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lter ego is becoming a tycoon RAW novel - Chapter (491)
신성 (3)
지하 깊은 곳에 건설된 비밀 연구소.
어지럽게 얽힌 전기 배선과 정신없을 정도로 깜박거리는 램프의 불빛, 그리고 온갖 수치가 오르락내리락 변동하는 모니터들까지.
깔끔한 실험실과는 거리가 먼 그 공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기계 장치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지이이잉—!
순간, 그 중심부에서 묵직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대기를 뒤흔드는 기이한 마력과 함께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파동.
파직— 파지직—
콰과광! 퍼엉—!
거기에 영향을 받은 기계 장치들이 일제히 이상 반응을 일으키며 검은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우햐햐햣! 드디어 완성했군요! 나의 피와 땀이 서린 역작!”
하지만 그 연구소의 주인, 닥터는 주위가 난장판이 되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스파크가 일든 불길이 번지든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눈앞에 있는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며 웃음만 터트릴 뿐.
그에겐 이 연구실의 값비싼 기자재들도 실험에 필요한 수고를 약간 줄여주는 소모품일 뿐이었다.
어차피 필요한 데이터는 전부 그의 머릿속에 있었고, 필요하다면 복잡한 공정도 얼마든지 단축할 수 있었으니까.
“마도 공학은 물론 기계, 생명, 화학··· 아무튼 그 모든 정수가 집대성된 궁극의 예술품!”
그 외침과 함께 전면에 서 있던 존재의 두 눈에서 붉은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4미터에 가까운 체구에 기계와 생명체가 반반씩 섞인 것 같은 악마 형상의 무언가.
“그 이름하여··· ‘메카 데빌 엑스큐셔너’—!”
동체 곳곳 박힌 금속 장치에서 기계 소음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메카 데빌 엑스큐셔너의 한쪽 안구를 차지한 붉은 렌즈 위로 광기에 찬 웃음을 머금은 닥터의 얼굴이 비쳤다.
처형자에게서 채취한 소체로 만들어진 호문쿨루스와 기계 장치 형태로 가공된 마도구들, 그리고 닥터 본인이 이룩했던 격과 업 일부까지 뜯어내 한데 엮어 창조한 인공 생명체.
본인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그 초월을 넘어선 괴물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닥터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흐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발음이 조금 별로인 것 같군요. 역시 메카 데몬 디스트로이어가 더 나을지도.”
그러고는 자신이 사흘 밤낮을 고민해 지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니면 차라리 기간틱··· 머신··· 아스타로트··· 으음.”
연구자에게 있어 창조물에 붙일 이름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요소였다.
품격 있는 이름은 때때로 존재로서의 가치마저 올려주는 법.
그는 멋진 작명을 위해서라면 앞으로도 몇 날 며칠을 더 투자할 용의가 있었다.
“···어떻게 당신의 실험실은 올 때마다 개판인 것 같군, 닥터.”
그런데 그 순간.
닥터 혼자만의 공간에서 불청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선한 미풍과 함께 흘러든 나른한 여성의 음성.
후우웅—
그와 함께 주위를 집어삼키던 불길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자욱한 연기를 대신해 오색찬란한 운무가 그 자리를 차지했고, 매캐한 탄내 대신 달콤한 과일 향이 근처를 맴돌기 시작했다.
꿈결 같은 환상이 차가운 현실을 덮어씌우듯이.
“앞으론 정리 좀 하고 지내는 게 어떻겠나? 깔끔한 환경에서 작업하는 것이 더 능률이 좋을 터인데.”
인도 전통복인 사리를 걸치고 한 손에 곰방대를 든 갈색 피부의 여성이 운무를 두른 채 모습을 드러냈다.
“오라클?”
그 갑작스러운 등장에 멀뚱히 그녀를 바라보던 닥터가 인상을 찌푸렸다.
성향이 워낙 극과 극인만큼 그들의 사이가 나쁜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괜히 싸울 것이 뻔했기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대화도 잘 나누지 않았고, 당연히 이렇게 상대의 영역에 불쑥 찾아올 정도의 사이도 아니다.
“퍄햐하핫! 전 이렇게 하는 게 더 편합니다! 어차피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닥터는 곧 히죽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그녀를 맞이했다.
지금은 그동안 공들였던 걸작을 막 완성한 직후.
그런 만큼 아주 기분이 좋았기에 오늘 하루는 어떤 일이든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가 줄 수 있었다.
“흐음, 본인이 그렇다면야 내가 더 할 말은 없네만.”
