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doll is Gigant RAW novel - Chapter (114)
114. 사직서.
이곳은 추억의 장소 앞이었다.
황성 1층 계단 뒤쪽에 있는 긴 복도 안에 밀실 같은 회의실.
난 지금 그 앞 복도에 서 있었다.
여기서 내가 아리칸 공국의 병사들과 싸웠다.
그 야차 같이 달려드는 놈들을 수십 명이나 죽였고, 황제와 황태자를 구했다.
그런데 이제 아리칸 공국, 아니 아리칸 왕국과 같은 편이란다.
그것도 동맹국.
‘하아! 무슨 회의가 나흘 내내 열리는지······.’
오늘도 3시간 전에 황제와 황태자, 3황자, 조지 마샬 원수와 추밀원장, 내무대신, 외무대신, 법무대신, 재무대신, 할데가르 기간트 공방장, 근위 기사단장, 서부군 사령관, 1군단장, 정보국장까지 높으신 분들이 왕창 들어갔다.
그런데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황제가 허락하면 될 것 같았는데, 오리지널 기간트라는 게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결론이 어찌 날지는 모르지만, 난 이미 8개의 거신 갑옷을 챙겼다. 그것도 룩급과 비숍급만으로.
그러니 어떻게든 빨리 결론을 내려줬으면 좋겠다.
“기다린다고 지루하겠군.”
아는 얼굴이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티아스 준장님.”
“반갑네. 타일러 준장.”
그는 과거 건국기념일 퍼레이드 날, 아리칸 왕국의 비공정과 기간트가 황궁을 공격했을 때, 함께 황제를 지킨 기사였다.
룩급 기간트 비올란테에 탔고, 마르틴 대공의 퀸급 기간트와 대결했다가 처참하게 깨졌지.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오늘은 에리히 레더 1군단장님을 모시고 왔네. 내가 부군단장이거든.”
“아! 부군단장이 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그대나 나나 그냥 밖에서 기다리는 신세인데.”
티아스 준장은 전과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별을 달더니 좀 진중해졌다고 할까?
그때 마르틴 대공에게 져서 맨탈이 탈탈 털릴 때 하곤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우리 1군단은 곧 아리칸 왕국으로 갈 것 같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아리칸 왕국이 탈로스 글론 연합군에 밀린다고요. 그런데 1군단이 가는군요.”
“2군단은 이곳을 지켜야 하고 5군단은 대수림에 있고, 나머진 동부 전선에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 1군단이 제일 강하지 않은가.”
강한 건 모르겠지만, 기간트가 제일 많긴 하지.
그래도 아베르크 제국의 지도자들이 바보는 아니었기에 1군단을 아리칸 왕국으로 보내기로 한 것 같았다.
만약 아리칸 왕국이 무너지면, 그땐 정말 양쪽으로 협공받을 수 있으니까.
그럼 난 가디언 제국의 움직임만 신경 쓰면 되겠네.
알아서 잘하겠지.
그런데 황제를 죽이려 했고, 제국의 황궁을 공격했던 아리칸 왕국을 이제 우리가 돕기 위해 간다는게 참······.
“가디언 제국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마장기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네. 그쪽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이지.”
고개를 끄덕였다.
연합국보다 가디언 제국이 문제긴 하지, 안드레아스도 있고.
“이제 전장으로 가면 언제 볼지 모르겠군.”
“나중에 제 영지로 놀러 오십시오.”
“응? 영지라고?”
피식 웃어줬다.
철컹!
그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
티아스 준장이 내게 말했다.
“나중에 술 한잔하지.”
“네. 몸조심하십시오.”
티아스 준장과 나는 맨 앞에서 나오는 황제를 향해 경례했다.
케인 오르도 황제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니 그래도 일은 잘된 것 같았다.
나흘 전 찰스 국장과 함께 알현하고, 이제야 회의가 다 끝난 것 같았다.
황제와 황태자가 지나고, 호엘 삼황자가 나를 쳐다봤다.
뭔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추밀원장도 나를 살짝 쳐다보곤, 고개를 흔들었다.
반응을 보니, 윌리엄 사령관의 뜻이 어느 정도 관철된 듯싶었다.
“타일러 준장! 안으로 들어오게.”
찰스 정보국장이 내게 손짓했다.
그곳엔 군청색 제복을 입은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의 어깨엔 별 다섯이 반짝이고.
“충! 타일러 빈스 준장입니다.”
“응? 생각보다 더 어리군.”
“나이는 어리지만, 머리가 비상한 참모입니다. 이번엔 원정군을 구하기도 했고요.”
