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93
92회
드디어 차가 멈추었다.
오르는 내내 귀가 멍멍할 정도로 높은 지대 위엔 또다시 높다란 건물이 우뚝 솟아 있었다.
하지만 어리둥절해 할 틈은 없었다.
장소에 대한 궁금증보다도 발밑에 펼쳐진 야경이 모두를 매혹시킨 탓이었다.
그동안 야간 데이트를 즐겨 온 이들에게도 이렇게 멋진 광경은 처음이었다.
“앗, 늦겠다. 어서 가자.”
넋을 놓고 있던 이들이 윤 매니저의 한 마디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헐, 오빠, 여기 천문대에요?”
해인의 질문에 윤 매니저가 씨익 웃자 곧 윤설의 두 눈이 동그래지고 말았다.
건물 안에는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예약에 운영인데다가 평일 마지막 타임이어서 한산한 편이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반짝이는 가운데 안내자가 등장했다.
윤 매니저는 두 여자들을 가운데 자리로 안내한 후 준의 곁으로 다가왔다.
차에서 내리기 전, 변장을 마친 준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구석진 곳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의 눈길이 제 연인을 향하고 있었다.
곁에 앉아 손을 잡으며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본능이었지만 타인의 이목이 존재하는 한, 조심할 것은 조심해야만 했다.
안내자가 설명을 시작하자 돔 형태의 천장에서 다양한 별자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불빛들이 수놓일 때마다 사람들로부터 탄성이 흘러나왔고 그 가운데에 윤설과 해인이 있었다.
준의 시선이 연인을 살피더니 곧 미소 짓기 시작했다.
그 역시 천문대가 처음이었지만 머리 위로 반짝이는 것들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준은 윤설이 감탄을 이어갈 때와 눈을 반짝일 때마다 조용히 웃기에 바빴다.
그는 모두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 정면을 바라보며 숨죽여 웃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별에 관한 설명이 끝난 후, 무리가 안내자를 따라 옥상으로 이동했다.
“오늘 마지막 회차에 오신 분들은 로또 맞으셨네요. 낮까지 많이 흐려서 별 구경이 불투명했었습니다.”
모두가 기분 좋게 웃었다.
안내자는 앞에 놓인 커다란 망원경에 관해 설명했고 체험할 이들이 차례로 줄을 섰다.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져 있던 네 사람이 상황을 살폈다.
주변의 야경을 감상하는 모습은 평범한 연인들처럼 보여서 별다른 의심을 사지 않았다.
관찰을 마친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물러나고 연인들과 친구들끼리 온 이들도 사라졌다.
그리고 해인과 윤 매니저가 망원경 앞에 섰다.
“헐, 대박! 진짜로 잘 보이네? 윤설아, 이따가 꼭 봐봐. 짱이야.”
벗의 감탄에 윤설이 싱긋 웃자 준 역시 흐뭇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관찰을 마친 커플이 두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
하지만 윤설과 준이 다가오는 순간, 윤 매니저가 갑자기 해인의 어깨를 감쌌다.
“하아, 해인아, 우린 내려가서 나머지 데이트 좀 할까?”
“응? 여기도 꽤 멋진데 왜요?”
“에이, 저기 내가 봐둔 곳이 있단 말이지. 자아, 가자.”
두 사람마저 사라지자 널따란 공간엔 오직 윤설과 준만이 남고 말았다.
“윤설 씨, 우리도 한 번 볼까요?”
어색함을 느끼던 윤설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천문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였다.
이곳이 천문대인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뛰던 가슴은 안내자의 설명을 듣는 내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상태였다.
어려운 고서와 아비의 사랑이 담긴 선물로 겨우 기쁨을 누려왔던 규수는 이제 그보다 몇 만 배는 더 커다란 망원경 앞에 서 있었다.
“여기에 눈을 대로 천천히 보세요. 다들 놀라는 걸 보니 굉장한 것이 숨어있나 본데요?”
