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266
266
정답입니다.
‘여기가 어디… 내가….’
눈 떠보니 병원으로 추정되는 하얀 천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
내가 뭘 했었지.
몸이 무거워서 눈동자를 돌려 근처를 훑었다. 그의 옆에서 눈이 퉁퉁 부은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못 본 사이 많이 핼쑥해져 있었다.
“엄마….”
쇳소리가 섞이고, 마른 입술 때문에 제대로 발음도 안 됐지만, 그 미세한 소리를 포착한 박세온의 부모님이 황급히 그를 살폈다. 눈을 깜빡이고 있는 아들의 모습. 또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세온아…!”
“잠깐, 선생님!”
아버지가 급히 뛰쳐나가 의사를 부르러 갔고, 어머니는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크게 오열했다.
“아….”
부모님의 우는 얼굴을 보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박세온의 눈에서도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세온아… 내 아들….”
“왜 그랬어… 그렇게 가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 * *
아위가 며칠간 바쁜 스케쥴을 소화하는 사이,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형, 의식 찾았대?”
(어, 회복이 빨라서 곧 일반 병동으로 옮길 거 같대.)
심정지 상태가 오래돼서 예후를 장담 못 하겠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안은 조심스레 물었다.
“…다 괜찮은 거지?”
(의사 선생님이 기적이라고 하더라.)
“다행이다.”
요새 우중충했던 정지수의 목소리에 웃음이 섞여 있었다. 이안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늘 긴장했던 몸의 근육이 이완되는 느낌이었다.
(조만간 다 같이 면회 가자. 너네한테 할 말도 있고.)
“그래. 꼭 연락해.”
의식 차린 마이킷 세온, 일반 병동으로 옮겨져…K 대학교 병원 “예후가 좋았다. 기적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
K 대학교 병원 측, “마이킷 세온, 우려했던 일 일어나지 않았다. 현재 회복에 전념… 병원 앞 소란 자제 부탁.”
― 다행이다ㅠㅠㅠㅠㅠㅠㅠ
― 나 지금 눈물난다ㅠㅠㅠ 내가 생각보다 더 많이 좋아했나봐ㅠㅠㅠ
― 지금 병원 피셜만 올라오고있는데 이와중에 ST엔터 공지 아무것도 없는거 실화냐
― ST 엔터 직원 글 봄? 월급이 거의 일년동안 밀려있다던데 가수 정산도 없는거아니냐
ㄴ 저기 5년 전부터 말 많았잖아
(철민갓) 우리 먼저 들어가 있을게
(이안8) ㅇㅇ 우리도 근처야
병원 앞에는 기자들로 바글바글했다. 단순히 마이킷이 아위와 절친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몰린 것이다. 병원 앞에 죽치고 앉아 있으면 면회를 오는 아위를 찍을 수 있으니까.
물론 마이킷을 찍는 것은 덤이었다. 정지수의 차를 타고 온 마이킷이 병원에 도착하자 기자들은 병원에 방문하는 다른 사람들을 상관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 댔다.
[현장PHOTO] 면회 풀린 세온, 병원에 도착한 마이킷 멤버들 [★뉴스 현장] 멤버 면회 가는 마이킷 지수, 리더의 무게“와 무슨 사람들이 저렇게….”
조수석에 앉은 김명진이 혀를 쯧, 찼다.
멤버들도 인상을 찌푸렸다. 저절로 우리 너무 민폐 끼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면회 와 달라는 박세온을 안 볼 수는 없었다.
아위의 밴이 병원 입구에 정차하자 잠시 앉아서 쉬던 기자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왔다!”
“떴다! 떴다!”
뭐?
밴에 내려 병원 안으로 향하던 멤버들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아위의 매니저, 김명진과 임진우 그리고 박지환이 그들의 어깨를 밀었다.
“무시하고 그냥 가.”
“빨리 가는 게 도와주는 거야.”
기자들은 신나서 플래시를 터뜨렸고, 아위가 왔다고 광고하는 것처럼 시끄럽게 굴었다. 그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멤버들은 매니저의 말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하….”
기분이 참… 더러웠다.
* * *
“왔어?”
“…야!”
박세온의 병실은 1인실이었다. 취재하려는 사람이 몰려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다. 마이킷과 아위가 다 들어와도 넓은 병실이었다. 침대에 앉아 있는 박세온을 본 멤버들이 크게 소리쳤다.