나 대신 찰스 정보국장이 내 소개를 했다.
“됐네. 손 내리게.”
조지 원수는 서류를 넘기며 물었다.
“자네가 발굴지에서 발견한 거신 갑옷을 갖고 있다며?”
“그렇습니다.”
“어디에 보관했나? 헬다임? 할데가르?”
아무래도 윌리엄 사령관은 내가 아공간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은 서신에 적지 않았나 보다.
그러니 대답을 잘해야 했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래?”
조지 원수가 날 빤히 쳐다봤다.
“조금 전에 황제 폐하께서 이제부터 전시 상황이라며 모든 군 지휘권을 내게 넘겨주셨네. 그래도 말 안 할 텐가?”
“죄송합니다. 윌리엄 사령관님께서 할데가르 공방으로 전달할 때까지 비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뭐라?”
조지 마샬 원수가 날 노려봤다.
“상당히 건방지군. 내가 방금 군 통수권자라고 말했거늘 윌리엄 북부군 사령관의 이름을 들먹여?”
“죄송합니다.”
“어허! 이 자가 그래도!”
조지 마샬 원수가 인상을 찡그렸다.
옆에 있던 찰스 국장은 얼굴이 빨개지고 당황한 모습이었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는 내 상관이라 불안한가 보다.
“하아! 뭐, 그렇다고 원정군을 구한 영웅을 처벌할 순 없는 노릇이고.”
조지 마샬은 고개를 흔들더니, 다시 서류를 쳐다봤다.
“일단 자네가 보관하고 있는 32개의 거신 갑옷과 장비는 모두 할데가르 공방에 넘기도록 하게.”
“오리지널 기간트 배정은 어찌 되는 겁니까?”
“뭐? 내가 그걸 자네에게 알려줘야 하나?”
“전 원정군이 무사히 비행석을 채취할 수 있게 다른 차원까지 길 안내를 했고, 또 가디언 제국의 책략에 걸려 괴수들에게 전멸할 수 있는 원정군을 절반이나 살려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대수림을 통과해 비밀리에 거신 장비까지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니 그 정도는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상대로 조지 마샬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난 마지막으로 할 말은 하고 싶었다.
이미 의무복무기간도 지났고, 군대는 떠날 생각이니까.
가디언 제국과 싸움이야 영지군 자격으로 참전하면 되고.
“북부군에 12대가 배정될 거고, 5군단에도 12대가 배정될 거네. 나머진 기밀이라 알려줄 수 없네.”
“그 정도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가져온 32개 중에서 24개를 북부군과 5군단이 나눠 가지게 되었다. 나머지 8개는 알아서 쓰겠지.
그래도 그 정도면 꽤 많이 얻어낸 것 같았다.
아무래도 비행석을 가져온 공이 있으니까.
그리고 윌리엄 사령관에게 말해 내 몫인 거신 갑옷을 미리 챙기길 잘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40개를 전부 건네고, 오리지널 기간트로 받으려 했다면 한 개도 못 챙길 뻔했다.
눈앞에 조지 마샬이란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지만, 전형적인 꼰대 군인 같았다.
‘나랑 안 맞아.’
“자! 시간이 없네. 이 서류를 가지고 어서 할데가르 공방에 물건을 넘기게.”
난 서류를 받아들었다.
“충! 가보겠습니다.”
경례하고 문을 나섰다.
찰스 정보국장이 날 따라왔다.
“타일러 준장,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뭘 말입니까?”
“조지 원수 말이네. 지금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야. 아리칸 왕국이 계속 밀리고 있거든. 그리고 오늘 급하게 총사령관 자리를 맡았으니 정신이 없을 거네.”
“어차피 상관없습니다. 할데가르에 거신 갑옷과 장비를 넘기면 제 임무는 끝납니다. 그러니 그때 정보국 본부로 가서 옷을 벗겠습니다.”
“뭐, 뭐라?”
찰스 국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그만두겠다는 건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전 이제 한 영지의 영주입니다. 영주가 계속 밖으로만 다닐 순 없지요.”
“그러지 말게. 이번 일의 공으로 자넨 이미 소장으로 진급했네. 그리고 우리 정보국에서 이번에 비공정 관련한 정보대를 새로 만들고 있네. 자네가 바로 그 부서의 부국장으로 발령될 거네. 그러니······.”
“죄송합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먹은 일이라.”
거절의 뜻을 확실히 전했다.
“그럼 대수림 정보대는 어쩌고?”
“앞으로 1년간은 알베르토 중위를 통해서 대수림의 정보를 계속 제공하겠습니다. 그다음부턴 적절한 비용을 청구하겠습니다.”
