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01)
104화. 하늘을 보다
후우욱.
취풍신개의 몽둥이가 휘둘러진다.
선천의 힘으로 잡아 늘려진 시간 속에서 이벽은 그 표면에 맺히는 강기의 선명한 빛을 보았다.
강기는 강기로 맞서야 한다.
그 즉시 이벽은 강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한껏 늘어난 시간 속에서도 시간은 모자랐다. 그리고 몽둥이가 이벽의 검을 두드렸다.
콰아아앙!!
“크—”
거센 충격이 일었고,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이벽은 강기는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온몸의 뼈가 뒤흔들리는 충격.
일순 의식이 흐트러졌다. 그러자 이벽의 머리에 스며든 선천의 힘이 훅 사그라들었다.
시간 감각이 헝클어졌고, 이벽의 몸이 끈 떨어진 연처럼 허공을 부유했다.
턱, 터엉.
그리고 이벽의 몸이 땅을 굴렀다.
그대로 널브러진 채 이벽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땅?’
그러나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접전은 험준한 절벽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튕겨 나간 몸이 ‘땅에 닿을’ 수는 없는 것이다.
번뜩, 이벽은 눈을 떴다.
뺨에 닿은 단단한 지면을 느꼈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저만치에서 눈에 익은 혜공의 암자를 발견했다.
“…….”
마침내 상황을 이해했다.
강기의 충돌로 인해 맥없이 튀어 오른 몸이 운 좋게도 절벽의 위로 떨어진 모양이었다.
‘…운이라.’
아니, 이벽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운’일 리는 없다. 이마저도 취풍신개의 계산 속에 있었을 것이다.
이벽은 충돌을 되새겼다.
이것이… 절정을 넘어선 싸움.
“…터무니없군.”
분명 무공은 달라진 게 없다.
허나… ‘달라진 시간’ 속에서 싸우는 이상, 몇 명의 절정고수가 협공한들 상대가 될 리 없다.
그 초입에, 발을 들였다.
“끌끌끌끌.”
그때, 이벽의 시야에 발끝이 나타났다.
해지고 낡아 발가락이 드러나 보이는 그 가죽신은 조금 전에도 본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벽은 몸을 돌아누웠다.
땅에 등을 포개자 이내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이벽은 생각했다.
인세의 누가 있어 발버둥을 치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것은 퍽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손을 뻗어본들 닿을 리 없다.
훅, 취풍신개의 얼굴이 시야에 나타났다.
“어때, 하늘이 참 맑지 않나? 이렇게 높이까지 올라왔는데도 저 하늘은 여전히 멀리 있을 뿐이지.”
“…….”
“하물며 봉우리에조차 오르지 못한 이들은, 저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영영 알지 못하는 법이야.”
씩, 취풍신개가 웃었다.
“축하하네. 마침내 자네는 상단전을 열었어. 아니, 어쩌면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을 그저 깨달았을 뿐이겠지.”
“…상단전.”
툭툭, 취풍신개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정수리를 두드렸다.
“통빡 말이네, 통빡.”
“…….”
“흔히들 말하는 하단전과는 달리, 상단전의 운용은 전혀 다른 종류의 내력을 필요로 한다네. 선천진기, 진원진기, 말은 많지만 뭐, 결국은 같은 뜻이지.”
움찔, 이벽은 흔들렸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취풍신개가 끌끌 혀를 찼다. 끙차,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것은 이를테면 풀이나 나무, 바위가 기를 가진 것처럼 자네라는 존재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힘이라네.”
“…….”
“헌데 자네는 이미 그 힘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쓰는 것 같더군. 그렇지 않나? 응?”
‘…알고 있었던 건가.’
허나 이벽은 납득했다.
어쩌면 절대고수의 앞에서 무공에 관해 무언가를 숨기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취풍신개가 나지막이 말했다.
“마침내 절정의 끝에 이르러 그 위에 다시 하늘이 있음을 목도 했음이니, 이를 ‘목천’이라 한다네.”
…목천(目天).
하늘을 보다.
초절정이니 절대고수니 막연하게 회자되는 절대자들의 영역에도 다시 경지가 나뉘는 모양이었다.
“…그 다음에는 뭐가 있소?”
“그야 뻔한 거 아니겠나? 하늘을 목도하고 그 안에 자신을 비추었음으니, 무인이라면 응당 언젠가는 그 하늘을 향해 올라가야겠지.”
“…….”
길은 끝없이 이어지는가.
하늘은 숨이 막힐 만큼 멀고 아득하다. 그 아래에 선 자신은 하염없이 작기만 하다.
이제 겨우 작은 봉우리 하나에 올랐을 뿐, 평생을 걷는다 해도 도저히 닿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가르침에 감사하오.”
“끌끌끌, 나도 설마 삼십 년 가르친 내 제자보다 남의 제자에게 먼저 하늘을 가리킬 줄은 몰랐다네. 에고고, 거지 팔자 드럽게 박복하기도 하다!”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벽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암자 안에서 외팔의 늙은 중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다. 주름진 얼굴이 맑은 웃음을 보였다.
“오셨소, 시주?”
