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ighbours RAW novel - chapter 37
너무 어려 기억도 가물가물한 모친이 동생을 낳고 갑자기 돌아가신 것처럼.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어린 그를 보듬으며 괜찮다, 엄마는 하늘에서 잘 지낼 거다, 그렇게 달래 주었던 부친 역시 차 사고로 하루아침에 비명횡사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태산(太山)이었다. 고작 다섯 살 나이에도, 너무도 크고 강인한 산과도 같이 듬직했었지. 큰아버지와 고모들이 아무리 그 자리를 채워 주려 애써도 대체 불가한 존재였다.
“그 사고의 목격자는요? 아직 이렇다 할 결과가 없습니까?”
“네, 팀장님. 19년 전이라 그에 대해서는 시간이 꽤 소요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 주셔야 할 듯합니다.”
이대호는 평소의 느물거리는 기색을 싹 거두고 정색해 보였다. 고인이 된 사주, 상사의 부친에 대한 얘기인 만큼 어느 때보다 진지한 태도였다.
“이건 직급 다 떼고 묻는 것입니다만… 이 실장님이 생각하기에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당시 아버지는 10년째 무사고에 교통 법규 한 번을 어긴 적이 없으셨다면서요.”
“네, 저도 석연찮은 구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현장 증거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감식반은 무조건 감식반은 가시적인 흔적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
“아시다시피 CCTV와 차내 블랙박스가 상용화되기 전의 시절입니다. 지금에야 8채널 블랙박스까지 출시되는 세상이지만요.”
“그렇죠. 저도 압니다. 일단… 목격자를 확보하는 데 더 힘써 주세요.”
“그러겠습니다.”
이대호는 다시 음식을 공략하다 조심스럽게 상사의 눈치를 살폈다. 개인적인 질문을 할까 말까 망설일 때의 얼굴이다. 업무에 대해서는 아무리 결과가 나빠도 일절 눈치 보지 않고, 듣기 좋은 얘기 대신 냉정하게 사실 그대로 고하는 비서였다.
“물어보세요. 뭐가 그리 궁금한지.”
“음. 먼저 운을 떼 주시니 그럼 여쭤보겠습니다.”
본인이 먼저 눈치를 잔뜩 흘려 놓고는. 역시 못 말리는 넉살이었다.
“역시 송은효 씨 때문이십니까? 사고의 결과에 대해 재조사를 지시하신 것은….”
고기를 썰던 동작이 뚝 멈췄다. 연우재는 물을 한 모금 들이켜곤 선선히 답했다.
“네.”
정확히는 사고의 결과가 뒤집힐 여지가 조금이라도 없을지,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요청했다. 그는 한참 만에 말을 이었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 여자의 눈에, 부모 죽인 사람의 아들로 비치고 싶진 않으니까. 영원히 따라붙을 꼬리표. 누가 하나 기억을 잃는대도 없어지지 않을 낙인.
-당신들 부자(父子) 때문에 내 부모가 죽었어!파란불에 길을 건너고 있었을 뿐인데…. 엄마 아빠가 그 차에 치여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난 행복하게 자랐을 거야. 윤성일보와는 아무 상관없이, 다섯 살 때 그 정신 병원 같은 집에 들어가 학대받으며 천덕꾸러기로 살지도 않았을 거고.
-아니. 연우재 당신 때문이야! 그날 똑같은 장난감을 사 달라고 조르지 않았다면 당신 아버지가 거기까지 갈 일도 없었겠지. 그럼 우리 아빠, 엄마도 돌아가시지 않았을 거고 나는… 당신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 놓은 거야!
상상 속에서의 원망과 절규는 늘 그의 뇌리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게 실제로 송은효의 목소리를 통해 제게 날아온다면 어떨지, 상상하는 것조차 두렵고 섬뜩했다.
그를 볼 때마다 끔찍할 송은효의 마음, 그 미래를 헤아리고 더듬어 보는 것조차 이렇게 무서운데. 그래서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찾고 싶었다.
“저, 팀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대호가 다시 운을 뗐다. 음식 접시를 한옆으로 밀어 두는 눈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송은효 씨가 부모님의 사고 전말에 대해 알게 될 가능성 자체가 얼마나 될까요? 사건 기록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송은효 씨의 외조부인 윤 전 회장, 우리 쪽은 돌아가신 전 회장님 부부 외 연수향 여사님, 그리고 저와 팀장님, 단 넷뿐입니다만. 윤 전 회장은 현재 정신이 온전치 않고요.”
“방금 ‘인지’라고 하셨죠. 은효는 지금 그럴 계기가 없어 인지하지 못할 뿐 언제든 알게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사건 기록에 접근할 수 있으니까요.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게 만든 그 사고의 가해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지면… 혹은 누군가 그럴 동기를 주면,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겠지요.”
그게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고, 모레가 될 수도 있다. 동기를 가할 유력한 사람도 이미 한 명 있었다.
-그 애는 그 집에서도 없는 존재나 다름없어. 호기심도 갖지 말렴.
연수향이 했던 말이다. 고모는 그가 송은효와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걸 결코 원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그렇게 될 시, 연수향이 은효에게 어떤 식으로 19년 전 사고를 알려 줄지 그건 미지수였다.
처음 서광재에 초대받아 다녀온 날, 그는 윤부경 회장의 조카에 대해 집안사람들에게 꼬치꼬치 캐물었었다. 그때 이미 속을 훤히 드러내 버린 거나 다름없나.
송은효는 기묘한 들꽃 같았다. 존재감 없이 방치돼 있지만 어떤 꽃보다도 더 화려하고 아름다워 시선을 잡아끄는 이름 모를 꽃.
