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3_3
“폐하……?”
그 서늘한 황금안에 카타리나가 순간 흠칫 놀랐다. 그렇지만 그녀는 숨을 꼴깍 삼키며 용기를 냈다.
“이브 로웰린을 데려갈 거라면 정당한 값을 치르세요.”
“정당한 값이라…….”
“네, 정당한 값이요. 황후 자리를…….”
카타리나가 끝내 자신의 욕심을 내비치려던 순간이었다.
스윽-
서늘한 칼날이 카타리나의 목덜미에 닿았다.
“나도 좋아해. 정당한 값을 치르는 거.”
테오도르가 생긋 눈매를 휘며 검날을 느슨하게 휘둘렀다.
“아아악!”
나를 포함한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라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카타리나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으며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새빨간 핏물이 그녀의 살갗 위로 배어 나오고 있었다.
“정당한 값은 이걸로 하지.”
테오도르는 어느 때보다도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목숨.”
웃고 있는 얼굴과 달리 카타리나를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는 무생물을 대하듯 차가웠다.
이러다 정말로 사람이 죽겠다 싶어 간담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네 목숨값 따위로 이브 로웰린은 지나치게 과분하지만.”
모두가 경악한 와중에 오직 테오도르만이 느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 살려 주세요……!”
그 적나라한 살의를 버티지 못한 카타리나가 울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이, 이브 로웰린을 드릴게요, 그러니…….”
그녀가 헐떡이며 자신의 품속을 뒤졌다. 그 안에서 종속 마법이 걸린 문서가 튀어나왔다.
‘저걸 계속 갖고 다녔다고?’
마치 언제든 누군가에게 내줄 날을 기다린 것처럼 곧바로 튀어나온 문서를 보며 나는 조금 당황했다.
대체 나를 얼마나 더 괴롭히려고 매 순간 저것을 지니고 다녔단 말인가.
“흐음.”
테오도르는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카타리나가 내미는 주종 문서에는 어린 시절의 내가 루돌프에게 붙들려 억지로 찍은 지장이 있었다.
테오도르가 그것을 건네받는 순간 소유자의 이름이 그의 것으로 바뀌었다.
애초에 ‘정당한 값’은 소유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바람직한 몫의 대가였다.
내내 황후 자리를 원했던 카타리나가 결국 죽음의 공포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그 무엇보다 ‘정당한 값’으로 스스로 인지한 것이다.
‘그럼 나는 이제…….’
나는 테오도르의 손에서 펄럭이는 주종 문서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테오도르의 종자가 된 건가……?’
내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찌지직- 찌익-
얇은 종잇장이 그의 손에서 갈기갈기 찢어져 형체를 잃었다.
“린든.”
“네, 폐하.”
테오도르의 부름에 나타난 젊은 남자가 찢어진 종잇장을 주섬주섬 챙겼다.
“태워.”
“알겠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까딱 끄덕이고는 다시 물러났다.
나는 다소 충격받은 얼굴로 멍하니 서서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았다.
오랫동안 나를 압박해 온 주종 문서가 너무나 쉽게 사라진 것이다.
“왜……?”
나도 모르게 황망한 질문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순간 테오도르가 나를 돌아보며 생긋 웃었다.
조금 전까지 나를 악랄하게 협박하던 모습은 거짓인가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온유한 눈웃음이었다.
“나는 그대를 노예로 데려가려는 게 아니야, 이브 로웰린 경.”
두근-!
그 말에 가슴이 이상하게 뭉클해졌다.
“이제 방해되는 건 없겠군. 따라올 거지?”
“아…….”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그대가 오지 않는다면 황제 시해죄를 물을 거야. 물론 이건 아주 진지한 협박이고.”
“…….”
테오도르는 몹시 자애로운 얼굴로 나를 협박했다.
그리고 그 협박에 내 고개가 느리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어차피 더 이상의 선택지는 없지 않나. 무려 폭군의 협박인데.
긍정의 답에 순간 테오도르의 얼굴 위로 화사한 웃음기가 번져 나갔다.