“너, 너 이씨…!”
“쓰읍, 얘들아 소란피우지 말자고 했잖아. 가족분들도 계시는데.”
박세온을 보자마자 씩씩거리는 멤버들을 능숙하게 진정시킨 이주혁은 박세온의 부모님께 먼저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뭐 이런 걸 다 가져왔어요.”
“빈손으로 올 수는 없잖아요.”
“고마워요, 편히들 얘기하고 있어요.”
“아, 안 그러셔도 되는데….”
친구들끼리의 얘기가 필요하겠지. 박세온의 부모님이 병실에서 나가고, 뒤에서 침착하게 상황을 살피던 이안은 박세온의 옆에 앉았다.
“몸은 좀 어때?”
“많이 좋아졌어.”
“다들 괜찮고?”
이안은 마이킷 멤버들을 살폈다. 박세온을 보자마자 한바탕 눈물을 쏟아냈는지 다들 눈가가 붉었다. 그래도 표정은 좋아 보였다. 박세온이 깨어났으니까.
“의식 찾았잖아. 걱정했던 대로 식물인간도 아니고.”
“진짜 이러다가 어디 잘못되는 줄 알았어.”
“원래 의사는 최악을 상정하고 말하잖아.”
중간에 낀 박세온은 죄인이 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너 다신 그러지 마라.”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조태웅과 김주영이 틱틱거리면서 말했다. 다른 멤버들도 한마디씩 보탰다. 그게 다 걱정과 염려가 섞인 말이라서 박세온이 희미하게 웃었다.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물론 그 모습에 울분이 터지는 것은 아위였다. 그들은 감정이 격양되어서 박세온을 구박했다.
“너무 뭐라 그러지 마. 우리가 이미 뭐라고 다 했어.”
정지수의 만류에 아위 멤버들이 정신을 차렸다.
“몸은 괜찮지?”
“막 어디 불편한 건 없고?”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다 해 줄게.”
괜히 구박했나. 어쩔 줄 몰라서 비굴하게 구는 아위를 보자, 마이킷 멤버들 까지도 웃음을 터뜨렸다. 무거웠던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
“무슨 이유였는지… 물어봐도 돼요?”
“야, 서담아.”
박서담의 질문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순식간에 싸해진 분위기에 박서담이 멋쩍게 웃었다.
“아, 대답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되는….”
“아냐, 괜찮아.”
박세온이 고개를 숙였다.
“그냥… 다 힘들어서 그랬어. 회사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예전에 정산 밀린다는 얘기했었잖아. 그 문제가 좀 컸어.”
“….”
“모든 사람이 나를 욕하는 것 같고.”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사실 악플은… 견디기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 이미지 이용해서 별짓 다 한 것도 사실이긴 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 이런 관심도 받지 못한다면 금세 사람들에게 잊혀질 것만 같았다.
데뷔를 비슷한 시기에 했는데 저 멀리 올라가고 있는 아위가 부럽기도 했고, 어떤 짓을 해서라도 같은 위치에 서고 싶었던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좁혀지지 않는 격차에 좌절하기도 했다. 아위에게는 비밀이지만.
“괜찮다고 해서 진짜 괜찮았던 건 아니잖아.”
“그건….”
아위도 악플을 염려하는 팬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 괜찮다라고 말한 적은 있었지만 그래도 가끔 과한 비난을 보면 마음이 쓰렸다. 박세온도 그런 마음일 것이다.
“걱정시켜서 미안해.”
“그리고 또 할 말이 있을 텐데?”
“다신 이런 거 안 할게.”
“좋아.”
긴장이 풀린 그들이 도란도란 얘기하는 가운데 이안은 조용히 일어났다. 소속사가 몇 년간 제대로 정산을 안 해 줬다면 1인실 입원비도 감당하기 힘들 터, 익명의 기부자가 되어 볼까. 어차피 돈은 넘쳐 났으니까.
“이안아 잠시만.”
마이킷의 리더, 정지수가 이안을 따라 나와서 그를 붙잡았다. 이안의 팔뚝을 간절하게 잡은 그가 머뭇거렸다.
“혹시….”
“소속사 때문이야?”
정지수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거든… 소속사랑 척져서 대부분 좋은 꼴 못 봤으니까.”