“정말 그만둘 생각이군.”
“솔직히 마지막에 조지 마샬 원수께서 조금 있는 미련까지 날려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허!”
찰스 국장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시간 나시면 제 영지로 놀러 오십시오.”
찰스 국장에게 경례하고 황성을 나섰다.
난 곧바로 할데가르로 이동했다.
***
늦은 밤.
할데가르 공방 옆 기차역에 거신 갑옷을 차례로 내려놨다.
그리고 공방으로 가서 조지 마샬 원수가 넘겨준 서류를 건넸고, 거신 갑옷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
작업용 기간트들이 거신 갑옷을 모두 공방으로 옮기는 것까지 확인하고, 손을 털었다.
그리고 정보국 본부로 가서 사직서와 제복을 국장실 앞에 두고 왔다.
‘시원섭섭하네!’
자리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진급하면 할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뭔가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그동안 정보국 소속으로 대수림에서 활약하며, 레벨도 올리고, 마석과 괴수 부산물도 많이 얻었다.
그리고 기간트와 마법인형도 많이 늘었고.
하지만 더는 누군가의 명령으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일 순 없었다.
명색이 내가 인형술사가 아닌가.
조종하는 거면 모를까 조종당하는 것은 별로였다. 그리고 군대는 구조적으로 명령을 받는 곳이었고.
마지막으로 가디언 제국과 전쟁이 벌어지면, 그때 한번은 발레리온 영지군으로 출전할 생각이었다.
안드레아스에게 당한 복수도 하고, 아베르크 제국의 비공정 성능도 가까이서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 전에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난 곧바로 괴조인형을 타고, 헬다임에 있는 내 집으로 향했다.
***
드워프 왕자 글러드가 손을 흔들었다.
“타일러여!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네!”
“미안하군. 원정대 일정이 너무 오래 걸렸어.”
케네스 영감이 다가왔다.
“얼굴 까먹겠어!”
“잘 지내셨습니까?”
“잘은 지냈는데, 앨리슨, 고것이 편지를 안 쓰네. 고얀 것.”
“앨리슨은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가끔 사고도 치고, 선생님을 놀리긴 해도, 공부도 전체 수석이고, 내년엔 황립 사관학교에 입학까지 확정된 상태였다.
“그보다 이제 이삿짐을 싸십시오.”
“응? 이제 진짜 이사 가는 건가?”
케네스 영감이 되물었다.
“짐을 벌써 몇 번이나 쌌다가 풀었는지 몰라.”
“하하! 죄송합니다. 이번엔 진짜 갑니다.”
난 먼저 완성된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부터 챙겼고, 수리된 기간트와 부산물, 마석, 작업 장비까지 전부 다 인형의 집에 넣었다.
그리고 헬다임에 열차를 타러 이동했다.
그런데 헬다임 역에 아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장벽을 넘어오셨네요.”
그는 윌리엄 사령관과 엠버 대령이었다.
“타일러 준장, 이곳은 보는 눈이 많으니, 저쪽으로 이동하지.”
우린 한쪽으로 이동했다.
“그게 정말인가? 이틀 전에 소식을 들었네. 정보국을 그만뒀다면서.”
“그렇습니다. 임무는 잘 마무리했으니, 걱정하진 마십시오.”
“그거야 이미 알고 있네. 그런데 너무 갑작스럽지 않은가.”
“제가 그만둔다고 한 10번은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그거야 힘드니까 그냥 불평하는 말인 줄 알았지. 아무튼, 다시 생각하게. 지금 우리 제국은 자네가 필요하네.”
그동안 할 만큼 했는데 더 봉사하라는 건가?
나는 피식 웃어줬다.
“제가 어디 아베르크 제국을 떠난 답니까? 제 영지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가디언 제국이 침공하면, 동원령이 발동되지 않겠습니까. 그때 제 병력을 이끌고 참전하겠습니다. 그놈들에겐 갚아야 할 빚이 있으니까요.”
“그거야 그렇지만, 군에 계속 남아 있는 것과 영지군으로 참전하는 것은 천지 차이네.”
“그래도 제 몫은 충분히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아! 자네가 군을 떠난다니, 조금 허무하군.”
“사령관께서도 은퇴하시면, 제 영지로 오십시오. 여기 헬다임에서도 가깝고, 노후 생활하기 좋은 곳입니다. 제가 잘해드리죠.”
“휴!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군.”
윌리엄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내 마음을 돌리기엔 늦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럼 이번에 사직서를 낸 기사들이라도 좀 말려주면 안 되겠는가?”
“네? 그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