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83
82회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16시간의 일정을 마치고 밴으로 이동하는 준의 얼굴이 피곤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정신이 아득해지는 가운데서도 유독 그의 마음을 흔드는 얼굴 하나가 있었다.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김윤설이었다.
안타까움을 나직한 한숨으로 내뱉은 준이 밴에 올랐다.
“하아, 진짜 강행군이구만. 아이고 곡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드라마 촬영 전에 보약이라도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
운전석에 앉은 윤 매니저가 너스레를 떨자 준이 피식 웃었다.
그는 좌석에 앉자마자 그대로 머리를 기대고 말았다.
집까지 한참 걸릴 예정이기에 잠시 눈을 부칠까 하던 찰나였다.
시동을 걸기 전, 뜻밖의 진동 소리가 그의 귓가로 스며들었다.
어리둥절한 시선이 곧 제 가방으로 향했다.
“어?”
제 스마트폰을 발견한 준이 함박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피로를 단번에 날려버릴 만한 웃음이 분명했다.
[ 윤설 씨? ]거의 울기 직전이던 윤설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폰을 귀에 대었다.
[ 윤설 씨, 저에요. ]더없이 반가운 님의 음성이 들려오자 윤설의 두 눈에 진짜로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소….송구…합니다. 이것을 닦다가 그만….전화를 걸게 되었나봅니다. 주무셨을 터인데….방해를 하여 어찌하면 좋을지….”
[ 아니에요. 일이 조금 전에 끝났습니다. 윤설 씨가 제게 먼저 연락을 주셔서 정말 기쁘네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우리….. 오랜만이죠? ]준의 한 마디에 윤설의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그간의 오해는 풀어야 했지만 여전한 다정함은 잔뜩 움츠러든 그녀의 마음을 따뜻이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이제껏 일을 하셨다니…. 얼마나 고단하시겠습니까? 실은….. 그날의 일에 관해 용서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 아, 아닙니다. 용서라뇨…. 용서는 제가 구해야죠. 전화한다고 하면서 못 했잖아요. 연락, 많이 기다렸죠? 미안해요.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몇 가지 일정들이 당겨지게 되었어요. 어제까진 부산에서 프로모션이 있었고 오늘은 CF 촬영이 있었거든요. 윤설 씨가 많이 보고 싶었지만….짬을 내지 못했습니다. 이해해주실 수 있나요? ]윤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토록 분주하셨다니…. 몸은 괜찮으십니까? 참으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 네, 윤설 씨 목소리를 들으니 정말 힘이 나는데요? 미안해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 ]또다시 감동으로 일렁인 마음이 울컥하고 말았다.
“저, 저도…. 많이….보고 싶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준의 웃음이 흘러들자 윤설 역시 미소 지었다.
아직 오해를 풀기도 전이지만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했다는 사실은 각자의 가슴을 감동으로 물들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용기를 낸 윤설이 한 발 더 나아갔다.
“저….. 혹여…. 시간을 내어줄 수 있으신지요…..? 그날 물으셨던 것에 대해 답을 드릴까 합니다.”
[ 네? 아, 아닙니다. 윤설 씨. 누구에게나 말 못할 비밀은 있는 거죠. 그날 제가 무례했던 건 아닌지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너무 애쓰진 마세요. ]“저를 아끼시기에 제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셨는지요? 그 마음이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실은…. 쉽지 않은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님께는 모든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낙안당의 골목으로 접어든 준의 얼굴에 미소가 자꾸만 피어났다.
윤설을 만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정신없이 일정들을 소화한 그였다.
시간을 내어달라는 연인의 제안은 처음이었고 꽤나 달콤했다.
당장 달려오지 못해 미안한 마음은 애가 탈 지경이었고 최대한 빨리 그녀에게 향하는 중이었다.
준에게 문득 낙안당에 처음 왔던 날이 떠올랐다.
감독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해 이곳을 찾았던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윤설을 만난 곳이었다.
준에겐 특별한 추억이 담긴 장소인 셈이었다.
‘윤설 씨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그날처럼 설레는 시간이 될까?’
준이 생각에 잠겨 걸음을 내딛는 동안, 곁을 따르던 윤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어? 오늘 김치 담근다더니 진짜네? 들어가도 되는 건가?”
윤 매니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휴업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있는 대문을 살며시 밀었다.
스르륵 열리자 곧 마당에 있던 이들이 반색했다.
해인은 배시시 웃는 낯으로 오빠들을 환영했고 윤설은 은은한 미소로 목례했다.
각자의 연인들을 대하는 남자들의 얼굴에 커다란 웃음이 피어나는 찰나였다.
배추들을 꺼내오던 주인 남자가 당황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니, 스승님들의 귀한 손님들이 오신다고 해서 뉘신가 했더니….. 민준 씨였단 말입니까? 그리고 그때 매니저 분 맞으시죠? 허헛. 아이고, 어서들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유독 친근한 인사에 두 남자가 어리둥절했다.
윤 매니저가 인사를 겸해 너스레를 떨었다.
“우와, 사장님 기억력 대단하시네요? 하하… 말씀 들어보니 어쩐지 윤설 씨랑 해인이가 여기 인수한 것 같습니다.”