그러나 나는 그를 따라 웃지 못하고 벤야민을 힐긋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벤야민, 나 폐하를 따라가야 할 것 같아.”
“꼭 가야 해?”
“아무래도…….”
“……그래.”
벤야민이 어색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에 가서도 건강히 지내. 조만간 찾아갈게.”
“응, 고마워. 너도 잘 지내.”
벤야민과 작별 인사를 나눈 나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한 번도 생각지 못한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늘 바라 왔던 일이기도 했다.
음울한 어린 날의 기억이 남아 있는 이곳 페르디난트를, 언제나 벗어나고 싶어 했으니까.
멍하니 서 있는 벤야민과 카타리나를 힐끔힐끔 뒤돌아보다가, 이내 테오도르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갔다.
더 이상 그들이 보이지 않을 즈음 문득 테오도르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나를 돌아보며 가만히 손을 뻗었다.
나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는데, 그의 길쭉한 손끝이 내 머리카락에 닿았다.
“미안해, 이브 경. 많이 놀랐지?”
“폐하……?”
어느새 내가 알던 다정한 얼굴로 돌아온 그가 상냥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대를 저곳에서 꺼내고 싶었으니까.”
문득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던 그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아직도 손이 떨려……. 내 손을 잡아 줄래?”
“……?”
내가 멍하니 쳐다보자 그가 내 손을 잡아당겨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 그 안으로 자신의 손을 밀어 넣으며 단단하게 깍지를 꼈다.
“내가 피를 무서워해서…….”
나는 잠시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느리게 반문했다.
“……저를 위해 일부러 폭군 흉내를 냈다는 거예요?”
나를 왜……?
“조금…… 어색했나?”
테오도르는 수줍게 귓불을 붉히며 두 눈을 내리깔았다.
“많이 이상했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나도 처음이라…….”
“아니요, 그게 아니라…….”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뒤늦게 내 의문을 알아챈 그가 생긋 두 눈을 휘었다.
“말했잖아, 내게는 아주 뛰어난 안목이 있다고. 그대가 마음에 들어.”
“하지만 폐하께서는 저와 만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당혹스러워 우물쭈물 대꾸하는데, 그가 내 말을 부드럽게 잘랐다.
“처음 본 순간부터.”
그 순간, 테오도르의 황금빛 눈동자가 햇살에 반짝 빛났다.
“그때부터 그대가 마음에 들었어.”
“…….”
숨을 홉 들이마시는 나를 향해 그가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대를 이름으로 불러도 될까?”
이상했다. 문득 그의 얼굴 위로 어린 날의 한 장면이 겹쳐 떠올랐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친구랑 숨바꼭질. 그러는 너는?] [보물찾기.]뭘 하고 있었냐는 물음에 그 예쁜 눈동자를 사르르 휘던 어린 테오도르…….
그가 생각하는 첫 만남과 내가 기억하는 첫 만남은 분명 서로 다른 순간일 텐데도, 이상하게 나는 내 기억 속 어린 그가 생각이 났다.
“이-브.”
느릿한 음색이 자아내는 보드랍고 연한 두 음절의 이름자가 이상하게 내 가슴을 간지럽게 만들었다.
허락을 구하듯 생글생글 웃으며 쳐다보는 그를 향해, 나는 그만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 *
예고 없이 페르디난트에 난입한 황제는 그렇게 막무가내로 이름 없는 견습 기사를 빼돌려 갔다.
본디 페르디난트와 오가던 약혼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고 쏙 들어가 버렸으나, 카타리나는 화도 내지 못할 만큼 상태가 안 좋았다.
“세상에, 어떡해! 카타리나 아가씨……! 당장, 당장 의사를 불러야겠어요! 아무리 황제라 해도 어떻게 이런 끔찍한 짓을…….”
“조용히 해, 머리가 울려. ……들어가자.”
카타리나는 창백해진 낯으로 황제와 이보네가 사라진 자리를 쳐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남겨진 벤야민은 바닥에 떨어진 혈흔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 새빨간 선혈을 쳐다보노라니, 어린 날의 기억이 밀려왔다.
