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doll is Gigant RAW novel - Chapter (4)
4. 파견.
[정보국 헬다임 지부]장벽 도시 중앙에 있는 7층 건물.
이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기에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충! 타일러 빈스 소위······.”
“됐어!”
눈앞에 중령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내 상관이 될 사람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진 않았다.
책상 위엔 바닥을 비운 술병과 잔이 있었고, 재떨이엔 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얼마나 골초인지 그는 지금도 입에 담배를 물면서 내 전출명령서를 보고 있었다.
“본부에 있었네. 여긴 무슨 사고를 치고 왔어?”
“잘 모르겠습니다.”
“몰라?”
그가 충혈된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며칠 전 사고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저 자신이 누구인지, 과거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하아!”
중령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그렇지. 여기가 무슨 폐품 창고인 줄 아나, 인원을 보충해달라고 했더니 죄다 쓰레기만 보내고.”
듣는 쓰레기는 기분이 나쁘지만 어쩌겠는가.
계급이 깡패다.
중령은 자신의 양쪽 관자놀이를 두 엄지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난 프레디 중령이다. 여기 헬다임 지부 부지부장이고. 집무실 하나 내줄 테니까, 넌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짱박혀 있어.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래 살려면 정보국 장교라고 설치지 마. 여긴 심심하면 칼을 뽑아 드는 미친놈들 천지니까.”
“네.”
“집무실은 부관이 오면 안내해줄 테니까. 소파에 잠깐 앉아 있어.”
난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고개를 처박고 서류를 보는 프레디 중령은 30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가운데 머리가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제복을 입지 않았다면 노숙자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그래도 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네.’
역시 기억상실증은 이곳에서도 유용했다.
이곳 지부에서 처리하는 일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았다.
그걸 내게 몰아줬다면, 꼼짝없이 일에 파묻힐 뻔했다.
이제 이곳에서 조용히 인형술사 스킬 레벨이나 올려야겠다.
다다닥! 덜컹!
“헉헉! 중령님!”
대위 계급장을 단 장교가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왔다.
“뭔데 호들갑이야?”
“아직 소식 못 들으셨죠? 신임 사령관 말입니다.”
“나도 조금 전에 들었어. 윌리암 호세스 중장이 부임했다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할데가르 역에서 출발 두 시간 만에 사령관 암살 시도가 있었답니다.”
“뭐? 암살 시도? 사령관은 괜찮나?”
“다행히 무사하답니다.”
“젠장! 그 소식이 왜 이제야 들어온 거야?”
“이곳 도착 전까지 사령관실에서도 몰랐답니다.”
프레디 중령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암살자는?”
“모두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대체 어떤 미친놈들이야?”
“아직 정체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쫓겨난 전임 사령관이 아닐까요?”
“그렇게 단순하겠냐? 신임 사령관이 죽으면 당연히 가장 먼저 의심받을 텐데, 그리고 삼황자께서 과격하시긴 하지만 그렇게 멍청하신 분은 아니야.”
“그럼 설마, 그 장물아비 새끼들이?”
“쓸데없는 소리!”
프레디 중령이 뒤늦게 앉아 있는 나를 발견했다.
“소위, 자넨 밖에 나가서 기다리게.”
“네!”
일어서 나가려는데, 하사관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부지사장님, 사령관실에서 협조 공문이 왔습니다.”
“뭐?”
프레디 중령이 공문을 받아서 읽었다.
난 얌전히 나가 살짝 열린 문틈으로 귀를 기울였다.
대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협조 공문이라니 뭡니까?”
“사령관실에서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하다니 특이한 일이군.”
“우리 정보국 사람을 말입니까?”
“그래, 타일러 빈스 소위를 보내라고 지명까지 했는데, 우리 쪽엔 그런 사람이 없지 않은가?”
“타일러 빈스요? 저도 처음 들어 봅니다.”
대위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나 여기 있는데!
내가 사령관을 구하는데 크게 한몫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날 부를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기로 했다.
그런데 왜 사령관실에서 나를 보내 달라는 거지?
그냥 진급을 시켜주는 게 아닌가?
“어? 잠깐, 타일러 소위라고?”
그때 프레디 중령이 자기 책상 위에서 내 전출명령서를 발견했다.
그리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
“그러니까 자네가 신임 사령관님을 구했다는 거야?”
“직접 구한 것은 아니고, 암살자들의 존재를 알렸을 뿐입니다.”
난 할데가르 역에서부터 사건이 일어난 상황을 상세히 말했다. 물론 윌리엄 사령관에게 했던 설명과 동일했다.
그러자 프레디 중령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진짜 바보는 아닌가 보군.”
옆에 있던 대위 역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 헬다임 장벽 사령관을 구하다니! 엄청난 일을 한 것이 아닙니까.”
