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34)
138화. 안휘성 남궁세가
마차가 안휘성에 들어섰다.
마침내 일행이 남궁세가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안경의 거리에 도착했을 때에는 비무를 약조한 날을 고작 하루 앞두고 있었다.
“…원, 사방이 사람 천지로군.”
흘끗, 창밖을 바라보며 양호명이 말했다.
말마따나 인파가 북적이는 통에 마차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야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일 테니까요. 당금의 천하에서 ‘진짜’ 무림인들의 싸움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요?”
월향이 답했다.
정사연합이 마교의 침공을 막고 상호불가침을 명시한 악양지약이 이뤄진 이후, 어쨌거나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운 시대가 이어져 왔다.
세력 간의 알력은 점차 은밀해졌으며, 범인들의 참관이 허락된 공개비무와 같은 ‘행사’는 사실상 사라지다시피 했다.
헌데.
혜성같이 나타난 사파의 후기지수가 정파무림 각지에서 온갖 파란을 일으키고는, 이제는 무려 천하의 남궁세가주에게 정식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노라 했다.
당일을 앞둔 거리의 공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흥, 축제란 말이지. 무인도 아닌 자들이 남의 사투를 보며 웃고 떠들 생각을 하다니 천박한 노릇이군 그래.”
“…….”
양호명은 심사가 퍽 불편한 듯했다. 허나 이벽은 오히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림과 비(非) 무림이 하나의 천하에 공존할 수밖에 없다면, 그 거리감은 구경꾼과 구경거리가 적당하다.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범인들의 삶이 무너지고 절망이 번지는 것은 너무 쉬운 일임을 이미 겪어보았다.
“아하하… 하지만 지금 우리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지요. 저들의 눈이야말로 남궁세가의 족쇄이자 우리의 방패이니까요.”
남궁세가 역시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을 대비하여 적지 않은 인력을 대기시켰을 것이다. 허나.
섣불리 행동하지는 못할 것이다.
보는 눈이 많을수록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은 정파를 자칭하는 세력의 태생적 특성이었다.
“…….”
이벽을 창밖을 보았다.
축제처럼 떠들썩한 거리의 모습에서 이벽은 문득 왕수련과 장석두를 떠올렸다.
회택의 거리에서 아이들의 손길에 끌려다니던 것도 얼추 일 년 전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때요, 소협? 몸은 괜찮아요?”
그때, 월향이 이벽을 향했다.
이벽은 짧은 상념에서 깨었다.
“멀쩡하오.”
여태껏 상대해온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리라 예측되는 적과의 일전을 앞두고 있다. 허나.
마음은 물처럼 고요했다.
언미희를 되찾을 시간이다.
하아, 월향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지만요. 하지만… 비무를 대비하기 위한 비무에서 그렇게 죽어라고 싸워대다니, 자칫 중상이라도 입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
이벽은 할 말이 없었다.
“험, 험!”
양호명 역시 헛기침을 했다.
“하여간 사내들이란.”
“…맞아. 죽는 줄 알았어.”
대뜸 송영영이 끼어들었다.
“…미안하군.”
“미안하면 무당으로 와.”
“허나 그 정도로 미안하지는 않다. 어떻게든 상처 하나 없이 마무리하지 않았나?”
“쳇.”
송영영이 픽 고개를 돌려버렸다.
피식, 이벽은 작게 웃었다.
며칠 전의 비무를 생각했다.
맨정신으로 적파심공의 강기를 다루는 데에는 끝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허나 동시에.
생각지도 못한 성취를 얻었다.
물론, 월향의 덕분이고 송영영의 덕분이며 또한 양호명의 덕분이기도 했다.
양호명에 대한 입장은 더욱 애매해졌다. 어찌되었건 당장의 적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분명해졌다.
덜컹, 끼익.
마침내 마차가 가까스로 객잔에 다가섰다. 말과 마차를 매어둠과 동시에 마부 사내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빠르게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뭐, 저쪽은 알아서 잘할 테니 신경은 끄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잘 먹고 푹 쉬도록 하죠.”
