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13_3
테오도르의 손끝이 움찔움찔 떨리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에스코트……를 하고 싶은가 보네.’
그러나 테오도르는 내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더니, 손끝을 꾸욱 말아 쥐며 등 뒤로 숨겼다.
“그럼 회의장에서 봐, 이브.”
그는 빠르게 내게서 돌아섰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나도 걸음을 돌려 회의장으로 향했다.
* * *
황궁 본성을 향해 걷던 테오도르는, 제가 이브의 시야 밖으로 벗어난 걸 깨닫고 우뚝 멈추어 섰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왼 가슴 위로 손을 얹었다.
심장이 아프게 뛰고 있었다.
이브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제 입으로 언급해야만 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너무 괴로웠다.
‘어쩌면 나는 평생 무뎌지지 못할 거야.’
죽는 날까지 이 격통에 몸부림치는 것이 그녀가 제게 주는 벌이라면, 달게 받아야 옳았으나…….
‘왜 날이 갈수록 더 아프지…….’
고통은 무뎌지는 대신, 시간이 흐를수록 보다 날카롭게 날을 세워 그를 찔러 댔다.
테오도르는 입술을 짓씹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방으로 올라간 그는 깔끔하게 의복을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회의장으로 나아갔다.
제국 내의 주요 귀족가에 모두 소집 명령을 내린 터였다.
이미 모두들 도착하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들도 알다시피, 페르디난트의 일로 간신히 맞추었던 3대 가문의 균형이 다시 흔들리게 되었다.”
상석의 황금 의자에 앉은 테오도르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나는 새로이 힘의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그의 선언에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폐하, 페르디난트의 이름을 역사서에서 지우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혹 다시 페르디난트를 중용하시려는 건…….”
“페르디난트가 아니다.”
걱정스럽게 묻는 귀족들의 말을, 테오도르가 단호한 목소리로 끊어 냈다.
“그간 잊혀졌던 브리힘 신의 네 번째 가호가 있지 않나.”
“……!”
순간 사람들의 얼굴 위로 일제히 ‘설마’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테네브리스의, 어둠 말이다.”
“폐, 폐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나이든 귀족 하나가 땀을 뻘뻘 흘리며 물었다.
테오도르는 여상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대답했다.
“테네브리스의 가호를 가진 이들이 여전히 제국에 존재한다.”
“그, 그러니까, 설마…… 설마 지금 흑마법을 말씀하신…….”
“흑마법?”
테오도르가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그러자 조금 전 소심하게 입을 열었던 나이 든 귀족이 ‘히익’ 하고 괴상한 숨 소리를 내었다.
“본래 테네브리스의 가호는 ‘흑마법’이 아닌 ‘어둠’이라는 이름을 지녔지.”
테오도르는 그를 힐긋 쳐다보더니,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마땅히 관리해야 할 가호의 힘을 악으로 규정하여 배척한 탓에 벤야민 페르디난트 같은 자들이 흑마법을 악용한 것이 아닌가.”
잠시간 말을 멈춘 그가, 조금 더 묵직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선언했다.
“하여, 나는 이날 이후로 브리힘 신의 네 번째 가호인 어둠을 공인할 것이다.”
“……!”
“……!”
순식간에 회의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갔다.
짙은 공포와 거부감이 사람들의 얼굴에 떠올랐다.
이보네는 말없이 입술을 꾸욱 깨문 채로 사람들을 응시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알브레히트에서 나고 자란 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어둠에 대한 공포를 학습하게 되니까.
어렸을 때의 그녀 또한 검은 머리를 지녔다는 테오도르 1황자의 소문을 접하고 두려워하였었다.
그를 실제로 만나 본 뒤에, 생각을 바꾸긴 했으나…….
테오도르가 황제가 된 지 10여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으스스한 수식어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물론 테오도르의 몹쓸 인성도 한몫하였으나, 그보다도 그가 지닌 검은 머리카락 탓이 컸다.
