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209
209
나는 이대로도 괜찮나?
“야. 괜찮겠어?”
조태웅이 김주영의 옆구리를 찔렀다. 하지만 김주영은 확고했다.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거야. 아직 애매하다는 거고.’
김주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먹을 꽈악 쥐었다. 지금까지의 작업물에 꽤 만족하고 있었던 김주영은 블루믹의 샘플링 제안에 머리가 띵 해졌다.
다른 팀은 어떨지 모르나 이주혁과 박진혁이 중심이 되어서 순항 중일 게 분명했다.
‘타이틀 후보에서 빼는 게 맞아.’
이래서는 버스 타는 것과 다르지 않은가. 김주영도 자존심은 있었다.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 너는 괜찮지? 너무 나 혼자 결정했나.”
“나야 니가 그런다면 상관없는데….”
조태웅은 조금 아깝긴 했지만, 김주영의 의견에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어쨌든 작곡에서 김주영이 차지하는 지분이 많았으니까.
이종수 피디가 씨익 웃었다.
‘좋아. 이래야 그림이 살지.’
그는 박수를 짝, 치고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합시다. 다들 다시 작업하러 들어가 주세요.”
“넵.”
각자 집으로 향하는 도중에 이안이 김주영 옆에 섰다.
“야, 왜 그랬어?”
“나 좀… 쪽팔려서….”
“그래?”
“나만 깍두기 되는 거 싫어. 그리고 이거 한 곡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잖아.”
샘플링은 오로지 자신의 팀에만 있는 혜택이었다. 다른 팀과의 격차에 쪽팔림을 느낄 새도 없었다. 완성해야 할 곡은 두 곡, 김주영은 3박 4일 내로 완벽히 완성할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해야 제대로 할 거 같아서.”
김주영은 팀 선정에서 이안을 뺏겼다고 징징대던 것과는 다르게 단단해져 있었다.
그는 누가 어디 팀에 있고 말고 이제는 신경 쓸 수 없었다. 블루믹의 샘플 소스로 감을 잡은 뒤 타이틀 후보곡은 제대로 해 볼 생각이었다.
[오올. 의지는 인정한다.]이안이 휘파람을 불었다. 어쩌면 지금 가장 성장하는 건 김주영이 될 것 같았다.
이안은 이주혁의 뒤를 따라가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이대로도 괜찮나?’
* * *
블루믹이 김주영에게 샘플 소스를 건네주고 적절한 조언을 해 준 후 다음 팀은 박진혁과 박서담 팀이었다.
“형, 이거 너무 긴 거 아니에요?”
“재밌지 않아?”
박진혁과 박서담이 비밀 얘기하듯 속삭이고 있었다. 블루믹은 그들 사이로 다가가 모니터를 쳐다봤다.
“얘들아, 뭐가 잘 안 되니?”
“형, 이거 한번 들어 보세요.”
박서담이 어깨를 움찔 떨더니 박진혁의 손에서 마이크를 뺏어 들고 바로 곡을 재생했다. 덥스텝으로 시작한 음악은 급격히 변주되더니 피아노 선율과 함께 아예 새로운 장르로 변했다.
“와… 이거.”
“어떠세요?”
“이게 전부 한 곡이라고?”
“넵.”
박서담과 박진혁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믹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제 턱을 쓸어내렸다. 아까 이 피디와 했던 인터뷰에서 박진혁이 새롭지가 않다는 말을 철회해야 할 것 같았다.
“난해한데…. 묘하게 중독성 있네.”
박진혁은 그새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블루믹의 귀에는 신선했지만, 대중에 먹힐 곡인지는 의문스러웠다.
“근데 가사 들어갈 자리는 있니?”
“걱정 마요, 형. 이 곡 길어요.”
“얼마나 긴데?”
박진혁이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7 자를 만들었다.
“7분?”
블루믹이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7분짜리 곡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흔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이 곡은… 타이틀 선정에서는 좀 불리할 수 있겠다. 이유는 알고 있지?”
“네.”
곡이 길어서 지루하지 않도록 다양한 시도를 한 것은 괜찮았지만 사람들은 3분에서 4분 사이의 곡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래도 7분은 너무 긴데…. 그냥 너네 하고 싶은 거 하겠다는 소리지?”
“넵. 그냥 즐기기로 했어요.”
블루믹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쟁이고 타이틀 선정이고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었다. 그는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박서담을 보며 말했다.