붉은 피를 흘리던 이브 로웰린…….
아니, 이보네 체르니시아.
지금은 죽고 없는 부친께서 체르니시아로부터 훔쳐 낸 그 작은 아이.
처음 만났을 때, 그 애는 비릿한 혈 향을 품고서 낡은 3층 방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왜 울어?]그렇게 묻자 그 애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달빛에 드러난 그 애의 얼굴이 깜짝 놀랄 만큼 예뻐서, 벤야민은 저도 모르게 나른한 웃음을 흘리며 인사를 건네었다.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와 반짝이는 은색 머리카락, 그리고 보석처럼 찬란하던 녹색 눈동자와…….
뺨에 묻어 있던 새빨간 혈흔. 그곳에서 죽음의 향기가 났다.
붉은 선혈이 벤야민을 흥분하게 했다.
너는 혈 향을 품고 왔구나…….
어디서 온 걸까?
벤야민은 그 애가 궁금해졌다.
남자아이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어두운 색깔의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나, 벤야민은 한눈에 그 애가 여자애라는 것을 알아봤다.
루돌프가 벤야민을 훈육할 때 종종 사용하였던 그 낡은 3층 방은 그 애처럼 작고 귀여운 애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네 집으로 돌아가. 여긴 너처럼 작은 여자애가 있을 만한 곳이 못 돼.]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으나 그 애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왔는지 물어도 알려 주지 않던 그 애는 이름을 묻는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이브 로웰린.]울음에 잠식된 꺼끌꺼끌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벤야민은 운명을 느꼈다.
그 이름이 거짓인 것을 알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마음이 이끌렸다.
동화 같잖아.
혈 향을 품고 나타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거짓인 작은 여자애.
너의 피는 무슨 맛일까. 분명 달큼하겠지.
울음을 터뜨릴 때 눈가를 적시던 작은 눈물방울처럼, 분명 황홀할 거야.
나의 작은 이브 로웰린…….
이후로 벤야민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같이 그 애를 찾아가 챙겨 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애의 진명을 알게 되었다.
[하마터면 ‘그릇’이 다칠 뻔했어.] [그래도 다행이지. 미리 알아차려서 ‘그릇’을 보호하고 황제까지 저 상태로 만들었으니, 우리에겐 잘된 일이야.]아버지 루돌프와 고모인 마르가라테 황후의 대화를 엿들은 게 계기였다.
[게다가 체르니시아의 사생아까지 손에 넣었잖아. 그 애를 제물로 사용하면…….]체르니시아라고?
멸문한 체르니시아의 사생아라면 오직 한 명뿐이었다.
이보네 체르니시아.
작고 힘없는, 그러나 예쁜 여자애.
그 애를 갖기 위해, 저는 무슨 짓들을 했었지?
굶지 말라고 먹을 것을 주고, 아프지 말라고 약을 발라 주었다.
악몽을 꾸지 말라고 자장노래를 불러 주고, 잠든 그 애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누구도 해치지 못하도록 새벽이 밝을 때까지 옆을 지켰다.
삶의 의지를 놓지 말라고 재잘재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말수가 적은 벤야민에게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 애를 괴롭힌 한심한 또래 기사 견습생들을 찾아가 무참하게 도륙 내 주었다.
종내에는 아버지를 죽이고, 마르가라테 황후까지 죽였다.
그 덕에 테오도르가 황제가 된 것은 굳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틀어질 줄 알았더라면, 그 또한 함께 처리했어야 했는데.
“찢어 죽일 레오브란테.”
품고 있는 격한 욕설과는 달리,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음색은 무미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 덕에 그 자리에 올랐는데, 은혜를 모르고 원수로 갚아…….”
벤야민은 상황을 믿을 수 없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빠드득-
고요히 말아 쥔 주먹에서 뼈마디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테오도르 황제가 체르니시아의 어린 검과 친분이 있었다고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벤야민은 아랫입술을 아프게 깨물며 눈동자를 서늘하게 가라앉혔다.
이보네를 쳐다보던 테오도르의 눈빛이 자꾸만 거슬렸다.