검은색은, ‘어둠’의 색이었으니까.
현세에 악이라 불리는 테네브리스의 색이었으니까.
가뜩이나 테오도르는 검은색을 타고났었고, 수년 전에는 테네브리스의 성물을 모은다며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공식 석상에서 테네브리스의 어둠을 공인하겠다고 하였으니, 모두가 두려워할 만했다.
그러나 이보네가 아프도록 입술을 꾸욱 깨문 것은 다른 이들처럼 어둠이 두려운 탓이 아니었다.
‘설마, 리아 때문인가?’
테오도르가 처음 이 자리에서 어둠을 언급했을 때, 머릿속에 퍼뜩 스친 생각 때문이었다.
오딜리아는 흑마법을 무의식중에 몇 번이나 사용했다고 들었다.
아직 어려 가호를 다루기 힘든 데다가, 그것을 운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이도 없었다.
이보네 또한 서쪽 대륙 암암리에 존재하는 마도사를 찾아 리아의 교육을 부탁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던 중이었다.
사실 이마저도 제국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비난을 받을 일이라,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마침, 테오도르가 시의적절하게 어둠을 공인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로 인해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도 없을 텐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에게 지워진 악명만을 더할 일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이보네가 이런저런 생각들로 심란해하고 있을 적에, 테오도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둠을 발현한 이들에게 ‘어둠술사’라는 이름을 내리고, 테네브리스의 가호를 관장할 새 가문을 세워 다시금 3대 가문이 균형을 맞추게 할 것이다.”
“하, 하지만…….”
이때 젊은 귀족 하나가 용기 있게 나섰다.
“3대 가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라는 폐하의 말씀은 무척 좋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런데?”
테오도르가 몹시 상냥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러나 그 온화한 태도에 말을 꺼낸 젊은 귀족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흐, 흐어억!”
“…….”
최근 테오도르는 착해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다들 이런 반응이었다.
조금 짜증이 나서, 눈썹이 꿈틀꿈틀 치솟으려 했다.
‘안 돼. 이브가 보고 있어. 짜증 내지 말고, 착하게 굴어야 해.’
그렇지만 테오도르는 짜증을 잘 참아 냈다.
얼핏 언짢은 기색이 스친 듯하였으나 황제가 잠자코 말을 들어 주겠다는 태도를 보이자, 용기 있는 귀족들이 한 마디씩 얹기 시작했다.
“그…… 그간 알브레히트를 받쳤던 3대 가문의 지위는 그저 단순히 가호의 힘만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폐하. 제국을 받치고 귀족들을 이끄는 3대 가문의 가주가 되려면 그만큼의 역량과, 모두가 인정할 만큼의 수준이 되어야…….”
“자칫 잘못하였다간 또다시 페르디난트의 폐단을 잇는 꼴이…….”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러자 테오도르가 비싯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물었다.
“내가 그에 마땅한 이를 찾아온다면, 그럼 그때는 다들 내 말에 따라 그자를 인정할 것인가?”
“네, 네……?”
“네, 넵……!”
“그, 그렇습니다!”
마땅히 부정할 명분이 없는 질문이었기에, 귀족들은 설마 그런 이가 있겠는가 싶어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다면 새 가문을 세우는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루지. 다만 이 자리에서 제국의 첫 번째 어둠술사를 공증할 것이다.”
테오도르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나른하게 젖혔다.
“……?”
“……?”
“……?”
아직 어둠술사를 공인하기로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황제의 공표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였다.
테오도르가 문득 오른손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느릿하게 손끝을 움직였다.
그 난데없는 손짓에 모두가 의아해할 찰나.
우아하게 허공을 가르며 움직이던 손끝에서 검은 기운이 슬금슬금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 이건……!”
“설마, 어, 어둠……?”
테오도르의 손끝에서 피어난 어둠이 회의장을 덮쳤다.
찰랑, 물소리와 함께 닫힌 창문 바깥으로 물이 차올랐다.
