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21
20회
깜짝 놀란 듯 윤설의 눈이 동그래지는 동시에 음성 또한 커져버렸다.
‘그, 그렇다면….. 내, 내가……결국 임금님의 계비가 된 것인가? 아니다. 난 분명 여기에 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그렇다면…… 또 하나의 내가…. 조선에 존재하는 것인가…….?’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이 더욱 큰 혼란 속으로 파묻히는 찰나, 네모난 판을 유심히 바라보던 해인이 동그래진 눈으로 윤설을 향했다.
“윤설아! 너 안동 김 씨라고 했지?”
“으, 응.”
운명을 예감한 이가 시선을 떨구며 간신히 대답했다.
“헐…. 대박! 윤설아, 너 아니야.”
“뭐? 그게 참이니?”
“응! 영조 대왕의 계비가 된 사람은 바로 경주 김 씨, 정순왕후야.”
제법 놀란 윤설 만큼이나 해인의 목소리 역시 상기되어 있었다.
피해갔다는 안도감이 두 사람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기쁨을 감추지 못한 이들이 서로 손뼉을 치며 웃었고 해인이 제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윤설이 하이파이브에 응하며 다시 웃었다.
“완전 대박이다. 이런 반전이라니…. 완전 사이다야. 윤설아, 네가 여기로 왔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긴 걸까?”
“그, 글쎄….. 그런 걸까?”
윤설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해인의 말이 일리가 있을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그토록 버거운 이 세계가 그녀에겐 은인이 되는 셈이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윤설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국혼은 그녀에게 숨통을 조이는 족쇄이자 두려움이었다.
그것을 면하게 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기쁨이었다.
윤설은 마치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느덧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로 후손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고마움이 피어나고 있었다.
자신의 은인이라면 도리를 다하는 것이 옳았다.
윤설은 벗인 해인을 비롯해 낯설기만 한 이 세계에 무언가 보답을 하고 싶어졌다.
“윤설아, 여기로 오기 직전에 특별한 일은 없었니? 그날 밤에 비가 왔다던가….. 하늘이 흐렸다던가…. 뭐 그런 거 말이야.”
“안 그래도 떠올려보긴 했다만…. 그날, 유난히도 어두웠던 기억이 나는구나.”
노트에 단서들을 적어가던 해인이 의아한 얼굴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어두웠다고?”
“응. 그 시각엔 항상 잠들기 전에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단다. 어두운 마당으로 늘 달빛이 뽀얗게 비추곤 했었지. 안채로 건너갈 때마다 조금 무섭긴 했지만 언제나 그 달빛을 벗 삼아 걷곤 했었단다. 그런데 그 밤은 발을 내딛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어두웠었어.”
“음…… 개기월식? 뭐 그런 건가?”
“으,응? 그게 무엇이니?”
윤설이 동그래진 눈으로 해인을 응시했다.
처음 듣는 말인 듯했다.
친구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을 노트에 적은 후, 별표까지 그려 넣은 해인이 싱긋 웃었다.
“과학이 영 어려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달이 가려지는 현상일 거야.”
“아…. 그래. 아버지께 들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것은 불길한 징조가 아니니?”
“에이, 설마. 그건 아닐 거야. 가끔 뉴스에 나왔는데 별일 없었는 걸? 월식에 관해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책을 찾아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윤설아, 걱정하지 마. 내가 도서관을 이 잡듯이 다 뒤져서라도 알아봐줄게.”
벗을 응시하는 윤설의 눈빛이 반짝였다.
해인의 한 마디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처럼 든든했다.
그녀를 의지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긴 했지만 윤설은 그 벗이 다른 이가 아닌 해인이라서 너무 기뻤다.
희망을 품은 이들에게 다른 느낌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겉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진 이후엔 무엇을 하든지 의욕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빠듯한 일과에 윤설을 돕는 일이 추가되었지만 해인은 그것을 짐으로 여기지 않았다.
낯선 이를 불쌍하게 여겨 호의를 베푼 것은 어쩌면 제 오지랖일지 몰랐다.