일행은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웅성웅성.
“…큭.”
양호명이 신음을 흘렸다.
바깥의 거리와 마찬가지로 객잔 내부 역시 인파로 북적거리긴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거리에 쌔고 쌘 것이 칼을 찬 이들이므로 이벽 일행을 알아보며 호들갑을 떠는 이는 없다는 점이었다.
“…물바가지 속 감자들 같군. 이래서야 원, 차라리 마차에서 새우잠을 자는 게 낫겠소.”
양호명이 그 즉시 돌아서려 했다.
허나 월향이 그 어깨를 붙들었다.
“아뇨, 그럴 필요는 없답니다.”
그리고 월향이 당연하다는 듯 한켠의 탁자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곳에 앉아있던 장한들이 벌떡 일어났다.
“험! 잘 먹었다!”
“자, 슬슬 일어나봅세!”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장한들이 자리를 비우고 떠났다. 그리고 그 즉시 월향이 탁자를 차지했다.
“자, 이리와 앉아요, 어서.”
“…….”
이벽은 문을 향해 멀어지는 장한들을 바라보았다. 하오문도는 어디에나 있다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함께 칼을 들고 싸울 수는 없다고 해도 ‘저희’ 역시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으니까요.”
월향이 생긋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주문하지도 않은 식사가 빠르게 차려졌다.
“물론 방도 이미 잡혀있으니 식사를 마치신 뒤에는 올라가서 쉬셔도 좋아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
북적거리는 실내가 못내 불쾌한 듯 양호명이 냉큼 자리를 떴다. 점소이의 안내를 따라 위층으로 향했다.
남은 일행은 식사를 이었다.
“…….”
음식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아니, 이벽은 맛을 느끼기 어려웠다. 사방을 둘러싼 인파 속에서 자신의 이름이 심심찮게 언급되고 있었다.
점점 더 마음은 고요해졌다.
“헤헤! 식사는 좀 입에 맞으시는지요?”
그때, 점소이가 다가왔다.
“그럼요. 고생이 많네요~”
“하핫, 별말씀을. 저희 같은 사람들이야 이럴 때 한 몫 단단히 건지는 게 사는 낙이지요!”
월향이 동전 하나를 건넸다.
“아이고! 감사합니다요! 헤헤!”
꾸벅, 점소이가 허리를 숙이며 냉큼 동전을 받아들고는 저만치로 멀어졌다.
그리고 동전이 사라진 월향의 손에는 당연하다는 듯 접힌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어머.”
쪽지를 펼친 월향의 눈이 흔들렸다.
“무슨 일이오?”
“이거… 우리 하오문이 아니라 소협의 동료가 보낸 연락이에요.”
“…….”
이벽은 작게 웃었다.
어떻게든 준비는 끝난 모양이었다. 나머지는 실제로 부딪히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덜컹, 우르르.
그때였다.
일련의 무인들이 객잔의 문을 열고 우르르 안으로 들어섰다. 인파를 밀치며 객잔의 중앙에 섰다.
“차… 창검대!”
“남궁세가의 창검대다!”
“창검대주 남궁청이다!”
그러지 않아도 들떠있던 인파들은 무인들의 정체를 알아보고서 환호성을 내질렀다.
선두에 선 남궁청의 시선이 객잔 내부를 빠르게 훑었고, 이내 이벽과 눈이 마주쳤다.
저벅저벅.
그 즉시 일행의 탁자로 다가왔다.
“이거 또다시 객잔에서 만나게 되는군 그래. 제 발로 여기까지 와놓고 이제 와서 또 도망치지는 않겠지?”
* * *
일거에 들이닥친 창검대의 무인들은 객잔 내부의 인파들을 바깥으로 우르르 몰아내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대주 남궁청을 제외한 나머지 무인들은 스스로 다시 바깥으로 나섰다.
행여나 대화가 새어나가는 것을 염려하는 듯, 객잔 주변을 빼곡히 둘러쌌다.
