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xclusive Tower Guide RAW novel - Chapter (11)
11화
“……플레이어가 죽었다고?”
매우 이른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김세용의 도플갱어를 죽인 것과 거의 동시에 일어났을 만큼.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플갱어가 플레이어를 공격한 것인지, 아니면 같은 플레이어끼리 싸움이 벌어진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 어느 쪽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은 전자 쪽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부디 우리 동료들 중엔 또라이가 없길 바라며.”
나는 동료들에게 가만히 있을 것을 당부했고, 오직 나만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겠다고 제안했다.
현시점에선, 동료들이 내 제안에 납득했을 거라 믿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최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할 도플갱어는…….”
바로 나 자신의 도플갱어였다.
그 어떤 플레이어도 나의 도플갱어를 이길 수 없을 테니까.
더군다나 그 녀석은 2층 무대를 자유롭게 휘젓고 다닐 공산이 컸다.
나만 적극적으로 살인을 하겠다고 모두에게 공언하였으니, 도플갱어도 똑같이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빠르게 찾아 녀석을 제거해야만 한다.
관건은 녀석이 2층 스테이지의 어디쯤에 위치해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미니맵의 상황을 관찰했다.
현시점에서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게 나의 도플갱어 1순위 후보.
“…….”
물론 나의 가설은 도박이었지만, 사실 다른 대안이 없었다.
미니맵에 수놓아진 붉은 점들이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정보니까.
두 명!
지금 분주하게 움직이는 붉은 점은 두 개였다.
어느 쪽이 내 도플갱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중 하나를 만나 볼 생각이었다.
먼저 가까운 쪽부터.
* * *
처음 이 미션의 내용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의문 하나가 있었다.
‘이 종말의 탑이 가장 원하는 그림은 무엇일까?’
결론은 어렵지 않게 내릴 수 있었다.
분명 이 탑은 플레이어 간에 싸움이 일어나길 바란다는 것.
탑은 우리에게 PK를 장려하기도 했다.
PK 성공 시에는 대량의 경험치를 약속하면서 말이다.
도플갱어는 그저 양념일 뿐, 이 무대의 메인은 플레이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도플갱어는 플레이어들을 현혹시키고,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 존재의 이유.
그렇다면 녀석들의 역할은 초반에 PK의 방아쇠를 당겨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이런 나의 생각을 확인받고 싶었다.
다름 아닌 나의 도플갱어에게.
“어때? 내 생각이 틀렸어?”
내 질문에 나의 도플갱어는 그저 씨익 웃었다.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는 짐작도 못 하겠다.
설마 본인이 진짜 이호영이라고 우기지는 않겠지?
“틀렸어! 이호영.”
“틀렸다고?”
“그래. 네 말대로 탑이 원하는 것은 플레이어들 간의 비극적인 싸움일 거야. 하지만 넌 도플갱어의 존재 이유를 제멋대로 정의해 버렸군.”
“제대로 정곡이 찔린 것은 아니고?”
“아니. 우리 도플갱어는 꼭두각시가 아닌 엄연한 게임의 주체야. 비록 난 너의 모조품이긴 하지만, 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길 원하고 있어.”
그러면서 놈은 또다시 음산한 웃음을 짓는데, 그걸 보고 있으려니 소름이 돋는다.
생긴 게 똑같아서인지, 마치 또 다른 내 자아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놈은 본인이 도플갱어인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방금 전 김세용의 도플갱어를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스탠스이다.
“그래서 넌 누구를 죽였지?”
“난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녀석의 대답은 단호했다.
사실, 나는 방금 전 일어난 살인이 이 녀석의 소행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존재 자체가 거짓인 놈에게 뭘 물어본 내가 어리석었군.”
“내 존재가 거짓이라고? 크크크. 날 똑바로 보라고, 이호영! 정말 그렇게 생각해?”
“어, 넌 나의 모조품일 뿐이니까.”
이 녀석과 더 말을 섞다가는 정신에 혼란이 올 것만 같았다.
빨리 끝내야겠다.
스르르륵!