대위가 날 부러운 눈빛으로 보았다.
“자네, 곧 진급하겠군. 난 파블로 대위네. 나중에 나보다 계급이 높아지면 잘 좀 부탁하네.”
“실없는 소리 그만하게.”
프레디 중령은 공문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위가 물었다.
”근데 왜 타일러 소위를 파견해 달라는 거죠?”
“글쎄. 옆에 끼고 상을 줄 모양이지.”
프레디 중령이 날 쳐다봤다.
“일단 사령관실의 협조라 우리도 거부하긴 힘드네.”
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칙칙한 이곳 골방에서 짱박혀 있는 것보다야 사령관실이 나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그곳엔 이미 내 마법인형도 하나 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자넨 우리 정보국 사람이야. 그걸 잊지 말고, 수시로 보고하게.”
“네!”
***
마차를 타고 가는 길.
창문 커튼을 젖히자, 저 멀리 헬다임 장벽이 보였다.
산맥을 연상시키는 까마득한 높이.
그리고 그 길이가 수만 킬로미터에 달하고, 2개의 제국과 5개의 왕국에 걸쳐져 있다고 들었다.
‘만리장성은 댈 것도 아니네.’
당연하다.
만리장성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헬다임 장벽은 거신들이 만든 것이니까.
대수림, 그 끝이 어딘지 아무도 모르는 녹음의 바다.
그곳엔 거대 괴수들이 산다.
고대에 이 땅에 살았던 거신들은 대수림의 괴수들과 끊임없이 싸워왔다.
하지만 수적인 열세와 끝도 없이 확장하는 대수림 때문에 밀리고 밀리다가 결단을 내렸다.
대수림을 벽으로 막자!
그래서 쌓은 것이 헬다임 장벽이었다.
고대 거신들은 키가 5미터에서 12미터 사이로 매우 거대했고, 마법에 능통했으며, 손기술이 매우 뛰어났다.
그랬기에 괴수가 넘을 수 없는 수백 미터의 마법 장벽을 쌓을 수 있었고, 드디어 대수림의 확장을 막았다.
장벽이 세워지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이제 거신은 이 땅에 남아 있지 않았다.
대수림의 거대 괴수를 잡아먹어 체격을 유지했던 거신들은 괴수가 사라지자 극심한 배고픔을 느껴야 했고, 극단적으로 식사량을 줄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거신이 죽었고, 살아남은 거신들도 괴수와 싸우기 위해 몸집이 클 필요가 없었기에 점점 체격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자 지금의 인간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많은 학자가 인간으로 진화가 아니라 퇴화라고 말했다.
체격이 줄어들고 뇌가 작아지자, 마법 수준과 지식수준도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타일러가 배운 역사책의 첫 장에 나와 있는 내용이었기에 이 시대 사람들은 진짜라고 믿고 있었다.
[헬다임 사령부]“도착했습니다. 손님.”
마부에게 은화 하나를 건네곤 사령부 요새 입구로 향했다.
여자 하사관이 다가와 경례했다.
“2등 하사관 글래디스입니다.”
“타일러 빈스 소위네.”
“사령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앞서 성큼성큼 걷는 글래디스 하사는 갈색 단발머리에 베레모를 옆으로 눌러 썼고, 나보다 큰 키에 어깨가 떡 벌어진 모습이 여전사 같았다.
‘분위기가 차가운 것이 꼭 엠버 중령 같군.’
윌리엄 사령관의 호위인 엠버 중령과 어딘가 닮아 보였다.
똑똑똑!
사령관실로 들어갔다.
“충! 타일러 빈스 소······.”
“오! 타일러! 이리와 앉게.”
윌리엄 호세스 사령관이 활짝 웃으며 손짓했다.
자리에 앉자, 살짝 불안했다.
엠버 중령이 사령관 뒤에서 날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저러지?’
분명 기차에서는 날 대하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는데······.
“그래, 타일러 소위 짐은 풀었나?”
“아직 숙소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요새에 방을 하나 내주지.”
“아닙니다!”
“응?”
밤마다 날 얼마나 괴롭히려고!
그리고 퇴근 후라도 상관들이 없는 곳에서 편하게 지내고 싶었다.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선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시내 중심지에 구할 생각입니다.”
“역시, 정보국 장교다운 발상이군.”
윌리엄 사령관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왜 자넬 부른지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자네에게 한가지 임무를 맡기려고 하네.”
“······?”
“내 암살미수 사건의 조사를 맡아주게.”
“네?”
윌리엄 사령관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고민됐다.
내가 정보국 소속이긴 하지만, 일단 헬다임 사령부에 파견됐으니 명령을 거부할 순 없었다.