“서담이는, 동의하는 거 맞아? 진혁이가 형이라고 니가 다 굽혀 줄 필요는 없어.”
“아뇨, 저도 괜찮아요. 형이 다음 곡은 제 위주로 만들어 준대요.”
“그래? 어떻게 잘 협의가 됐구나.”
둘 다 표정이 아주 밝았다. 만족도로 치자면 직업 만족도 100% 정도는 거뜬히 넘을 것 같았다.
박진혁이 양팔을 들어 올리고서는 소리쳤다.
“박서담 위주로 갑시다!”
“예에!”
박서담도 소리쳤다.
블루믹은 ‘그래, 너네가 행복하면 됐다.’ 같은 아련한 표정을 짓다가 이어지는 박서담의 말에 고개를 뒤로 빼면서 의아함을 나타냈다.
“아, 그리고 랩 좀 봐주세요.”
“랩? 서담이 너도 랩해 보게?”
“네.”
블루믹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가 평가하는 박서담은 특유의 음색이 돋보여 딱히 랩을 하지 않고 보컬만 다듬어도 충분히 메인 보컬감이라 생각했었다.
‘진혁이가 꼬셨나?’
근데 랩에 ㄹ 자 근처에도 안 가 본 박서담이 갑자기 랩이라. 블루믹은 해맑게 웃고 있는 박진혁과 박서담을 번갈아 쳐다보며 생각했다.
‘스톡홀름 신드롬인가.’
* * *
마지막 팀은 이주혁과 김 현, 그리고 이안 팀이었다.
그들은 최지민에게 보여 줬던 즉흥곡을 더 깔끔하게 다듬었고, 심지어 보컬 가이드까지 넣은 상태였다.
“오, 여긴 아예 한 곡 완성인 거야?”
“어떠세요?”
따로 헤드폰은 필요하지 않았다. 스피커에서는 그들이 만든 곡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블루믹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가이드까지 있으니 평가하기 아주 좋았다.
“역시, 좋다.”
세 명의 표정이 밝아졌다.
“곡은 어떻게 작업했어?”
“주혁이 형이 전체적인 방향을 잡고 저희가 대략적인 리듬이나 멜로디를 짜 봤어요.”
“어쩐지… 이 집이 제일 더럽더라니…. 그냥 막 두들겼구나?”
세 명이 멋쩍게 웃었다. 작업에 몰두하느라 난장판인 집 안은 여전했다.
“한 번 더 들어 볼게.”
블루믹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리듬을 탔다. 중독적인 음악에 따라 부르기 좋은 보컬, 서정적인 가사까지 완벽했다.
“이안이랑 현이가 어디 어디 했는데?”
“여기 이 부분이 이안이고…. 현이는 이쪽이요.”
“흠, 그래?”
이주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부분을 보면서 블루믹이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 의견 필요한 건 아니지? 지금도 괜찮은데.”
“넵.”
역시 이주혁이라면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취향과 방식이 있으니 여기서 자신이 건드려 봤자 곡의 좋은 점만 죽여 놓을 거 같았다.
‘내가 평가하는 것도 이상하지.’
이미 이주혁은 완성된 프로듀서였다. 블루믹이 손가락을 튕겼다.
“좋아. 이제 다음 곡 준비해야지?”
“다음 곡은 좀… 생각 중이에요.”
“그래? 내가 도와줄 건 없고?”
“음… 아직은요.”
“그래? 어차피 다음에 또 올 거니까 그때 들려줘.”
세 명은 블루믹에게 깍듯이 인사하고는 긴장이 풀려 침대에 누웠다.
블루믹은 이대로 집을 나서려다가 다시 뒤돌아서서 이주혁을 바라봤다.
“주혁아, 너만 잠깐 나와 볼래?”
“네? 네.”
이주혁이 벌떡 일어나서 블루믹을 따라 집 밖으로 나왔다. 이 피디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그들을 지켜봤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봐. 지금 곡 아주 좋아. 이 곡만으로도 타이틀 먹을 수 있을 거 같아. 진심으로.”
블루믹은 듣기 좋은 소리만 했는데, 왠지 이다음에는 안 좋은 말이 나올 것이란 예감에 이주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겨우 이런 말 하려고 부른 것은 아닐 것이다.
“내 생각에는, 너의 개성이나 색깔이 너무 확고해서….”
“자가복제 같나요?”
“아니, 그건 아니야. 다만… 이안이랑 현이의 장점이 조금 죽는 거 같아. 이건 팀플레이잖아.”
