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66
65회
태주가 싱긋 웃었다.
“서운한데? 연기니까 더욱 우리의 케미를 보여주자는 거야. 그것 때문에 이런 섭외까지 들어온 거 아닌가? 서로 윈윈 하자는 의미인데 그렇게까지 날을 세울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이지가 멈칫하더니 그를 응시했다.
이상했다.
관심을 드러내며 적극적으로 반응하던 이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만 같았다.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고 한결 여유 있는 모습은 공연히 날을 세운 자신을 민망하게 만들고 있었다.
당황한 이지가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음…. 이거 맛있다. 먹어볼래?”
이지가 다시 한 번 멈칫하고 말았다.
접시에 담긴 파이를 그녀의 앞에 놓아준 태주는 여전히 밝게 웃는 얼굴이었다.
“확실히 해둘 게 있어.”
이지로부터 제법 단호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말해.”
“정말 연기일 뿐이라는 거지? 어디까지나 윈윈전략을 위해 출연한 거란 말이지?”
태주가 싱긋 웃더니 입을 열었다.
“넌?”
“뭐?”
“넌 무슨 생각으로 출연했는데?”
갑작스런 물음에 이지가 당황하고 말았다.
“그야… 나도 그런 생각으로 응한 거야. 다른 뜻은 없어. 오직 내 이미지를 끌어올려 더 좋은 차기작을 선점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까? 그런 말도 있잖아?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난 가라앉기 싫어. 더욱 올라가고 싶을 뿐이야.”
“오, 멋있다. 심이지. 예전부터 느꼈지만 너의 이런 면, 참 마음에 든다니까? 오해는 하지 마. 내숭떠는 부류보단 솔직한 편이 훨씬 더 낫다는 의미니까. 좋아. 일리 있어. 나 역시 내 손에 들어온 인기를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이 바닥에서 그러고 싶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안 그래? 그럼, 시청률이 오를수록 우리는 임무를 다하게 되는 건가? 훗, 각자의 성공적인 앞날을 위해 건배, 어때?”
태주가 머그잔을 들었다.
커피로 건배를 하자는 건 이지에게 유치한 일이지만 그의 본심을 알았으니 공연히 경계할 이유는 없었다.
이지는 이번 드라마 이후, 태주의 인기가 급상승한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투톱으로서 인기의 동반 상승은 함께 할 때 윈윈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을 의미했다.
서로 원하는 방향이 같다면 동지가 될 수 있었다.
안도한 이지는 제 잔을 들더니 그의 잔에 맞대었다.
곧 경쾌한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태주는 싱긋 웃었고 이지는 담담한 얼굴로 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백화점 일대가 개점 시간 전부터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정문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 무리는 오직 민준만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팬클럽 회원들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은 그의 인기가 폭넓다는 것을 증명했다.
민준은 최근 여성 화장품 브랜드의 모델로 발탁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좋은 이미지와 함께 대중의 반응도 비례하고 있었지만 특별히 최근의 CF 한 편으로 판매량은 수직상승을 달리고 있었다.
TV 화면에서 민준은 아련한 눈빛으로 잠든 제 연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널 지켜줄게.’라는 그의 내레이션은 기어이 뭇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말았다.
1시간 후,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블랙 슈트 차림의 민준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을 향한 성원에 고개 숙여 목례하거나 손을 흔들어 고마움을 표했고 그런 행동엔 늘 대단한 함성이 함께 했다.
백화점 매장이 순식간에 사인회장으로 변신했다.
줄이 제법 길었지만 자리에 앉은 준은 자신을 기다린 팬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며 성실하게 임했다.
“자, 오늘 행사의 하이라이트죠? 들어오실 때 번호표를 받으셨을 텐데요, 민준 씨가 직접 다섯 분을 뽑아 CF 장면을 시연해주시겠습니다.”
MC의 한 마디에 현장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오늘 모인 이들이 가장 기다린 시간이기도 했다.
열띤 반응이 느껴지자 무대에 선 민준이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곧 무대 위로 바구니 하나가 전달되었다.
준이 미소 띤 얼굴로 그 속에 손을 넣자 무대 아래에 선 이들이 두 손을 모은 채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드디어 그의 손에서 잘 접혀진 한 장의 종이가 튀어나왔다.
그것을 펼쳐든 MC가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오, 원래 이 번호는 잘 안 나오는데….. 가장 부지런히 움직인 보람이 있으시겠네요. 1번! 당첨입니다!”
“꺄악!”
오른편에서 한 여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유난히도 뜨거운 반응에 준이 부끄러운 듯 웃자 그녀는 그의 팬클럽 회원임을 밝혔다.
말로만 듣던 팬클럽의 존재에 관해 다시금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준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그의 손을 잡았다.
“자자, 우리 여성 분, 아직 부끄러워하긴 이릅니다. 이제 CF로 달려보실까요?”
여자가 웃음을 겨우 진정시키더니 준을 수줍게 바라보았다.
함께 웃던 그 역시 곧 진지한 눈빛을 회복했다.
차분히 그녀를 응시하던 준이 붉어진 뺨을 만지며 나직이 말했다.
“널 지켜줄게.”
“꺄악!!! 민준 멋지다!”
“잘생겼다!”