“그런데 이곳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오라클? 항상 인도에만 박혀있던 당신이?”
또 그런 반응엔 오라클의 행차 그 자체가 범상치 않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가 거의 대부분을 연구실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처럼, 그녀 역시 자신이 구축한 제단 밖으로 나오길 꺼리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대적자가 세계선에 접촉했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들고 있던 곰방대를 입에 물면서 내뱉은 그녀의 무덤덤한 말에 실실거리며 웃던 닥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흐음. 벌써 말입니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군요.”
거칠게 돋아난 수염을 벅벅 긁은 그가 입맛을 다셨다.
담배를 깊이 들이쉰 오라클도 짙은 연기를 내뱉으며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이쪽을 들여다본다고 하지. 이번 관측을 바탕으로 외신이 지구에 도착할 시기도 크게 앞당겨졌을 터.”
번천회주가 극소수의 최측근들에게만 사실을 공유한 이유이기도 했다.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대비할 시간도 짧아질 수밖에 없었으니.
그런데 보통 강자도 아니고 아예 세계의 비호를 받을 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대적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 저런 장난감의 이름을 짓는다고 고민할 시간도 없다는 뜻이지.”
“에잉~! 장난감이라니! 거 말이 너무 심하십니다? 이건 우리 처형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품이나 다름없단 말이오! 망자에 대한 예우는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원!”
“···유품이 아니라 유실물 아닌가? 아니, 도난품이라고 해야겠군. 거기다 망자에 대한 예우는 그대가 더···.”
“어허! 쓸데없이 말꼬리 잡지 말고 할 말 다 했으면 이만 가 보십시오. 난 우리 귀염둥이한테 기름칠 해줘야 해서 바쁘니까.”
그의 어린애 같은 투정에 그녀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간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역시 영 상성이 맞지 않는 상대였다.
“···후, 그럼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그대도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신경 써 주길 바라네. 자칫하다간 정말 모든 일이 허사가 될 수도 있으니.”
“우햐햣! 걱정 붙들어 매셔도 좋습니다! 내가 그 마지막 실험을 위해 얼마나 오래 기다려 왔는데 이제 와서 그걸 망친단 말입니까?”
결국 오라클은 다시 한번 다짐받는 것을 끝으로 순순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얼핏 보기엔 연구에만 집착하는 외골수처럼 보일지 몰라도, 저 사내 역시 한때는 세상 전체를 제 손에 넣고 쥐락펴락하던 절대자였다.
저렇게 허술해 보여도 중요한 국면이 닥친다면 어떻게든 제 가치를 증명할 것이다.
“아니 잠깐···! 심플 이즈 베스트. 그냥 ‘메카 데몬’이라고 하는 건···? 우오옷! 이거 괜찮지 않습니까!”
···솔직히 영 믿음이 가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그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온 건 사실이니까.’
저 연구에 미친 사내는 절대 이 계획이 허사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지구에 신비를 싹틔우는 작업은 그저 시작일 뿐, 그에게 이건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일생일대의 초대형 프로젝트나 다름없었으니.
아마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를.’
그들을 휘두르는 외신도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
어떤 외부의 개입도 없이 오로지 지구인들이 주도하는 신세계를 위해.
***
지구에는 신비가 존재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십여 년 전인 서기 2천 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스템이 등장하고 이세계 전송이 시작되기 전까진.
‘지구 같은 차원이 그리 흔하진 않겠지.’
지금까지 경험한 걸로 보면 흔하지 않은 걸 넘어서 거의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카샤 시스템이 지구를 선택한 것도 그 부분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각성자를 여러 차원의 법칙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룰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데는 아무것도 없는 공백 상태가 가장 유리하니까.
라뮤의 각성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도 그게 원인일 터.
“후우.”
나는 감았던 눈을 뜨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신에서 흘러내린 식은땀과 옷의 앞자락을 축축하게 적신 핏물 때문에 찝찝하기 그지없었지만, 바로 씻으러 일어나기엔 당장 움직일 약간의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도 수확은 나쁘지 않아.’
나는 지그시 눈을 반개하며 자신의 안쪽에 집중했다.
내면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
그동안 단단하게 굳어있던 신성의 씨앗에 금이 가고 그곳을 통해 작은 싹이 자라나 있었다.
‘운이 좋았어. 어느 정도 기대하긴 했지만 진짜 단번에 성공할 줄이야.’
스타트는 제대로 끊었으니 앞으로 무언가 계기가 있을 때마다 쑥쑥 자라 화려하게 만개할 수 있겠지.