나는 불굴의 검을 빼 들었다.
나와 똑같이 생긴 놈을 베려니 기분이 묘하지만, 신속하게 처리해야만 한다.
그냥 살려 두면 다른 플레이어들에겐 재앙이 될 것이다.
[초급 검술이 발휘됩니다.]나는 저돌적으로 녀석의 영역으로 파고들어 갔다.
무조건 내가 이기는 싸움이라 믿으며.
“이봐, 이호영! 그건 나도 할 수 있는 거라고!”
도플갱어는 똑같은 기술로 응수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판박이다.
발동작이나 검을 찔러 들어오는 팔의 궤적도.
심지어 표정까지 비슷하니 소름 돋는다.
채애애앵!
검과 검이 맞부딪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우리 둘의 차이점이 드러날 것이다.
동일한 근력에 민첩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음 동작이 더 빠른 것은 내 쪽이었다.
휘이익!
반 박자 빠른 나의 검이 녀석의 옆구리를 스쳤다.
옷깃이 베이고, 얕게 패인 상처에서 핏방울이 튀어나온다.
녀석이 황급히 몸을 뒤로 빼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호오! 제법인데, 이호영?”
“내가 제법이라기보단 템빨이지. 너도 알고 있지 않나?”
“크크크.”
녀석이 가지고 있는 것은 ‘불굴의 검’의 복사판.
도플갱어가 사람은 똑같이 복사해도 아이템마저 같을 순 없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의 능력치는 완전히 동일하진 않았다.
2층에 올라오자마자 난 [절대 감각>이라는 새로운 스킬을 획득했지만, 도플갱어는 달랐다.
녀석은 로비에서의 나와 같은 능력치.
비록 감각이 전투 특화의 스탯은 아니지만, 미치는 영향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결론은 내가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다음 공격을 감행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빠르게 합류하는 것이 나의 1차 목표.
좀 더 과감하게 검을 찔러 들어갔다.
“크크크!”
문제는 녀석의 태세 전환이 매우 신속했다는 점.
템빨의 차이를 느낀 도플갱어는 상당히 방어적으로 싸움에 임했다.
녀석에게 작은 상처들을 입혀 가며 시종일관 유리한 전개를 가져갔지만, 결정타가 없었다.
생각보다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이호영! 잠깐만! 내 말 좀 들어 봐.”
녀석이 숨을 헐떡이며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또 무슨 잔꾀를 부리려고.”
“잔꾀라니? 너도 지쳤잖아. 크크크.”
우린 서로 속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자의 상태창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서로의 HP를 비교할 수 있으니까.
유리한 것은 확실히 내 쪽이지만 녀석의 HP도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이호영! 내가 재미난 사실을 하나 알려 주려고 하는데.”
“헛소리!”
“내 말을 듣고 나면 나랑 싸울 맘이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나와 동일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독립된 자아를 가진 존재.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기왕 검을 멈춘 김에 들어나 봐야겠다.
나는 턱짓으로 녀석을 재촉했다.
“그럴 줄 알았어.”
“빨리 말해.”
녀석은 숨 고를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플레이어를 죽인 건 플레이어였어.”
무슨 얘기인가 했더니 결국 이거였다.
방금 전 살인을 한 건 곧 죽어도 본인이 아니라는 말.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놈이 굳이 나에게 살인을 했단 사실을 부인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도플갱어는 본체를 만나면 반드시 진실만을 말하게 설계되어 있지. 크크크.”
놈의 눈빛을 보고 있으려니 정말로 현혹될 것만 같았다.
나는 다시 불굴의 검을 바로 세웠다.
이야기의 진위에 상관없이 내가 놈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으니까.
“차라리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해 보지 그랬어.”
그리고 검 끝을 도플갱어 쪽으로 겨눈 순간.
[플레이어가 사망하였습니다.] [현재 인원: 플레이어 14, 도플갱어 15] [30분 내에 새로운 살인 1건을 발생시키십시오.]또다시 충격적인 메시지가 들려왔다.
벌써 두 명째.
