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102
101회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윤설이 해인을 향해 싱긋 웃었다.
“해인아, 미안하지만…. 내 머리 좀 땋아줄래?”
“어? 그, 그래.”
해인은 윤설의 뒤로 앉아 머리를 빗기더니 정성껏 땋아 내리기 시작했다.
혼자선 할 수 없을 정도로 긴 머리였다.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되던 날, 머리를 감고 나온 윤설이 내색도 못한 채 낑낑거리는 모습을 본 후, 해인이 자청한 일이었다.
초반의 엉성한 솜씨에 비하면 이젠 눈감고도 땋을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해있었다.
“네 머리 땋아주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빨간 댕기를 쓰다듬던 해인이 말끝을 흐리자 윤설이 뒤돌아 앉았다.
그녀는 미소 띤 얼굴로 벗의 손을 꼬옥 잡았다.
“해인아, 네 덕분에 후대에서 잘 머물다 돌아가는구나. 널 만나지 못했다면….난 두려움에 짓눌려 숨조차 쉬지 못했을 것이야. 너로 인해 소심한 마음이 용기라는 걸 품어보았고…. 이곳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단다. 조선에선 꿈조차 꾸지 못 할 일들을 체험했으니 돌아간다 하여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구나. 그간 우정을 나누었던 너와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슬프지만….그곳에서 우리가 함께 했던 추억들을 되새길 것이야. 날마다…. 그리 한다면….너와 네가 함께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니……”
“으앙….윤설아….”
해인이 눈물을 참지 못하고 친구를 껴안았다.
“네가 드디어 조선으로 돌아간다니….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정말로 슬프다. 왜 이렇게 못해준 것만 생각난다니….그놈의 돈이 뭐라고. 널 이 손바닥만 한 집구석에 가둬놓고는 나가 돌아다니기 바빴어. 제대로 먹이지도…..입히지도 못하고….내 궁상이 널 힘들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어. 미안해.”
“그런 말이 어디에 있니. 아니야. 바람 앞에 촛불이었던 내게, 넌 최고의 조력자였단다. 어디 그뿐이니….보호자이기도 했지. 날 위해 애써준 것을 어찌 잊겠니. 또한 이곳은 정이 흠뻑 든 안식처였으니 그리 자책할 것 없단다. 그저 모든 것이 고맙다. 해인아, 넌 내 평생에 단 하나뿐인 벗이란다.”
“흐엉. 나 몰라.”
해인이 흐느끼자 윤설의 두 눈에도 금세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가 벗의 등을 토닥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우 야….끝내 슬픈 얼굴만을 보여줄 것이니?”
“으,응?”
제 말투를 흉내 내는 소리에 해인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해인아, 넌 명랑하여 이렇게 밝은 얼굴이 어울린단다. 이 모습을 새기려하니 우리, 더는 눈물 흘리지 말자꾸나. 그리고 네 낭군님께도 이 웃음을 많이 보여드리렴. 참으로 사랑받을 것이야.”
“어우 야….”
부끄러움을 느낀 해인이 손사래를 치자 윤설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촛불을 사이에 두고 추억을 되짚는 이들로부터 잔잔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초반의 실수담부터 함께 한 경험담까지 웃지 않을 수 없는 탓이었다.
윤설은 행복했던 기억을 가져갈 수 있어 행복했고 함께 웃던 해인은 친구의 가는 모습을 정신 차리고 끝까지 지켜보리라 다짐했다.
한동안 잔잔히 웃으며 이야기하던 윤설이 갑자기 제 이마를 감쌌다.
“어? 윤설아, 왜 그래? 어디 아프니?”
“현기증이 일어서…… 말이다. 좀 누워도…. 될까?”
“응, 그럼. 어서 침대에 누워.”
친구를 돕는 해인의 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 윤설이가 조선으로 가기 위해 준비하는 걸까? 정말로 돌아가게 되는 걸까?’
멀쩡했던 윤설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지자 해인의 마음에 두려움이 불같이 일기 시작했다.
어떻게 가게 될지 궁금한 건 둘째였다.
홀연히 사라져버린 친구의 빈자리를 마주하기 두려웠고 혼자서 엄청난 일을 감내할 자신도 없었다.
지금으로선 그저 준과 윤 매니저가 빨리 와주길 간절히 원할 뿐이었다.
해인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제 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설의 귓가에 통화중인 친구의 음성이 흘러들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조금씩 몽롱하게 울리고 있었다.
윤설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싼 채 두 눈을 힘없이 깜빡였다.
‘정말로 가는 것일까? 지금의 상태가 마치 그날과 같구나. 그래, 그날…… 내 처소로 돌아온 이후에도 지금처럼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었지. 허나…. 아직 님을 만나지 못한 것을….조금 더 말미를 주시면….아니 되겠습니까? 그분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싶습니다. 준이 님…….’
