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Younger Sister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21)
EP31 – 과거, 현재, 혹은 미래에서 (3)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윤하준과 진소향은 조용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빗소리가 들려오고, 음악 소리가 작게 들려오는 와중에 진소향과 윤하준은 서로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런데 그 침묵이 뭔가 굉장히 어색하다. 지금까지 둘이 있을 때 이런 어색한 침묵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음식이 맛있네.”
그 어색한 침묵이 불편한지, 윤하준은 그답지 않게 밝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 말에 진소향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음식 자체는 굉장히 훌륭했다. 데코레이션도 음식점 컨셉에 맞게 특이한 데다 음식 맛도 좋으니 텐션이 올라야 하지만 도통 텐션이 오르지가 않는다.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머리에선 계속 진소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다른 의미. 그건 어떤 의미로 한 말일까?
사실은 알고 있는 주제에 윤하준은 괜히 여러 가지 의미를 떠올렸다.
힐끗하고 윤하준은 조심스럽게 진소향을 쳐다보았다. 파란색의 조명 밑으로 보이는 진소향의 얼굴은 조명과 반대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말하고도 어지간히 부끄러웠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윤하준도 마찬가지다.
진소향이나 한고요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그 감정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자신을 향해 애정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뭔가 죄책감이 든다고 해야 하나?
이제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고 말은 했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다.
사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고.
애정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윤하준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낯선 이야기니까.
항상 무언가를 받을 줄만 알았고, 그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그게 애정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은 그 유일한 애정을 주던 어머니와 수연이가 자신을 떠나고 난 뒤였다.
그 뒤로는 애정을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다.
그렇기에 낯설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다.
한편, 진소향은 그런 윤하준의 모습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뭔가, 평소하고 좀 다르지 않나?
이게 구체적으로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콕 집어서 이런 점이 다르다고 대답을 하긴 힘들지만, 뭔가가 평소와 다르다.
자꾸만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데, 설마 자신에게 정이라도 떨어진 건가?
진소향은 자신이 윤하준에게 무언가 실수라도 했나, 생각을 했지만 딱히 그런 기억은 없다.
‘그렇다는 건 설마, 하준 씨가 부끄러워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생각. 윤하준이 자신을 의식하고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생각.
그 생각을 처음으로 한 진소향은 눈을 크게 뜨며 윤하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윤하준은 진소향의 시선을 피하며 얼굴을 숙였다.
진소향이 지금까지 윤하준을 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모습.
그 모습에 진소향은 좋아하는 대신 눈을 깜빡였다.
아니,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갑자기 왜 자신을 의식하게 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하준 씨가 의식할 만한 행동이라도 했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평소처럼 그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을 뿐이니까.
그렇다면 그의 심경에 무슨 변화라도 생긴 건가?
대체 그에게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 고민을 하던 진소향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하준 씨.”
“응?”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그렇기에 진소향은 그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하였다. 애초에 무언가 혼자 고민하고, 혼자 이상한 결론을 내린 채로 착각을 하는 건 진소향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걸로 고민을 할 시간에 직접 물어보는 것이 그녀의 스타일이지.
진소향의 질문에 윤하준은 드디어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라니? 무슨 일?”
“아뇨, 그냥 하준 씨가 뭔가 평소와 다른 것 같아서요.”
“그래?”
“네.”
진소향의 단호한 대답에 윤하준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내가 평소와 다른가?’
하긴, 생각해 보면 뭔가 평소보다 진소향의 얼굴을 쳐다보기가 힘들기는 했다.
이것을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진솔하게 말을 할까, 아니면 거짓말을 할까 고민을 하던 윤하준은 결국 솔직하게 말하기로 하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
“무엇을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한테 어떤 식으로 보답을 해야 하는지. 혹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진소향은 윤하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윤하준은 한고요와 자신이 가진 감정에 대답을 하겠다고, 그것을 위해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진소향은 입을 다물었다.
윤하준이 자신의 감정을 알고 있는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한고요와 자신이 애정을 주는데 사람이라면 알고 있어야만 한다.
아니라면 한고요와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걸 알고 있다는 것을 대충 눈치를 채고 있는 것하고 그걸 직접적으로 듣는 것하고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간신히 열이 내려앉았던 진소향의 얼굴에 또다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걸 어떤 식으로 대답을 해야 하는 걸까?