무대 아래의 외침에 곧 모든 이들이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준은 그녀에게 붉은 장미 한 송이를 건넸고 곧이어 다음 번호가 발표되었다.
이번엔 건장한 30대 남자였다.
모두가 당황한 가운데 취준생임을 밝힌 그는 회색빛 고시원에서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다고 했다.
준이 그에게 악수를 건넸다.
“잘 되실 겁니다. 응원하겠습니다.”
톱스타로부터 흘러나온 따뜻한 한 마디에 남자가 울컥했다.
하지만 CF 시연은 극구 사양했다.
그저 준의 얼굴만 봐도 만족한다고 했지만 민망함이 큰 탓이었다.
준이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넨 후 그를 안아주었다.
그 모습에 감동을 느낀 이들이 함성과 함께 박수를 보내주었다.
세 번째로 호명된 번호는 60대의 주부였다.
그녀는 얼떨떨한 얼굴로 올라왔고 준과 손을 잡으며 비로소 현실을 자각했다.
CF 시연에 들어가기 전, 그녀는 특별한 주문을 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 어머님이 아닌 본인의 이름을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뜻을 알아챈 준이 감정을 다잡더니 다정스레 말했다.
“명숙 씨를 지켜드릴게요.”
또다시 무대 아래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흘러나왔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까지…… 뽑힌 이들은 하나같이 준과 마주하며 설렘을 느꼈고 그는 진심어린 눈빛과 멘트로 최선을 다했다.
장장 2시간에 걸친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준이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자 가지 말라는 외침이 여기저기에서 계속 피어났다.
그에겐 가장 난감한 순간이자 미안한 순간이었다.
MC의 재치 있는 멘트로 겨우 행사장을 벗어난 준이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밴에 올랐다.
“아이고 다리야. 이눔의 인기 어쩔. 사람들이 진짜 파이팅이 막 넘치지 않냐? 아니 어떻게 2시간을 끄떡도 안 해? 2시간이 다 뭐야. 기다린 시간까지 합하면….. 휴우….. 다들 홍삼이라도 먹나?”
윤 매니저의 너스레에 준이 피식 웃었다.
그가 슈트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자 매니저가 비타민 워터를 건넸다.
커피가 간절했던 준은 자신을 생각해주는 그의 손길을 외면하지 못했다.
과도한 카페인보단 몸에 훨씬 이로운 게 사실이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온 밴이 곧 도로의 자동차 무리에 합류했다.
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준의 곁에서 음료수를 들이켠 윤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차기작 생각해야지. 음화홧. 아주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다. 사극 연타가 아무래도 무리가 되긴 했지만, 뭐 이 정도면 괜찮지. 미니 시리즈 2편 그리고 주중 드라마 하나. 어때? 끝내주지? 아, 맞다. 깜빡할 뻔했네. 이번에 영화 시나리오도 하나 들어왔어. 푸핫. 역시 이쯤 되면 대세 인증인가? 그런데 또 사극버전이다. 에효, 그게 좀 별로지? 사람들이 말이야,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지. 사극 잘 한다고 죄다 사극 타령이냐. 조금 다른 시각으로 봐줄 능력이 없는 건가? 참내. 대세를 뭐로 보고……”
“…..형…. 저…… 당분간은 좀 쉬면 안 될까요?”
혼잣말을 이어가다가 잔뜩 흥분한 이가 준을 응시했다.
몹시 당황스런 마음은 그의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얌마, 농담도 정도껏 해라. 휴우, 순식간에 간이 오그라드는 줄 알았네.”
“진심이에요.”
겨우 안심한 얼굴로 손을 휘휘 내젓던 윤 매니저가 곧 경악하고 말았다.
“몇 주 푹 쉬었잖아. 그거로는 모자란다는 뜻이냐? 그럼 얼마나? 조금 더 줘?”
“그 정도가 아니라….. 몇 달 정도는…..”
“얌마! 너 지금 배부른 소리 하냐? 말이 되는 소릴 해야 이해를 하든 말든 하지. 내가 분명 말했었지? 드라마 몇 개 끝내놓고는 인지도 올라갔겠다, 이제 됐지 싶어 지 세상 가진 것처럼 떵떵거리는 것들, 금세 나가리 된다고 말이야. 몇 주가 몇 달이 되고 그 몇 달이 일 년이 되고….. 그렇게 수년이 지난다고. 그 새를 치고 올라오는 새파란 것들한테 밀려 인지도 하락하고 캐스팅은 더더욱 어렵고! 이제 귀에 딱지 않을 때도 되지 않았냐?”
준이 바싹 타들어간 입술을 다물었다.
그의 말은 모두 맞는 말이어서 반박할 여지조차 없었다.
데뷔 직전, 여린 마음이 행여 상처받을까 봐, 행여 약해질까 봐 그가 누누이 일러주었던 말들은 눈감고도 외울 정도였다.
준은 연예계의 현실을 스스로 체감했기에 더욱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대꾸하는 대신에 자신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었고 곧 부끄러움이 그의 마음으로 밀려들었다.
“왜 그래? 무슨 고민 있냐? 설마,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시원하게 말해봐.”
속이 타는 듯 그 사이 생수를 벌컥 벌컥 삼킨 윤 매니저가 준을 또렷이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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