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10
10화 야생을 받아들여라
돈이 없을 때에는 구경만 해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뭐, 돈이 없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지만.”
돈이 없어도 그것을 대체할.
아니, 더욱 상회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17에 달하는 신용도가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상위 게이트에서나 획득 가능한 전설 등급의 아이템을 구매할 정도의 가치.
하나하나 어디 빠지는 것 없이 뛰어난 전설 등급의 아이템이지만 그렇기에 지금부터의 선택이 중요하다.
“이제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기본 전제가 환불 불가인 드루이드 상점이다.
한 번 선택하면 그것으로 끝.
※ 상품명 : 렐퓨리온의 정령의 가루(전설) – 구매 비용 10신용도
* 렐퓨리온의 특별한 마법 처리로 인해 정령의 관심을 더욱 이끌어 냅니다.
[언데드 군단? 그까짓 것들은 우리 엔트들이 나서면 쉽지. 심지어 우리는 자연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상품명 : 엔트 군단 소환의 뿔피리(전설) – 구매 비용 15신용도
*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엔트 군단을 소환합니다.
이전에 확인했던 전설 등급의 아이템들이 눈에 밟혔지만, 안타깝게도 그 2개는 진우의 선택지에서 그렇게 급하지 않았다.
“정령이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굳이?”
노움들과 정수아의 운디네를 통해서 하급이라고 해도 정령이 있으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고는 있는 진우다.
그러나 아예 정령과의 접점이 없으면 모를까.
특성인 대지모신의 축복만 있다면 어차피 정령이 알아서 찾아올 터.
10이라는 신용도를 선뜻 사용하기에는 가성비가 영 별로였으며,
“엔트 군단을 소환해서 얻다 쓰라고.”
엔트라면 짐꾼으로 3년 동안 생활해 본 진우도 익히 알고 있는 생명체다.
“거대한 나무 형태의 몬스터라고 했던가?”
물론 직접 본 적은 없다.
일단 한국에서는 출몰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전해 들은 말은 있다.
소문이라는 게 본디 살이 붙는다곤 하지만 미국의 거대 게이트에서 보스격으로 출현했던 엔트는 적지 않은 사상자를 냈다고 들었다.
적이 있는 게이트가 즐비한 전쟁터라면 모를까.
이런 시골에서 엔트 군단을 소환한다?
심지어 자신의 말에 복종할지도 모르는 녀석들을?
“아서라, 괜히 큰일 날라.”
빨리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게 아니라면 선택할 이유가 없을 터.
그러한 탓에 진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신용도 상승을 통해 추가로 진열된 물품들로 향했으나,
“하아. 나쁘지는 않아. 나쁘지는 않은데…….”
하나같이 전설 등급답게 효과들은 끝내줬지만, ‘엔트 군단 소환의 뿔피리’처럼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화력이 너무 과한 나머지 독이 되어 버린 경우랄까?
렐퓨리온의 정령의 가루처럼 적당히 무난한 아이템도 있긴 했지만, 17에 달하는 신용도를 언제 또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그렇게 하염없이 홀로그램들을 하나둘 살펴 나가면서 마지막까지 확인했을 때였다.
“어? 이건?”
[야생이란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으로 적을 사냥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조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 자연을 읽고, 동물의 마음을 읽어라. 그 속에서 야생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야.]※ 상품명 : 특성 영단 – 야생을 받아들여라(전설) – 구매 비용 17신용도
* 섭취 시 특성, ‘야생을 받아들여라’를 획득합니다.
* 야생을 받아들여라 : 동물이나 식물과 소통이 가능해지며, 오랜 기간 함께할 경우 해당 대상의 힘 일부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대상과의 친화력, 지배력 및 피지배력이 높을수록 힘의 강도와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시기가 짧아집니다.
무구나 일회성 소모품의 형태가 아닌.
한 번 익히면 평생 가는 특성을 획득할 수 있는 특성 영단이라니?
“특성을 이런 식으로도 획득이 가능하다고?”
레벨이 오르거나 특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이에게 특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3년 짐꾼 생활 동안 처음 본다.
뭐, 애초에 드루이드의 상점도 처음 보는 것이니 거기서 거기지만.
[섭취하면 특성을 획득하지. 드루이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사기를 칠 이유가 없지.] [껄껄. 성능은 적힌 그대로일 거야, 신참.] [전설 등급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어찌 되었든 지금까지 살펴본 전설 등급의 아이템 중에서는 가장 끌리면서 동시에 가장 애매하다.
동물과의 소통? 확실히 새끼 팜오리를 키우는 입장에서.
또, 앞으로 추가적으로 가축을 들이게 되는 상황이라면 결코 나쁘지는 않을 거다.
말이 통하는 것만큼 수월한 게 또 없으니까.
다만 그게 과연 전설 등급의 가치를 매길 정도가 될까?
