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doll is Gigant RAW novel - Chapter (1)
1. 제가 누굽니까?
미련이 남는 죽음이었을 듯싶다.
이렇듯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도는 걸 보면.
느낌도 감정도 없는 난 정처 없이 흘러간다.
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끝없이 끝없이 흘러 흘러간다.
어느 순간 번쩍 눈을 떴다.
“컥! 커컥!”
숨이 막힌다.
밧줄이 내 목을 조른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밧줄을 손으로 잡아당겨도 소용없었다.
내 몸무게에 눌린 밧줄은 더 강하게 내 목을 옥죄고 있었다.
눈앞이 노래지며, 의식이 멀어진다.
‘죽음? 제길, 죽음인 건가······.’
그럴 순 없다!
다시 그 허무의 공간엔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살기 위해 몸을 흔들고 마지막 발악을 했다.
그때 뭔가 발끝에 걸렸다!
난 있는 힘껏 발을 휘둘렀다.
빡! 우지근!
쿠웅!
“커헉!”
막혔던 숨이 터졌다.
“콜록! 콜록!”
답답함에 내 목을 감싸고 있던 밧줄을 벗었다.
올가미 밧줄?
그리고 내 옆엔 부러진 사다리.
‘뭐야? 방금 사다리에 목을 맨 거야?’
사다리가 부러져 쓰러지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죽을 뻔했다.
따끔거리는 목을 잡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자, 주변이 보였다.
‘여긴 어디지?’
높은 천장. 바닥 곳곳엔 은은한 빛을 내는 수정구가 박혀 있어 많이 어둡진 않았다.
바닥에 놓인 램프를 들어보니, 좌우로 늘어선 수십 개의 선반이 보였고.
그 선반엔 똑같은 크기의 상자 수백 개가 놓여 있었다.
여긴 거대한 창고였다.
생경한 환경에 살짝 당황했다.
그런데 난 누구지?
“윽!”
순간 머리에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리고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죽기 전에 기억이.
‘하아! 결국, 막지 못했나······.’
거대한 섬광과 수백 개의 버섯구름.
천 명이나 되는 헌터 결사대.
내 마법인형 군단으로도 막지 못했다.
뭐가 인류 최강의 헌터들이란 말인가.
최악의 재앙, 초거수 카르마탄!
그 앞에 우린 그저 바람 앞에 등불이었을 뿐이었다.
‘지구는 끝장났겠지?’
후회는 없었다.
20년이나 쉼 없이 싸웠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으니까.
어차피 동료도 사랑하는 사람들도 진작 다 죽었고.
‘근데, 왜 내가 여기 있는 거야?’
왠지 어색한 내 몸을 살폈다.
난 빳빳한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단추는 모두 은색에 검은 가죽 벨트를 하고, 검은 가죽 부츠를 신었고, 어깨엔 하나의 은색 줄이 그어진 견장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꽤 멋들어진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만든 헌터의 몸은 어디 가고, 깡마른 몸에 근육도 부실했다.
다만 오른손엔 굳은살이 여기저기 박여 있었다.
검을 썼었나?
분명한 건 이 몸은 원래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몸이었다.
‘설마, 환생? 아니 빙의인가······?’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진 평화로운 시절에 읽었던 웹소설이 떠올랐다.
아무렴 어때?
다시 살았는데!
헌터로서 인류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나 아쉬움보다 이렇게 다시 살아난 것이 기뻤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지 않는가.
난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솔직히 인류의 존망을 책임지고 싶지도 않았다.
차원 균열이 열리며 어쩌다 보니 헌터가 됐고, 살려고 발악하며 버티자 S급 끝자리에 올랐을 뿐이었다.
‘상태창!’
일단 상태창이 뜨자, 안도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생소한 이름.
다행히 클래스는 그대로고, 헌터 등급은······.
‘뭐? F급이라고?’
순간 당황했다.
헌터가 되고 20년간 괴수와 죽기 살기로 싸우며 올렸던 능력이 전부 초기화됐다.
게다가 내 마법인형들에게 흡수한 수백 개의 스킬도 전부 사라진 상태.
그 말은 지금 난 평범한 F등급 헌터 수준도 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휴우!”
하지만 괜찮다.
살아만 있다면, 등급이나 스킬은 얼마든지 올릴 수 있으니까.
내 헌터 클래스는 인형술사.
하지만 스킬은 흑마법사에 가까웠다.
그 때문에 헌터로 각성했어도 왕따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지…
[운명의 실타래(lv.1) : 살아있는 생명체에 술사와 연결된 운명의 실을 부착한다. (0/300)]사람의 몸에 가벼운 접촉만으로 가능했기에 이건 어렵지 않았다.
이 스킬로 연결된 사람을 인형처럼 조종할 수 있었다면 정말 최고의 클래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저 300미터 내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기사회생(lv.1) : 술사의 기력을 소모해 인형의 상처를 회복시킨다. (성공확률 – 25%)]살아 있는 사람은 내 인형이 아니었기에 운명의 실로 연결되어 있어도 기사회생 스킬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운명의 실이 연결된 상태로 사람이 죽으면 기사회생 스킬을 쓸 수 있었고, 스킬에 성공하면 내 마법인형이 된다.