30분이라는 제한 시간이 무색할 만큼 페이스가 너무 빨랐다.
“크크크! 내 말이 맞잖아! 여기서 날 상대하느라 시간을 지체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도플갱어가 나를 보며 웃는다.
김세용의 도플갱어와 이 녀석 사이엔 확실한 차이점이 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 통하는 느낌.
이성이나 논리로는 이놈의 말을 믿지 말아야 하는데 무언가 전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도플갱어는 정말로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마음속으로는 부인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런 느낌이었다.
“도플갱어는 본체 앞에서 진실만을 말한다고 했던가?”
“그래.”
“그럼, 누구냐? 네가 본 그 살인자 플레이어.”
“내가 말해 줘야 할 의무까지는 없는데?”
이 자식이 아주 사람을 가지고 논다.
“이제 이호영 너도 느끼고 있을 거야. 내 말이 다 진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서로 통하는 사이니까.”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이놈 앞에선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느낌이었다.
도플갱어가 본체 앞에선 진실만을 말한다는 이유를 막연히 알 것도 같다.
“여기서 날 살려 준다면, 한 가지를 약속하지.”
“…….”
“널 다시 만날 때까지 아무도 죽이지 않겠다고. 그러니까 가! 그 살인마 플레이어를 잡으러.”
격한 혼란이 밀려왔다.
이 녀석의 말대로라면, 플레이어 중에는 플레이어 사냥꾼이 존재한다는 것.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면 아주 위험할 것이다.
어쩌면 놈은 [살성>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네가 말한 그 녀석. 어느 방향에 있지? 이 정도는 알려 줄 수 있잖아!”
“크크크!”
도플갱어의 손끝이 어딘가를 향했다.
나는 바로 미니맵의 상황을 확인했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하나의 점이 보인다.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조금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더 늦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공략집: 도플갱어는 자신의 본체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결국, 녀석의 말이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내게 한 약속도 지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은 살려 주지.”
여기서 죽이지 못한 것이 좀 아쉽지만, 녀석의 발을 묶어 놓은 건 큰 소득이었다.
* * *
결국 나의 도플갱어를 지나치고 말았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무언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 선택이 최선이길 바라며.
“후우.”
쉬지 않고 달렸더니 호흡이 거칠어졌다.
현실 세계에서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초인적인 체력을 얻었지만, 전력 질주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곳은 게임 시스템 속이니 ‘탈 것’이 빨리 등장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서둘러 그곳을 향해 달렸다.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김창식.
우리 그룹에서는 중간 정도의 능력치를 가진 플레이어였다.
“관통상이군.”
정확히 심장 부위에 관통된 상처가 있었다.
단 한 번의 공격.
검 종류의 무기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상처 부위가 훨씬 더 깔끔했을 테니까.
“혹시 활?”
가슴에 꽂힌 화살을 회수할 때 헤집어진 상처의 흔적이 보였다.
나는 가볍게 애도를 표하고는 서둘러 미니맵을 보며 다시 움직였다.
타깃과의 거리는 많이 좁혀진 상태였다.
내 절대 시각을 고려한다면, 이제 곧 누군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내가 찾고 있는 살인자 플레이어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울창한 숲길이었기에, 이동 속도는 갈수록 느려졌다.
이미 미니맵 상에서 타깃으로 삼은 점은 사라졌다.
내가 녀석의 지척까지 접근했다는 의미.
생각보다 그 녀석은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바스락바스락.
고요한 숲길 속에서 내 발자국 소리는 더없이 요란했다.
발밑에 떨어진 낙엽까지는 어쩔 수 없는 노릇.
휘이이이잉-
그리고 내 절대 감각은 나에게 위험 신호를 보내왔다.
화살이다.
상당히 먼 거리지만, 화살이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챙!
나는 불굴의 검을 들어 녀석의 습격을 막아 냈다.
휘이이이잉-
그리고 연속해서 또 한 발.
그 순간 우린 서로 눈이 마주쳤다.
역시 도플갱어의 말은 진실이었다.
– 12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