결국 중요한 것은 소통 그 뒤에 달려 있는 ‘동물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일 터.
“좋아.”
잠깐의 고민이 있었지만, 결단을 내린 이후부터는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다.
화아악-
[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로움이다. 드넓은 초목도, 초식 동물도, 육식 동물도. 모두가 소중하지. 야생을 받아들일 드루이드여…….] [어휴, 이 친구는 다 좋은데 말이 더럽게 많어. 속 편하게 구매해 줘서 땡큐 하면 될 걸 가지고. 그냥 영단이랑 물 한 모금 삼켜라. 그럼 끝나.]“아, 네. 충고 감사합니다.”
17의 신용도와 맞바꿔 손에 쥐어진 녹색의 자그마한 영단.
텁-
싱그러운 향기를 풍길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다소 퀘퀘한 냄새를 풍기는 그것을 나는 물과 함께 꿀꺽 삼켰고,
눈앞의 알림음과 함께 나는 쏟아지는 졸음에 그 자리에서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 * *
“……?”
꿈인 듯, 꿈이 아닌 듯.
몽롱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
지구와는 전혀 다른 중력의 법칙이 적용되는 듯.
몸을 죄어 오는 압박감에 진우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직 당신에게는 말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당신에게는 움직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거기에 이어서 연이어 떠오르는 내용들.
그나마 다행이라면 고통이 없다는 점과 숨을 쉴 수는 있게 해 주었다는 걸까?
적어도 죽지는 않는다.
그것만으로 만족…….
아니, 만족할 수 있을 턱이 없다.
으득-
3년을 밑바닥에서 구르다가 이제 겨우 제대로 먹고 살길을 찾았다.
그런데 이까짓 알림음이 뭐라고 자신을 억압한단 말인가?
[아직 당신에게는 움직일 수 있는 ■■이…….]이를 악물고 몸을 움직이려고 하자 그때까지 가만히 압박만 하던 것이 서서히 고통으로 변화되었지만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가운뎃손가락.
뭐, 그마저도 전부 펴진 것은 아니고 반 정도만 펴진 탓에 다소 애매한 山의 모양이 되었지만 그래도 움직이는 것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어디인가?
누군지는 몰라도 억압한 자에게 엿 정도는 먹였다는 것.
그 사실에 힘입어서 천천히 움직임을 더하려던 찰나였다.
“역시 대지모신 님의 자비를 얻은 신참답군. 패기가 마음에 들어.”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인기척도 없이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
머릿속에서 별의별 생각이 오갔지만, 정리는 금방이었다.
“에잉. 쯔쯧. 난 이런 거 진짜 싫다네. 하여튼 이건 뉴비들한테 텃세 하나는 더럽게 부린다니까.”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에게 1분의 자유로운 자격이 주어집니다.]톡- 치는 느낌과 함께 몸을 억압하던 중력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
씻은 듯이 사라진 억압.
그렇게 고개를 든 진우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무척이나 거대한 아름드리나무였다.
나무의 크기 하나만으로도 웬만한 대륙 하나와 맞먹는.
지구에는 결코 없을 법한 웅장함.
자연을 형상화한 것만 같은 나무의 곁으로는 다양한 동식물과 정령, 요정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세계수일세. 멋있지 않나?”
“아…….”
세계수라니.
말로만 들었지.
그게 진짜로 실존했다고?
아니, 애초에 드루이드 상점에도 세계수의 씨앗을 팔고 있었으니 없는 것은 아닐 거다.
측정 불가의 등급이고, 1,000조라는 가격을 자랑해서 문제지.
그 정도면 거진 국가 단위.
애초에 개인이 구매하라고 존재하는 아이템이 아니다.
“그, 저어……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만 혹시 누구신지 알 수 있겠습니까?”
“커흠, 뭐야. 지금 나 못 알아보는 건가 신참? 이거 좀 섭섭하구만. 그래도 나름 오리알에 대해서 조언도 해 줬었는데.”
진우의 말에 섭섭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는 덥수룩한 수염의 거인.
다소 특이한 점이라면 옷 주변에 두르고 있는 형형색색의 깃털들이랄까?
그리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오리알’에 관련된 드루이드라면 진우의 기억에는 하나뿐이다.
“……브락시온 님?”
“껄껄, 이제라도 알아봤으니 봐주도록 하지.”
진우가 알아보자 호탕하게 웃어 보이는 브락시온.
그의 눈에는 많은 것을 알려 주고자 하는 열의가 고스란히 묻어났지만 애석하게도 ‘꿈’과 같은 공간 속에서의 시간은 그리 오랫동안 유지할 수는 없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에 의해 오래 있을 수는 없을 테니. 군말하지 않겠어. 자, 받아 두라고. 자네라면 이 아이도 잘 키울 거라고 믿겠네.”
“네?”
추가적인 말 없이 진우의 손에 쥐어진 것은 빨간색으로 점철된,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는 알.
