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ucky Encounter From the Game Turned Into Reality RAW novel - Chapter 260
게임 속 기연이 현실로 260화
57. 통합(1)
영상은 노이즈로 가득했는데, 아무래도 여신이 누군가가 자신을 찍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여신이 위치한 것으로 보이는 재단 상단은 완전히 모자이크 처리를 한 것처럼 화면이 일그러져 있었고, 그나마 허공을 응시하며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는 루카스 대공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자막을 입혀 드릴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영상은 멀리서 찍은 거라 그런지 잡다한 소음만 가득할 뿐 정작 중요한 루카스 대공과 여신이 목소리가 담겨 있지 않았다.
결국엔 입 모양만으로 대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독순술 쪽엔 관심이 없어서 체스터에게 자막을 부탁해야 했다.
[발견하셨다고요?] [당연히 계약을…….] [기연 방식으로…….]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이는…….] [그럼 추후…….] [알겠습니다.]문제는 그 자막마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왜 그렇게 대화를 할 때 얼굴 방향을 바꾸는 건지, 영상에 반 이상이 루카스 대공의 뒤통수를 찍어서 내용이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도 단편적인 내용으로 흐름을 유추할 수 있었는데, 이때 루카스 대공이 여신에게 지구에 돌아갈 방법을 구했다고 들었던 것과 달리, 뭔가를 논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보아하니 여신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루카스 대공에게 어떤 계약을 제안한 것 같다.
여신이 루카스 대공과 논의를 하고 제안을 할 게 있다니, 나는 이 상황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짧은 영상이 끝이 나고.
“음…….”
나는 고민을 이어가야 했다.
무언가를 확신하기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그나마 알 수 있는 사실은 이거 하나.
“여신과 루카스 대공의 관계가 생각보다 긴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 보이죠.”
“이 관련 기억을 체스터 님에게 남기지 않고 다른 내용으로 고쳐 쓴 것만 봐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 같은데, 대화가 온전하지 못해 아쉽네요.”
“그래도 아드리안 님이 말씀하신 대로 루카스 대공의 행적을 계속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둘은 루카스 대공은 기연까지 논했다.
만약 기연이 여신과 협의되어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 목적 자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내 표정은 심각해졌다.
루카스 대공은 환생하고 난 후, 언젠가 자신의 능력을 되찾기 위해 기연을 만들었다는 뉘앙스를 블레이크에게 풍겼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럼 그렇지라며, 루카스 대공이 기연에 접근하는 것을 최대한으로 막아왔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그 말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하아, 은인이시여. 왜 이렇게 당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겁니까?’
그렇게 체스터와 머리를 맞대고 있던 나는 문뜩 무서운 추측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루카스 대공의 환생체인 로드 엑시드가 처음부터 여신의 끄나풀이었던 건 아니겠죠?”
“아…….”
당연히 이건 추측이다.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구 측엔 로드 엑시드의 존재 자체가 엑스맨이 된다.
‘만약 그가 지구와 론델의 통합을 위한 안배라면, 여신이 지구 소속 명계의 계획을 방치하는 이유도 납득이 되긴 해.’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여신을 막겠다며 희망 가득한 계획을 짜고 있던 명계 소속 천족과 마족이 내 추측을 듣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 추측이 틀린다면 그들에겐 다행이지만, 맞다면 재앙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배신을 근간으로 한 계획의 끝에 그들이 설 곳은 없을 테니까.’
이점은 나로선 나쁘지 않은 엔딩이라 볼 수 있다.
여신도, 루카스 대공의 환생체도 배신하지 않게 되는 셈이니까.
“이게 사실이라면 로드 엑시드 님 앞에선 만경을 맹신해선 안 되겠네요. 지금까지 그분을 상대하며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했는데.”
“하긴 그분이 만든 물건인데, 이걸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어쩌면 파훼나 정보 조작이 이뤄지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나와 체스터는 서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이내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며 악수를 나눴다.
“앞으로도 조사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얻은 건 확신 없는 의심뿐이지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과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당하는 건 전혀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 * *
기연관리자 체스터와 만남 후, 저녁 시간이 되었다.
친척들은 파티홀에서 만찬을 즐기고 있고, 나는 조용한 곳에서 아르시아, 성녀 이브릴과 함께 식사를 했다.
이브릴을 경계하듯 내 옆에 착 달라붙은 아르시아.
예전이라면 그런 이브릴이 아르시아의 눈치를 살필 테지만, 멘탈이 강해진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내게 고혹적인 미소를 보내왔다.
론델에서 결혼 가능한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그녀는 10대다.
때문에 한국 감성이 남아 있는 내겐 이브릴을 여자로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점차 물이 오르는 그녀의 미모를 보고 있으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이대로 20살이 된다면 아르시아에게도 밀리지 않는 미인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어떤 중요한 일이 있으셔서 공왕성에 머무신 겁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미모를 감상할 때가 아니다.
나는 성녀의 목적이 궁금했다.
뭔가, 중요한 일이 있으니 이렇게 성지를 비우고 공국에 머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입을 뗀 그녀에게서 의외의 제안이 날아들었다.
“다음 지구행에 저도 참가시켜 주십시오.”
평화기구에 참여한 각국의 지도자는 내가 지구를 오가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이해할 순 있지만…….
여신을 모시는 성녀의 지구행?
명계의 천족과 마족들이 알게 된다면 타겟되기 딱 좋다.
때문에 나는 당황하며 그녀를 말려야 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어렵습니다. 지구의 천족과 마족들에겐 여신 세피아가 침략자나 다름이 없거든요. 분명 성녀님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 외에 더 있다.