사람들은 놀라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황금빛 비늘을 지닌 물고기 한 마리가 창밖으로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폐, 폐하께서 하신 겁니까?”
“서, 설마, 이곳은 화, 황궁 호수……!”
오래전, 막 황제가 된 테오도르가 제국 내의 황금색 비늘을 지닌 물고기를 모두 포획하여 황궁 호수에 방생한 것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였다.
“그래.”
테오도르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황궁 호수의 밑바닥이다.”
테네브리스의 몸에서 깨어났다가 돌아온 이후, 어둠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테네브리스의 진짜 조각은 바로 자신이니, 이 가호는 본디 그의 힘이기도 했다.
본래의 시간대로 돌아온 뒤에도 힘은 사라지지 않고, 점점 더 그의 육신에 체화되었다.
테네브리스의 어둠은 페르디난트의 술법과 본질적으로 같으면서도 조금 달랐다.
초자연적인 것들을 다루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보다 고차원적으로 사람의 정신에 접근한다든지.
혹은, 시간의 흐름에 관여한다든지.
벤야민 같은 경우는 본래 어둠을 다스릴 수 없었기에, 다른 이들을 제물로 바쳐야 했다.
그러나 테오도르나 오딜리아처럼 처음부터 어둠을 타고 난 이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세상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힘을 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쯤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는지, 테오도르가 다시금 어둠을 거두었다.
그러자 창밖으로 보이는 물살이 사라지며, 회의장은 다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왔다.
나이 든 심약한 귀족 하나는 그만 졸도해 버리고 말았다.
스스로 제국의 첫 번째 어둠술사가 된 테오도르를 향해 두려움과 꺼리는 마음이 뒤섞인 시선이 이어졌다.
결코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불건한 시선이었다.
* * *
에르빈과 오딜리아를 태운 마차가 2황자궁 앞에서 멈추었다.
아이들은 브리안이 먼저 내리기도 전에 마차 아래로 폴짝 뛰어내렸다.
“삼쫀 집 엄청 죠아!”
“우리 집보다 죠아!”
“엄청 커!”
“사람도 많아!”
마침 마차가 정문을 통과했다는 소식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에른스트가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들을 맞이했다.
“어서 와, 에르, 리아.”
“에룬쑤뜨 삼쫀이다!”
“삼쪼온!”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에른스트에게 쪼르르 달려가 안겼다.
처음 에른스트를 견제하였던 에르빈도 이제는 그의 품에 덥석덥석 안기곤 했다.
에른스트는 시종을 시켜 브리안을 휴게실로 안내한 뒤, 아이들과 함께 호숫가로 향했다.
“있지요, 삼쫀! 리아는 잉어를 잡꼬 시퍼!”
“에르는 물꼬기 잡아서 어머니한테 선물할 거야!”
아이들은 호수에서 잉어를 잡고 싶다며 재잘거렸다.
이에 에른스트가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숫물이 깊어서 들어가는 건 안 돼.”
그러자 에르빈과 오딜리아가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리아 잉어 못 잡아?”
“어머니 선물은?”
에른스트가 피식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안. 대신 이다음에 꼭 같이 물고기 잡으러 가자.”
다정한 다독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토라져서 양 볼이 빵빵해졌다.
어느덧 호숫가에 도착하자, 시종들이 돗자리를 펴고 달콤한 디저트를 가져다주었다.
“우웅? 저고 모야? 쿠키야?”
알록달록한 마카롱을 보며 에르빈이 관심을 보였다.
“아, 이건 마카롱이야. 먹어 볼래?”
“마까롱!”
그리고 마카롱을 한 입 베어 문 순간, 아이들은 토라졌던 기분이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마까롱 맛있어!”
“이고, 어머니 선물할래!”
단풍잎처럼 조막만 한 손으로 마카롱을 만지작거리며 신나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에른스트가 키득키득 웃었다.
“이보네도 어렸을 때 좋아했는데, 닮았네.”
