닥거리긴 해도 저건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고.
진우는 오로지 획득한 1신용도에 집중했다.
불과 얼마 전이었더라면 돈을 더 선호하는 진우였지만 신용 상점.
오로지 신용도로만 구매 가능한, 특별한 물품들이 가득한 상점을 한차례 둘러본 경력이 있는 진우다.
‘특수성과 비율을 생각해도 원화보다는 신용도지. 암.’
전설 등급의 경우 기본이 천억을 가볍게 넘어가는 야생의 드루이드 상점에 비해서 신용 상점에서는 저렴한 것은 10 정도로 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첫 거래로 수수료 떼고 받았던 천만 원은 우습게 여겨질 가치를 지닌 신용도.
그러한 것을 길 가다 주운 격인데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일 거다.
“다들 식사는 하셨어요?”
“응, 당연히 하고 왔…….”
“안 하셨다니 다행이네요. 마침 싱싱한 놈으로 하나 캐 두었거든요. 원래 바로 캐서 먹는 게 또 별미라고 하잖아요?”
“……무슨 농작물이 생선도 아니고. 참.”
피식 웃어 보이던 덕춘.
그러나 이내 그 웃음은 굳어지더니 점차 눈이 튀어나올 기세로 커진다.
“아니, 그 전에 방금 캤다니. 서, 설마 또 수확한 거냐?”
“예. 제가 수확시기 짧을 거라고 미리 말씀드렸잖아요.”
“짜, 짧다고는 했어도 아직 납품한 지 4일도 안 지났어!”
“뭐, 그렇게 됐습니다.”
“허어, 허허. 이제는 말도 안 나오는구나.”
“시기가 정말 짧긴 하네요. 이건 확실히 긍정적인 부분이에요!”
내 말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덕춘.
그 옆에서 정수아는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진우를 바라본다.
짐꾼 일을 하면서 여성과 얽힌 적이 많긴 했지만, 이러한 시선은 처음인지라 다소 부담스러운 입장.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진우에게는 어그로를 끌어 주는 귀염 뽀짝한 탱커들이 있었다.
삐삐삐!
삐이이이읶!
삐삐? 삐삐삐읶!?
요약하자면 ‘지금 당장 밥을 내놔라’라는 느낌으로 쳐들어온 10마리의 새끼 팜오리들.
식량 약탈꾼의 신분으로 쳐들어온 녀석들은 집 안에 진우 외에 또 다른 인간이 있는 모습에 놀란 듯이 허둥지둥거리며 조막만 한 날개를 파닥거리며 무섭게 위협한다.
허나, 당연한 말이게도…….
“저, 저건 오리 아니냐?”
“어, 어머. 어떻게. 미쳤나 봐. 어떡하면 좋지? 너, 너무 귀엽잖아!”
응애 팜오리들의 위협이 통할 턱이 있겠는가?
아, 딱 한 가지.
심장에는 좀 위험하긴 하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나도 이 정도인데 처음 보는 이들은 오죽할까?
장덕춘도 귀엽다는 듯이 쳐다봤으며, 특히나 정수아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쟤들 아직 새끼 오리인 거죠? 혹시 괜찮으면 한 번 만져 봐도 괘, 괜찮을까요?”
“예. 괜찮습니다만 쟤들이 좀 놀다 와서 더러울 텐데…….”
“더럽다니요! 저렇게 귀여운데!”
농지를 신나게 뛰어다닌 녀석들답게 사방팔방으로 흙을 흩뿌리고 있는 새끼 팜오리들.
벌써 몇 번 주의를 준 탓에 집 안쪽까지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몸에 묻은 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터.
다만,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저에게 맡겨 주시겠어요?”
“네?”
“꼭 저에게 맡겨 주시겠어요!?”
“아아, 네.”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일단은 ‘물’의 정령사인 정수아다.
그 전에 맡겨 주지 않으면 어쩐지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
승낙의 뜻을 비추자 얼굴 한가득 기쁜 웃음을 머금고는 작업에 들어간다.