“여러분, 오늘 민준 씨와의 데이트 어떠셨나요? 아주 훈훈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자, 이제 10분 남았죠? 매력 닥터로 변신한 준이 씨를 기대해주세요. 채널 고정입니다!”
MC의 멘트를 끝으로 심야 생방송 인터뷰가 마무리되었다.
준이 서둘러 일어서는 와중에 테이블 위에 올려둔 유리컵이 떨어지고 말았다.
-쨍그랑-
“죄, 죄송합니다.”
그가 반쯤은 정신이 나간 얼굴로 산산 조각난 유리조각을 집어 들었다.
“어멋, 준이 씨, 그냥 두세요. 손 다쳐요.”
MC가 만류하는 사이, 가까이에 있던 스태프들이 돕기 위해 다가왔다.
유리조각을 테이블 위로 올려둔 준이 무리를 향해 목례했다.
“실례합니다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신없이 뛰쳐나가는 그의 모습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답지 않은 조급함과 안색이 많이 낯선 탓이었다.
방송국 밖으로 나온 준이 횡단보도 앞에 섰다.
유리조각에 베인 오른쪽 검지에선 피가 흘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평소 차량과 인적이 드문 곳엔 신호등이 꺼져 있었다.
주변을 살피던 그가 반대편, 저 멀리에서 오고 있는 택시 한 대를 발견했다.
그 순간, 준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피어났다.
‘윤설 씨, 금방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연인을 향한 다급한 발걸음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찰나였다.
어둠속에 숨어있던 승용차 한 대가 강렬한 불빛을 드러내더니 맹렬한 기세로 달려왔다.
상황을 인지한 준의 고개가 느리게 움직이는 순간, 그 시선 속으로 어둠속의 차량이 그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단단하고 날쌘 것과 충돌한 준의 몸이 스르륵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상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모든 상황은 느렸고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주변의 소리조차 차단된 것만 같았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진 이가 눈물 한 방울을 떨구었다.
‘…..유….윤설…..씨….. 당신을…..보러…빨리….가야 하는데…… 마지막으로….그 어여쁜 얼굴….봐야 하는데….어, 어쩌죠….? 미안….해요. 약속을….지키지….못할 것….같군요.’
밤하늘의 한 가운데로 홀연히 떠오른 슈퍼문이 짙은 어둠으로 완전히 물들고 말았다.
“헉!”
침대 귀퉁이에 엎드려있던 해인이 다급히 제 몸을 일으켰다.
옥탑방은 지독한 어둠속에 갇혀 있었다.
늘 켜두곤 했던 촛불도 어쩐 일인지 꺼진 채였다.
보통은 달빛이나 가로등 빛이 은은히 스며들곤 했지만 오늘밤만은 아니었다.
“어머, 웬일. 윤설아, 내가 깜빡 졸았나봐. 너무 어두운데 불 좀 켜도 될까? 어휴, 왜 이렇게 어두워?”
해인은 더듬거리는 손으로 형광등 스위치를 찾아 켰다.
“미안. 눈부시지?”
친구를 보기 위해 침대로 향한 해인의 시선이 곧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어지럽다며 누워있던 윤설이 없었다.
아니, 침대 위엔 누군가 누워있던 흔적조차 흐릿했다.
“유…윤설아, 너 여기 있니?”
다급한 걸음이 욕실로 달려가 노크했으나 불 꺼진 내부는 적막하기만 했다.
해인이 멍한 얼굴로 옥탑방을 두리번거렸다.
침실과 부엌이 한 눈에 담길 정도로 자그마한 공간….
사라진 이를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떨리는 시선이 곧장 현관문을 응시했다.
아까와 다름없이 안쪽에서 굳게 잠긴 채였다.
열쇠가 없는 윤설이 밖으로 나갔다면 잠금 장치가 풀려 있어야 정상이었다.
아까보다 더욱 떨리는 시선이 이번엔 현관에 있는 신발을 확인했다.
해인은 제 것과 나란히 놓인 윤설의 신발을 발견하자마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유….윤설….아……너… 정말…조….조선으로….. 돌아간 것이니?”
언젠가 이 날을 상상한 적 있는 그녀였다.
친구와의 이별이 서글퍼 펑펑 울 거라 예상했지만 지금 해인은 눈물 대신 온 몸을 떨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그녀를 감싼 탓이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해인이 핸드폰의 진동에 흠칫 놀랐다.
연인임을 발견한 그녀가 서둘러 화면을 터치했다.
“오빠, 윤설이가…. 네에? 뭐,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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