“…….”
“시주께서는 고작 이틀 만에 다시 한 꺼풀을 더 벗은 듯하군. 괄목상대란 참으로 시주를 두고 하는 말이로고.”
꾸벅, 이벽은 고개를 목례했다.
“그래, 다시 와주어 고맙소. 끌끌, 세상이 어지러우니 이 늙은이가 어린 시주께 참으로 무거운 짐을 맡기는구만.”
* * *
이벽과 일행은 소림을 나섰다.
처음 소림을 오를 때 마중을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숭산 아래에 위치한 불영촌까지 소림 측의 배웅을 받았다.
허나 퍽 고압적이었던 그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모쪼록 무탈하시길 바라오. 내 시주들로부터 얻은 ‘가르침’은 결코 잊지 않겠소.”
꾸벅, 덕수가 고개를 숙였다.
허나 얼굴에서는 채 감출 수 없는 분함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파진성이 대뜸 그 어깨에 손을 올렸다.
“케헤헤, 암! 고래야지. 자고로 ‘패배’에서 교훈을 얻어야 더 강해질 수 있는 법이지! 어때? ‘패배’하고 나니 자신이 한낱 쓸모없는 달걀대가리임을 잘 알겠지? 케헤헤!”
“…….”
툭, 툭, 정수리를 두드린다.
“이 해남의 별 파진성이 더 이상 ‘패배’하지 않는 비결을 가르쳐줄게. 머리를 길러. 그리고 고기를 먹어. 그럼 돼. 진짜라니까?”
크윽, 덕수가 신음을 흘렸다.
파진성의 입에서 패배라는 말이 한 번씩 뱉어질 때마다 미간이 점점 더 꾸깃꾸깃해진다.
“케케케! 근데 어디 아프냐? 마빡이 점점 빨개지는데? ‘패배’할 때 잘못 맞아서 달걀이 깨졌나?”
“…크으윽!”
“…아미타불, 금번에는 시주께 참으로 결례가 많았소이다. 소림은 언제든 그대를 환영할 것이오.”
공암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덕수와 마찬가지로, 하는 말과는 달리 기색이 영 좋지 않았다.
방장의 명이 지엄하니 일단은 고개를 숙이긴 하지만, 진짜로 다시 찾아오면 매우 불편해할 것 같은 얼굴로 공암은 돌아섰다.
우르르, 무승들이 몰려갔다.
“어 시원하다~”
“…그러게요. 입으로 똥을 싸니 퍽 시원하시겠죠.”
파진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공손수가 쏘아붙였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했다.
하기야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오룡삼봉.
정파 후기지수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달리 정파무림의 미래를 이끌어갈 대표적인 이름들이다.
그들 중 하나를 꺾었다는 건, 적어도 천하의 후기지수 중에서는 대적할 이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고작 저딴 놈이 용이라니 말야, 이거 이러다 나도 곧 대주처럼 별호가 붙는 거 아냐? 가는 곳마다 어여쁜 소저들이 달라붙고… 케헤, 에헤헤! 이것 참 난처— 케헥!”
퍼억!
그때, 파진성이 자빠졌다. 엉덩이에 공손수의 발길질이 날아든 것이다.
“뭔 짓이야?!”
“죄송해요. 너무 역해서 그만.”
파진성이 꿍얼거리며 일어난다.
그 꼴을 바라보며 공손수가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피식 웃었다.
퍽 복잡한 웃음이었다.
파진성은 ‘성취’를 얻었다.
섣부른 소환단의 섭취로 주화입마에 빠진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후로 비무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얼추 비슷하던 두 사람의 경지는 급격히 차이가 벌어졌다.
지금의 장난스런 기습 역시 파진성이 피하려 마음먹었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을 테다.
허나 파진성은 피하지 않았다.
“…뭐, 이제는 그 낯짝 볼 일도 없을 테니까요. 자잘한 빚은 없는 셈 쳐줄 테니 앞으론 자기 갈 길 가도록 해요.”
공손수가 목소리를 달리했다.
그리고 일행들 사이에선 잠시 침묵이 흘렀다.
툭툭, 자리에서 일어난 파진성이 먼지를 털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 마지막인데, 오늘은 다 잊고 술이나 거하게 한잔 하자고. 절간에 틀어박혀서 며칠간 냄새도 못 맡았더니 속이 다 쓰리네.”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아니, 쥐방울 넌 마시지 말고. 돌아가는 배에서 또 토하고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러냐? 케헤헤! 에헤헤헤!”
“…맞다. 그때 죽이기로 했었지.”
퍼억!
파진성이 다시 땅을 굴렀다.
콰득, 콰득, 공손수의 무자비한 발길질이 이어졌다.
허나 온몸 구석구석을 짓밟히면서도 파진성은 자지러지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은 적응하는 법이군.’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두들겨 맞으면서도 썩 기분이 나쁘지 않은 능력(?)이 생긴 모양이었다.
혹은… 실로 ‘길들여졌다’.
아하하, 언미희가 작게 웃었다.
그리고 일행은 객잔을 잡았다.