-우재야, 너도 어느 정도 컸으니 말한다만 그 애는 안 돼. 더 이상 관심 보이지 말아라. 윤성일보 혈육은 맞지만 우리와는… 너와는 더 엮여선 안 된다.
연수향은 그날의 비극에 대해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불운, 악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고모는 혀를 찼다.
제일 아끼던 로봇 장난감이 망가져서 다시 사 달라고 아버지에게 떼를 썼다. 다른 건 절대 안 된다, 비슷한 것도 싫다, 반드시 똑같은 모델로만 가져오라고 졸랐다. 그 외에는 절대 생일선물이 아니라며 전화로 못도 박았다.
그래서 부친은 장난감 업체의 지방 공장에 재고가 있다는 소식에 직접 P시까지 차를 몰았다. 자정 전, 아들의 생일이 지나가기 전에 선물을 안겨 주고 싶었던 마음이리라.
장대비가 땅에 뿌리내릴 듯 몰아쳤던 밤이었다. 어둡고 한적한 시골길에 굵은 빗줄기까지 가세해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았을 것이다.
급한 마음에 속력을 낸 것도 충분히 짐작되었다. 파란불에 길을 건너던 보행자를 미처 보지 못했고, 뒤늦게 운전대를 돌리려고 했지만 빗길에 차바퀴가 미끄러지며….
쾅!
차체는 사이좋게 손잡고 걷던 부부를 치고, 몇 미터 더 나아가 길가에 서 있던 대형 컨테이너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셋 전부 현장에서 처참하게 사망한 비극이었다.
송은효도 만약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면.
먼발치에서 다시 그녀를 봤을 때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제되지 않은 유리알 같은 눈, 마음은 어딘가 먼 곳을 정처 없이 떠도는 분위기가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구박받고 천덕꾸러기로 사는 것 같더라. 참 안됐어. 제 자식만큼은 아니라도 어린걸 잘 품어 줄 수도 있으련만.
-그럼 보상금은요? 우리 쪽에서 피해자의 유족에게 따로 보상금 지급한 거 없었습니까?
-당연히 지급했지. 아이가 어리니까 그 애 고모인가 삼촌이 보호자가 돼서 받았을 거야.
연수향의 말에, 보상금 지급 내역을 찾아보았다. 적지 않은 거금이 송은효의 고모에게 지급됐지만 그녀는 지금 해외로 이민을 떠나고 없었다.
-복수할 거야. 반드시. 다 갚아 주기 전에는 이 집 못 떠나요.
보복을 논하던 송은효의 두 눈이 떠올랐다. 단순한 농담도, 치기 어린 저주도 아니었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정확히 어떤 학대를 당했는지는 모르나, 항시 체벌에 노출되어 자란 아이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 느낌은 어릴 적 권이결을 통해 자연스럽게 눈에 익은 것이었다.
하필 그 권가 새끼의 얼굴을 통해서 말이지.
“수백 번 재조사를 해 봐도, 그래도 사고가 기록 그대로라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평생 갚을 생각이니까요. 그래도 만에 하나….”
우재는 말끝을 흐렸다. 만에 하나 다를 가능성 한 조각을 찾기 위해서. 단지 그뿐이었다.
“네.”
이대호는 더 가타부타하지 않고 시원스레 대꾸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빨리 결과를 알려 드릴 수 있도록 애도 쓰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우재는 입가를 비틀어 올려 웃었다. 비서실장은 수완이 무척 좋았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늘 신속하게 결과를 가져오는 탁월함은 단지 애만 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내 이웃의 성향자들 2
PART Ⅱ. 권이결 ‘Like A Virgin’
4
새해가 밝고 보름이 흘렀다.
크리스마스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1월도 반이나 지나가다니. 일터로 향하는 중 한숨이 절로 새 나왔다. 전광석화란 말이 절로 실감이 났다.
스물한 살이 되었지만 아무 감흥도 없었다. 스물에서 고작 한 살 더 먹었을 뿐이니까.
-D지방 검찰청은 오늘 오전 D시 시내 밀집한 유흥가에 위치한 성인용품점에 향정신성 의약품과 가짜 발기 부전 치료제를 유통 공급한 김 모 씨와 외국인 일당 및 성인용품점 업주 이 모 씨 등 5명을 구속했습니다.
버스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을 때였다. 갑자기 들려온 성인용품점이란 단어에, 귀가 쫑긋 섰다. 예전이었다면 완전히 다른 세계 일처럼 들렸을 텐데.
-업주 이 모 씨는 전부터 성인용품점을 사채업의 탈세용 및 마약 보관소로 활용해 왔다는 혐의를 받는 가운데, 경찰은 최근 마약 유통 관리 조직의 총책과 투약 사범들의 자백을 근거 삼아 해당 가게 건물을 급습하여 성인용품으로 위장된 마약이 가득한 지하 창고를 발견했습니다.
듣고 있자니 왠지 뜨악했다. ‘라이크 어 버진’에선 그런 일이 없겠지. 설마….
나는 다른 화제로 넘어가는 앵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기실 내겐 마약보다 다른 문제가 있었다.
직원용 카드를 꺼내며 건물로 들어서기 전, 나는 고갤 돌려 주위를 살폈다. 카페로 개조한 단독주택, 실제 주택의 야트막한 지붕들과 하늘을 뚫을 듯 우뚝 선 갤러리 2층 조형물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차만 몇 대 지나갈 뿐 보행자도 거의 없다.
다행이다. 하긴 지하철에서 버스로 노선을 바꾼 걸 어떻게 알겠어. 게다가 버스는 두 번 환승까지 해야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