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lter ego is becoming a tycoon RAW novel - Chapter (292)
이온 대륙 중앙의 아제리온 제국과 동부의 제피아 공화국, 그리고 남부 사막 지역이 맞물리는 접경지역.
그곳엔 농사조차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이라는 여건과 다르게 상당히 번성한 대도시 하나가 세를 떨치고 있었다.
자유 도시 드라칼.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도시 국가나 다름없는 드라칼은 두 강대국 사이의 완충지이자 무역의 중개지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대륙 전체에 지점을 둔 용병 길드의 본거지가 위치한 곳이었다.
사실상 시장이 되기 위해선 도시의 터줏대감인 길드의 선택을 받아야만 했으니, 그야말로 용병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리고 그 나라에서 재상이나 다름없는 위치에 있는··· 아니, 잠깐이나마 ‘있었던’ 인물이 바로 현 사무총장인 패트릭이었다.
‘골치 아프군.’
오일을 발라 뒤로 넘긴 갈색 머리에 단정한 복장을 갖춘 서른 후반의 사내, 패트릭이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용병이라기보단 공무원 같은 인상의 그가 스트레스에 잘게 떨리는 입꼬리를 손으로 살짝 눌렀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그는 아일랜드 출신의 지구인이었다.
그것도 유독 늦은 나이에 전송되어 엘리트로서 한창 바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이세계로 불려 와 버린.
이 땅에 떨어진 직후, 그는 살아남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
하필이면 여기가 신규 차원이어서 전송 전에 열심히 조사한 자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었고, 가진 능력도 전투에 적합하지 못한 보조 계열이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차피 이제 와서 지구로 돌아가 봤자 평범한 삶을 살 순 없어. 그렇다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건 최대한 많이 얻고 가야지.’
그가 용병 길드에서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아득바득 기어오른 지도 십 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그 노력의 결실을 제대로 누리기도 전에 이렇게 허무하게 물러나야 한다고?
‘그럴 순 없지. 암! 그럴 순 없어.’
그는 자신의 새로운 동아줄인 덩치 큰 전사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지금의 자리로 올려준 전 용병왕 칸블이라는 끈이 떨어진 후에 간신히 찾아낸 뒷배.
바로 용사의 동료로서 결사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할리였다.
그와 연을 맺었던 덕분에 상당한 시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사히 사무총장 자리를 지킬 수 있었는데···.
“듣고 있는가? 사무총장.”
아무래도 다른 파벌의 경쟁자들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예, 물론이지요. 클레이븐 경.”
패트릭은 자신의 앞에 버티고 선 중년 사내에게 공손하게 대답했다.
작당이라도 한 듯 한창 업무를 보는 자신의 집무실에 갑자기 들이닥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다시 눈에 담으며.
‘아예 작정하고 몰려왔군. 오늘 아예 확정 지으려는 건가?’
길드의 간부부터 시작해서 대형 길드의 수장까지.
그 십여 명의 사람들 속에서 유독 존재감이 남다른 존재가 넷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극의의 강자가 넷···. 미쳤군. 대체 어떻게 이만한 수를 포섭한 거지?’
그들에게서 은연중에 풍기는 기세에 침이 바짝바짝 말랐다.
아마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절해 버렸을지도 몰랐지만, 카르마 포인트와 고유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그도 맹탕은 아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삼키고 다시 표정을 관리했다.
“하지만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할리 님께선 결사대의 일원으로써 성자님과 함께하느라 바쁘십니다.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일을 그렇게 급하게 진행할 수는···.”
아무리 그가 길드의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이라고 하지만, 그런 권위도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뒤를 봐줄 수 있는 용병왕이 건재할 때나 성립하는 법이었다.
지금은 길드의 무력 그 자체이자 얼굴이나 다름없는 그들이 상급자나 다름없었으니 항상 행동에 주의해야 했다.
“후, 자네는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나?”
“···예?”
하지만 그런 그의 조심스러운 변명도 얼마 가지 못하고 틀어 막히고 말았다.
그가 잠시 당황하는 듯하자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중년 여성, 용병 마법사들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파벌의 대표인 대마법사가 대수롭잖은 듯 입을 열었다.
“그가 따로 떨어져서 남부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지도 제법 오래된 것 같은데 말이죠. 뭐라더라, 칼코스의 투왕이라던가?”
“···하지만 부족 연맹인 칼코스에서 그건 일종의 명예직 같은···.”
그 말에 패트릭이 황급하게 답했다.
애초에 철저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용병 길드가 용병왕이 아닌, 다른 나라의 ‘왕’을 자칭하는 누군가의 아래로 들어간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다른 국가의 지배자가 된 시점에서 용병이라 부를 수도 없으니, 당연히 용병왕의 자격도 박탈되는 게 마땅하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거 그만 질질 끌고 슬슬 마무리하자고. 이제 좀 귀찮아지기 시작하는데 말이야. 그냥 확 모가지를 따 버릴···.”