피치 않게 내 일행에 마왕과 악마숭배자들이 함께하고 있단 거.
아무리 그녀가 나를 위한다고 해도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쉬이 판단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난색을 표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성지의 성유물 중 신성력을 감추는 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보호하고 계신 마족에 대해서도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그것 역시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모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혹시 뭔가를 알아채고 지금 날 떠보는 걸까?
“…….”
아니, 그건 아닐거다.
그녀는 내게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거짓말을 할 정도의 위인은 못 된다.
덕분에 나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짚어야 했다.
신성력을 감춰주는 성유물은 둘째치고 마족의 존재는 자칫 론델에서 배척을 받을 수 있는 사유였으니 말이다.
지금껏 녀석들의 흑마력을 잘 봉인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신탁이요?”
신탁이라 쓰고 여신의 경고라 읽는다.
나는 여신이 무슨 말을 해왔나 싶어 긴장했으나 이어진 말은 그녀의 행동만큼이나 의외였다.
“여신님의 허가가 있을 때까지 론델에 강림한 마족을 공격하지 말란 내용이었습니다.”
마치 내 입장을 배려하는 듯한 내용이다.
어쩌면 내가 부리는 마족들의 존재가 그녀에게 득이 된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잠깐.
그 내용만으로 내가 마족을 데리고 있는지 어떻게 아는 걸까?
“마족이 정체를 들키지 않고 숨어 있으려면 뛰어난 조력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날 용의 선상에 올려놨다는 건가요?”
“용의 선상이랄 것 없이 이런 괴짜짓을 할 분이 또 없다고 판단했죠. 적어도 여신께서 이리 당부하실 정도면 마족들이 론델에 위해를 끼칠 위험은 없단 뜻 아니겠습니까? 그런 마족을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드래곤을 제외하고 아드리안 님밖에 없죠.”
나름의 소거법이란 건가.
아무튼 그녀의 말에 의하면 마족의 존재를 들켰다고 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여신의 공증이 딸려 있단 뜻이었으니까.
덕분에 나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얼떨결에 여신의 도움을 받고 말았다.
“마족은 어떻게 부리고 계십니까?”
“강림하자마자 잡아서 주종 계약을 맺어 버렸습니다.”
내 말에 그녀는 실로 나답다며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어떤 마족들인가요?”
“아크 스칼렛과 다크 스퀘어입니다.”
“네? 엑? 아니!?”
설마 했던 마족들이 악명 높은 마왕들일 것이라 생각지 못한 모양이다.
이브릴의 표정이 모르고 시큼한 음식을 먹은 사람처럼 강렬한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후, 이거 놀랍다고 해야 할지.”
놀란 그녀를 보니 지구에서 잡아 온 마왕도 있다는 이야기는 못 하겠다.
비록 뿔과 날개를 뜯겨 능력치가 대폭 하락하긴 했지만, 로드 스크림 역시 내 부하 마왕단에 이름을 올린 상태였다.
이브릴은 심호흡과 함께 감정을 추슬렀다.
“역시 스케일이 크시네요.”
그녀는 대단하다며 쓰게 웃었다.
마왕 이야기에 잠깐 화제가 다른 길로 새고 말았다.
나는 이브릴이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지구에 향하려는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론델과 지구에 발생할 이변을 가까이에서 목격하기 위해서입니다. 교단을 대표해 현 사건의 기록을 후세에 남기고자 합니다.”
따로 여신의 퀘스트 같은 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잠시 턱을 괴고 고민했다.
‘그냥 자기를 따라 다니고 싶은 거예요!’
그런 내게 아르시아가 귀여운 분노의 문자를 보내왔다.
그에 피식 웃음 흘린 나는 어쩔 수 없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시아는 조금 불편하겠지만, 성녀의 주장을 막을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허락을 하자, 아르시아는 한숨을, 이브릴은 만세 하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 확실합니다.”
그리고 자신감 가득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브릴은 식사에 집중했다.
마치 더는 아르시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것처럼.
* * *
마왕 로드 스크림과의 전투가 끝나고 론델 시간으로 한 달, 지구의 시간으로 대략 2주가 지났다.
이제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든 아르시아의 배는 누가 봐도 임산부의 것이어서 여기저기 끌고 다니기 미안해졌다.
그래서 그녀에게 휴식을 요청했으나, 아르시아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고집을 피워 아직까지 함께 다니는 중이다.
그사이 지구를 2차례나 더 다녀왔는데, 점차 양 세계의 간극이 좁혀지면서 이젠 시간 비가 2:1까지 줄어든 상태다.
“오로라가 점점 잦아지네.”
“이러다가 당장 내일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더불어 최근 지구와 론델엔 이상 현상이 끊이질 않고 있다.
뜬금없는 오로라에 이상기후는 기본이요, 사람들이 실종되고 땅이 사라지면 건너편 세계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제 슬슬 때가 임박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 상황이 되어서도 쉬이 움직이지 않는 지구의 명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아직 이렇다 할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을 텐데.’
때문에 나는 차근차근 론델의 재난 준비만 진행했다.
덕분에 론델은 아크 스칼렛의 권능으로 탄생한 치료제부터 시작해, 마을 단위까지 광역 방어막이 고루 배치되었고, 이젠 때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슬슬 인내심이 성질을 자극해갈 때.
“때가 되었네.”
한 달간 잠수를 타고 있던 로드 엑시드가 갑자기 등장해 그리 말했다.
“명계에서 계획을 시작할 예정이야.”
드디어 먹튀의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