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9
9화 쇼핑의 시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너질 그녀가 아니다.
“아뇨, 오늘은 그냥 인사치레로 들린 걸로 하죠.”
“옙, 알겠습니다.”
어디 기회가 지금뿐이겠는가?
어차피 3개월이라는 계약 기간이 있다.
짧다면 짧지만 길다 하면 충분히 긴 시간.
지금이 아니더라도 납품 등의 일로 방문하면 될 일 아니겠는가?
‘그때마다 오리들도 보면 더 좋은 거고.’
삐이이익!
겸사겸사 엄격한 집 안에서는 키우지 못했던 귀여운 동물들도 볼 수 있으니 실로 일석이조인 일.
그러는 사이 주방에서는 한껏 준비를 끝마친 진우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음식을 내왔다.
“완전히 감자밭이구나.”
“하하, 이번에는 감자 위주로 심었다 보니. 구황작물은 별로려나요?”
“아니, 그럴 리가. 경매장에서도 감자가 인기 장난 아니었다. 이 정도면 밥도둑이지.”
“저도 감자 좋아해요. 우와. 둘 다 진짜 맛있어요.”
양념을 조렸을 뿐인 감자 반찬이지만 재료의 품질이 워낙 뛰어난 덕분일까?
절로 즐거워지는 입과 더불어서,
– 수아야. 정령의 힘이……!
‘응, 나도 알고 있어.’
한층 더 강화된 정수아의 정령사 자질.
새로운 작물의 섭취를 통해 한 발짝 더 강해졌다는 사실.
훗날 전성의 오너가 될 몸이지만 일단은 수아도 각성자 중 한 명이다.
무엇보다도 오너인 동시에 헌터로서 강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사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축배를 들고 싶은 심정일 터.
그러한 기분을 알아주기라도 하는 것일까?
“아직 더 드실 수 있죠? 후식도 준비해 뒀다고요.”
“후식?”
“감자하면 찐 감자 아니겠습니까.”
“오오오!”
누구나 즐기는 호불호 없는 찐 감자.
그러나 문제는 감자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라?”
“왜 그러시죠? 혹시 뭔가 문제라도?”
“저어, 실례가 안 된다면 소금은 없을까요?”
“네? 찐 감자에는 설탕이 진리 아닌가요?”
“……어머, 어린애도 아니고. 찐 감자에는 당연히 소금을 찍어 먹어야죠.”
“어린애라니요. 설탕은 어르신분들도 즐겨 드신다고요. 어린애나 먹을 것이라는 건 선입견이죠.”
“아하하, 이거 둘 다 사소한 것 가지고 왜들 그러십니까. 그냥 번갈아 가면서 찍어 먹으면 되는 걸 가지고…….”
“사소한 일이 절대 아니에요! 장 팀장님은 어느 걸 더 좋아하시는데요?”
“맞아요, 덕춘 아저씨. 이건 무척 중요합니다. 찍어 먹을 거면 하나만 찍어야지. 어떻게 둘 다 섞어 먹습니까.”
“…….”
찐 감자에서 불어온 소금 설탕 논쟁.
그 불똥이 자신에게까지 튀자 장덕춘의 눈이 떨려 온다.
한쪽은 직장 상사이고, 한쪽은 앞으로의 중요한 거래처가 될 인물.
그야말로 외통수.
어느 한쪽도 포기하기 힘든 선택.
허나 장덕춘에게도 희망은 존재했으니,
삐이이이익!
삐삐삐삐삐!
삐삐삐!
“이 녀석들! 너희들은 밥 먹었잖아!”
삐삐삐삐!
감자가 풍기는 냄새와 열기 속에서 본능을 참지 못하고 밥상까지 넘보고 달려든 새끼 팜오리들.
먹어도 먹어도 아직 배가 고픈 응애 오리.
논쟁의 종결은 ‘처먹’이었다.
* * *
“아아, 내 찐 감자가…….”
나라 잃은 자의 표정이 저러할까?
하필이면 그것을 먹어 치운 것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새끼 팜오리요,
얻어 먹는 입장에서 볼멘소리를 낼 수도 없는 노릇.
허나,
“또 쪄 드릴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렇지만 이제 시간이 너무 늦어서…….”
“싸 드리면 되죠. 어차피 납품받아가시는 김에 챙겨 가세요.”
“아아, 감사합니다!”
소금과 설탕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이 순간만큼은 대인배로서 정수아의 눈가에 비치는 진우의 모습.
어쨌거나 식사가 끝이 난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노움들의 도움으로 내부적으로 좀 더 확장되는 것은 물론이요,
작물의 보관 기간까지 대폭 상승한 곡물 창고.