그 눈이 꼭…… 그녀를 보는 자신의 것과 닮아 있었다.
두 사람이 재회한 지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제 황제의 방문 뒤, 그녀의 손목에서 그 남자의 기운이 불쾌하게 풍겼으니까.
“안 돼, 이브.”
낮고 몽롱한 목소리가 마치 꿈을 꾸듯 중얼거렸다.
“내가 널 위해 무슨 짓까지 했는데. 네가 이렇게 날 두고 떠나면 안 되지.”
마치 스스로에게 세뇌를 하듯 뇌까리는 음성이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널 다시 데리러 갈게. 그러니까 기다려, 내 사랑.”
벤야민의 눈꼬리가 사르륵- 둥글게 휘었다.
얼떨결에 테오도르의 손을 잡고 쫄래쫄래 뒤따르게 된 나는 그를 따라 페르디난트 저택의 정문을 넘어섰다.
지난 10여 년간 나를 옭아맸던 장소를 벗어나는 바로 그 순간 굉장히 기묘한 감각이 내 안에서 술렁거렸다.
“이브, 괜찮아?”
“네, 네, 폐하! 죄송합니다.”
잠시간 감상에 빠져 있던 나는 뒤늦게 그가 내 이름을 수차례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답했다.
그러다 나를 지그시 쳐다보는 황금안과 마주치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시선이 꼭…….’
둥글게 휜 눈동자 속에는 다정함과 그리움의 빛깔이 머물러 있었다.
‘그 시절 같아…….’
그것을 깨달은 순간 문득 주변의 공기가 후덥지근하게 달아올랐다. 마치 그 오랜 옛 여름의 날들처럼.
이브 로웰린을 보는 테오도르의 시선은 이보네 체르니시아를 보던 그의 것과 닮았다.
그건 아마도 그가 천성적으로 따뜻하고 상냥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테오도르는 어린 날 처음 만났을 때에도 마냥 친절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이름도, 무엇도 모르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착한 사람이 왜 그런 흉흉한 소문에 휩싸인 걸까? 폭군이라니, 말도 안 돼.’
나는 시선을 내려 깍지 낀 두 손을 보았다.
조금 전 피를 봐서 무섭다고 파르르 떨던 게 생각나 안쓰러웠다.
“어서 타, 이브.”
페르디난트 저택 앞에는 알브레히트 황가의 문양이 새겨진 번쩍번쩍한 황금 마차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네? 하지만, 전…….”
“아직도 떨림이 가시질 않아서, 그대가 함께 있어 주면 좋겠어.”
황송한 마음에 머뭇거리자 그가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재촉했다.
“나의 기사가 되어 주기로 했잖아? 나를 지켜 줘야지.”
“아직 기사 서임을 받은 것도 아닌데…….”
“그럼 오늘은 나의 손님으로 함께 마차를 타자, 응?”
그가 생긋 눈웃음을 치며 손을 흔들었다.
그 아름다운 눈웃음에 매료되어 버린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마차에 올랐다.
다른 기사들이 나를 흠칫흠칫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나처럼 신분도, 실력도 불분명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황제의 마차를 함께 타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게 틀림없다.
어제는 분명 말을 타고 왔던 것 같은데, 왜 오늘은 마차를 타고 와서 이런 시련을 주는 걸까.
마차는 부드럽게 굴러갔다.
그리고 마차가 굴러가는 그 짧은 시간 내내, 테오도르는 양손으로 꽃받침을 하고서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저…….”
나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원래 모두에게 이러시나요?”
“응?”
“모두에게 이렇게 친절을 베푸시고, 그리고…….”
모두에게 이렇게 무섭다며 손을 잡아 달라 하고, 얼굴을 빤히 쳐다보냐며 묻고 싶어 말을 고를 때였다.
“혹시 내가 이러는 게 불편해?”
그가 눈꼬리를 추욱 늘어뜨리며 되물었다.
흡사 소중한 간식을 빼앗긴 강아지처럼 축 처진 모습에 나는 괜히 미안해져서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그러자 그의 눈매가 다시금 포스스 접혔다.