‘잘 부탁드려요? 아니, 이거는 조금 그렇잖아. 그러면 지금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것도 조금 그런 거 같은데.’
사랑을 하는데 자존심이 어디 있냐는 생각을 하고 있는 진소향이지만 그래도 너무 노골적으로 묻는 건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대답 기대할게요.”
결국, 진소향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이것이 최선이었다.
* * *
“아니, 왜 다 따로따로 가는 건데.”
여행을 가는 당일,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김태영을 보며 어깨를 으쓱하고 올린다.
“뭐, 어떡하겠냐. 고요는 엄마 문제 때문에 법원을 다녀와야 한다는데.”
“그러면 진소향은?”
“고요랑 같이 온다고 하던데?”
“끄응, 그러면 네 동생은?”
“수연이도 여자끼리 같이 온다고 하더라. 여자들끼리만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어제저녁에 고요네로 가던데?”
나의 말에 김태영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 모습에 눈을 깜빡인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실망을 할 줄이야.
“뭐, 너 마음에 드는 애라도 있냐?”
“응?”
“아니, 저 세 명 중에 마음에 드는 애라도 있냐고. 네 반응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뭔 개소리야.”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하는 김태영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쩝, 만약에 수연이를 좋아한다고 했으면 진심으로 화를 내려고 그랬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 다행이네.
“그냥 오늘은 좀 요란하고 재밌게 가고 싶어서. 그런데 하필이면 제일 재미없는 너랑 둘이서 가야 하다니.”
이건 좀 반박하기 어렵긴 하네.
“대체, 진소향이랑 한고요는 널 왜 좋아하는 거냐?”
“응? 누가 날 좋아한다고?”
“얼씨구, 왜 모르는 척이냐.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말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김태영을 보며 은근슬쩍 눈을 피했다.
그렇게 티가 났나? 나름 잘 속인다고 속여 본 건데 말이야.
“그래서 그 둘은 어떻게 꼬신 거야?”
“꼬시긴 뭘 꼬셔.”
“그러니까 꼬신 적도 없는데 둘이 멋대로 널 좋아했다?”
“멋대로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둘이 날 좋아하는 건 맞지.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의 자유니까.”
나의 말에 김태영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야, 쟤 왜 저래. 무슨 일이라도 있나? 평소하고 달리 뭔가 진심으로 상처를 입은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할 수 있다니 좋겠네.”
“뭐가?”
“누구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될 수 있는데 말이야.”
우수라고 해야 하나?
감성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무언가에 젖은 채 아련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김태영을 바라본다.
저 말투, 저 목소리 톤, 그리고 저 눈빛.
그리고 말하는 내용까지.
설마, 저 녀석.
“너 차였냐?”
차인 건가?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연상의 누나한테?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태영의 표정이 왈칵 구겨진다.
“그래, 차였다. 그것도 시원하게.”
그러고는 굉장히 퉁명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허어, 설마 여행을 앞두고 차일 줄이야.
“너 정도 되는 녀석이 차이다니. 대체 누구한테 차인 거냐?”
딱히, 김태영을 위로하기 위해서 괜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다.
김태영이 누군가.
미래에는 월드스타가 되는 데다 끼도 많고 재치도 많은 만능 엔터테이너다.
거기다가 얼굴도 나름대로 생겼고 키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크다.
“딱히, 위로 안 해 줘도 되거든!”
“널 위로하려고 한 말은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물론, 저것들 전부 미래의 일이지만 지금만 하더라도 김태영은 인기 가수니까.
나의 말에 김태영은 한참이나 고민을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배야.”
“선배?”
“엉, 피아노 선배. 이쪽 업계에선 나름 유명한 사람인데 같은 선생님한테서 배웠던 사람이야. 내가 피아노를 못 치게 됐을 때도 옆에서 응원해 주고 그랬던 사람이고.”
“흐음, 몇 살인데?”
“29살.”
“……29살?”
대답 대신 김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김태영이 19살이니까, 정확히 열 살 차이인가?
확실히 저 정도면 차일 만하네. 곧 30을 앞둔, 그러니까 20대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사람 입장으로서 미성년자랑 사귀는 건 좀 그렇긴 하지.