그건 본체의 영향을 받는 아바타들의 신성도 마찬가지였다.
그것까진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이거 갑자기 스케일이 커지네.”
그와는 별개로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미약한 신성」을 얻는 순간 의식이 한 차원 높은 곳에 도달한 덕분에 확인할 수 있었던 세상의 비밀.
그 진리의 흐름 속에서 느꼈던 깨달음의 대부분은 이미 먼지처럼 흩어진 뒤였으나, 「신화의 기록」 덕분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몇몇 정보는 유실되지 않게 담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눈. 분명 신격이었지. 그것도 일반적인 하위 신도 아니고 한 차원의 창조주에 해당하는 주신격이었어.’
단순히 기록에 남은 잔재와 시선이 마주쳤을 뿐인데도 일순 사고가 정지했을 정도였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신이나 다름없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게 지구에 강림한다고?’
저도 모르게 경련하는 눈가를 꾹꾹 누르며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주신은 하계에 직접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설사 그럴 수 있더라도 그래서는 안 된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부서져 버릴 수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거쳐 온 아우테리카나 강환계 등 수많은 차원에서 괜히 주신들이 뒷짐만 지고 있던 게 아니지 않던가?
“골치 아프게 됐군.”
번천회주의 목적이 그 외신(外神)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것이라면 지금까지의 행동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확정된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데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을 테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접적인 피해를 본 입장에서 그 행동을 마냥 옹호할 수도 없었다.
거기다 번천회주가 해결책이랍시고 제시한 방법 또한 자신의 입장에선 도저히 그냥 받아들이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이었다.
지구의 인류 대부분을 희생시켜 신비를 싹틔우는 과정조차 징검다리에 불과할 뿐.
어찌 보면 놈의 계획 또한 지구 멸망과 썩 다르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할 일이 많구나. 번천회의 폭주를 저지하는 것에 더해 외신에 대한 대책까지. 어쩌다 이렇게 됐지?”
분명 처음 목표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망가뜨린 놈들에게 복수하고 조용하면서도 풍족하게 사는 것뿐이었는데.
이러다가 진짜로 지구를 통째로 책임지게 생겼다.
‘···일단 씻자. 너무 서두르면 될 일도 되지 않는 법이니.’
나는 조금 돌아온 힘으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샤워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을 온몸으로 맞으며 멍하니 있다 보니 복잡했던 속내도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었다.
‘허 참, 지구는 멸망의 기로에 서 있는데 고작 이게 뭐라고···.’
그렇게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말리며 샤워실에서 나온 순간.
띠리리링—♪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스마트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강태산
내 하나뿐인 친구 놈이었다.
그 외에는 딱히 전화 올 곳이 없었으니 예상이야 하고 있었지만.
녀석은 내게 남은 유일한 ‘평범한 일상’이나 다름없는 만큼, 종종 만나서 함께 술도 마시며 마음 편한 친구로서의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최근엔 다른 부서의 여직원과 제법 좋은 분위기라고 설레발을 치던 게 얼마나 고깝던지.
‘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지금 시간은 대략 오전 10시쯤.
직장인이라면 출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한창 업무를 봐야 할 시간이었다.
평소처럼 저녁 퇴근 시간도 아니고 여유가 있는 점심시간도 아닌 이 애매한 시간에 연락이라니.
왠지 모를 불길함에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전화를 받았다.
-야, 너 오늘 시간 있냐?
걱정과는 달리 담담하게만 느껴지는 목소리.
하지만 십 년 이상을 함께해 왔기에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에게 무언가 심각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나야 뭐 넘치는 게 시간이지.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인데? 설마 또 여자 친구 생겼다고 자랑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하하! 이번엔 그런 거 아니야.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영 밋밋했다.
‘할머니와 관련된 일은 아닐 텐데.’
은밀하면서도 주기적으로 진행된 신성력 치료로 강태산의 할머니는 언제 앓아누웠냐는 듯 정정해지신 상태였다.
신성력으로 수명 자체는 어찌할 수 없더라도 주어진 시간이 다하기 전까진 잔병치레 없이 보내실 수 있을 터.
결국 나는 그날 오후,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강태산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
“나 각성했다.”
“푸웁—!”
그리고 그 자리에서 들은 말에 입에 머금은 물을 내뿜고 말았다.
“······.”
“······.”
조용한 침묵과 함께 마주치는 두 쌍의 눈동자.
그 시선 가득 담긴 진심에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속으로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여기서 더 일 키우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
···당연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