이주혁이 정곡을 찔린 듯 표정을 굳혔다.
“다음 곡은 다양한 시도를 하거나. 너희 셋이 조화로울 수 있게 고민 좀 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사실, 저도 그거 고민 중이었어요, 형.”
“그래? 아직 답은 안 나왔고?”
“네.”
블루믹이 주혁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는 별다른 조언을 해 줄 수 없었다. 해답은 이주혁 자신이 찾아야 했다.
“그래도 첫 곡이 빨리 나왔으니까 생각할 시간은 있을 거야. 잘 생각해 봐.”
“네, 형. 조언 고마워요. 들어가세요.”
블루믹은 말을 하면서도 괜한 말을 건넨 게 아닐까 고민했었지만, 다행히 이주혁이 기분 상하지 않게 잘 들어 준 것 같아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주혁이는 역시 잘해. 하지만… 개성이 너무 강한 것도 문제네.’
정원 중앙으로 향하면서 블루믹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주혁이가 내 말을 잘 알아들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이안과 김 현의 참여 지분이 많다고 해도 편곡에서 들어가는 이주혁의 색깔이 너무 강했다.
‘이대로 계속한다면 팀플레이의 의미가 흐려지지.’
그래도 왠지 아위 멤버들이라면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셨어요?”
생각에 잠긴 블루믹을 이종수 피디가 깨웠다.
“이제 제가 얘네들을 평가할 일은 없을 거 같네요.”
“그래요?”
“네, 다 잘해요. 아마 이번 서바이벌이 끝나면 더 이상 멘토가 필요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의식적으로 뱉은 말에도 괜찮은 예고편 어그로가 나왔다. 이 피디가 웃음을 참고서는 말했다.
“그럼,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는 누구일 거 같나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역시 주혁이네 팀이죠.”
“그럼 주관적으로 봤을 때는요?”
“당연히 주영이죠. 제가 직접 샘플 소스까지 옮겨 줬는데…. 걔가 타이틀 포기만 안 했으면 저작권료가 얼마야?”
결국, 이 피디는 소리 내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블루믹이 귀가하고 남은 아위 멤버들은 야외에 준비된 식사 자리에서 식사를 함께했다.
눈에 띄게 퀭해진 멤버들을 보며 이 피디가 작게 웃었다.
“고생 많이 하셨을 여러분을 위해 저희가 성대한 만찬을 준비했어요.”
“진짜요?”
스태프들이 끊임없이 음식을 날랐다. 멤버들이 활짝 웃었다. 녹화하면서 보던 중 가장 밝은 웃음이었다.
이 피디의 식사하면서 자유롭게 얘기하라는 말을 끝으로 제작진도 밥을 먹으러 갔다.
“형, 막 공중제비 돌았다면서요!”
“뭐? 아냐, 그렇게까진 안 했어.”
최지민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건지는 모르나 공중제비는 명백한 과장이었다. 이안이 황당한 얼굴로 박서담을 쳐다봤다.
“현, 너네는 작업 잘됐어?”
“우린 이미 한 곡 끝냈지. 너네는?”
“우리도. 죽이는 거 하나 썼지.”
박진혁과 김 현이 서로 이죽거리면서 말하던 순간, 입 안에 음식을 욱여넣은 김주영이 벌떡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멤버들이 놀라서 김주영을 쳐다봤다. 그의 옆에 앉은 김 현이 덩달아 일어나서 김주영의 어깨를 짚었다.
“야 앉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일어나?”
“나 작업할 거 많이 남아서 급해.”
박진혁은 김주영 근처에 그대로 있는 음식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헐, 김주영이 이걸 다 남긴다고? 우리 팀 돼지 김주영이?”
“누가 돼지야!”
무심결에 버럭 소리친 김주영은 손으로 제 입을 막고 입 안에 든 음식물을 빠르게 우물거렸다.
“주영아. 머리 식히는 시간도 필요해 앉아.”
“맞아. 나도 밥 좀 먹자. 너 먼저 가면 나는 뭐가 되냐?”
조태웅이 우우 야유하면서 항의했다. 마지못해 앉은 김주영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김주영의 왼쪽에 앉은 이안이 넌지시 물었다.
“감은 잘 찾은 거 같아?”
“…어. 조금?”
그의 얼굴을 살피니 중간 소집 때와는 다르게 안색이 많이 밝아져 있었다. 이안이 피식 웃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나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