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16
15회
컷을 외친 감독이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었다.
제법 근사한 신을 만들어가던 그로선 이보다 더한 방해는 없었다.
“야, 이씨. 조연출! 어디 있어?”
성난 음성에 조연출이 곧바로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얌마, 일 그따위로 할래? 똑바로 못해? 주변 통제는 기본 중에 기본 아니야!”
“죄, 죄송합니다. 감독님.”
“빨리 통제시켜!”
쓴 소리를 들은 조연출이 금세 사라지자 감독이 겸연쩍은 얼굴로 민준에게 다가갔다.
“준아. 미안하다. 진짜 좋았는데….. 저 놈이 잘리고 싶은 모양이다.”
“아, 아닙니다. 감독님.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 몇 번은 더 할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에이, 뭘 또 그렇게 겸손하실까? 허헛. 아냐. 제법 연구를 많이 한 모양인데? 초반부터 꽤 좋더라. 잠깐만 쉬었다가 가도 되겠냐? 감정 선, 이어질까?”
“네. 힘드실 텐데 잠시 쉬었다 가시죠. 감정은 다잡겠습니다.”
믿음직스러운 한 마디에 감독이 만족한 듯 웃으며 모니터 앞으로 돌아갔고 곧 민준의 주변으로 스태프들이 모여들었다.
분장을 수정해주는 손길과 생수를 건네는 손길 사이로 그의 시선이 담담히 누군가를 찾았다.
조금 전, 댕기머리를 휘날리던 여자는 그사이 사라지고 없었다.
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식간에 닿은 장면은 너무도 짧았지만 제 눈을 의심할 만큼 강렬했다.
더위에 팔, 다리를 모두 가리는 옷은 흔치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준은 분명히 보았다.
길게 땋은 머리끝엔 빨간 댕기가 흔들리고 있었다.
티셔츠와 청바지에 긴 댕기머리는 언밸런스의 극치이자 흔치도 않은 스타일이었다.
‘뭐지……?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걸까?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아.’
숨이 턱까지 차오른 해인이 기어이 벤치에 주저앉고 말았다.
“헥헥…… 나 몰라. 윤설인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에효, 어쩜 이리도 빠르담? 내 설명이라도 제대로 듣지. 휴우….. 그만큼 가족들이 그리웠던 거겠지? 그래, 이해 못할 것도 아니야. 느닷없이 다른 세상으로 왔는데 얼마나 스트레스가 컸겠어.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기뻤을 거야. 에휴, 아닌 걸 알면 얼마나 실망이 클까? 내가 심했나? 난, 그저….. 마음 달래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봐! 아가씨!”
혼잣말을 내뱉던 그녀를 향해 누군가의 음성이 훌쩍 날아들었다.
움찔한 해인은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 나는 쪽을 응시했다.
숨을 헐떡이는 관리자가 성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고, 참 빠르기도 빠르네. 이봐요. 입장료는 내고 가야지. 날로 구경하려는 거여? 거, 젊은 처자들이 그러면 안 되지.”
“헐, 아저씨. 당연히 그건 아니죠. 입장료? 드려야죠. 제 친구가 갑자기 달려가는 바람에 쫓아가다가 그렇게 됐어요. 죄송합니다.”
“믿어도 되는 건가?”
“아휴, 그럼요. 저 입장료 떼먹고 그런 사람 아닙니다. 얼마에요?”
손사래를 친 해인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는 듯 지갑을 꺼냈지만 이번엔 관리인이 손사래를 쳤다.
“아, 여기서 말고. 입구에서 입장권을 사서 들어와요.”
“네에? 이만큼 달려왔는데 또 거기까지 가야 된다고요?”
“어허, 이 아가씨가…… 당연히 거기서 표를 사가지고 입장해야지…. 이게 무슨 현찰 박치기도 아니고 말이 되나!”
“알았어요. 아저씨. 그나저나 방송실도 거기에 있나요? 제 친구가 길을 잃은 것 같은데……”
“명천”의 촬영이 재개되었다.