이 스킬 때문에 헌터들이 날 네크로맨서나 중국의 강시술사로 오인했었다.
[인형의 집]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형의 집을 선택했다.
반투명한 창이 뜨면서 내 중심으로 작은 공간이 펼쳐졌다.
대궐 같은 인형 수납 아공간은 어디 가고 3평 남짓한 초라한 오두막 내부가 눈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하아!’
헌터 레벨과 등급이 올라가면 인형의 집도 자연스럽게 커지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나 내 마법인형은 하나도 없었다.
‘한 번 가본 길이니, 크게 걱정은 없지만······.’
수족 같았던 마법인형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가슴 아팠다.
허수아비나 꼭두각시 인형이야 전장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었지만, 자동인형이나 토우인형, 분신인형 등은 수년 이상 고생하며 키워온 것들이었다.
‘뭐, 이젠 상관없나?’
새로운 몸을 얻었으니, 새로운 마법인형을 만들면 되는 일이다.
과거보단 미래에 집중하자.
‘내 이름이 타일러 빈스······.’
상태창에 이름과 나이를 다시 확인했다.
23살.
무려 20년이나 젊어졌다.
개이득!
“윽!”
다시 머리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뒤늦게 자살하려던 이 몸뚱이 주인의 기억이 밀려왔다.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찌질한 자식, 여자 때문에 자살이라니······.
타일러 빈스.
테레니스 영지의 영주인 개리 해링턴 빈스 백작의 장자였다.
하지만 사생아.
사냥에 나갔다가 폭우를 피해 들른 마을의 처녀와 정을 토하고 나온 부정의 열매.
뒤늦게 아들로 인정받아 장자가 됐지만, 후계 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며 암살 위험을 피하고자 석 달 전 군대에 자원입대했다.
타일러가 죽을 이유는 많았다.
자신이 어렸을 적에 엄마는 병으로 죽었고, 백작부인과 배다른 동생들은 대 놓고 자신을 무시했으며, 가신이나 기사는 고사하고 병사들이나 시녀들조차 아무도 자신을 빈스 가문의 핏줄로 인정하지 않았다.
매일 검을 잡고 죽을 만큼 노력했지만, 재능이 없었기에 무예도 별로였고, 마나도 깨우치지 못해 기간트에 타지 못하니 전략적 가치도 없었다.
게다가 머리도 좋지 않아 글만 겨우 깨우쳤고, 세상 물정에도 매우 어두웠다.
처음에 타일러를 장자의 자리에 앉히고 유심히 지켜보던 개리 해링턴 영주 역시, 전장의 검은 사자라 불리는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자 방관했고, 이제 이 세상에 자신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타일러가 진짜 자살을 결심한 것은 한 장의 파혼 통지서였다.
공작가의 파티에서 단 한 번 봤을 뿐인데, 영혼까지 빼앗아 가버린 여자.
샤를린 위네즈.
그녀는 톰 위네즈 자작의 다섯째 딸로 타일러가 사생아임을 알면서도 빈스 가문과 사돈이 된다는 말에 청혼을 허락했고, 결혼 날짜까지 잡았다.
하지만 최근 타일러가 후계에서도 완전히 밀리고, 자진해서 입대까지 하자, 파혼을 요구했다.
‘병신!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여자가 반인데, 자살이라니······.’
게다가 암살이 두려워 도망친 곳이 군대.
전생에 만기제대하고 하루 만에 차원 균열이 발생했고, 괴수와 쉼 없이 20년을 싸웠다.
그런데 다시 군대라니!
타일러가 성격이 나쁜 사람이나 망나니는 아니었지만, 소심하고 찐따 같은 녀석이었기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제 내가 타일러고, 타일러가 곧 나인 것을······.
타일러의 기억을 온전히 내 것으로 인정했다.
저벅! 저벅!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서류 하나 찾아오라고 했더니, 뭘 이렇게 꾸물거려?”
견장에 2개의 은색 줄.
날카로운 인상에 작은 눈.
그는 내 상관인 더블란 중위였다.
“어?”
더블란이 나를 보곤 멈칫했다.
그가 내 옆에 놓인 올가미 밧줄과 부서진 사다리를 번갈아 보더니 인상을 확 찡그렸다.
“야! 너 이 새끼, 지금 누구 인생 망치려고 작정했어? 여기서 네가 죽으면, 씨발! 사수인 내가 좆 되는 거야! 우리 대장도 망하는 거고. 아! 혈압 올라!”
더블란은 정말 혈압이 올랐는지 자기 목덜미를 잡았다.
난 잔뜩 흥분한 사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 제가 누굽니까?”
“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뭐라고?”
내 말에 더블란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난 기억상실증을 연기하기로 했다.
솔직히 나도 내 과거가 쪽팔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