에른스트는 아이들에게 제 몫까지 건네주었다.
“많이 먹어.”
“삼쫀 최고야!”
“삼쫀 최고 최고!”
아이들은 에른스트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재잘재잘 떠들었다.
“있지, 삼쫀. 어쩌면 어머니가 이제 결혼을 할지도 몰라.”
“정말?”
“웅웅! 에르가 다 들었어! 브리앙 삼쫀이랑 어머니랑 이야기하는 거!”
“마쟈! 리아도 들었어!”
“이보네가, 결혼을…….”
에른스트가 멍한 얼굴로 읊조릴 때였다.
“구럼 이제 에르랑 리아두 아빠 생기는 걸까?”
아이들의 두 뺨이 발그레 물들었다.
그것을 발견한 에른스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빠가 갖고 싶어?”
“웅!”
“왜?”
아이들은 한 번도 아빠가 없다는 결핍을 내비친 적이 없었기에, 에른스트는 의아한 얼굴로 두 눈을 끔뻑였다.
단순히 놀아 주는 사람이 필요한 거라면 굳이 아빠가 없더라도 제가 있고…….
남자 어른이 필요한 거라면 브리안도 있고…….
“아빠가 있으면 어머니도 짝꿍이 생기잖아!”
“……?”
“에르랑 리아는 짝꿍이 있는데, 어머니는 혼자야.”
“마쟈. 혼자서는 소꿈놀이도 못 한단 말야.”
“숨바꼭질도 못 해.”
“웅웅!”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아빠가 필요한 이유를 역설했다.
잠자코 듣던 에른스트가 빙긋 웃었다.
“착하네, 에르, 리아. 어머니가 외로울까 봐 걱정했구나?”
칭찬을 받은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왜 저 사람들이 삼쫀을 전하라고 불러?”
“어, 그건…….”
에른스트는 뺨을 긁적이며 최대한 쉬운 말로 설명하고자 했다.
“내가 황제의 동생이니까?”
“황제?”
처음 듣는 단어에 오딜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나고 자랐던 칼리고르에는 황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에르빈이 벌떡 일어났다.
“나, 황제 알아! 황제는 왕 같은 거야!”
에르빈은 해맑은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외쳤다.
“그리고 황제는 미친 사람이야!”
“으, 응……?”
에른스트가 조금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에르가 다 들었어! 예전에 밀까루 아조씨가 알려 줬어.”
에르빈은 이전에 호수 저택에서 이보네와 프레데릭이 나누던 대화를 떠올린 참이었다.
“황제는 미친 사람이고, 쓰레기고, 지지고, 다랑지 용사를 죠아해!”
느리게 두 눈을 깜빡이던 에른스트가, 이내 박수를 쳤다.
“우와, 에르 진짜 똑똑하네? 그런 것도 알고?”
에르빈은 우쭐한 표정으로 턱 끝을 치켜들었다.
“지지? 지지 아조씨 같은 거야?”
에르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오딜리아만이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 채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웅웅. 황제는 지지 아조씨 같은 거야.”
“그럼 지지 아조씨가 황제야?”
아이들의 대화는 보통 엉뚱한 흐름으로 흘러가기 일쑤였는데, 오늘따라 진실에 근접해 가고 있었다.
* * *
회의가 끝난 뒤.
황제가 회의장을 떴음에도, 귀족들은 곧바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삼삼오오 모여 숙덕였다.
잠자코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 속에 불안한 감정이 깃들었다.
‘테오도르가 흑마법을, 아니, 어둠을 사용할 수 있었다니.’
테네브리스와 맞서던 때까지만 하여도, 그 힘을 꺼낸 적 없던 그였다.
언제부터 그런 힘을 사용하게 된 걸까?
‘그럼 그 거울을 이용해 시간을 움직인 것도…….’
한참 홀로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반발이 거셀 거예요. 고대 이후로 수천 년간 금지되어 온 이름이니까.”
“아, 셀린느 님.”
