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20
19회
욕실 안이 금세 뽀얀 수증기로 채워졌다.
마른 수건을 꺼내 젖은 머리를 털어내던 민준이 무언가를 감지하고는 서둘러 거울을 바라보았다.
코피였다.
밤샘 일주일 만에 얻어낸 꿀맛 같은 휴식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훈장과도 같은 극도의 피로를 동반한 채였다.
준은 피식 웃으며 코를 닦고는 곧 티슈로 막아냈다.
밖으로 나와 냉수로 갈증을 달랜 그가 곧장 침대 위로 올라가 누웠다.
거실 겸 침실 그리고 한쪽으로 부엌이 맞닿아 있는 공간은 자그마한 오피스텔이었지만 준에겐 더없이 포근하고 편안한 공간이었다.
그는 신인급인 자신에게 이러한 집이 있다는 것 자체를 감사히 여기고 있었다.
더 어려웠던 과거를 생각하면 과분할 정도였다.
언제나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은 그에게 현재 진행형이었다.
배우가 된 이상, 누구나 인기를 얻고 싶은 마음은 당연했다.
하지만 인기만을 위해서 데뷔한 케이스가 아닌 그로선 방향이 조금 달랐다.
물론 대중의 사랑은 그저 감사할 뿐이지만 준은 이런 것에 취해 무너지는 것을 경계했다.
스타 병은 약도 없었다.
스타가 되기보단 진정성 있는 배우가 되고 싶었던 그는 연기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었고 배울 점도, 노력해야 할 점도 태산이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금세 잠이 들었던 준이 흠칫 놀라 눈을 떴다.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그는 알람소리에 민감한 편이었다.
멍해진 얼굴로 아침인지 밤인지를 분간하지 못한 그가 서둘러 스마트폰을 켰다.
다행히 약속된 시간은 멀었고 더 쉴 수 있는 여유가 충분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느닷없이 그를 깨운 건 문자 메시지였다.
매니저가 보낸 것일지 몰랐다.
급한 마음이 서둘러 화면을 터치했지만 준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기어이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매니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낯선 번호들이 세 개나 몰려와 그를 불러내고 있었다.
‘누구지?’
머리 맡, 조명을 켠 준이 눈을 비비더니 침대에 걸터앉아 다시금 폰의 화면을 응시했다.
문자를 확인하는 그의 얼굴 위로 곧 당황한 기색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낯선 번호들은 각기 다른 세 명의 여자들이었다.
하나는 걸 그룹의 아이돌이었고 나머지는 각각 동갑과 연상의 여배우들이었다.
메시지의 공통적인 내용은 한 번 만나자는 것이었다.
밥을 먹자고도 했고 더 나아가서는 이상형이라며 사귀고 싶다고도 했다.
특히 걸 그룹의 어린 가수는 거두절미한 채 ‘오빠’라는 호칭으로 애교를 부렸다.
곧 당황을 넘어 황당한 얼굴의 준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뜨거운 관심은 어쩌면 ‘대세’라고 일컫는 인기의 중심에 그가 있다는 증거였다.
신인이 받기엔 대단하고 부담스러운 사랑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 옳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준은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가 생각하는 남녀의 만남이란 이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이에게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것은 상대에게 결례일 수 있었다.
준은 자신에게 나이답지 않은 신중한 면이 있다는 걸 알지만 이런 상황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런 일은 한 두 번이 아니었고 최근 스캔들에까지 연루된 터라 섣불리 행동할 수도 없었다.
잠을 놓쳐버린 그가 일어서더니 다시금 냉수를 들이켰다.
가슴이 답답한 탓이었다.
행복한 놈이라고 손가락질 할 몇 몇 친구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준의 마음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한 비명은커녕 괴로움의 비명이 터져 나올 판이었다.
개인 폰의 번호가 원치 않는 경로로 유출된 것은 충분히 기분 나쁜 일이었다.
하지만 준은 그조차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을 거라며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문제는 표현의 방법이었다.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이기적인 모습들을 발견할 때마다 그의 가슴은 답답해지곤 했다.
준은 남녀의 관계를 떠나 우선은 마음이 맞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큰 바람은 없었다.
자신을 연예인으로 바라봐주는 이들은 팬으로도 충분했다.
지금은 그저 한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고 서로를 따뜻이 격려해줄 존재가 필요할 뿐이었다.
‘이런 바람조차 너무 거창한 것일까……? 그냥…… 답답하다. 좋은 친구를 만날 기회란 이제 없는 것일까?’
다시금 잠을 청하러 침대로 향하는 준이 씁쓸히 미소 짓고 말았다.
“윤설아, 짜잔….. 내가 왔지롱. 헤헷. 자, 네 한복도 같이 왔다? 어때? 드라이클리닝이 완전 잘됐지?”
집으로 들어선 해인의 얼굴엔 지친 기색 대신 활기가 넘쳐났다.
윤설은 하루 종일 수고한 친구를 웃으며 맞이했지만 그녀의 손에 든 제 의복을 보는 순간, 다시금 울컥해지고 말았다.
조선이 너무도 그리워지는 찰나였다.
급격히 어두워진 친구의 안색에 해인이 멈칫했다.
“어? 왜 그래?”
“미, 미안…… 하구나. 옷을 보는 순간, 조선이 너무나 그리워서……….. 실은 저것으로 너와 통화를 하면서 우리 부모님과도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단다.”
“……..아………”
해인에게서 나직한 탄식이 새어나왔다.
뜻밖의 친구가 생겨 외롭던 생활에 활기가 채워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것들을 알려주는 재미도 쏠쏠했었다.
언제나 썰렁하게 비어있던 공간에 자신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좋았고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했었다.
하지만 이 순간, 해인은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괴로움으로 신음하는 친구를 돕기보다는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 그녀의 가슴을 찌르고 말았다.
밥상 위, 향초의 불빛과 내음이 은은하게 퍼져 나와 자그마한 옥탑방을 물들였다.
한낮의 소란함과 번잡함이 잦아든 밤, 윤설과 해인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윤설아, 정말 미안해.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더 열심히 널 도와주지 못했어. 우리 오늘부터 알아보자.”
“으,응? 알아보다니…. 무엇을….. 말이니?”
윤설의 물음에 해인이 곧 노트와 볼펜 그리고 스마트폰을 밥상 위에 올려놓았다.
“뭐긴…….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지. 내가 널 도와준다고 큰소리치고선 정말 한 게 없더라. 미안. 오늘부터 같이 연구해보자.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야. 알았지? 아자 아자! 우린 할 수 있어!”
윤설의 얼굴에 머물던 수심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자신을 보살펴주는 해인에게 폐를 끼쳐 미안하긴 했다.
하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염치없지만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희망에 찬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자 해인이 진지한 얼굴로 친구를 응시했다.
“윤설아, 우선 영조 대왕의 계비가 누구인지 알아보자.”
“응? 그, 그것을 어찌 알 수 있는 것이니?”
제법 동그래진 눈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자 해인이 네모난 판을 들고 살짝 흔들었다.
“이게 있잖아. 히잇. 이게 바로 만능이라고. 내가 말했었지? 얘는 못 하는 거 빼고는 다 잘 한다고. 크큭…. 여기에 검색만 하면 바로 나온다니깐.”
좀처럼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임금님의 계비가 될 뻔했던 그녀로선 그 결과가 누구보다도 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해인이 네모나고 얇은 판을 검지로 두드릴 동안, 초조하게 기다리던 윤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어? 김 씨다.”
“뭐? 저, 정말이니? 김가란 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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