“탈룸.”
“···쯧, 도와준대도 참. 그럼 알아서 하라고.”
과격하게 위협하던 텁수룩한 산적 수염과 커다란 덩치의 근육질 전사가 가장 앞에 선 중년 사내의 제지에 혀를 찼다.
그 또한 극의에 이른 강자일 텐데, 지금은 상대의 뜻에 따르겠다는 듯 팔짱을 끼고 뒤로 물러났다.
‘클레이븐···.’
그에 패트릭의 시선이 다시 정면의 중년 사내에게로 향했다.
방랑 기사 출신으로서 용병계에 흘러들어온 지 이십여 년이 지난 마스터급의 기사이자, 기어코 다른 파벌의 대표들까지 규합해서 차기 용병왕 자리를 노리는 야심가에게로.
“사무총장,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이렇게 시간을 끌어 봤자 자네에게도 좋을 게 없어. 내가 정말 마음먹었으면 이런 귀찮은 절차도 필요 없었을 테니.”
그 말대로.
그는 무력도 무력이지만 탁월한 정치력까지 겸비해 전 용병왕 칸블의 파벌과 비등하게 겨루었던 유력한 후보자였다.
그때는 순수한 용병 출신으로써 이름을 떨친 칸블에게 정통성에서 밀리는 바람에 낙마하고 말았지만.
‘이건 곤란한데.’
사실 이런 압박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그동안은 할리의 이름을 방패로 삼아 어떻게든 피할 수 있었는데, 저쪽이 명분까지 가지게 되니 슬슬 그것도 버거워지고 있었다.
클레이븐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그의 이름값 때문에 이렇게 절차를 지키려 하는 모양이었지만, 본인도 없는데 대리인이 그 이름을 팔며 버티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자네 설마 이 드라칼을 남부 야만인들에게 넘길 생각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흐음, 그럼 설마 아직도 그 투왕이라는 자를 믿고 있는 건가?”
패트릭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클레이븐이 강한 어조로 밀어붙였다.
그는 용병 길드 전체로 따져도 한 손으로 꼽을 만한 강자였던 만큼 그만한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기에, 대놓고 말하진 않았으나 말투에서는 은연중에 상대를 얕보는 감정이 묻어 나왔다.
물론 할리라는 이름 높은 대전사에 대해선 익히 들어본 데다 그 명성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뭐? 전설의 용인? 키가 10미터를 넘는 거인이라고? ···하! 말도 안 되는 소리.’
소문이 과장되는 거야 어제오늘 일도 아닌 만큼 그는 그것들이 전부 낭설이라고 생각했다.
대체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누가 믿는다는 건지 헛웃음이 나올 지경.
아마 패트릭이 그를 방패막이로 사용하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과정에서 그런 과한 공작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차라리 내가 결사대에 들어갈 것을. 그랬다면 이렇게 돌아갈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의 머릿속에서 전 용병왕이었던 칸블이 사망한 직후에 자기가 대신 불려 갈까 봐 숨죽였었던 기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막상 그 결사대가 순항하고 있다 보니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차올랐던 것이다.
자신이 갔더라도 그 정도 활약은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거라고.
그가 최근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길드 내에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것도 그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또 허무하게 용병왕 자리를 빼앗길 게 뻔했으니까.
그에 할리를 지지하는 사무총장 패트릭과 갈등이 생긴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무총장님, 드릴 말씀이···.”
하지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일은 클레이븐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조금 갑작스럽게.
“지금··· 1층 로비에···.”
조심스럽게 집무실 안에 들어온 비서가 잔뜩 늘어선 고위층들의 위압감에 짓눌려 힘겹게 침을 삼키며 겨우 쥐어짜 내듯 말을 이었다.
“···할리 님께서 오셨다고 합니다.”
***
‘어디 한번 얼굴이나 보자.’
용병왕 후보, 클레이븐이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는 지금 사무총장 패트릭은 물론 집무실에 쳐들어갔던 길드 고위층들과 함께 로비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 말로만 듣던 할리를 직접 대면하기 위해.
‘물론 아무리 소문이 과장되었다 해도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겠지.’
어쩌면 단순히 무력으로만 따지자면 자신이 조금 부족할지도 모른다.
용사와 함께 활약한 결사대의 일원이라는 이름값이 완전히 허명일 리는 없을 테니.
‘하지만 용병왕은 단순히 무력만 강하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최근에서야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할리와는 달리 그는 20년이 넘게 용병 생활을 했고, 그중 10여 년을 용병 길드를 대표하는 강자로써 활동해 왔다.
그 무형의 자산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거기다 그는 지금 혼자도 아니지 않은가?
‘다른 놈들에게 양보한 이권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일단 용병왕의 자리만 손에 넣으면···.’
그렇게 자신을 지지하기로 약속한 강자들과 함께 자신만만하게 로비로 향한 그는.
그곳에 도착한 순간, 공간 전체에 감도는 심상치 않은 공기를 감지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음?”