불안함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셀린느가 어두운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벌써부터 귀족들 사이의 반응이 좋지 않아요.”
“황제가 어둠술사라는데, 뭐 차차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될지도 모르죠.”
애써 낙관적인 목소리로 말하고자 하였으나, 그렇게 말하는 내 말끝도 살풋 떨리고 있었다.
“이보네 님의 말씀이 옳아요. 어찌 됐든 힘의 균형이 맞춰지는 건 좋은 거니까요. 괜한 기우였으면 좋겠네요.”
“셀린느 님은 괜찮은가요? 폐하께서 어둠을 공인하시겠다고 한 거요.”
“어차피 앞으로 마물들과 공존하기 위해서라도 좋은 방도라고 생각해요. 어둠에 복종하는 족속들이니까.”
황제가 떠난 회의장을 정리하고 있는 소년을 힐끗 쳐다보며, 셀린느가 말했다.
테오도르로부터 마물들을 관리하는 직책을 부여받은 앳된 외양의 소년이었다.
사람들은 황제가 데려온 낯선 소년을 보며 반신반의하였으나, 이내 소년이 마물들을 통제하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였다.
테오도르가 두고 간 서류들을 정리하던 소년은 나와 눈이 슬쩍 마주쳤다가 화들짝 놀라며 내 시선을 피해 밖으로 나갔다.
‘음?’
대놓고 도망치는 모습에 기분이 묘하게 불쾌해졌다.
‘그런데, 테오도르가 말한 적당한 이는 대체 누구지?’
테오도르는 적당한 이를 내세워 테네브리스의 의지를 잇는 새 가문을 세울 것이라 했다.
황제인 테오도르가 동시에 한 가문의 수장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른 이를 세워야 할 것이다.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을 누르고서, 본성을 나와 2황자궁으로 향했다.
저 멀리 2황자궁 앞에 체르니시아의 문양이 그려진 마차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에르빈과 오딜리아가 나를 보고 신나서 달려왔다.
“어머니!”
“어머니이!”
얼마나 신나게 논 건지, 예쁘게 차려입은 옷들이 난리가 나 있었다.
“어머니, 이거 선물이에요!”
에르빈이 내게 자그마한 마카롱 하나를 건넸다.
손에 계속 쥐고 있었는지, 겉이 녹아서 꼬깃꼬깃했다.
“마카롱이네?”
“새 마카롱을 포장해 주겠다고 했는데, 그럼 그건 제 선물이 아니라 삼촌이 주는 선물 아니냐고 그러잖아.”
뒤따라 나온 에른스트가 난감한 듯 눈썹을 늘어뜨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집이 엄청 세더라. 너랑 닮았어, 이보네.”
“에르랑 리아가 나를 좀 닮았지.”
나는 피식 웃으며 꼬질꼬질한 마카롱을 한 입 베어 먹었다.
“아이, 맛있다.”
다소 과장된 목소리로 감탄하자, 에르빈이 두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접으며 갸르릉거렸다.
* * *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황제의 침실에 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 으아아아아악!”
테오도르는 무감각한 시선으로 제 발치에 죽어 가는 암살자를 내려다보았다.
“쯧, 피 냄새가 진동해서 와 봤더니.”
문득 창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테오도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열린 창을 타고, 에른스트가 테오도르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 멍청한 것들은 지치지도 않고 사람을 보내 오네요.”
에른스트가 바닥에 죽어 가는 암살자의 머리통을 발로 걷어차며 중얼거렸다.
벌써 사흘째였다.
테오도르의 침실에 끊이지 않고 밤 손님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테오도르의 몸도 성할 날이 없었다.
“괜찮아요, 형님? 거기, 피가 나는데.”
에른스트가 테오도르의 복부에 난 자상을 힐긋 쳐다보며 물었다.
얼핏 스쳐 보기에도 상당히 깊은 상처였으나, 테오도르는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다.
괜찮았다.
