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ighbours RAW novel - chapter 1
내 이웃의 성향자들 1
Prologue
당신 주위에는 수많은 성향자들이 있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 뒤틀리고 일그러진 본 성향을 숨기고 살아가는 성격 장애 성향자들. 그리고 성적 취향에 의한 성향자들.
당신은 그들의 실체도 모른 채 매일 그들과 마주하고, 얘기를 나누고, 나란히 걷기도 하면서, 그렇게 부대끼며 살아간다.
당신도 실은 그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 어떤 형태로든 성향자에 속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 흔히 하는 그 말은 결국 세상은 넓고 성향자가 많다는 표현과 다르지 않으리라. 성적 취향보다는 주로 성격 장애 성향자를 일컫는 것이겠지만.
우선은 그 성격 장애 성향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나처럼 혈연이란 이유로, 온갖 다채로운 성격 장애 성향자들과 한 지붕 아래에서 우글우글 부대끼고 살아온 경우는 드물 테니까.
그렇게 어려서부터 성격 장애 성향자들에게 시달리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성적 취향에 의한 성향자들을 숱하게 만나게 되었다. 다행히 내 몸이 그들에게 동화되거나 노리갯감으로 전락하진 않았으나, 어쨌든 나처럼 짧은 기간 동안 그토록 다채로운 성향자를 접한 경우도 드물 것이다.
성향자들은 다양한 사회 계층 속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비성향자의 외피를 두르고, 사회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채 우리 주위에 늘 도사리고 있었다.
아, 도사린다는 말은 정정하겠다. 그들 역시 우리의 이웃이며, 단지 성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다를 뿐이니 그런 표현은 역시 실례가 아닐까.
* * *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란 표현을 처음 들은 건 내가 열한 살 때였다. 성격 장애 성향자투성이인 집에서 살게 된 지 어언 6년째였다.
-어이구, 옘병!만만한 게 홍어 좆이지!이 집에서 제일 만만한 건 너고.
도마 위에 올려진 몸통을 내리치는 식칼 끝이 번뜩였다. 단번에 생선 대가리가 뎅겅 떨어졌지만, 잘려 나간 몸체는 한동안 더 퍼덕거렸다. 생명의 경이로움보다 징그럽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을 거둬도 너한테 하는 것보단 잘하겠구만!
식재료 창고와 정원 허드렛일을 하는 염 씨 아저씨는 카악, 목구멍 긁는 소릴 내더니 뒷마당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아가. 이 염병할 집에서 도망쳐. 옛날에 살던 고모 집 어딘지 모르냐?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가 생선을 다듬기 전에 준 문어 다리를 한 손에 쥔 채였다.
-모르겠어요. 멀리 이사 갔다는데….
-어쩌냐. 차라리 고아원이 더 나을 것이구만. 이 집구석 인간들 대가리는 요, 요, 홍어만도 못한디…. 정신 병원이 따로 없잖냐.
염 씨 아저씨의 말대로였다. 그 집구석은 정신 병원이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환자들이 다 뒈지기 전까지는.
윤성일보 사주 일가인 내 외가는 돈과 명예를 양손에 쥔, 소위 내로라하는 명문가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건 철저히 대외적인 이미지일 뿐 그 안은 정신병자 소굴이나 다름없었다.
흔히들 정신병은 유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지적인 유전자는 후손에게 대물림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집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지극히 예외적인 연구 결과가 틀림없었다. 후천적인 영향 때문이라 추정하기에는 그 ‘미침’의 정도가 너무도 컸다.
칠순을 넘기자마자 치매로 제 자식과 장손도 알아보지 못하게 된 전(前) 회장 윤택근부터, 어릴 적 나를 액받이로 잡도리질했던 외조모 조현애.
면피만 번드르르한 패륜남 윤부경과 그 처자식들, 속을 알 수 없고 의뭉스러운 윤석경, 그나마 정상이었다가 가정 폭력범으로 변해 버린 윤태경까지.
모두가 미친 연놈들이다. 그 옛날 평창동에서 제일 풍수지리가 뛰어나다는 땅, 넓은 임야를 다 갈아엎고 지은 저택의 이름은 서광재(瑞光材)였다.
그 가운데 글자 ‘光’은 사실 ‘狂’으로 바뀌는 게 이치에 맞았다. 대대로 미쳤고, 대대손손 더 미친 것들이 태어날 유전자가 흐르는 부지니까.
그들도 어머니의 자궁에 있을 때는 멀쩡한 태아였을까? 제정신으로 살아갈 일말의 가능성이 있던 사람들이었을지, 17년이 지난 지금도 궁금할 때가 있다.
나는 두 살 때 조실부모하고 고모들 집을 전전하다, 다섯 살이 되던 해 그 정신 병원이나 다름없는 외갓집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한 남자의 손에 이끌려, 꼬박 17년을 살았던 정신 병원에서 빠져나왔다.
그 기념비적인 탈주는 내 스물두 번째 생일에 이루어졌다. 탈출과 동시에, 또 다른 구속이 발동된 날이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신세는 염 씨 아저씨의 말처럼, 홍어 좆만도 못한 것 같다. 삶의 굴곡이 많다거나, 어린 나이부터 파란만장하다는 표현조차 사치일 만큼 그저 답이 없었다.
반쪽 피가 흐르는 정신병자들을 피하려다 결국, 더한 사이코에게 종속되는 게 내 운명이었나?
PART Ⅰ. 연우재
1
연우재. 기어이 내 혼탁한 삶에 끼어든 첫 번째 사이코의 이름이다.