사실상 이곳 드라칼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용병 길드의 본부인만큼 로비의 넓이는 어마어마했다.
수많은 창구와 데스크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편의 시설들까지.
로비엔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거리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
“···큼.”
지금 그 공간에는 묘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리고 막 로비에 도착한 이들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저자가 바로···.’
기둥 옆쪽에 비치된 소파에 거의 눕듯이 몸을 파묻은 채 두 손을 등받이 위로 올린 남자.
그때, 배부른 사자처럼 느긋하게 늘어져 있던 그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고—.
‘아.’
···단지 그것만으로, 당당하게 이곳까지 내려온 이들이 이 자리의 다른 이들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오! 이거 오랜만이구만, 패트릭! 그간 잘 있었나? 으하하핫!”
하지만 그들의 반응 따윈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 그 당사자는 무리의 사이에 끼어있는 패트릭을 발견하고 시원하게 웃으며 소파 위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끼이이익—
그 행동에 이미 푹 꺼져 있던 소파에서 최후의 단말마가 새어 나왔다.
기운을 움직여 톤 단위의 몸무게를 최대한 줄이긴 했으나, 겨우 그 정도로는 정상적인 인간의 체중을 상정해 만들어진 물건이 버텨낼 수 없었다.
“어, 이거 미안하구만! 소파가 망가져 버린 것 같은데.”
“···아, 불량품이었나 보군요. 괜찮습니다, 할리님. 어차피 조만간 교체할 예정이었던지라.”
“쯧쯧쯧, 거 명색이 길드 본부인데 좋은 물건 좀 갖다 놓지 말야.”
“하하하, 죄송합니다. 앞으로 좀 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혀를 차며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근육질 거한과 어느새 앞쪽으로 나서서 굽실거리며 그를 응대하는 패트릭.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클레이븐을 비롯한 고위층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크다.’
그것이 모두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들 중 가장 큰 덩치를 가진 산적 수염도 2미터가 넘는 거구였지만, 겨우 그 정도로는 저 사내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 그저 단순히 크기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존재로서의 밀도가.
생명체로서의 격이 다르다.
침대 위에 놓인 바위처럼 주변 공간마저 그에게 짓눌린다는 착각까지 느껴질 정도.
‘젠장, 저게 대체 뭐야!’
그에 클레이븐이 간신히 침을 삼켰다.
딱히 뭘 한 것도 아니었는데 서서히 숨이 가빠진다.
배부른 맹수처럼 느긋하게 다가오는 저 존재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육체가 제멋대로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극의에 이르고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알아채는 게 조금 늦었으나, 그는 곧 이 반응이 무얼 뜻하는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이 정도였다고?’
그것은 본능이 보내는 경고.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고 인지한 육체가 내지르는 처절한 절규였다.
정작 그 상대는 이쪽을 신경도 쓰지 않고 패트릭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오! 이 친구들은 누구지? 수준이 제법인데?”
때마침 그 존재가 시선을 돌려 그들이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불가해한 무엇과 눈이 마주친 클레이븐은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죽는다.’
대적 따윈 불가능하다.
소문이 과장되었다고? 패트릭이 조작한 유언비어라고? 저자에겐 용병왕의 자격이 없다고?
말 그대로 개소리였다.
저 괴물 앞에서 그런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자신이 준비한 얕은 수작 따위도 전부 무의미했다.
여론을 집중시키든, 파벌을 규합하든, 다수의 강자를 한데 모으든.
지금 당장이라도 혼자서 그 모두를 찢어발길 수 있는 존재에게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 저희 길드의 간부나 다름없는 이들입니다. 마침 길드의 방향성에 대해 회의하기 위해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아! 그렇구만! 그런데 이 친구들 왜 이렇게 굳었어? 안 잡아먹으니까 어깨에 힘 좀 풀라고! 카하하핫!”
패트릭의 대답에 다시 시원한 웃음을 터트리는 할리.
그제서야 주변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던 클레이븐은 이상 반응을 보인 것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쩐지 아까부터 묘하게 조용하더라니.
극의건 뭐건 상관없이 함께 온 이들 모두가 한껏 긴장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그는 빠르게 처세를 결정했다.
“···이거 실례를 범했군요.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할리 님.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골든 크로우 용병단의 단장, 클레이븐이라고 합니다.”
정중한 인사말과 함께 천천히 숙여지는 허리.
확연한 굴복의 표현이었다.
“오우!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그러자 언제 옆으로 다가왔는지 호탕하게 웃은 할리가 가볍게 그의 등을 두들겼다.
···분명 가벼운 손길이 틀림없었는데, 클레이븐은 연신 휘청거리는 몸을 애써 가누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오직 생존 본능에 따른 비굴한 웃음을.
“다행히 댁이랑은 앞으로도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 같구만! 으하하핫!”
“하, 하하···. 그거 다행이군요···.”
그리고 그것은 더없이 옳은 판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