준의 안내에 윤설이 상기된 얼굴로 다가서더니 렌즈에 눈을 갖다 대었다.
그녀가 몸을 낮추자 곧 등 뒤로 숨어있던 댕기머리가 스르륵 옆으로 내려왔다.
그것을 발견한 준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어? 어머나!”
“뭐가 보이나요?”
“네에. 선명한 별무리가 마치 손에 잡힐 듯합니다. 반짝임은 금은보화와 같이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을 지경입니다. 이것은….. 제가 보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서….”
상기된 음성으로 쏟아지던 감탄이 별안간 잦아들었다.
“윤설….씨?”
렌즈에서 눈을 뗀 윤설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준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채 입을 열었다.
“서, 설마….우시는 거예요?”
“송구…합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지…..”
사뭇 놀란 표정의 낭군을 향해 윤설이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천문의 아름다움에 황홀함을 느끼는 순간, 문득 저를 이곳으로 이끄신 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어찌 아신 것입니까…..? 이토록 세심한 배려라니….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윤설의 감정을 이해한 준이 비로소 미소 지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와 그녀를 꼬옥 안아주었다.
“사실은 해인 씨의 도움이 컸습니다. 천문에 관심이 많으시다는 얘길 듣고 윤설 씨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죠. 그런 당신과 꼭 함께 오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부담 갖진 마세요. 저도 여긴 처음이거든요. 흠흠….그러고 보니 요즘 윤설 씨 덕분에 제가 좀 출세하는 기분이 드는데요? 오히려 고마워할 사람은 저인 것 같은데……”
윤설이 나직이 웃더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시선이 맞닿은 찰나, 각각 고마움과 흐뭇함을 느끼던 감정들이 한 가지로 모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자 연모요, 은애함이었다.
뜨거워지는 마음이 촉촉한 눈빛으로 드러나자 준이 서서히 윤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곧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위로 차분히 내려앉았다.
첫 번째 입맞춤……
수줍지만 용기 내어 사랑을 표현하는 두 사람 위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대한병원 7층, 710호에 심이지가 있었다.
VIP 병동에서도 가장 구석진 병실은 언론의 차단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지만 그보다 더한 이유는 바로 그녀의 심리 상태 때문이었다.
이지는 태주와 하룻밤을 보낸 이후부터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가뜩이나 예민했던 마음은 극도로 요동쳤고 결국 병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민준을 만나기 위해 병을 핑계 삼았던 일이 실제가 된 셈이었다.
“김 감독에겐 컨디션 난조라고 잘 얘기했고 상황 봐서 복귀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입원해있는 동안이라도 마음 편하게 해. 오랜만에 휴식 갖는 셈 치자. 알았지?”
이지가 장 실장을 흘겨보았다.
“복귀? 누구 맘대로? 싫어. 그딴 거 더 이상 안 할 거야! 당장 파기해. 내가 처음부터 하기 싫다고 했잖아. 주변에서 분위기 다 잡아놓고 이제 내가 이러고 있으니 미안하긴 한가 보지?”
“야! 심이지! 말은 바로 하자. 최종 선택을 한 건 너잖아. 그날 헬스클럽에서 의기양양하게 추진해달라고 하더니 이러기야? 그래, 그동안 무리하긴 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게 어디 쉽냐? 이만한 인기, 언제나 네가 원하던 일이었잖아.”
“이제 싫어. 인기 얻어서 복수할 이유가 없어졌단 말이야!”
“뭐?”
장 실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언쟁을 벌일 때마다 십 년 씩은 늙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두고 싶은 충동은 수시로 올라왔지만 꾹꾹 참아낸 보람도 부쩍 드는 최근이었다.
그만큼 인기가 따라준 덕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진정한 A급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휴우….대체 뭐가 문제야? 혹시 그날 강태주랑….”
“그만 해! 사적인 부분은 터치하지 않기로 했지?!”
“그래, 좋아. 터치하지 않기로 했는데 크게 터진 스캔들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거 막느라고 얼마나 개고생 했는지 알아?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말하는 거잖아!”