“다행이네.”
그렇게 웃는 그의 두 눈이 너무 예뻐서, 나는 결국 그에게 답을 듣지 못하고 마차가 도착할 때까지 그의 시선을 받아 내야 했다.
* * *
황궁에 도착한 테오도르는 곧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이브 로웰린에게 나의 측근 기사직을 맡길 것이다.”
황제의 수석 호위 기사라는 린든 경이 테오도르가 대충 휘갈겨 쓴 종잇장을 받들었다.
“네, 폐하.”
린든을 따라 밖으로 나가니, 복도에 서 있던 기사들이 내게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브 로웰린이라고?”
“정말로 폐하의 측근 기사가 된 거야?”
“아직 기사 서임도 못 받았다고 했지?”
나는 제대로 서임도 받지 못한 내가 그 자리를 맡아 다들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 저는…….”
“고마워, 이브 경! 그대가 우리를 살렸어!”
“네, 네?”
그러나 걱정과 달리 그들은 무척 기뻐했다.
“오늘은 축하 파티를 하도록 하지.”
“이브 경, 그대도 반드시 필참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당혹스러워하는 찰나, 린든이 내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모두 진심으로 그대의 등장을 반기고 있어. 폐하의 성격이…… 음, 다소 까칠해서 아무도 측근 기사직을 맡고 싶어 하지 않아 했거든.”
테오도르가 까칠하다고?
저렇게 다정하고 상냥한데?
“까칠하다는 건 사실 아주 순화한 표현이지.”
“솔직히 저건 까칠한 게 아니라 그냥 지랄 맞은…….”
“벤트, 말을 조심해라.”
린든이 다른 기사의 경박스럽게 튀어나온 비속어를 자르며 흠흠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이브 경, 폐하의 내숭에 속지 말도록.”
“내숭요……?”
고개를 갸웃하자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과묵하게 생긴 거구의 기사가 한마디 덧붙였다.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더 크게 괴롭히려는 못된 속내일 것이다.”
“……?”
동시에 여기저기서 안쓰럽다는 시선들이 내게 꽂혔다.
“아까 마차에 올라탈 때도……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해.”
“정말 무시무시했지? 폐하의 표정…….”
무시무시하다니?
테오도르는 계속 웃고 있었는데?
“그렇게 웃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한다, 이브 로웰린.”
“맞아. 폐하는 웃는 얼굴로 상대의 얼굴에 칼을 꽂는 분이시니까.”
으응? 보통은 웃는 얼굴로 상대의 등에 칼을 꽂는다고 표현하지 않나?
“가엾은 이브 경.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우리에게 털어놔.”
“하지만 부디 그 자리를 오래 지켜 주었으면 좋겠어.”
“한 달…… 아니, 보름, 아니, 일주일만이라도…….”
그들이 한마디씩 거들수록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 * *
그날 이후, 테오도르의 손을 잡고 페르디난트를 나온 내게 무려 ‘황제의 측근 기사’라는 새로운 삶이 생겼다.
아주 오랫동안 내 삶의 주인인 적이 없었던 나는 한동안 굉장히 얼떨떨했다.
체르니시아가 몰락하기 전, 열 살 남짓의 내게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참 많았다.
그러나 눈앞에서 목격한 가족들의 죽음과 그곳에서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서서히 내 안의 나를 죽여 갔다.
석 달. 체르니시아의 이름이 잊히는 시간은 굉장히 짧았다.
그 시간 동안 루돌프 페르디난트는 나를 기억 속 낡은 3층 방에 가두고 방치했다.
나는 그곳에서 하루에 두 번 딱딱한 빵과 수프를 가져다주는 나이 든 하녀 외에는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슬픔과 괴로움, 죄책감……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온 것은 쓸쓸한 고독감과 외로움이었다.
나를 홀로 살려 내 페르디난트에 가둔 에른스트를 조금 원망했던 것 같기도 했다.
사실 그 애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는데 약해진 마음이 그 애를, 그리고 세상을 전부 원망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