“어릴 때부터 좋아했지. 그래서 어릴 때부터 좋아한다고 꾸준히 고백을 해 왔는데, 진심으로 듣지를 않더라고.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를 해서 고백했는데, 난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러더라.”
“언제부터 좋아했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었나?”
“네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더라?”
“다섯 살이었나. 나름 늦게 시작했지.”
그게 늦게 시작한 건가? 피아노의 세계란 무섭구나.
어쨌든, 엷 살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그 사람을 좋아한 거면 대단하긴 하네.
“그래도 내 고백을 받고 좋아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라 곤란한 표정을 짓는데 그걸 보는 게 좀 많이 힘들더라고. 아, 내가 좋아하는 게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힘내라.”
평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저런 대사를 왜 쓰나 했는데 진짜로 해 줄 말이라곤 이거밖에 없구나.
뭔가 차 안 분위기가 무겁다.
이럴 때는 뭐라고 해야 하는 거지? 이거 참, 친구가 있어 봤어야 이럴 때 어떤 말을 해 줄지 알지.
친구가 없었던 탓에 이런 경험이 없다 보니 뭐라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에서 재밌게 만들어 줘.”
이 분위기가 싫은지 김태영이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세상에, 저런 어려운 미션을 주다니.
차라리 완전 슬프게 만들어서 울려 줘 하면 그런 노래라도 만들어 줄 텐데, 재밌게 만들어 달라니.
일주일 만에 노래 한 곡을 만들라는 것보다 저게 더 힘든 일이다.
“최선을 다해서 놀아 볼게.”
“그래, 그거면 돼. 그걸 위해서 이것저것 많이 준비해 왔으니까.”
“이것저것이 뭔데?”
갑자기 뭔가 불안해지는데? 뭔가 불법적이거나 그런 것을 가져왔을 것 같지는 않지만, 별의별 이상한 것들을 다 가져왔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뭐, 간단한 보드게임? 그리고 블루투스 마이크랑 또 음료수 정도?”
“술 가져온 건 아니지?”
“내가 네가 그런 말 할 줄 알고 술은 안 가져왔다.”
음료수라고 하길래 술이라도 가져온 줄 알았네.
그래도 보드게임이나 블루투스 마이크 정도면 용납해 줄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 그 정도면 충분히 해 줄 수 있지.”
보드게임을 잘할 자신은 없지만 해 보고 싶었긴 하다. 사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보드게임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
노래를 하느라 시간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같이 게임을 할 사람들이 없었던 탓도 있다.
이게 보드게임이라는 게 혼자서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더라고.
최소한 두 명 이상, 그리고 보통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재밌게 게임을 즐기던데, 내게 그런 사람들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어쩐지 뭔가 말할수록 슬퍼지는 기분인데.
지금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는 김태영 때문인가?
“어쨌든, 기운 내라.”
“그래, 고맙다.”
다시 한번 김태영을 향해 그렇게 말한 뒤에,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딱히, 김태영하고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라 핸드폰이 울린 탓이다.
핸드폰을 확인하자 다름 아닌 수연이한테 온 연락이었다.
그곳에는 사진이 한 장 있었는데 법원 앞에서 뭔가 굉장히 힙한 포즈를 짓고 있는 윤수연하고 진소향, 그리고 홀로 미소를 짓고 정자세로 있는 한고요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적혀 있는 메시지 하나.
[고소 및 신고 끝!]이게 이렇게 해맑을 일인가, 생각도 들지만.
뭐, 안 좋은 일은 아니니까.
“고요 고소하고 이제 출발한대.”
“얼마나 걸린대?”
“글쎄, 걔네도 3시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우리가 2시간 정도 왔으니 거기서 그만큼 또 기다려야 한다는 거네?”
“그렇지.”
“좋아, 그러면 둘이서 놀 수 있는 것부터 하자. 노래방 어때? 내가 산 블루투스 마이크 제법 좋은 거라 음질 나쁘지 않거든. 아니면 영화? 빔프로젝터도 챙겨 왔어. 요즘 나온 단초점 빔프로젝터인데, 바로 밑에다가 냅 두면 위로 화면을 쏴서 거리 제한도…….”
아무래도 김태영은 이번 여행을 정말로 기대했던 것 같다.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차에서 탈출할까?
동생이 천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