“운디네. 노움 분들과 그만 놀고 이리로 와.”
– 치, 노는 거 아니었거든?
수아의 부름에 노움과의 드잡이질을 멈추고 곁으로 다가간 물의 정령.
이어서 공중으로 여러 개의 물방울이 피어오르더니 팜오리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몸에 묻은 흙을 씻겨 낸다.
그러면서도 바닥은 전혀 적시지 않고 그대로 씻겨 낸 흙과 함께 물방울들은 소멸되었다.
‘목욕할 때 있으면 편하겠는데?’
저러한 점 때문에 정령사.
그중에서도 물의 정령사가 그토록 환대받는 걸까?
반면에 땅의 정령은…….
– 뭐야 인간. 왜 눈을 그렇게 떠?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고기 방패.
존버의 상징, 땅의 정령.
뭐 아무튼 간에.
삐삐! 삐삐삐!
삐이이이!
[팜오리의 특성, 물 만난 오리가 활성화됩니다.]물 만난 오리.
그야말로 특성의 이름답게 응애 오리들은 난리가 났다.
누가 오리 아니랄까 봐 ‘더! 더!’를 외치며 조막 만한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녀석들.
물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본능적으로 아는 듯.
정수아의 곁으로 몰려든다.
“이 녀석들이! 손님께 그러면 안 돼!”
“아뇨, 저는 괜찮아요. 정말로 괜찮아요!”
“아무리 그래도…….”
“저도 좋아서 그런걸요. 자, 얘들아. 이게 그렇게 좋아?”
삐이이이!
삐삐삐삐!
물과 오리는 상성 상 찰떡궁합인 덕분일까?
굳이 나서지 않아도 순식간에 친해진 정수아와 응애 팜오리들.
그래도 걱정이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제발 사고만 치지 마라, 얘들아.’
작고 귀엽다고 해서 얕보면 안 될 것이 생후 1개월 미만의 아기 팜오리들이라고는 해도 명색이 능력치가 존재하는 각성한 동물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마음만 먹는다면 고블린 정도는 충분히 사냥할 수 있다는 뜻.
뭐, 다만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일단 물을 통해서 친해지기도 했을뿐더러,
삐! 삐삐삐!
삐이이잉!
오물오물- 촵- 촵촵-
내가 직접 으깨고 물에 불리는 등
나름 정성껏 만든 새끼 팜오리들 전용 밥.
응애 팜오리들은 거기에 고개를 박고 쉴새 없이 움직이며 야금야금 잘도 먹어 치운다.
삐이이이!
삐삐삐!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으로 기분 좋게 몸을 떠는 녀석들.
그야 맛있을 수밖에 없을 거다.
‘어릴수록 맛난 것을 먹고 커야 하는 법이랬지.’
[유기농 한무 감자(희귀)]* 분류 : 소모품, 재료
* 사용 조건 : 없음
* 효과 : 120분 동안 체력+2, 마력+1
– 자연의 보살핌과 땅의 정기를 흡수하면서 성장한 한무 감자입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친환경 오리농법의 흔적이 남아 있는 100% 유기농입니다!
※ 유기농 한무 감자 1개를 전부 섭취해야만 효과를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증식하는 한무 씨감자에서 이번 기회에 첫 수확한 씨알이 굵은 녀석.
노움들의 도움으로 땅에 물 조절과 공기도 가득 넣어 준 덕분에 실하게 자란 것도 있지만, 역시 가장 크게 도움이 되어 주었던 건 정수아에게 아양을 떨고 있는 새끼 팜오리였다.
굳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오리 농법을 척척 본능적으로 이행하던 것이 바로 팜오리들이다.
‘깜찍한 것들.’
귀여운데다가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실로 기대되는 응애 팜오리들.
신나게 일하고 놀았던 새끼 오리들의 주린 배도 챙겨 주었겠다.