그리고 그것은 겉모습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치이이이익-
“끄으읍!”
“미안하지만 조금만 참게나. 다 자네와 오리들에게 도움이 될 게야.”
높은 체력치로 웬만큼 뜨거운 것도 거뜬하게 집어 들었던 진우조차 기겁할 정도의 열기에 화들짝 놀랐지만, 브락시온은 놓치지 않게끔 손에 꽉 움켜쥐게 만들었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신참. 그때까지 대지모신께서 굽어보시길 내 진심으로 기도하지.”
그 말을 끝으로 진우는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 * *
“……허억! 어, 어어?”
식은땀과 함께 눈을 뜬 진우에게 보인 것은 이제는 익숙한 집의 천장이다.
옆에 덩그러니 엎어져 있는 컵의 모습만 봐도 영단을 먹었던 위치라는 것을 짐작하기에는 어렵지 않은 일.
“그 꿈은 대체 뭐였지?”
보통의 꿈이 잠깐 지나면 곧잘 잊히던 것과는 달리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진우를 억압하던 중력의 압박감과 그것을 해방시켜 주었던 브락시온.
거대한 크기의 세계수까지.
도무지 꿈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생생한 기억.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게 왜 여기 있냐?”
진우의 손에 떡하니 쥐어져 있는 물건은 타조의 알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거대한 알.
그것은 꿈에서 브락시온에게 받았던 붉게 타오르던 녀석이었다.
* * *
진우가 떠나간 공간.
브락시온의 곁으로 흑표범 한 마리가 날렵하게 도약했다.
번들거리는 흑빛의 가죽은 가히 보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탐스럽게 반짝일 정도.
허나 흑표범의 모습은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다.
스스스-
언제 흑표범이 존재했었냐는 양.
순식간에 하나의 여린 엘프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흑표범.
아니, 드루이드인 티리에나가 브락시온을 바라본다.
“정말로 괜찮겠어요, 브락시온?”
브락시온이 진우에게 건넨 것은 일전에 집오리가 낳아서 판매했던 팜오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가치를 지닌 녀석이다.
비교 대상을 굳이 찾고자 한다면 대지모신께서 현현하신 세계수 정도쯤은 되야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알의 시작은 이 숲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드루이드가 존재했지만,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화에 성공하지 못한 ‘태초의 알’.
부화에 성공만 한다면 어떤 생명체가 태어나든 가히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게 될 터.
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태어났을 때의 일이다.
“엇흠. 어차피 내 곁에서는 부화하지 못하는 놈이었어. 드루이드라면 욕심보다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게 맞는 법일 테니.”
벌써 자신의 곁에서만 지낸 세월이 1,000년이다.
수많은 조류의 알을 부화시켜 왔지만, 태초의 알만큼은 부화에 성공시키지 못했다.
때로는 분노를 느끼기도, 자신을 책망하기도, 이루지 못한 선조를 탓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일.
대지모신의 사제로서 자신이 응당 해야 할 일만 하면서 지내고 있을 때 브락시온은 보았다.
자신조차 1개 정도는 실패하는 팜오리의 부화를 하나도 실패하지 않고 전부 성공시킨 한 드루이드를.
아직 제대로된 기술도, 노하우도 없는 짧은 수명의 인간.
하지만 그런 인간이 드루이드가 되었다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터.
“후회는 없으시겠죠?”
“허허허, 자연의 선택에 후회가 어디 있겠나, 티리에나. 신참 녀석도 실패한다면 다음 세대에게 맡기면 될 뿐. 그저 그뿐일세.”
“당신답네요. 저에게 청혼하신 것도 마찬가지겠죠?”
“헛흠흠. 다, 당연한 것 아니겠나?”
“……당신 그 반응 뭐에요? 왜 당황하는 거죠? 말하세요! 방금 속으로 누굴 생각했죠?”
“누, 누굴 생각하기는 그야 당연히 티리에나 당신 말고 누구겠나?”
“당신. 거짓말할 때 수염 만지작거리는 버릇이나 고치고 말하시지? 안 봐도 뻔해 또 티이에스 생각했겠죠. 자매 사이를 그렇게 갈라놔야 속이 시원하겠어요?”
“커험험. 무슨 말도 안 되는…….”
“그 입 닥치고, 이따 집에서 봐요. 브.락.시.온.”
“…….”
흑표범으로 변하며 찌릿하게 노려보는 티리에나.
기본적으로 조류와 고양이과에 속하는 포유류의 관계 속의 포식자와 피식자가 누구일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낮에도 강하지만 밤에는 더욱 강한 그의 인생의 반려.
저 살벌한 눈빛으로 보건대 오늘은 어째 곱게 잠들 수는 없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끄으응…….”
자연의 선택.
티끌만큼은 아니겠지만 거기에 후회가 조금은…….
아니, 꽤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