이지가 침대 위로 눕더니 눈을 감았다.
“됐어. 더 이상 말하기 싫어. 아무튼 끝낼 거야.”
“너 계약 파기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기나 해?”
“오빠가 다치는 거 아니잖아. 내가 다 뒤집어 쓸 테니까 걱정 마.”
장 실장이 제 가슴을 쳤다.
참을 인자를 새기려고 노력하지만 막무가내로 나오는 제 배우는 언제나 어린아이 같았다.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이들이 숨을 몰아쉬는 찰나였다.
-똑똑똑-
병실을 찾아온 뜻밖의 인물은 강태주였다.
장 실장이 급히 표정을 가다듬었다.
“어? 태주 씨가 여긴 어떻게……”
“안녕하십니까? 제 파트너가 아프다는데 당연히 와 봐야죠.”
이지가 태주를 확인하자마자 창가 쪽으로 돌렸다.
“고맙습니다. 마침 잘 왔군요. 촬영 접겠다고 고집을 부리는데 태주 씨가 잘 설득해주시죠. 그럼 전, 이만…..”
두 남자가 목례를 나누었다.
병실을 빠져나온 장 실장이 복도를 따라 몇 걸음을 걸으며 미간을 찡그렸다.
“나쁜 새끼.”
태주가 침대 가까이로 다가갔다.
“이지, 좀 어때? 걱정 많이 했어. 입원까지 할 줄은……”
이지가 태주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왜 왔어?”
침대 곁 테이블에 제법 풍성한 꽃다발이 놓였다.
꽃향기가 냉랭한 병실을 온화하게 물들였지만 이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싸늘한 널 보니 마음이 아프다.”
“훗. 그까짓 하룻밤 같이 보냈다고 꽤나 로맨틱해지셨네? 순수한 거야? 그런 척하는 거야? 태주 씨에겐 처음도 아닌 일일 텐데 요란 떨지 마. 사심이 없다고 했던 당신을 믿은 내가 바보였지.”
“이지!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그날, 진심으로 널 위로하고 싶었어. 한 잔 하자는 네 요청을 듣는 순간, 마치 신인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단 말이야! 사실 만나자는 말에 너무 기뻤어. 가슴이 뛸 만큼 설레기도 했지. 네가 물었었지? 널 좋아하냐고…. 사랑한다는 나의 대답 기억해? 그래, 널 향한 내 마음은 사랑이야. 그렇지 않고는 이런 감정, 도저히 설명이 되질 않아. 너에겐 그까짓 하룻밤이었을지 몰라도 나에겐 아니야. 널 사랑하는 내겐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밤이었단 말이야!”
태주의 절규가 이지의 귓가로 흘러들어갔다.
낯선 듯 멈칫하던 그녀가 냉소를 지었다.
“강태주, 이런 면도 있었어? 그런데 어쩌지? 무슨 드라마 한 편 보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훗, 책임지라는 고리타분한 말은 안 할 테니 그만 가줘. 앞으로 만날 일 없길 바라.”
태주가 이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가만히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뭐하는 거야?”
“이지야, 그러지 마. 날카로움에 네 마음이 다칠까 봐 걱정이다.”
“지금 굉장히 주제 넘는 거 알아? 나가줘. 빨리 나가란 말이야!”
거센 저항에도 꿈쩍하지 않던 태주가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았다.
“또 올게. 푹 쉬어.”
“야! 강태주!”
그가 비로소 뒤돌아 나가자 이지가 침대 위에 있던 베개를 내던지고 말았다.
“두 번 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마!”
이지는 앙칼진 한 마디를 내뱉자마자 이불을 뒤집어썼다.
애써 등을 돌린 모습에선 태주를 거부하려는 마음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녀의 단호한 의지는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이지의 몸이 그날 밤, 제 살갗 위로 수없이 스쳐간 온기를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부정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기분은 이지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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