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1
11화. 던전 브레이크 (2)
이런 상황이라고 과일이 한가득 담긴 접시를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멸망한 세상에서 혼자 5년쯤 살아남으면 먹을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
나는 안정적으로 과일 접시를 들고, 펜션 주인을 안은 채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민첩을 C+까지 올린 몸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더니 웬만한 자동차 정도 되는 속도가 나왔다.
나는 벌벌 떨고 있는 펜션 주인을 진정시키기 위해 달리면서 떠들었다.
“A급 던전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모양입니다. 지키고 있던 협회원들도 모두 당했고요. 근처에 대피할 만한 곳이 있습니까?”
“그, 근처에 소, 소방서가…”
나쁘지 않다. 나는 펜션 주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던전 게이트가 열린 주변이 모두 불타오르고 있었다.
흉흉한 붉은 빛이 일대를 물들였으며, 심상치 않은 열풍이 내가 있는 곳까지 불어왔다.
‘추락한 용’ 던전 보스 몬스터의 능력이었다.
펜션 주인도 그 광경을 보고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인지 돌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자신의 터전이 화마에 휩싸이는 건 제정신을 유지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계속 울다간 자칫하다 탈수가 올 수도 있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한 어투로 주인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곧 해결될 겁니다.”
신기하게도 사람은 곁에 침착한 사람이 있으면 불안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내 태도에 아주머니도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서둘러 소방서로 향했다.
***
24시간 대기 중인 소방서답게 안에는 대기 중인 소방관들이 있었다.
소방관들도 게이트가 있던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을 발견한 상황이었다.
나는 게이트를 지키던 협회원들이 당한 것 같으니, 지원 인력이 올 때까지 민간인을 보호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모셔온 펜션 주인과 과일 접시를 황당하게 보던 소방관들은 헌터증을 보여주고 나서야 내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 그런데… 아직 대피 못 한 주민들은 어떡하죠? 노인 분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집에 계실 텐데요….!”
뭘 어떡해, 당장 대피시켜야지.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 사람들은 헌터가 아니었다.
그래, 충분히 당황할만한 상황이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한 어투로 대답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가능한 분들은 당장 전화 돌리시고, 직접 일대 돌면서 확성기로 대피하라고 안내해야겠습니다.”
아직 헌터 협회에서 재난 대피 알림 문자를 보내지 않아서인지, 이 사람들도 현실감이 없어 보였다.
나도 예상 못 한 일이긴 하지만,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나는 곧장 핸드폰으로 협회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연결음이 가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유영 헌터님 아니십니까?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한시가 급한 터라….』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급한 상황인 만큼 허례허식 인사를 생략하고 말을 쏟아냈다.
“제가 지금 강릉에 있습니다. 강릉 A급 던전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는데 소식 들으셨습니까?”
『아, 예! 지금 저도 소식 듣고 출근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강릉에 계시다고요?』
지금은 새벽 2시다.
이 시간에 출근한다는 게 안타깝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고려해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네, 지금부터 소방관분들께서 주민 대피를 도와주실 겁니다. 당장 출동 가능한 헌터 찾아서 잡몹이라도 잡게 하시고, 협회원 중에서도 전투 가능한 사람들 보내주세요. 잡몹이 많습니다. 그리고 힐러가 있는 길드에도 도움 요청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니, 팀장님이 직접 오셔서 현장 감독을 맡아주셔야겠습니다.”
요약하자면 나 빨리 보스 몬스터 잡으러 가야 하니까 네가 와서 현장 맡으라는 소리였다.
얼추 사태를 파악한 건지, 팀장이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해했습니다. 상황이 급박한 것 같으니 서두르겠습니다. 자세한 건 현장 도착한 후에 확인하도록 하고 지금은 끊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 들고 있던 과일 접시를 펜션 주인에게 넘겼다.
상황의 급박함을 깨달은 소방관들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내게 과일 접시를 넘겨받은 펜션 주인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저기… 헌터님?”
“예, 말씀하세요.”
“내가 핸드폰을 두고 와서 그러는데 전화 한 통만 빌릴 수 있을까. 혹시 모르니까 딸한테 전화라도 해두고 싶어서….”
나는 흔쾌히 핸드폰을 건넸다.
고주연이라면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려 할 것 같지만, 지금 시간은 새벽 2시다. 아마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이후에 오게 될 것이다.
펜션 주인이 전화하는 동안, 나는 출동을 준비하는 소방관들에게 가서 당부했다.
“A급 던전은 잡몹에게도 사람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지능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말을 걸더라도 절대 대답하지 마시고 무조건 도망치세요. 주민 대피만 서둘러 주시면 곧 협회에서 헌터들을 데리고 와 몬스터를 처리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기 바닷가 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 같은 건 어떻게 합니까?”
“그쪽은 보스 몬스터가 있으니 절대로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제가 지금부터 처리하러 갈 겁니다.”
“지금요? 헌터님 혼자서요?”
“네, 곧 헌터 협회 사람들이 올 테니 이후로는 그쪽 지시에 따라주시면 됩니다.”
C급 헌터 혼자서 A급 몬스터를 처리하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내가 침착한 태도로 말했기 때문인지 소방관들도 내 얘기를 침착하게 받아들였다.
내 태도에 신뢰가 생겼는지 소방관 중 한 명이 말했다.
“당장 가신다면 저희 쪽에서 태워 드릴까요?”
“아뇨,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주민 보호에만 힘 써주세요.”
괜히 갔다가 일반인을 휘말리게 하는 것보단 내가 뛰어가는 게 낫다.
마침 펜션 주인이 전화가 끝난 건지 내게 핸드폰을 넘겼다.
나는 다시 한번 안심시키기 위해 생각나는 대로 분위기를 풀만 한 말을 건넸다.