우재(優宰). 뛰어날 우, 재상 재. 굳이 의역하자면 뛰어난 우두머리 정도가 될까. 그 이름은 그의 성정에 매우 잘 어울렸다.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들이 무리의 우위를 점하는 게 당연한, 그런 세상이라면 말이다. 하긴 내 외가가 가진 부와 권세를 생각할 때 이 세계의 실체는 이미 그런 것도 같았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였다. 어쩌면 그 전에도 본 적이 있을지 몰랐다. 어릴 적부터 서광재는 정재계 거물과 가족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곳이었으니까.
조부가 완전히 요양 병원으로 옮겨진 이듬해, 큰외삼촌은 차기 회장으로 정식 임명되었다. 연우재를 본 것은 그 취임 기념 연회가 끝나 갈 무렵이었다.
사립 외고 교복을 입고 후원을 어슬렁거리던 그는 이미 180cm에 가깝던 거구였다. 게다가 입엔 담배까지 물고 있었다.
아무리 후원 구석이라지만 누가 보면 어쩌려고. 나는 나도 모르게 옥외 계단으로 오르려다 멈춰 섰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그의 뒷모습을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그 순간 연우재의 몸이 빙글 돌아섰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 전율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흡사 눈에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확 튀어 올랐다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불량스러운 시선이 나를 오만하게 올려다보았다. 참 이상하지. 내려다보는 건 내 쪽인데 시야가 반대로 뒤집힌 듯싶었다.
그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연기를 훅 내뱉었다. 햇살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새하얀 교복 셔츠가 한순간 연기에 마모되는 착각마저 일었다.
연우재는 앳된 소년처럼 보이는 동시에, 지독하게 닳고 닳은 어른 남자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묘한 괴리 속에서도 그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었다.
나는 그의 흠잡을 데 없는 외형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그런 시선이 익숙한 것처럼 초연하게 내 눈길을 마주했다.
우리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적인 양 서로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그 적막한 대치는, 연우재의 고모가 그를 찾으러 와 담배를 문 조카를 발견하고 등짝을 후려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연우재를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6년 후, 내가 스무 살이 됐을 때였다.
찬란한 여름 햇살이 독처럼 사방에 퍼져 있던 오후였다. 서광재가 6년 전의 평창동에서 지금의 성북동으로 옮겨진 것만 제외하면, 모든 게 그 여름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거대한 천막 같은 스카이어닝 아래, 정자 한가운데 서 있었다. 정원은 윤부경 회장의 생일을 맞아 바비큐 파티가 한창이었지만, 후원은 초라할 만큼 고적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이 무생물 같은 년! 꺼져! 거지새끼 주제에!”
큰외삼촌 윤부경의 딸 윤소담이 바비큐 파티장 뒤에서 내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그녀는 내가 걸친 제 옷에, 아니, 정확히는 제가 버린 옷을 걸친 내 몸에 화를 내고 있었다.
윤소담은 식단 관리에 실패해 한 학기를 쉬어야 할 만큼 통통해진 나머지 신경이 매우 예민해져 있었다. 그러던 차에, 결국 못 입게 된 원피스가 내 몸으로 넘어와 본연의 자태를 뽐내는 게 죽을 만큼 보기 싫었던 거였다.
하지만 맹세코 이 옷이 윤소담의 것인 줄 몰랐다. 알았으면 입지 않았을 터였다. 외숙모 추성희가 주방에서 마주친 내게 원피스를 건네며 중얼거렸던 말만 기억할 따름이었다.
-내일 파티에 이거 입고 있어. 최대한 예뻐 보이게.
그래야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낙찰되지.
추성희의 탁한 눈동자는 속내까지 죄다 내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하루라도 빨리 적당한 혼처에 팔아 치워 버리길 원했다. 이제 갓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 따윈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딱 좋네. 무르익었어. 여물 대로 여물었는데 하필 나이가 걸리네.
그 음험한 눈빛은 내가 고등학교 교복을 입기 시작할 때부터 간간이 드러났다.
“꼴 보기 싫다고!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지란 말이야!”
째질 듯한 고함이 나를 다시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쌍둥이 자매 중 둘째인 윤소담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경계성 성격 장애와 반사회적 성격 장애, 행동 장애의 혼합체였다.
가족을 포함한 대인 관계와 정서가 불안정한 데다, 매우 충동적이었으며, 학교와 발레단과 재벌가 모임인 R서클 등 자신이 소속된 곳의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
특히 나에 대해서는 내 권리를 과도하게 무시하고 침해하는 게 숨 쉬듯 너무도 자연스러워, 죽은 외조모 조현애가 입버릇처럼 퍼부었던 저주가 그 앙칼진 독설 위로 겹치곤 했다.
-커 갈수록 지 아빠 판박이인 년. 지 부모 뒈질 때 같이 죽었어야 했는데. 넌 우리 태경이 액막이로 데려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돼.
“꺼지라고, 이 무생물아!”
윤소담이 다시 한번 버럭 소리쳤다. 문득 나 자신이 정말 무생물이 된 착각마저 일었다.
물과 흙, 모래, 산, 모든 번식과 생장, 진화가 멈춘 생명 없는 것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포가 일시에 빠져나가고 오직 껍데기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얘가 무생물이면 넌 뭐, 미생물이야?”
나무 뒤에서 저음이 들려온 건 윤소담이 내게 한 발 가까이 다가왔을 때였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연우재가 손바닥을 털며 몸을 일으켜 우리에게 느리게 다가섰다.
나무둥치에 기대 선잠이라도 잤는지 이마 위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채였다.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천천히 걸어오는 자세는 군인의 것처럼 정연한 동시에 백수처럼 불량스러워 보였다.
“무생물은 나름의 존재 의의라도 있지만 나쁜 미생물은 세균 덩어리인데. 고로, 네가 얘보다 더 저질이란 소리지.”
그는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 알 수 없는 세균 이름을 몇 개 더 중얼거리며 윤소담을 환멸의 눈으로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