그렇게 앉을 곳 하나 없이 붐비던 객잔의 내부는 삽시간에 썰물처럼 텅 비게 되었다.
드륵.
그리고 남궁청은 당연하다는 듯 이벽이 앉은 자리의 맞은편 의자를 꺼내어 앉았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남궁청의 시선은 줄곧 이벽을 향해 있었으며, 월향과 송영영에게는 잠깐의 시선조차 두지 않았다.
후룩.
이벽은 소면을 마저 삼켰다.
“…대단하군. 참으로 대단해.”
마침내 남궁청이 침묵을 깨었다.
“전혀 겁먹은 기색이 아니야. 허세인가? 아니면 아예 겁을 상실한 건가? 어느 쪽이건 놀랍기 그지없어.”
탁, 이벽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밥 먹는 데 방해되는군.”
“그런가? 미안하게 됐네.”
“동석을 허락한 기억은 없소만.”
“거듭 미안하네만, 대 남궁세가가 이 안경에서 무언가를 행하는 것에 대해 허락을 구해야 할 이유는 없다네.”
“…….”
이벽은 그제야 눈을 마주쳤다.
“뭘 하러 왔소?”
남궁청을 향한 감정은 물론 곱지 않았다. 이자야말로 언미희를 납치한 장본인일 테다.
“뭐, 어쨌건 본가에 찾아온 손님이신데 외당주로서 마중이라도 나오는 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일없소. 가시오.”
“핫. 건방진 건 여전하군 그래.”
남궁청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하기야 가주님께 감히 도전장을 내밀 정도니 나 같은 건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나? 이거 참—”
“남궁 대협, 이게 무슨 짓인가요? 정정당당한 비무를 하루 앞두고서 행패를 부리는 게 남궁세가의 방식인가요?”
그때 월향이 목소리를 냈다. 그제서야 남궁청의 시선이 흘끗 그녀를 향했다.
“실례, 소저께선 누구시오?”
“월향이라 합니다. 하오문에 적을 두고 있지요.”
“…뭐라?”
남궁청의 시선이 월향의 위아래를 살펴보았다. 푸핫,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하, 하핫! 그러니까 기녀란 말이로군! 이거야 원! 기녀까지 끼고서 강호유람이라니 이거 팔자 한 번 좋으시구만!”
“…….”
짝, 남궁청이 이마를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과장된 웃음소리가 고요해진 객잔을 가득 채웠다.
“하하, 하하하! 하하핫!”
“뭐가 그렇게 재밌소?”
“하핫, 핫……!”
허나 하잘 것 없는 도발에 응해줄 이유는 없다. 이벽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이내 남궁청이 웃음이 서서히 멎었다.
“…험! 그래. 뭐, 섣부른 짓을 할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말게. 그냥 대화나 몇 마디 해볼까 하여 온 것이니.”
“…….”
남궁청은 내심 분을 삭였다.
이미 가주님께서 직접 나서기로 결심하신 이상 자신이 함부로 손댈 계제가 아니다.
“하핫, 이거 영 머쓱하구만? 헌데 말야. 도저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대체 무슨 꿍꿍이를 품고 여기까지 올 생각을 한 건가? 응?”
“당신 바보요? 비무하러 왔소.”
움찔, 남궁청의 뺨이 흔들렸다.
허나 힘겹게 웃는 낯을 유지했다.
“…말인즉슨 내 귀에는 제 발로 죽으러 왔단 말로 들리는구만. 설마 진짜로 네가 가주님을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지?”
‘…그렇군.’
무슨 생각인가 했더니만.
이벽은 상대의 의도를 이해했다.
이쪽의 ‘꿍꿍이’가 좀처럼 읽히질 않으니 일단 으름장이라도 놓고 볼 생각인 듯했다.
“잘 듣게. 이 말을 하러 왔네.”
남궁청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공연히 외부인파가 몰리는 것도 그렇고, 보아하니 하오문이 여기저기 소문을 퍼뜨린 모양이더군. 그 틈을 타 무슨 짓거리를 하려나 본데, 부디 그만두시게.”
“…….”