그 내부에 쌓인 유기농 한무 감자의 물량에 두 사람은 입을 떡 벌렸다.
“세상에. 감자 세상이야…….”
“이번에는 쌀이나 다른 작물 없이 전부 감자인 거냐?”
“네. 이번 건 전부 희귀 등급이고, 개수는 처음보다 많은 820개 정도 됩니다. 씨알 굵은 건 아까 확인하셨죠?”
“두말할 필요도 없죠.”
820개의 감자.
뭐, 사실 양으로만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굵은 알 크기를 자랑하는 덕분일까?
하나하나가 상당히 많은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감자들.
그 덕분에 공간이 부족하게 느껴질 지경.
“저어, 그런데 혹시 다음에도 전부 감자인 건가요?”
“아뇨, 감자는 기본이고, 작물의 종류는 차차 늘려 나가야죠.”
“역시 그렇군요.”
감자가 아무리 잘 자라고 좋더라도 그것만 심고 살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독점 가능한 아이템화 작물로 인해서 하나만 전문적으로 파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새로운 작물을 수확하다 보면 업적도 얻어걸리는 법이니까.
“어휴, 그나저나 이거 옮기는 것도 일이겠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직원을 좀 더 데리고 올 걸 그랬다.”
“저도 도와 드릴게요, 장 팀장님.”
그건 그렇고 감자의 크기가 상당한 탓에 하나하나 무게도 무시하기는 힘들 수준.
혼자서 옮길 생각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장덕춘이지만 진우가 누구던가?
“어차피 납품할 거 후딱 해 버리죠.”
“고맙다, 진우야.”
원래부터 높은 체력에다가 그간 허수아비를 때리면서 상승한 능력치.
거기에 굳건한 체력 특성을 통해 지치지 않는 활동력까지.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삐삐삐삐!
삐이이이익!
진우를 엄마로 알고 있는 탓인지 뭘 하기만 하면 졸졸졸 따라다니는 새끼 팜오리들.
작지만 은근 힘 있는 녀석들은 부리와 날개, 그리고 서로의 협동력을 동원하여 감자를 하나둘씩 옮기기 시작한다.
“어머, 너희들 안 힘드니?”
“무슨 오리들 힘이…….”
새끼 팜오리들의 저력에 물방울들로 감자를 옮기다가 놀라는 수아와 기겁하는 덕춘의 모습.
암, 그냥 오리도 아니고 슈퍼 응애 오리들인데 힘이 약할 턱이 있을까?
또한 우리들의 일하는 모습에 구릿빛 피부의 난쟁이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 어이, 인간과 날짐승들. 너희끼리만 놀지 말고 우리도 끼워 줘.
– 땅의 조각가가 가진 힘을 무시하지 말라고.
– 물딩딩이랑은 비교가 안 되지!
– 바위여, 일어나라!
혼자로는 힘들겠지만, 여럿의 노움이 힘을 합쳐서 생성된 손 모양의 흙더미의 도움까지.
그 덕분에 감자를 트럭으로 옮기는 작업은 생각 외로 금방 끝이 났다.
“이래서 다들 각성자, 각성자 노래를 부르나 보다.”
“뭐, 그렇죠.”
새삼스럽지만 오리도 각성자인 마당에 유일한 일반인으로서 입맛을 다셔 보이는 중년의 장덕춘이지만, 아쉬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간에 진우와 계약을 성사시킨 장본인이 장덕춘이지 않던가?
그로서는 이번에 뜻하지 않은 두 번째 성과를 가지고 가는 꼴.
일단 실적을 쌓는 것이었으니 보너스는 따 놓은 당상일 터.
거기에다가 진우는 떠나는 길, 입이 심심하지 말라고 작업하는 동안 쪄 두었던 찐 감자도 챙겨 주었다.
“그럼 다음에 또 오도록 하마. 물량 준비되면 언제든지 연락해라. 기다리고 있을게.”
“예. 운전 조심하시고요.”
첫 손님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비즈니스 관계.
배웅과 함께 진우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부스럭 부스럭-
“여기요, 장 팀장님.”
“아, 저는 하나만 주셔도 괜찮습니다. 아까 충분히 먹었거든요.”
“그래요?”
장덕춘의 말에 방끗 웃어 보이며 소금이 묻어 있는 찐 감자를 호호 불어서 입으로 꿀꺽 넘기는 정수아.
그 모습에 장덕춘의 입가에도 미소가 어린다.