말마따나 가는 길은 다르더라도 하루 정도 쉬어가며 여정을 준비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왁자한 식사 자리가 이어진 뒤 이벽은 먼저 처소로 향했다. 침상에 드러누웠다.
“…….”
혜공과 취풍신개로부터 들었던 녹림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배후에는… 아마도 혈교의 잔존 세력들이 도사리고 있다.
‘대수롭지 않은’ 산적으로 위장하여 서서히 세력을 키운다. 다만 확증이 없을 뿐이라고 했다.
허나.
말할 것도 없이 천하는 넓다.
정사무림을 막론하고 크고 작은 산들은 무수히 많으며 발에 채이는 것 또한 산적들이다.
그런 와중에 무턱대고 혈교의 흔적을 추적한다는 것은 숲속에서 나무를 찾듯 막연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천하의 산적들 모두가 한 패거리라는 보장조차 없는 것이다.
취풍신개는 ‘타초경사’를 이야기했다.
—우선은 적당히 짚이는 곳들을 두들겨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자네가 대놓고 행동에 나서면 놈들 또한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지.
풀숲을 두드려 뱀을 찾는다.
정파무림은 개방이, 사파무림은 하오문이 눈을 부릅뜬 채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혹은 이대로 사파무림으로 돌아가도 괜찮네. 하오문 측이 어떻게 나올지는 나야 모르겠지만… 뭐, 나름대로 생각들이 있겠지.
이벽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고심 끝에 결국은 공손수의 의견을 구했다.
—저라면 이대로 나아가겠어요.
—어째서지?
—지금의 사파무림은 뭐, 그럭저럭 균형이 이뤄졌으니까요. 가만히 놔둔다고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 거예요.
—…….
—뿐만이 아니죠. 이대로 오라버니의 명성이 사파무림을 넘어 온 천하에까지 퍼질수록 흑천방은 점점 더 사패련을 집어삼킬 명분을 잃게 되잖아요?
—…그렇군.
—반면… 의혈맹과는 아직 갈등이 남아있죠. 어째서 우릴 그렇게 괴롭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림과 개방, 무당까지 등에 업은 지금 어떻게든 해두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환이 되지 않을까요?
공손수의 답은 퍽 명쾌했다.
말마따나 일행들은 사실상 의혈맹의 본단이라 할 수 있는 황보세가가 위치한 하북으로 목적지를 잡았다.
마침 취풍신개가 가르쳐준 ‘몇 군데의 짚이는 장소’들 중에는 산서와 하북, 산동을 가로지르는 태행산맥이 포함되어 있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기뻐요.
그리고 공손수는 작게 웃었다.
허나… 정작 공손수 본인은 오늘이 지난 이후로는 일행과 갈라져서 암영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더 이상 함께하지 않는다.
힘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문득, 이벽은 생각했다.
파진성의 성취는 소환단의 효능과 더불어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던 재능이 어우러진 기연이었다.
허나… 막혀있던 기혈을 뚫어내고 영약의 흡수를 도운 것은 분명 자신이 해낸 일이었다.
추궁과혈.
자신의 내공을 통해 타인의 혈도를 씻어내리거나 영약의 흡수를 돕는 행위.
물론, 타인의 몸에 자신의 내력을 주입한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시전자까지 영구적인 내력의 손상을 입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나… 이벽은 깨달았다.
애초에 단전이나 내력을 몸 안에 지니지 않은 자신에게는 위험부담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단순한 추궁과혈이 아니었다.
분명히 파진성의 깨달음을 얻는 데에 도움이 된 ‘계기’가 자신 안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벽은 직감적으로 그 정체를 깨달았다.
낙검진천신공.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가르침.
‘…어쩌면 공손수도.’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함부로 확신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여정은 계속해서 위험해질 것이다. 억지로 붙잡아두는 게 과연 올바른 일인지는 아직까지도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이벽은 가부좌를 틀었다.
산만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함과 동시에 ‘새로운 경지’를 가다듬고자 함이었다.
우우웅.
이내 선천의 힘이 기분 좋게 울었다. 이벽은 잠시 그 흐름을 잠자코 관조했다.
‘흐름을… 나눈다.’
타다닷.
허나 바로 그때였다.
예민해진 감각에 불현듯 다수의 인기척이 걸려들었다. 객잔 바깥의 거리가 분주해지고 있다.
“…하아.”
일련의 무리가 객잔을 둘러싸고 있다. 집중을 방해받은 이벽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소의 문을 나섰다.
객잔 바깥에는 이미 일행들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것은 일련의 거지떼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철면개가 있었다.
안색에는 다급함이 흐르고 있다.
이벽을 비롯한 일행들을 발견한 순간, 눈에 띄게 안도하는 얼굴을 보였다.
“허! 다행이구만. 소협들께서 아직 이 근방을 떠나지 않아서 말이오. 하마터면 따라잡느라 또 생고생을 할 뻔했군, 그래!”
“걸개, 무슨 일이오?”
“두 가지 소식이 있소만, 우선은 긴급한 소식부터 말하겠소. 의혈맹이 다시 움직였소. 그것도 이번에는 무려 당가가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