정산이 밀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정지수는 조용히 변호사를 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눈치챈 ST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유광식은 아이원 곽도현 봐라 그렇게 소송하고 나와서 지금 매체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 꼴 되고 싶냐 내가 연예계 인맥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 너는 감당할 수 있다 쳐도 다른 멤버들 생각해라. 라며 그들을 협박했다.
“근데 세온이 저렇게 된 거 보니까 이젠 진짜 나서야 할 때가 된 거 같다. 애들한테 듣기로는 대형 로펌에 끈 좀 있다며.”
“어.”
“우리 좀 도와줄… 수 있겠어?”
정지수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안이 크게 숨을 내뱉었다. 상황이 마이킷에게, 박세온에게 가혹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소속 연예인을 보호해야 할 소속사에서 보호는커녕 줘야 할 돈까지 밀린다니.
생각에 잠겨 말하지 않는 이안을 바라보며 정지수는 변명처럼 말을 늘어놓았다.
“한창 바쁜 너한테 이런 부탁 하는 게 정말 미안하고 염치없는 일인데… 도와줄 사람이 너희밖에 없어서….”
“바빠도 이런 일 맡는 거 귀찮은 일 아니야, 형.”
정류원을 통해 몸집을 불리고 있었고, 지운조와 정연재 변호사는 이안의 부탁이라면 들어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안은 전생에서 이미 소속사와 소송해서 이긴 경험도 있었다.
“당연히 도와줘야지.”
“정말 고맙다. 내가 나중에 꼭 보답할게.”
“보답은 무슨, 우리 친하잖아. 나만 그렇게 생각했어?”
이안은 지갑에서 정류원의 명함을 꺼내 정지수의 손에 쥐여 줬다.
“이 분은 내 대리인. 전화해서 필요한 거 말하면 될 거야. 이쪽에는 미리 말해 둘 게.”
“진짜… 진짜 고마워.”
“형, 고맙다는 말은 잘 풀리고 나서 해도 돼.”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버텨 왔던 정지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 * *
“이안 씨.”
“…또 보네요.”
정지수를 먼저 보내고, 정지수가 부탁했던 일과 박세온의 입원비 문제로 정류원과 통화를 마친 이안은 병원 복도에서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 나인 세븐의 엄지환이었다.
“지환 씨, 누구 면회 왔나 봐요? 우연이네.”
“…너 기다렸어. 할 말이 있어서.”
“뭔데?”
저쪽에서 말을 놓으니 이안도 불편하게 존대할 필요는 없었다. 벽에 기댄 이안이 팔짱을 꼈다.
엄지환은 막상 이안을 마주하고도 이 말을 꺼내야 할까 망설였다. 한참을 입을 뻐끔거린 엄지환이 토해 내듯 말했다.
“양인준 기자. 나한테만 손 쓴 거 아니야.”
“뭐?”
“호텔에서 박세온 본 적 있어.”
이안의 눈이 크게 뜨였다.
‘너를 알고 싶어’ 촬영장에서 매니지먼트 리프의 오성수 실장이 했었던 그 말, 그리고 엄지환.
양인준이 박세온한테 까지 그 제안을 했다고?
“미수였어. 내가 가라고 했으니까.”
“왜 그랬는데?”
“…그냥.”
자신과는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보고 싶었다. 막상 결과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리고 그걸 나한테 말해 주는 이유가 뭔데?”
“글쎄… 나도 몰라. 그냥 너한테 알려 줘야 할 생각이 들어서.”
이안은 엄지환의 얼굴을 살폈다. 후회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이안은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너도 늦지 않았어.”
“아니, 나는 많이 늦었지.”
엄지환은 씁쓸하게 웃으며 자신의 팔뚝을 문질렀다. 막상 그 말을 듣고 나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튼, 난 말해 줬다. 간다.”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 멀어져가는 엄지환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이안이 고개를 돌렸다.
‘야.’
그는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저승사자를 응시했다.
[말씀하세요.]‘양인준이 진이야?’
저승사자의 목에 걸린 진이 삐빅! 기계음을 냈다.
저승사자가 웃었다. 평소에 기계적으로 웃음 짓던 표정이 아니었다. 눈과 입이 찢어지도록 웃는 모습이었는데, 그 표정이 묘하게 섬뜩해 보여서 이안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정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