하지만 집으로 들여 먹이고 재우는 것도 모자라 지금까지 마음이 통하고 우정이 이어진다면 어쩌면 인연일지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해인은 조선에서 온 윤설을 돕는 일에 대단한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고 마치 거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듯한 짜릿함을 안겨주고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편의점을 나서는 손님을 향해 꾸벅 인사한 해인은 곧 계산대에 엎어둔 책을 다시 펼쳤다.
그 곁에 놓인 펜과 노트는 단서라도 발견하면 당장에 적어 넣을 태세였다.
“월식이란…. 월면 전부 또는 일부가 지구의 그림자에 가리어져서 지구에서 본 달의 밝은 부분이 부분 또는 전부가 어둡게 보이는 현상이다. 지구가 달과 태양 사이에 위치할 때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만월일 때에만 일어난다.”
검지로 짚어가며 중얼거리던 해인이 머리를 긁적였다.
“휴우, 뭔 말이 이리도 어렵냐? 그러니까, 지구가 달과 태양 가운데에 딱 있을 때…. 게다가 보름달일 때만 일어난다는 거지?”
해인은 머릿속으로 정리한 것을 노트에 그림으로 그려보았다.
삐뚤빼뚤한 제 솜씨에 웃음을 터뜨린 그녀가 곧 등장한 손님들을 향해 큰소리로 인사했다.
편의점은 퇴근 시간 이후부터 밤까지 조금 분주한 편이었다.
큰길가와 주택가의 사이에 위치한 덕분에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들은 마치 코스처럼 들러 갔다.
특히나 젊은 층이 많은 동네여서 장사가 괜찮은 편이었다.
원래, 낮에만 일했던 해인이 저녁 타임을 전담하게 된 건 주인 여자의 계산이 한몫 한 결과였다.
한창 바쁠 타임엔 손이 빠르고 싹싹한 사람이 제격이었다.
초반, 해인을 눈여겨 본 여자는 빠른 적응력과 밝은 성격에 만족했고 그녀만의 사람 보는 눈은 적중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두 무리의 손님들을 보낸 후, 선반을 정리하던 해인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을 감지했다.
담담했던 얼굴은 상대가 윤설임을 확인하자마자 금세 환호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조선의 친구가 먼저 전화를 걸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어머낫! 윤설아! 대박! 올…. 전화걸기 성공? 히잇, 잘했어. 별일은 없지?”
요란한 칭찬에 상기된 듯, 수화기 너머로 수줍은 음성이 새어나왔다.
[ 응. 해인아. 별일은 없단다. 그런데…… 네게 청이 있어서 말이다. ]“청? 뭔데?”
[ 있잖니, 내가 그쪽으로 가서 널 도우면 어떻겠니? ]“뭐라고? 편의점으로 와서 날 돕겠다고?”
해인에게 윤설의 한 마디는 스스로 전화를 걸어온 것만큼이나 쇼킹했다.
갑자기 도우려는 마음은 당황스러웠고 혼자 오겠다는 것은 불안하기까지 했다.
“윤설아, 굳이 날 돕지 않아도 돼. 의무감이라도 생긴 거야?”
[ 그, 그건…. 나중에 자세히 말해줄게. ]해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오는 건 좋지만, 여기 오면 지루할 텐데? 그리고 혼자서 올 수 있어? 지금은 내가 데리러 가기가 좀 그런데…..”
[ 그건 걱정 하지 말렴. 저번에 길을 잘 외워두었단다. 예서 멀지 않으니 갈 수 있단다. 그리고….. 네가 만들어 준 게 있잖니. 그걸 목에 걸면 될 것 같구나. ]한 바탕 웃음을 터뜨린 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래, 알았어. 윤설아. 조심해서 와. 혹시 길 잃으면 알지? 콜?”
[ 으,응. 코올….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부지런히 선반을 정리한 해인은 곧 들이닥친 손님들을 맞이했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가는 단골들을 향해선 어김없이 싹싹한 인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그나저나 잘 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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