이제는 사람도 먹을 차례가 되지 않겠는가?
“어엇, 저도 도와드릴게요!”
“나도 도우도록 하마.”
“아뇨, 괜찮으니까 앉아 계세요.”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찾아온 건데 그냥 받기만 하는 건 좀…….”
“마음만 받겠습니다. 우선 오리들이랑 좀 놀아만 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어지간히도 팜오리들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새끼 오리란 말에 즉각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정수아.
가뜩이나 시끌벅적한 팜오리들의 시선도 잡아 주고 있겠다.
늘상 찾아오는 이장님이나 석우를 제외하면 농사일을 시작하고 집에 들이는 첫 손님.
‘제대로 만들어 보자.’
앞으로의 비즈니스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상품을 어필하는 것은 농부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
겸사겸사 신용도에 대한 감사도 있겠다.
진우는 주어진 재료를 버리는 일 없게끔 3년간의 자취로 단련된 요리 솜씨를 뽐내기로 했다.
* * *
일단은 3개월 동안은 유효하게 성사된 계약.
순전히 경제적인 가치도 그렇지만, 아이템화가 가능한 작물을 독점적으로 유통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전성그룹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거기에다가 심지어 정령사에게는 가장 중요한 힘을 키워 주기까지.
앞으로의 추가적인 계약을 따내기 위해서라도 좋은 이미지를 얻고자 이곳에 발걸음을 옮겼던 수아였다.
또한 도착한 이후에 보지 않았던가?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땅의 정령들을.
비록 하급이라고 해도 보통 정령사가 계약 가능한 정령의 숫자는 같은 속성 내에서 1개체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가히 혁명이나 마찬가지다.
‘유리 언니보다도 놀라운 자는 처음이야.’
전성의 임원이라는 자리에 있는 만큼 다양한 자리에서 식견을 넓혀 왔던 수아다.
당연하게도 자신과 같은 정령사로서 각성한 헌터도 마주한 경험도 수차례.
그중에서도 단연코 재능 있었던 존재는 미국의 보석이라고 불리던 유리 자이스다.
자신보다 2살 더 많은 나이에 중급 물의 정령인 운다이르와 계약을 할 정도로 가공할 정령 친화력을 보유하고 있던 인물.
첫 만남 당시에는 질투심도 생겼지만 그래도 같은 속성의 정령사라고.
몇 번의 대화 끝에 언니 동생하는 사이로 지내는 관계가 되기까지 했다.
‘수십의 노움과 하나의 운다이르. 과연 누가 이길까?’
확실히 하나하나의 개체로만 따지면 중급과 하급의 격차는 비교가 불가능할 터.
허나 그 숫자의 차이가 2, 3수준이 아닌 수십 개체라면 어떠할까?
그리고 이제 겨우 성장하기 시작한 수준이라면?
더군다나 해당 각성자는 그저 정령사라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템화가 가능한 작물을 며칠도 안 되는 시기 안에 수확해 버리기까지 했다.
꿀꺽.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성장 가능성.
반드시 계약을 이어 나가야 한다.
전성그룹에 있어서 필히 도움이 될 인재.
만남 이후 계약의 의지를 더 불사르게 된 정수아였다.
하지만,
삐삐삐!
삐이익!
“꺄아아! 자, 이것도 따라가 볼래? 이것도! 요것도!”
삐삐삐삐!
새끼 팜오리의 귀여움에 취한 나머지 잠시 망각해 버린 목적.
“저어, 정수아 부회장님?”
“헤헤……어어, 네엣?”
“식사 준비가 다 끝나 가는 것 같습니다만. 계약 관련해서 생각해 둔 바가 따로 있으시면 제가 자리를 마련해 볼까요?”
“아…….”
말해 무엇할까?
이미 팜오리들과 놀면서 머릿속에서 잔뜩 계약 관련으로 구성해 두었던 내용들은 흰색 도화지처럼 다 지워져 버린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