마르가라테 황후가 살아 있을 적에는 암살자를 맞이하는 게 매일 밤의 일상이었으니까.
“그러기에 저를 앞세워도 된다니까.”
에른스트가 아직 죽지 않은 암살자의 머리를 한 번 더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
애초에, 테오도르가 공식 석상에서 어둠을 공인하겠다고 하였을 때부터 예측된 일이었다.
이제 몇몇 이들은 오랜 시간 사람들의 머릿속에 악으로 뿌리 박혀 있는 어둠과 테오도르를 동일시하는 중일 테니.
얼마 전, 에른스트는 체르니시아 저택에서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테오도르에게 제안했다.
[반발하는 이들이 만만치 않을 텐데, 방패가 필요하겠네요.]악과 동일시될 그 역할을, 제가 맡겠다고.
[그 역할, 내가 맡을게요.]테네브리스의 사념 부스러기가 튀어 있는 에른스트 또한 어둠을 운용할 수 있었다.
아주 손쉽게 말이다.
당연했다.
에른스트의 육신은 어미의 몸 밖으로 날 때부터 테네브리스의 그릇으로 키워졌고, 오랫동안 어둠에 동화된 몸이었다.
루돌프의 술식이 남아 있던 이보네가 황궁에 다시 나타났을 때, 곧바로 알아볼 수 있던 것 또한 그 덕이었다.
고작 술법을 이용한 눈속임 따위가 오랜 시간 어둠에 동화되어 있던 에른스트를 속일 순 없었으니까.
[아니, 됐어.]그러나 테오도르는 곧바로 에른스트의 제안을 거절했다.
[내가 해.]그는 스스로 어둠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끌고 분란을 일으켜 노려지길 선택했다.
공식 석상에서 자신이 어둠술사임을 밝힌 테오도르는 사람을 시켜 소문을 냈다.
‘어둠을 받아들인 이후, 백전 무패였던 황제가 급격히 쇠약해졌다더라!’
소문을 들은 이들이 매일 밤 제게 암살자를 보내 왔다.
테오도르는 부러 그들의 습격에 살을 내어주며, 몇몇을 살려 보냈다.
그래야 살아남은 이들이 저희 무리로 돌아가, 테오도르 황제가 쇠약해졌다는 소문이 사실이라고 알릴 테니까.
오늘은 한 놈을 살리고, 한 놈을 남겼다.
테오도르는 검을 들어 죽어 가는 암살자의 숨통을 끊었다.
당연하게도, 암살자를 죽이는 데에 망설임은 전혀 없었다.
꼬리를 잡기 위해 며칠 전 저를 습격하였던 암살자 하나만 따로이 살려 둔 터였다.
“와, 재판도 없이 그냥 죽이는 거예요? 착해진다면서요?”
“살려 두면 장차 리아에게도 위협을 가할 놈들이다. 뿌리 뽑아야 해.”
“오.”
에른스트가 휘파람을 불었다.
“대단한 부성애네요.”
그가 키득거리며 물었다.
“앞으로 수년간은 같은 일이 반복될 텐데, 괜찮겠어요? 어쩌면 수년이 아니라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에른스트가 난장판이 된 테오도르의 침실에서 용케도 붕대를 찾아냈다.
테오도르는 어지러운 침실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피에 젖은 셔츠를 벗어내자, 보기만 해도 아픈 자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필이면 어제 베인 곳을 오늘 다시 베였다.
“그 작자들을 뿌리 뽑기 전에, 형님의 몸통 한 부분이 날아가게 생겼어요.”
“물론, 괜찮아.”
테오도르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환부에 미지근한 물을 뿌렸다.
그의 성력으로 이렇게 큰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불가했기에, 대강의 처치만을 한 뒤 지혈을 위해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수십 년이 걸리는 걸 내버려 둘 순 없지.”
지이익-
테오도르가 붕대의 끝을 이빨로 뜯어내며 덧붙였다.
“리아가 성인이 되기 전에, 끝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