“비무를 하러 왔으면 정직하게 비무를 하란 말이네. 그리고 패배를 받아들이게.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자네와 자네 일행을 위해 가장 나은 선택이 될 걸세.”
“잘 알겠소.”
이벽은 즉답했다.
그리고 젓가락을 들었다.
“…비룡대주, 내 말 제대로 들었나? 저지르고 나면 그때는 이미 늦었단 말일세. 목숨을—”
“잘 알겠다고 하지 않았소? 용건이 끝났으면 적당히 좀 가시오. 내 소면이 불고 있지 않소?”
“…….”
타앙!
탁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마침내 분을 참지 못한 남궁청이 발을 구른 것이다. 툭, 송영영의 젓가락 사이에 끼어있던 두부가 땅에 떨어졌다.
“…이 남궁둥이가 또.”
송영영이 중얼거렸다.
휙, 남궁청이 송영영을 향했다.
“소저, 지금 뭐라 지껄였소?”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송영영이 고개를 내저었다.
“…일전에는 신세를 졌소. 감히 우리 공자를 암습한 것은 결코 잊지 않았소.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조만간 정도맹 측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니 기대하시오.”
“뭐래, 먼저 습격해놓고.”
빠득, 남궁청이 이를 갈았다.
“…아시겠소? 부디 본인에게만큼은 감히 손대지 못할 거란 생각을 버리시오. 이 이상 무례하게 굴었다간—”
“아, 알았다니까.”
“…….”
남궁청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 나름대로 적잖은 경험을 쌓아왔으나, 대 남궁세가의 무인으로서 이와 같이 대놓고 무시를 당한 경험이 있을 리 없다.
철컥, 반사적으로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허나 그때였다.
“뽑지 않는 걸 추천드리지.”
윗켠에서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휙, 남궁청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
“…누구시오?”
“나 점창의 양호명이오.”
저벅저벅, 양호명이 계단을 내려오며 답했다.
“…관일검 양호명.”
“이거 영광이군. 천하의 남궁세가 외당주께서 부끄러운 허명을 다 알고 계시다니 말이오.”
“…….”
남궁청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물론 일개 군소방파인 정검문의 문주가 천하의 남궁세가의 외당주와 비할 수는 없다. 허나.
양호명은 스스로를 정검문주가 아닌 점창의 제자라고 소개했다. 그 의미는 퍽 명백했다.
“…대협께서 무거운 걸음을 하셨군. 정도맹의 뜻이오?”
“아니, 우리는 아직 아무 선택도 하지 않았소. 선택은 당신들이 했지.”
드르륵, 털썩.
마침내 일행의 곁으로 다가선 양호명이 근처의 의자를 끌어와서 앉았다.
“말마따나 정정당당한 승부라면 쓸데없이 개입을 할 생각은 없소. 그저 지나가는 구경꾼에 불과하겠지.”
“…….”
“다만… 우리도 슬슬 입장이 난처하단 말이지. 당신네들, 대체 왜 그렇게 일을 못 저질러서 안달이 난 거요? 부탁드리건대, 이쪽을 ‘당사자’로 만들지 않길 바라오.”
타앙, 양호명이 탁자를 두드렸다.
“적당히 하란 말이오. 적당히.”
“…….”
잠시 양호명과 남궁청의 시선이 부딪혔다. 남궁청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군.’
대화가 길어진들 얻을 것은 없다.
어찌되었건 정도맹과의 충돌은 나중 문제이며, 쓸데없이 일을 키울 이유는 없다.
우선 ‘눈앞의 일’에 집중한다.
남궁청이 다시 이벽을 향했다.
씨익, 비틀린 웃음이 지어졌다.
“아차, 내 정신 좀 보게! 비룡대주, 그러고 보니 사실은 한 가지 사소한 용건이 하나 더 있었네. 자네의 ‘부하’에게 작은 문제가 있어서 말이네.”
“……!”
“아무래도 주화입마가 온 것 같더구만. 좀 망가진 것 같지만 뭐, 우리 잘못은 아니지 않나?”