“하하하, 정수아 부회장님은 정말로 감자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엣흠흠. 그야 맛있으니까요. 언제 먹어도 좋기도 하고…….”
순간 참 많이도 먹는구나 싶었을까.
괜스레 부끄러워지는 상황.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발동은 걸렸고 멈출 수 없어진 손.
허나 봉투를 뒤적거리던 정수아는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마치 마트료시카처럼 봉투 안쪽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조그마한 봉투.
슬쩍 열어 보자 그 안에 담긴 것은 마찬가지로 감자다.
다만 소금과는 조금 다른 누런빛의 가루가 묻어 있는 모습.
가루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
아직 끝나지 않은 논쟁.
그녀도 나름 한 고집하기로 소문난 인물이다.
평상시 같았으면 운디네의 물로 헹궈 낸 이후 소금을 찍어서 먹었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오물- 오물-
“흐음, 이것도 의외로 나쁘지 않을지도?”
“예?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후후훗. 아무것도 아니에요.”
24년의 평생 찐 감자에 소금만 찍어 먹는 인생을 살아왔던 정수아.
처음으로 입문한 찐 감자+설탕의 조합이 가져다준 은근한 달달함과 짭짤한 고소함의 조화는 썩 나쁘지 않았다.
* * *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이라는 하루.
짐꾼이던 시절에는 정말이지 1분 1초가 국방부의 시계가 떠오를 정도로 느리게 흘렀지만, 귀농을 한 이후부터는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역시 찐 감자에는 설탕이 진리라니까.”
새끼 팜오리들의 습격으로부터 지켜 낸 찐 감자.
거기에다가 추가적으로 떠나는 길의 정수아와 장덕춘에게 챙겨 주기까지 하면서 몇 개 남지도 않았기에 다소 아쉬움도 없지 않아 있다.
“쩝. 벌써 마지막인가.”
산처럼 쌓여 있었던 감자가 어느덧 10개도 남지 않았다니.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자급자족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발전을 위해서는, 또 작물 외의 것들을 구매하기 위해서라도 돈은 필요한 법 아니겠나?
“과식은 좋지 않으니 마지막은 이걸로 해 볼까. 뭐, 나도 한 짓이 있으니까.”
보통 마지막은 가장 맛있는 것으로 먹는 것이 진우의 지론이었지만 사실 소금이라고 해서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저 설탕을 찍어 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이었을 뿐.
“으음, 짭짤하구만.”
담백함과 고소함, 짭짤함이 가미된 소금 묻은 찐 감자를 마지막으로 입에 직행시킨 후 진우는 응어리졌던 아쉬움을 깨끗하게 털어 냈다.
그도 그럴 것이,
“다 팔아 치웠으면 또 수확하면 그만이니까. 안 그러니 얘들아?”
삐삐삐!
삐이이익!
어차피 땅속에 심어 둔 증식하는 한무 씨감자로 인해서 감자는 계속해서 성장 중인 상태.
자급자족의 대명사인 농사가 있는데 무엇이 걱정일까?
“그건 그렇고…….”
[현재 신용도 17]퀘스트나 그 밖의 기타 업적 달성 등으로 어느덧 17까지 획득하게 된 신용도.
새끼 팜오리와 영양제를 구입하면서 1,150만 원이라는 거금을 사용한 탓에 아직 여윳돈은 남아 있지 않은 상태.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돈도 다시 벌어 볼까?”
작물을 수확하면 돈은 자동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오늘 당장만 해도 두 번째 납품을 성공적으로 끝마치지 않았던가?
자신 혼자였더라면 물건이 아무리 좋다 해도 제대로 된 판매처를 구하지 못해 바가지를 썼을 테지만, 대기업인 전성그룹을 상대로 그런 간 큰 짓을 벌일 놈들은 몇 없을 테고.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지금 당장 농지에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새끼 팜오리들의 도움 덕분에 잡초도 최소한의 숫자만 남기고 전부 제거했고, 땅에 심어 둔 감자의 정리.
거기에다가 이장님을 통해서 손에 넣은 배추 모종도 추가로 심어 두었다.
유독 더 어두운 밤하늘을 자랑하는 시골 환경도 덧붙여서 활동하기도 애매한 상황.
다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밤에는 쇼핑이지.”
[현재 신용도 17] [당신의 현재까지 누적된 신용도는 23입니다. 이제 좀 상대할 만한 고객님으로서 성장했군요.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하는 드루이드여, 상점은 언제나 다양한 상품으로 그대를 맞이할 것입니다!]낮에 농사로 돈과 신용도를 개처럼 벌었다면 밤에는 응당 써 주는 게 도리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