준은 쉬는 시간 동안에도 감정 선을 놓지 않았고 감독의 만족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첫 주연 작에서 완벽을 추구하고 싶었던 그는 스스로 재촬영을 요구했고 다시금 감정 연기가 시작되었다.
한 장면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피로도는 급상승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준은 후회하기 싫었고 매 장면마다 소홀히 하지 않는 마인드 덕분에 시청률이 상승하고 있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판관의 모습을 카메라가 빼곡히 담아냈고 숨죽인 스태프들이 그의 열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반복되지 말아야 할 것이 또다시 툭하고 튀어나왔다.
[ 아, 아, 마이크 테스트! 관리 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이름은 김윤설. 나이는 스무 살. 오늘 민속촌에 처음 오셨다고 합니다. 혹시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처자를 보시면 관리 사무소로 연락바랍니다. 아, 아, 다시 한 번…….]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감독이 곁에 선 조연출의 정강이를 걷어찼고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대본을 돌돌 말아 그의 등짝을 내리쳤다.
당황스런 상황에서 웃지도 울지도 못한 스태프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동안, 다시금 방송이 들려왔다.
이번엔 앳된 아가씨의 목소리였다.
“윤설아! 어디에 있니? 혹시 길을 잃은 거니? 그럼 내가 찾으러 갈 테니까 거기에 가만히 있어야 해. 알았지?
관리자와 해인이 마이크를 뺏고 뺏기는 소리까지 들려오자 스태프들은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빨개졌고 감독은 기어이 조연출에게 호통 쳤다.
“야, 임마! 저런 열정을 본받으라는 말이야! 자기가 찾으러 간다잖아. 너도 좀 찾아서 스스로 못 하냐? 이런 것까지 내가 다 알려줘야 해? 으이그, 이 화상아.”
소란으로 일렁이는 촬영장에서 홀로 멈칫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민준이었다.
바람처럼 홀연히 스쳐간 여자는 잊히지 않았고 제가 꿈을 꾼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던 차였다.
그는 안내방송에서 찾는 이가 댕기머리 여자라고 확신했다.
‘스무 살…… 김윤설……..?’
해인은 안내소에서 기다리다가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아저씨, 혹시라도 제 친구가 오면 꼭 붙들어두셔야 해요. 그 아이, 핸드폰도 없고 지갑도 없단 말이에요. 아셨죠?”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는 뒷모습에 관리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고, 저런 아가씨는 처음일세. 대단해. 장군감이야. 아주 그냥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구먼.”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윤설을 찾아 헤매던 해인의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늦여름을 지나고 있는 최근이었다.
한낮의 더위는 여전했고 더군다나 달리기까지 했으니 체감 온도는 저절로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해인은 주저앉고 싶을 만큼 녹초가 되어버렸지만 벤치를 지나쳤다.
낯선 곳을 헤매고 있을 윤설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뿐이었다.
조선에서 온 규수의 존재는 아무도 몰랐다.
만약 그런 사실이 알려진다면 윤설에게 어려운 일이 닥칠 지도 몰랐다.
왠지 비밀을 지켜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은 해인으로 하여금 보호자로서의 책임감을 강하게 부여하고 있었다.
돌다리를 건넌 해인이 막 코너를 돌아서는 순간, 저 멀리에서 누군가가 터벅터벅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지친 시선이 한 눈에 알아볼 만큼, 그 사이 낯이 익고 정이 든 존재는 바로 윤설이었다.
“윤….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해인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다 말았다.
윤설은 반쯤 실성한 사람 같았다.
초점을 잃은 채 땅으로 내동댕이쳐진 시선과 하얘진 얼굴은 영락없이 그랬다.
이른 아침부터 곱게 땋아 내렸던 머리카락조차 어느새 흐트러져 뺨에 붙어 있었다.
세상을 다 잃은 듯한 모습으로 터벅터벅 걷던 아씨가 제 앞에 선 해인을 바라보았다.
입을 벌린 채 어찌할 바를 모르던 해인이 그제야 그녀에게 다가갔다.
“윤설아…. 괘, 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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