“물론 정식 수사는 팀을 만들어 따로 할 거네. 자네는 비밀리에 움직이는 거지. 열차에서도 말했지만, 내가 이곳 사령관으로 부임하는 것은 기밀이었네. 그리고 그 기차에 타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내 측근들과 이곳 사령부의 고위직 몇 명뿐이었지. 그런데 암살자들이 미리 열차에 타고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야. 이게 무슨 뜻이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금 사령관실 내부 인사나 측근들을 의심하고 있었다.
정보가 안에서 샜다는 의미니까.
“그런데 왜 접니까?”
순수한 호기심으로 물었다.
“자넨 정보국 소속이고 오늘 나와 이곳에 도착했으니, 헬다임 장벽과 아무런 접점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중립을 잘 지킬 것이라 믿네. 그리고 열차에서 보여줬던 자네 통찰력이면 범인을 반드시 찾을 것이라 믿고 있어.”
윌리엄 사령관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잘 처리한다면, 큰 보상을 약속하지.”
사령관이 나를 좋게 봐준 것은 좋지만, 부담감이 밀려왔다.
암살자들의 정체를 파악하거나 암살을 사주한 사람을 찾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고,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기회이기도 했다.
장벽 사령관의 비호가 있다면 이곳에서 남은 군대 생활을 아주 편하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거부할 위치도 아니었고.
“제 수사 권한은 어디까지입니까?”
내 물음에 윌리엄이 뒤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엠버 중령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넸다.
“특별 통행증이네. 그거 하나면 헬다임에서 자네가 가지 못할 곳은 없을 거야. 방문 기록도 남지 않고. 그리고 장벽 수비군 2개 중대를 언제든 데려다 쓸 수 있게 준비해 주지.”
단순히 종이 한 장이었지만, 사령관 직인이 찍혀 있었기에 권한은 상당했다.
“어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권한은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한가지 부족한 게 있었다.
“저기 활동비는 없습니까?”
“활동비?”
“마침 금화가 다 떨어져서요.”
“아!”
윌리엄이 부관인 엠버 중령을 쳐다봤다.
“뭐 하나? 금화를 내주게.”
엠버 중령이 서랍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얼마나 줄까요?”
“그냥 다 줘.”
“네? 100골드를 전부 말입니까?”
사령관이 살짝 노려보자, 엠버 중령이 주머니를 통째로 넘겼다.
“뭘 이렇게 많이······. 감사합니다.”
난 사양하지 않고 넙죽 받았다.
어느 세계든 주머니가 두둑해야 마음이 든든한 법이었다.
신임장교 한 달 급료가 5골드였으니, 상당한 금액이었다.
엠버 중령이 말했다.
“밖에 있는 글래디스 하사관이 자네를 따라다니며 보필할 거네. 내가 직접 발탁한 유능한 친구니까 도움이 될 거야.”
“네.”
보필은 무슨, 감시겠지.
사령관과 다시 한참을 이야기하고,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충!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그래 기대하지.”
***
사령관실을 나오자 글래디스 하사가 다가왔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자네, 싸움은 좀 하나?”
“엠버 중령님 정도는 아니지만, 웬만한 장정 대여섯 명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든든하군.
지금 내 호위로 쓰긴 적당해 보였다.
“소위님, 어디부터 조사할까요?”
글래디스는 상당히 의욕이 넘쳐 보였다.
“숙소부터 구해야지. 며칠 못 씻었더니 죽겠군.”
뜨끈한 탕 속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아! 암살자들의 시체는 여기에 있나?”
“지하창고에 있습니다.”
“거기부터 들르지.”
난 글래디스 하사관과 요새 지하로 향했다.
삼엄한 경비의 지하창고.
이곳은 기간트 재료인 괴수 부산물들을 보관한 냉동 창고였다.
입구 근처에 4구의 암살자 시체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혼자 살펴볼 테니까. 자넨 밖에서 기다리게.”
“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시체 하나의 손을 잡았다.
[허수아비(lv.1) 마법인형에 운명의 실을 연결합니다.]다행히 늦지 않았다.
사령관 암살 사건이 있었던 날.
나와 운명의 실이 연결된 암살자들은 모두 엠버 중령에게 죽었다.
그때 난 네 명의 암살자에게 기사회생 스킬을 사용했다.
셋은 실패했지만, 열차 바닥을 기어서 이동했던 암살자를 내 마법인형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오전에 열차에서 내리며 거리가 멀어지고, 마법인형과 운명의 실이 끊어졌다.
운명의 실이 끊어지고 다시 연결할 수 있는 기간은 하루였기에 오늘이 지났다면, 내 허수아비 마법인형은 사라졌을 것이다.
‘일단 꼭두각시 마법인형으로 업그레이드시키자.’
내 첫 번째 꼭두각시론 암살자가 제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