“과일 못 먹어서 죄송합니다. 이따 주민들 오시면 나눠 주세요.”
“아휴…. 괜찮아요. 부디 몸조심해요.”
뒷일은 헌터 협회에서 알아서 할 것이다. 전화로 쪼기까지 했으니까.
나는 남은 사람들에게 간단히 인사하고 서둘러 게이트가 있던 곳으로 달려 나갔다.
***
나는 게이트로 가는 길에 이번에 새로 얻은 가능성 스킬을 사용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스킬을 발동하자 오감이 날뛰는 것처럼 예민해졌다.
흑견의 뛰어난 탐지 능력이 내 안에 깃드는 느낌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몬스터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러자 레이저 포인터의 붉은 점 같은 것이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 눈에만 보이는 점으로, 몬스터의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던전의 잡몹인 뱀은 해제하기 까다로운 상태 이상을 걸었다.
천 마리나 되는 탓에 당장 나 혼자 전부 죽이는 건 무리였지만, 적어도 보스 몬스터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놈들이라도 정리해 둘 생각이었다.
나는 해치의 비늘검을 소환해 붉은 점이 찍힌 곳을 향해 정확히 날을 휘둘렀다.
스각!
어둠에 숨어 있던 뱀이 비명을 지르며 재가 되어 사라졌다.
캬아아아악!
한 마리가 당하자, 멀리서부터 붉은 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잡몹이라 하더라도 A급 던전의 몬스터다. 나를 노리고 바글바글 몰려오는 상황은 누구라도 긴장할 만했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이 몬스터들의 가장 강력한 능력인 상태 이상, ‘환각’을 거는 능력은 내게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놈들이 내게 환각을 걸기 시작한 건지, 달려가던 내 앞으로 뿌연 안개가 펼쳐지며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려줘… 살려줘….』
『죽을 것 같아…. 제발 살려줘….』
놈들은 사람의 약한 점을 파고들어, 무의식적으로 대답하게끔 만든다.
그렇게 대답해버리면 온몸이 굳은 채로 정신세계가 망가져 버린다.
그러나 내겐 이 개소리가 통하지 않는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 [ 상태 이상, ‘환각’에 저항합니다. ]나를 감싸던 안개가 순식간에 흩어지며 목소리 대신 몬스터의 소리가 들렸다.
“샤아아아악!”
이게 개소리가 아니면 뭘까. 뱀 소리?
나는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며, 붉은 점이 뜨는 곳을 향해 망설임 없이 칼날을 휘둘렀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뱀의 머리가 계속해서 잘려 나갔다.
스각!
환각이 통하지 않는 내게는 차라리 방망이를 휘두르던 하급 도깨비 놈들이 더 성가신 놈들이었다.
몬스터를 처리하면서 달리던 내 눈에 드디어 던전 게이트가 있던 해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착하고 나니 때맞춰 가능성 스킬이 종료되었다. 다음 스킬을 쓰려면 최소한 10분은 기다려야 한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붉은 아지랑이를 피우며 똬리를 틀고 잠든 거대한 뱀이었다.
이 추락한 용 던전의 보스 몬스터, 이무기 ‘강철이’다.
이 녀석의 능력 때문에 일대가 불에 탄 것처럼 까맣게 그을린 채로 메말라 있었다.
그때, 고통에 찬 신음이 정적을 깼다.
“윽…. 으윽….”
헌터 협회원 세 명이 눈이 뒤집힌 채로 침을 흘리며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던전의 몬스터들이 악랄한 이유는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사람의 정신세계가 완전히 붕괴되어 사망할 때까지 갖고 노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 녀석들의 목숨이 끝나기 전에 내가 왔다.
나는 곧장 그들을 향해 생명의 의지를 발동했다.
[ 메인 스킬, 를 발동합니다. ] [ 생명의 의지가 상태 이상, ‘환각’을 해제합니다. ]내 손에서 뻗어나간 녹색 빛이 그들의 몸을 감쌌다.
곧 발작이 멈추고 천천히 진정되는 게 보였다.
그중 유일하게 정신을 차린 한 명이 숨을 몰아쉬다가 위액을 토해냈다.
“으윽, 헉….”
자세히 보니 아까 내게 전화를 걸었던 협회원이었다.
내가 힐을 걸어줬다 하더라도 곧바로 정신을 차리긴 어려운데, 제법 강단이 있는 녀석이었다.
나는 그 녀석에게 다가가 말했다.
“정신이 없겠지만, 제 말 잘 들으세요.”
“헉, 헉… 아까 그, 헌터….”
“네, 맞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저기 똬리 틀고 자고 있는 보스 몬스터를 해치울 겁니다. 당신은 협회원들을 챙겨서 당장 도망치세요. 제가 오는 길에 잡몹을 해치웠으니 길은 뚫려 있습니다. 이후에는 이 근방으로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하셔야 합니다. 제 말 이해하셨습니까?”
“도, 도망을… 지, 지금…”
협회원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사이에 뒤에서 스산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는 협회원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네, 당장 가세요!”
협회원은 부랴부랴 나머지 둘을 챙겨서 힘겹게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는 뒤를 돌아서 눈을 뜬 이무기, 강철이를 바라봤다.
거대한 뱀의 비늘이 흐릿한 달빛에 반짝였다.
녀석을 감싸고 있는 핏빛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강력한 열풍이 일대를 휩쓸고, 기지개를 켜듯 일어난 이무기가 고압적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천 마리의 뱀을 이끄는 뱀들의 왕.
사악한 마음을 품은 탓에 승천해서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강철이’.
회귀 전에는 강릉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지역 자체를 폐쇄하게 만든 원흉.
하지만 이번에는, C급 헌터 한 명에게 한심하게 죽은 뱀 새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