“아이고, 그 말도 일리는 있네요. 허헛, 이 두 분 아니셨다면 전 아직도 폐인으로 살았을 겁니다. 자, 오늘은 은인들과 귀한 손님들을 위해 한 상 준비했으니 어서들 안으로 드시죠.”
아담한 룸에 네 사람이 자리하자 곧 주인 남자가 여러 가지 음식들을 내왔다.
처음 보는 것들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가 손사래를 쳤다.
“그동안 연구한 것들이 좀 있답니다. 허헛, 평가 좀 부탁드립니다. 참, 오늘은 손님들을 받지 않으니 편하게들 드십시오.”
“아이고, 감사합니다. 오늘 제대로 포식하겠군요.”
윤 매니저의 너스레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주인 남자가 밖으로 나가자 그가 믿기지 않는 얼굴로 해인과 윤설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진짜로 여기 인수한 거 아냐?”
“풉… 오빠도 참…. 그런 거 아니에요.”
해인이 싱긋 웃자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헐, 이렇게 대접이 대단하다니…. 오늘 통째로 대여하기라도 한 느낌인데?”
“그게 아니라, 아저씨가 종종 와서 식사하라고 하셨는데 한동안 못 왔었거든요. 겸사겸사 전화 드렸더니 오늘 마침 김치 만드느라 문 닫으신다고…. 편안하게 식사하라고 하시더라고요.”
해인의 대꾸에 유 매니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대박이구만. 그런데 우리 넷이 만나는 거 아저씨가 소문내시는 건 아니겠지?”
“에이, 그런 분 아니세요. 얼마나 쿨 하시다고요. 저희가 미리 말씀드렸죠. 하면서 친해졌다고…. 오빠, 이쯤이면 근사한 쉴드 아닌가요?”
“오오, 울 해인이 장하다. 이것 좀 먹어봐. 응?”
윤 매니저가 제 근처에 있던 전복 장을 해인의 밥그릇에 올려주자 모두가 또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웃음에 동참하던 준과 윤설의 시선이 동시에 서로에게 닿았다.
일주일이 넘는 동안 깊었던 그리움이 스르륵 풀리는 동시에 애틋함이 새록새록 피어나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들과 함께 편안히 이어지던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후식을 들고 온 주인 남자는 깨끗이 비워진 그릇들에 감동한 표정이었다.
덕담들을 주고받은 후, 그가 밖으로 나가자 해인이 윤 매니저의 팔짱을 꼈다.
“오빠, 우리 후식은 밖에서 먹어요. 네?”
“올…. 이건 유혹인가? 우헤헤…. 오케이.”
윤설이 해인을 바라보자 그녀가 눈을 찡긋거렸다.
어렵게 낸 용기를 격려하는 듯했다.
미닫이문이 닫히자 아담한 룸에 두 사람만이 남았다.
준이 일어서더니 싱긋 웃는 얼굴로 윤설의 곁에 다가왔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윤설 씨, 이렇게 보니까 너무 좋군요.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거 모르죠? 낙안당에 처음 오던 날, 그토록 찾아 헤맸던 당신을 이곳에서 처음으로 만났다는 걸요.”
윤설이 놀란 얼굴로 준을 바라보았다.
“그러셨습니까?”
“네. 곧 사라지셔서 또 아쉬움을 삼켜야 했지만요. 하하… 사실, 에 출연하게 된 것도 윤설 씨 때문이었어요.”
윤설의 얼굴에 연달아 놀라움이 피어나자 준이 싱긋 웃었다.
“어떤 이야길 들려주실지 통화 이후 내내 기대했습니다. 편안하게 말씀하세요. 아니, 당신에게 부담이 된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전 윤설 씨를 만난 것만으로도 오늘, 최고의 선물을 받은 셈이니까요.”
준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말하지 말까? 님과 이런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 하지만……이미 마음을 정한 것이 아닌가…… 님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더 이상의 거짓은 없어야 할 것이다.’
윤설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준이 그녀의 뺨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의 얼굴엔 연인을 향한 애틋한 미소가 가득했다.
더없이 편안한 표정을 도저히 마주하지 못한 윤설이 시선을 떨구며 입을 열었다.
“실은…. 오늘, 어려운 얘길 꺼내는 연유는……. 님과의 사이에 거짓이 없길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준의 두 눈이 금세 촉촉해졌다.
“저 역시 윤설 씨와는 거짓이 없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서로 같은 생각을 했다니… 참 기쁘군요.”
조금은 상기된 음성에서 그의 진심이 전해져왔다.
하지만 윤설은 기쁠 수 없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준이 님…..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것입니다. 허나 님께는 허무맹랑한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다만, 제가 용기를 낸 건…. 님의 존재가 제게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윤설의 음성이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
준은 영문을 알지 못하는 얼굴로 가만히 웃었다.
“생각지도 못한 고백을 들으니 설레는데요? 윤설 씨, 무슨 말이기에 그렇게 심각한 거죠? 음…. 설마….프러포즈는 아닐 테고…. 하하, 농담입니다. 전 이미 말했잖아요. 당신이 외계인이라고 해도 상관없다고요. 그러니까 편히 말씀하세요.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 그러니까…. 저는…..사실….. 조….조선에서….왔습니다.”
“네?”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선……이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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